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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제 113화

무료소설 암천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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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암천제 113화

 

113화

 

 

 

 

 

 

그들이 움직이자 독고무령의 눈이 마인걸을 향했다.

 

“마 방주, 무사들을 오지 못하게 하시오.”

 

마인걸은 그제야 독고무령을 쳐다보았다.

 

“저들은 손님의 안전을 위해 움직이는 거네. 너무 걱정 말게나.”

 

“우리 안전은 우리가 지킬 거요. 신경 쓰지 마시오.”

 

지금까지 지하 이 층에서 이토록 교만한 행동을 하는 자를 보지 못한 마인걸로선 곤혹하기만 했다.

 

얼굴이 귀신처럼 험상궂을 뿐 그리 대단해 보이지는 않았다. 일류고수라면 자신이 기운을 눈치 챘을 테니까.

 

그런데도 너무 태연하다. 특히 눈빛은 한 점 미동조차 없다.

 

‘여기가 어딘지 모르지는 않을 텐데…….’

 

궁금함을 참지 못한 그가 물었다.

 

“자넨 누군가?”

 

“이 자리에서 말하기는 좀 그렇군.”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걸 원치 않는다는 건가?

 

마인걸이 독고무령의 말뜻을 짐작하고는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

 

“흠, 하긴 앞으로 단골이 될지 모르는데, 나중의 관계를 생각해서 조용히 술 한 잔 나누는 것도 괜찮겠지.”

 

그때 백사귀가 종지를 들어 올리고, 주위에 늘어선 사람들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 구다!”

 

“저 젊은이가 한끝 차이로 오 장주를 이겼어!”

 

탕!

 

얼굴이 벌게진 비단장삼의 중년인이 탁자를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믿을 수 없어! 마 방주, 이게 어찌된 일이오?”

 

이미 벌어진 일. 마인걸은 어깨를 으쓱하며 입을 열었다.

 

“허어, 주사위의 숫자야 주사위 맘인데, 그걸 어찌 본 방주에게 묻는 거요, 오 장주?”

 

“하지만…….”

 

오 장주라 불린 중년인은 입술을 씹으며 말하다 말고 입을 굳게 닫았다. 마인걸의 전음이 그의 입을 막아버린 것이다.

 

<소란 피우지 마시오, 장주. 본전은 드릴 테니까.>

 

태원 십대거부 중 하나인 진평장의 장주 오종화의 눈빛이 좌우로 굴렀다.

 

본전이라면 은자 천 냥이다. 백사귀가 손재주만 제대로 부렸으면 만 냥을 땄을 터. 그중 반을 만금도국에 준다 해도 오천 냥이다.

 

그 전까지 딴 것과 합치면 무려 일만 사천 냥이 그의 수중에 들어왔을 것이었다.

 

그가 아무리 거부라 해도 일만 사천 냥은 결코 작은 돈이 아니었다. 적어도 반은 받아야 속이 풀릴 것 같았다.

 

하지만 그가 입을 열기도 전에 마인걸의 전음이 다시 귀청을 때렸다.

 

<오늘은 그 정도로 만족하시오. 욕심은 명만 단축하는 법이라오.>

 

조용한 목소리. 그러나 말뜻은 결코 그렇지 않았다.

 

오종화는 슬며시 고개를 돌리며 자리에 다시 앉았다.

 

마인걸은 그제야 웃음을 보이며 유원위와 독고무령을 바라보았다.

 

“허허허, 오늘 귀한 손님들이 오신 것 같은데, 대접이 소홀한 것 같군. 자, 안으로 들어가세. 내 술 한 잔 내겠네.”

 

마인걸은 자신이 지옥의 사신을 안으로 들이고 있다는 걸 까맣게 모른 채 몸을 돌렸다.

 

 

 

지하별실은 전과 거의 달라진 것이 없었다. 천장과 벽에 숨은 호위무사 숫자가 조금 많아졌을 뿐.

 

‘마인걸, 저들이 과연 네 목숨을 지켜줄 수 있을까? 훗!’

 

독고무령은 속으로 냉소를 흘리며 자리에 앉았다.

 

세 사람이 마주 앉자마자 시비가 차를 내왔다.

 

찻잔을 들어 입술을 적신 마인걸이 정말 놀랐다는 표정을 지으며 유원위를 쳐다보았다.

 

“허허허, 대동의 무영도귀가 본방을 찾아오다니, 이거 영광이구먼.”

 

무영도귀(無影賭鬼).

 

삼 년 전에 나타나서 대동의 도박장에 평지풍파를 일으키고 갑자기 사라진 도박귀신. 

 

누군지 알려지지 않아 그냥 무영도귀라 불릴 뿐이다.

 

그는 오직 주사위만 한다고 했다. 천하의 누구도 주사위로는 그를 이기지 못한다는 소문도 돌았다.

 

주사위노름의 최고수라는 귀편도가 그 앞에서 손재주를 부리다 목이 잘렸다고 하지 않던가.

 

그가 갑자기 사라지지만 않았다면, 아마 사람들은 산서 제일의 도박꾼으로 무영도귀를 꼽는 걸 주저하지 않을 것이었다.

 

백사귀에게서 유원위의 정체를 들은 마인걸은 기분이 정말로 좋았다. 만일 무영도귀를 만금도국에 끌어들일 수만 있다면, 태원의 도박계를 평정할 수 있을 테니까.

 

‘이놈을 끌어들일 수만 있다면 십만 냥도 아깝지 않지. 후후후, 일 년에 백만 냥은 벌어줄 놈이거든?’ 

 

하지만 그런 기분도 잠시뿐이었다.

 

독고무령이 느릿하니 좌우를 바라보고 나직이 입을 연 것이다.

 

“방이 많이 바뀌었군.”

 

마인걸은 의아한 표정으로 독고무령을 응시했다.

 

처음으로 본 자다. 그런데 마치 전에 와봤다는 듯 말하지 않는가?

 

“이와 비슷한 방을 본 적이 있나?”

 

독고무령은 의아해 하는 마인걸을 똑바로 바라본 채, 무심한 목소리로 마인걸의 의문을 풀어주었다.

 

“그러고 보니 고맙다는 말을 해야겠군. 덕분에 적우를 쉽게 만났으니 말이야.”

 

마인걸의 눈이 점점 커졌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입마저 떡 벌어졌다.

 

그 일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오직 하나뿐이다.

 

얼굴이 완전히 다르긴 하지만, 그것이 사실을 감출 정도의 조건은 되지 못했다.

 

정말 상처를 입어 변한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껍질을 뒤집어썼을 수도 있으니까.

 

“서, 설마……?”

 

“쓸데없는 짓은 하지 말도록. 적우는 필요해서 그대를 살려줬는지 몰라도, 나는 적우가 아니야.”

 

마인걸의 하얗게 질린 얼굴이 푸들거리며 떨렸다.

 

독고무령은 그런 마인걸을 무심한 눈으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원한다면 모두 죽이고 이야기를 할 수도 있지. 단, 그때는 당신의 사지 중 적어도 두 개는 없어져 있을 거다.”

 

비밀호위무사를 전보다 더 강한 자로 뽑았다. 숫자도 늘렸다.

 

하지만 앞에 있는 악마 같은 자는 적우조차 잡지 못한 고수. 하등 쓸데없는 수작일 뿐이다.

 

“왜…… 왜 나를 또 찾아온 거요?”

 

“용케 적우의 손에서 벗어났다고 하더군. 그래서 부탁할 게 있어 왔지.”

 

마인걸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말이 부탁이지 강압이나 다름없는 말이다.

 

문제는 자신이 상대의 말을 거절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만에 하나라도 적우에게 사실을 밝힌다면, 그날로 마운방은 끝장날 테니까.

 

“나는 더 이상 해줄 게 없는데…….”

 

“그건 내가 판단한다. 당신이 아니라 내가.”

 

마인걸은 더 이상 말싸움할 기분도 들지 않았다.

 

상대는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정면으로 부딪치는 것보다 일단 이야기를 들어보고 난 뒤, 어떻게 할 것인지 판단하는 게 나을 것이었다.

 

“말해 보시오. 나에게 뭘 원하는 거요?”

 

“흑호방(黑虎幇)과 백귀회(百鬼會)의 우두머리들을 모아줘야겠어.”

 

축 처졌던 마인걸의 고개가 번쩍 들렸다.

 

“그들을 왜……?”

 

“셋을 하나로 만들 생각이야.”

 

마인걸의 커진 눈이 좌우로 흔들렸다. 

 

독고무령의 말뜻인 즉, 태원의 흑도를 다스리는 세 방파를 하나로 만들겠다는 말이 아닌가 말이다.

 

“쉽지 않을 텐데……?”

 

“어려울 것도 없어. 그대가 전면에 나서면 뒤는 내가 처리하지.”

 

마인걸은 독고무령에 대해 반도 모르고 있지만, 그 정도만으로도 자신과 비교할 수 없는 고수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더구나 심기는 또 어떤가. 태원의 밤을 지배하는 마운방의 방주인 자신을 말 몇 마디로 들었다 놨다 할 정도가 아니던가.

 

그런 독고무령이 나선다면, 태원의 밤을 통일하는 것도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인걸은 자신도 모르게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정말 태원의 밤을 일통하려는 것이오?”

 

“그들이 내 뜻을 거부한다 해도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만약 그들이 거부하면, 모두 정리한 뒤 다스리는 걸 그대에게 맡기지.”

 

마인걸의 눈빛이 파르르 떨렸다.

 

태원의 밤을 다스리는 제왕의 자리는 거대한 유혹이었다.

 

일통이 가능하든 불가능하든, 그것은 나중 문제였다.

 

그러한 생각은 자신만이 아니라 흑호방이나 백귀회의 주인도 같을 것이다.

 

그는 이를 악물고, 불길이 쏟아질 것 같은 눈으로 독고무령을 노려보았다.

 

“만일…… 내가 거절한다면?”

 

독고무령은 처음이나 다름없이 무심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럼 다른 사람을 찾아가야겠지.”

 

흑호방이나 백귀회를 찾아가 똑같은 제안을 하겠다는 말.

 

그것도 아마 자신을 죽인 후에 갈 것이 분명하다.

 

마인걸은 거기까지 생각하고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이제는 독고무령이 자신을 먼저 찾아왔다는 걸 눈물 나도록 고마워 해야할 판이었다.

 

그는 목에 힘을 주고 겨우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대가 아무리 강하다 해도, 한 손이 열 손을 당하기는 쉽지 않은 법이오. 함께할 사람은 있소?”

 

순간 귀면의 입꼬리가 살짝 비틀렸다.

 

“알고 싶으면 거절해 봐. 그럼 마운방을 먼저 정리해서 나에 대해 알려주지.”

 

귀면의 웃음.

 

마인걸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제기랄…….’

 

 

 

* * *

 

 

 

운양은 독고무령의 말을 듣고 콧등을 매만졌다.

 

“태원의 밤을 일통하겠다고?”

 

“왜? 마음에 안 드나?”

 

“마음에 안 드는 건 아닌데…….”

 

산서의 모든 정보가 모이는 곳이 태원이다. 밤을 일통한다면, 정보력에서 제왕성보다 우위에 설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단점도 있다.

 

태원은 수많은 사람이 집결하는 곳. 여차하면 자신들의 정체가 드러날지도 모른다.

 

제왕성의 눈을 피하려면 그만큼 조심해서 움직여야 한다는 말. 움직임에 제약이 따르면 기동성이 떨어질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따져 봐도 어쨌든 나쁘지 않은 계획이었다. 아니, 잘만 이용하면 제왕성의 뒤통수를 멋지게 후려칠 수 있을 듯했다.

 

내심 생각을 정리한 운양의 눈이 독고무령을 향했다.

 

“언제부터 시작할 거지?”

 

독고무령은 찻잔을 내려놓고 눈을 들었다.

 

“내일 마인걸과 함께 흑호방의 방주와 백귀회의 회주를 만날 거네. 본격적인 일은 그때부터 시작될 거야.”

 

“내가 해줄 일은?”

 

“자넨 당분간 제왕성과 은룡산장의 움직임을 파악하는데 전력을 쏟아. 아마 오래지 않아 그들이 움직일 거야.”

 

운양은 고개를 끄덕이며 넌지시 물었다.

 

“그거야 당연히 할 일이고……. 듣자니까, 자네와 유원위가 돈을 많이 땄다고 하던데…… 얼마나 땄나?”

 

독고무령은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품속에서 주머니 하나를 꺼내더니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자네가 준 인피면구 쓸 만하더군. 덕분에 일이 쉽게 끝났지. 이거면 당분간 자금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네.”

 

운양은 눈을 반짝이며 주머니를 끌어당겼다.

 

그리고 곧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는 오랜만에 활짝 웃었다.

 

“우흐흐, 이게 얼마야, 만 냥은 되겠는데?” 

 

밀린 외상을 다 제하고도 남는 거액이었다.

 

하지만 운양은 그 돈이 전체의 반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물론 독고무령도 말해주지 않았다. 나중에 많은 돈을 써야 할 때가 있을지 모르는 일. 비상금 정도는 챙겨두어야 했으니까.

 

 

 

운양의 방을 나선 독고무령은 곧장 후원 거처로 갔다.

 

모두 지하석실에 있는지 후원에 오가는 사람이 없었다.

 

독고무령은 곧장 작은 정원을 가로질러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그때 저만치, 어둠 속에서 등을 보인 채 서 있는 사람이 보였다. 행색으로 봐서 용설인 것 같은데, 뭔가 깊은 사색에 잠긴 모습이었다.

 

독고무령은 용설의 사색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그를 부르지 않았다.

 

그런데 막 방문을 열려고 문고리를 잡았을 때였다. 용설이 있는 곳에서 나직한 대화소리가 들려왔다.

 

밤이 아니었다면, 독고무령의 청력이 유난히 뛰어나지 않았다면 듣지 못할 정도로 나직한 목소리였다.

 

“알아봤어?”

 

“아무래도 오래 전에 이사를 간 것 같습니다.”

 

“으음, 그래서 저번에도 안 보였던 건가? 후우, 그 사람을 찾아야 숙부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을 텐데…….”

 

“어떻게 할까요? 단주에게 며칠 밖에 나갔다 온다고 하고 찾아볼까요?”

 

“뭔가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려는 것 같아. 아마 허락하지 않을 거야.”

 

“그럼 어떻게 하지요? 당장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은 그분뿐인데.”

 

용설은 입을 다물고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곧 이를 갈며 나직이 말했다.

 

“별수 없지. 찾지 못하면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보는 수밖에.”

 

“그럼 소양이는……?” 

 

“놈들도 소양이의 이용가치를 아니 죽이지는 않을 거야.”

 

“그건 그런데…….”

 

그 후로 조용해졌다.

 

독고무령은 모른 척하기 위해서 소리 나지 않게 방문을 열다 멈칫했다.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친구처럼 대하던 나인창이 존대를 한다. 말을 조심하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존대까지 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할 수밖에 없었다.

 

‘둘이 어떤 관계인데 저러지?’

 

그때 다시 용설의 가느다란 목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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