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천제 14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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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71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암천제 140화
140화
황자악과 적수천과 군호광은 헌원조의 뜻을 알고 수하들을 독려했다.
“힘을 내라! 놈들이 당황하고 있다!”
“물러서지 마라! 밀어붙여!”
순식간에 혼전이 더욱 격해졌다.
이제는 누가 아군이고 누가 적인지조차 모를 지경이었다.
제왕성의 무사들은 삼백오십 정도. 은룡산장의 무사들도 이백여 명이 남았다.
거기에 무천련 이백무사가 합류한 상황.
혼전이 극한까지 치달으며 붉은 대지가 더욱더 시뻘겋게 물들어갔다.
제왕성과 은룡산장의 무사들이 잠깐 사이 백여 명이나 줄어들었다.
그러함에도 누구 하나 물러설 줄을 몰랐다. 오히려 그들은 이판사판이라는 심정으로 적의 피를 갈구했다.
“죽어라! 개자식들!”
“네놈들의 심장을 씹어 먹고 말리라!”
“죽어! 죽어!”
모두가 시뻘겋게 충혈된 눈빛이다.
광기(狂氣)!
피에 미친 자들의 집단적인 광기가 그들의 정신을 지배했다.
그렇게 제왕성의 무사들과 은룡산장의 무사들이 모두 중앙으로 모였을 즈음, 암천단과 천룡방의 무사들이 나타났다.
따로 명령을 내리는 사람도 없는데도 그들은 아교로 입술을 붙인 듯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고 중앙을 향해 쇄도했다.
제일 먼저 상황이 이상함을 느낀 사람은 곽대천과 한 치의 양보 없이 접전을 벌이던 헌원조였다.
‘뭔가 이상해!’
그가 이상함을 느꼈을 때는 은룡산장의 무사 중 남은 사람이 백여 명에 불과했다.
그는 악을 쓰듯이 외쳤다.
“후퇴해! 적이 뒤에도 있다!”
내력이 실린 목소리가 계곡을 흔들었다. 광기에 이끌려 적을 추살하던 자들 중 일부가 정신을 차렸다.
뒤이어 은룡산장 쪽에서는 적수천이, 제왕성 쪽에서는 곽대천이 벼락같이 소리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은룡산장의 무사들은 뒤를 치고 빠져나가라!”
“모두 후퇴한다! 뒤로 물러나라!”
하지만 독고무령은 그들의 후퇴를 그냥 놔두지 않았다.
적을 칠 때는 한쪽을 터놓는 게 병법의 기본이라 했다.
그러나 지금은 두 적이 서로 마주한 채 싸우다 후퇴하는 상황. 더구나 전멸시킬 작정으로 일을 벌인 터다.
독고무령은 그대로 몸을 날리며 적진 깊숙이 뛰어들었다.
그가 노리는 곳에는 피로 물든 석무종과 마후릉이 있었다.
일반 무사 몇을 죽이는 것보다 절정고수 하나를 죽이는 것이 제왕성의 전력을 약화시키는데 훨씬 효과적이었다.
마후릉은 한 번 봤지만, 석무종이 누군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가 지닌 기운만 봐도 제왕성의 무리 중 수장임을 아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독고무령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두 사람을 덮쳤다.
구성의 공력이 실린 검에서 맑은 청색 검강이 벼락처럼 쭉 뻗었다.
마후릉이 독고무령을 보고 대경해 소리쳤다.
“네놈은!”
고오오오!
독고무령은 대답 대신 검을 내리쳤다.
한 줄기 벼락이 대기를 일직선으로 가르며 떨어져 내렸다.
마후릉은 피할 생각도 못한 채 정면으로 그의 검을 막았다.
쾅!
“크억!”
답답한 비명과 함께 마후릉의 몸뚱이가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순간 이 장가량 떨어져 있던 석무종이 독고무령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놈!”
독고무령은 석무종의 공세 속으로 뛰어들며 일 검을 뻗었다.
일순간, 마치 춤을 추듯이 흔들리는 독고무령의 신형에서 번갯불이 번쩍였다.
천뢰광혼의 검세!
쩌적!
석무종의 검세가 산산이 부서지고, 그 사이로 한 줄기 검광이 일직선으로 뻗어나갔다.
황자악과의 접전으로 내력의 반을 소모한 석무종이다. 몸이 정상이라 해도 막기 힘든 상황. 하물며 절반의 내력으로 독고무령의 검세를 맞받아친다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였다.
떵!
“허억!”
석무종의 검이 옆으로 튕겨지고, 시퍼런 검강 한 줄기가 석무종의 어깨를 관통했다.
독고무령은 그를 그대로 놔둔 채, 몸을 일으킨 마후릉을 향해 다시 신형을 날렸다.
후우웅!
그의 검첨에서 뻗어나간 짙푸른 검강이 희미하게 사라진다 싶은 순간!
퍽!
뇌정일섬이 마후릉의 심장을 뚫어버렸다.
마후릉은 마치 못 볼 것을 본 것마냥 입을 달싹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아, 암천사신…… 저, 정말…… 강하구나…….”
경악으로 물든 그의 심장에서 핏줄기가 뿜어졌다.
쿵!
독고무령은 마후릉이 무너지는 소리를 뒤로 한 채 또 다른 적을 찾아 움직였다.
어느새 다가온 호위무사대가 그와 나란히 보조를 맞추었다.
진사혁과 한무종이 선두를 이끌고, 석도명이 뒤로 약간 처져서 전체를 조율했다.
그들은 독고무령을 따라 일직선으로 나아가며 거치적거리는 적들을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제거했다.
한몸처럼 뭉쳐서 움직이는 그들은 힘이 빠진 적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회주! 회주는 놈들 중 대가리만 상대해! 잡졸들은 우리에게 맡기고!”
전보다 더 강해진 곰, 진사혁이 호기롭게 소리치며 곤을 휘둘렀다.
콰아아!
그의 곤이 휘둘러질 때마다 압축된 대기가 터져 나가며 상대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오랜 싸움에 지친 적들은 대항하려 하기보다는 빠져나가기 위해 안간힘을 쓸 뿐이다.
자신이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상황.
독고무령은 은룡산장의 무리를 향해 몸을 날렸다.
독고무령이 향하는 곳, 그곳에는 황자악이 있었다.
석무종에게서 멀어진 그는 도정환과 사중인을 상대로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만은 자신이 직접 죽일 작정이었다.
철검보에서 죽어간 사람들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서!
“그자는 나에게 맡겨 주시오!”
도정환과 사중인은 황자악을 상대하면서 조금의 우세도 잡지 못하고 있던 터였다. 아니, 우세는커녕 밀리지 않기 위해 전력을 다해야 할 판이었다.
그들은 독고무령이 날아드는 걸 보고 재빨리 뒤로 물러섰다.
뒤에서 밀어닥치는 가공할 기세에 흠칫한 황자악은 일 장가량 옆으로 미끄러지며 재빨리 몸을 돌렸다.
그는 독고무령을 알아보고는 두 눈을 부릅떴다.
“네, 네놈은!”
“그대를 죽여 철검보에서 죽어간 사람들의 원한을 갚겠노라!”
독고무령은 황자악을 향해 뇌정진천세의 검세를 쏟아냈다.
황자악은 하늘을 가르며 떨어지는 검세를 피하지도 못하고 정면으로 맞받아쳤다.
콰앙!
“커억!”
황자악의 몸뚱이가 주욱 밀려났다.
부릅뜬 눈, 해쓱해진 안색, 부들부들 떨리는 몸뚱이.
단 일 검에 내장이 진탕되어 버린 그는 아연한 표정으로 독고무령을 쳐다보았다.
독고무령은 결코 공세를 망설이지 않았다.
그는 한 걸음 앞으로 내딛으며 검을 뻗었다.
번쩍!
검첨에서 휘황한 검광이 피어났다 싶은 순간, 황자악이 본능적인 움직임으로 검을 들어 막았다.
떠덩!
황자악의 검이 허공으로 튕겨져 날아갔다. 동시에 시퍼런 벼락이 황자악의 심장을 관통했다.
피육!
황자악의 심장에서 굵은 핏줄기가 앞뒤로 뿜어져 나왔다.
“이, 이런…… 말도 안 되는…….”
독고무령은 붉은 입으로 말을 더듬는 황자악을 향해 검을 홱 뿌렸다.
“지옥으로 가라, 은룡산장의 개!”
황자악의 목에 그어진 기다란 붉은 실선 한 줄기.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 속의 동공이 빛을 잃어간다.
독고무령은 지옥으로 떠나는 황자악을 무심한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남은 말은 지옥에 가서, 너로 인해 죽어간 사람들에게 해라.”
피도 눈물도 없는 냉정한 손속!
도정환과 사중인은 등줄기로 소름이 돋았다.
강할 거라 예상 못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눈앞에서 펼쳐진 광경은 그들의 사고를 정지시킬 정도였다.
‘맙소사! 설마 저 정도였다니!’
‘그때 싸웠으면…….’
특히 첫날 독고무령에게 대들려 했던 사중인은 오싹한 생각에 몸이 절로 떨렸다.
독고무령은 그들의 시선을 의식치 않고 한곳을 바라보았다.
저만치서 북리사웅이 덩치가 제법 큰 청년과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는 게 보였다.
그 너머에선 육풍원이 사십 대 초반의 중년인, 헌원조와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생사투를 벌이는 중이었다.
살아남은 은룡산장의 무사들은 모두 육십여 명. 시간이 갈수록 빠르게 줄어드는 상황이다.
이대로만 가면, 반각도 지나지 않아 모든 것이 정리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전장을 훑어보던 독고무령은, 우도진과 팽팽한 접전을 벌이는 적수천을 보고 눈을 반짝였다.
만났을 당시 인피면구를 썼으니 얼굴은 모를지 몰라도, 자세히 살피면 자신의 검 정도는 알아볼지도 모르는 일. 아직 이용가치가 있는 적수천이기에 독고무령은 그쪽으로 다가가지 않았다.
대신 전음을 날려 우도진에게 명을 내렸다.
<우 장로님, 대충 상대하다가 도망치려 하면 도망가게 놔두십시오.>
우도진이 창을 휘둘러서 적수천을 멀찌감치 떼어놓고 고개를 모로 꼬았다.
당연히 누구든 의아해할만한 일.
독고무령은 다시 전음을 보내 우도진의 의아함을 풀어주었다.
<그자는 아직 이용할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니 제 말대로 해주십시오.>
우도진은 독고무령의 말을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 창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쳤다.
퍼억!
바닥이 일곱 자 길이로 움푹 파이며 먼지구름이 일었다.
지나치게 큰 동작. 위로 솟구치는 먼지구름.
그 순간 작은 틈이 드러났다.
적수천은 먼지구름으로 인해 상대의 시야가 가려지자, 즉시 몸을 날려 우도진의 창이 점유하는 공간을 벗어났다.
지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한 사람과의 승부로 끝날 싸움이 아닌 이상 기회가 났을 때 전장을 벗어나야 했다.
“어? 저놈이! 거기 서라!”
우도진은 짐짓 고함을 지르며 쫓는 시늉을 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코웃음을 치며 도주하는 적수천을 비웃었다.
‘헹, 어차피 보낼 놈이라면 공연히 힘 뺄 것 없지 뭐.’
순식간에 오 장을 벗어난 적수천은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고 전장을 벗어났다.
미쳐버리고 싶었다.
자괴감에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그냥 이 자리에서 죽을 때까지 싸우다 죽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그에게는 오늘의 참담한 상황을 은룡산장에 알려야 할 의무가 있었다.
게다가 헌원조마저 발이 묶인 상황. 그라도 가서 귀원장에 남아 있는 사람들을 데리고 우현을 빠져나가야 했다.
아니면 모두가 죽을 테니까.
독고무령은 적수천이 빈틈을 뚫고 전장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무저갱의 늪처럼 가라앉은 눈으로 지켜보았다.
‘가라. 가서 노태군의 분노를 더욱 강하게 끌어 올려라, 적수천!’
한편, 북리사웅은 벌게진 얼굴로 군호광을 몰아붙였다.
그의 검이 번쩍일 때마다 검기가 폭풍처럼 일어나며 군호광을 덮쳤다.
전체적인 싸움은 마무리를 향해 치닫고 있는 중이었다.
승리는 거의 정해진 상황.
그런데 자신은 아직도 앞에 있는 자를 무너뜨리지 못하고 있다. 만일 상대가 지친 몸이 아니었다면 우세조차 보이지 못했을지도…….
그는 현 상황이 치욕처럼 느껴졌다.
“건방진 놈! 처참하게 무너뜨려주마!”
악에 받친 것은 군호광도 마찬가지였다.
“흥! 쉽지 않을 것이다!”
두 사람은 처음 보았음에도, 철천지원수라도 되는 것처럼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북리사웅은 빨리 싸움을 끝내고 싶었다.
계곡 전체가 팔다리 잘리고 피로 물든 시신으로 뒤덮여 있다.
바닥에 고인 피가 뭉쳐 발바닥에 달라붙는다. 끈적끈적한 느낌에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은 기분이다.
코를 찌르는 비릿한 피 냄새, 악취. 구역질이 날 것만 같다.
적과 싸우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당장 벗어났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그가 더 잘 알았다.
전쟁! 이게 전쟁이란 말인가?
이곳에는 무사가 없다. 오직 상대를 죽이고자하는 살귀들만이 존재할 뿐.
무사의 도리? 그 따위 건 개에게나 줘버리라지!
그는 육풍원의 말 중 하나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쟁에서 무사의 도리를 찾는 것은 웃기는 일이다!
“빌어먹을! 어디 이것도 받아봐라!”
자신도 모르게 분노가 솟구친 북리사웅은 그동안 숨기다시피 했던 등천신룡검(騰天神龍劍)을 펼쳐 군호광을 공격했다.
갑자기 달라진 북리사웅의 공격에, 군호광 역시 최후의 순간까지 아꼈던 혈천마검식(血天魔劍式)을 펼쳤다.
쩌저정! 떠덩! 쾅!
두 사람의 기세가 정면으로 충돌하자, 땅바닥에 널려 있던 시신들이 터져나가며 지옥과 같은 광경이 펼쳐졌다.
“헉! 네놈의 그 무공은……?”
삼 초의 격전에 일 장가량 밀린 군호광의 눈이 한껏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