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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제 136화

무료소설 암천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78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암천제 136화

 

136화

 

 

 

 

 

 

* * *

 

 

 

제왕성 무사들은 귀원장 서쪽 삼십여 리 떨어진 이름 모를 계곡에서 부상자들을 치료했다.

 

대략 한 시진 정도가 지나자, 중상자를 뺀 무사들이 대충 몸을 추스르고는, 상부의 지시를 기다렸다.

 

“당장 움직일 수 있는 인원이 얼마나 되나?”

 

철혈전주 곽대천의 질문에 제검전의 수하 하나가 대답했다.

 

“경상을 입은 사람까지, 모두 육백 정도 됩니다.”

 

“빌어먹을!”

 

짜증을 씹어 뱉은 곽대천이 석무종과 마후릉 그리고 환무단의 단주인 요공명을 바라보며 의견을 물었다.

 

“어떻게 할 건가?”

 

석무종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소. 피해가 많긴 하지만 아직 놈들에게 밀리지 않는 전력이오. 다시 치지요.”

 

그러자 마후릉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일단 군사의 명을 기다립시다.”

 

석무종이 인상을 쓰며 마후릉을 쳐다보았다.

 

“언제까지 기다리잔 말인가?”

 

“군사께서도 상황을 알게 되면, 서연에 남은 무사들을 모두 파견하실 거요. 그들이 온다면 그만큼 승산이 높아지지 않겠소이까?”

 

서연에 남은 제왕성 무사들의 수는 이백. 거기다 산서에서 모여든 무사들이 또 이백쯤 있다.

 

그들이 온다면 지금보다 나을 것만큼은 분명한 일.

 

“제기랄…….”

 

석무종은 한마디 내뱉고 더 이상 강공 주장을 내세우지 않았다.

 

 

 

귀원장의 상황 역시 제왕성 무사들에 비해 조금도 낫지 않았다.

 

사상자를 장원으로 들여오고, 그중 부상자를 돌보는 사이 두 시진이 훌쩍 지나갔다.

 

암문에서 소식이 전해진 것은 그 즈음이었다.

 

“놈들이 삼십 리 떨어진 계곡에서 전열을 정비하고 있다고 하는군. 그리고 서연의 무리도 움직이는 모양이네.”

 

황자악은 헌원조가 암문에서 온 소식을 전하자 벌떡 일어섰다. 그의 옷은 여기저기 피로 물들어 있었는데, 그가 벤 이십여 명의 적에게서 튄 것이었다.

 

“시간 끌 것 없이 바로 칩시다!”

 

하지만 헌원조는 서두를 생각이 없었다.

 

“우리의 피해도 적지 않다. 바로 치기에는 무리야.”

 

황자악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서연에 남아 있는 놈들이 움직인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앉아 있다 당할 겁니까!”

 

군호광이 황자악의 편을 들어 헌원조를 압박했다.

 

“큰형님,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말도 있잖습니까? 놈들은 우리가 공격할 줄 꿈에도 모르고 있을 겁니다. 때를 놓치면 더 어려워지니 지금 공격합시다.”

 

그는 검혼단주 마후릉과 이십여 초의 접전을 벌이고도 승부를 가르지 못한 것이 분했다.

 

조금만 더 싸웠다면 이길 수 있었을 텐데, 그만 마후릉이 갑자기 도주해 버린 것이다.

 

일개 간부조차 이기지 못하다니!

 

위지천백과 싸워도 지고 싶지 않은 그로선 스스로에게 분노기 치밀어 오르는 일이었다.

 

‘그자만큼은 반드시 내가 직접 꺾겠어!’

 

헌원조도 상황을 모르지 않았다.

 

한데 왠지 모르게 자꾸 마음에 걸리는 게 있어 망설여지는 것이었다.

 

그는 일단 적수천의 생각을 알아보았다.

 

“수천, 네 생각은 어떠하냐?”

 

묵묵히 생각에 잠겼던 적수천은 눈을 들어 헌원조를 바라보았다.

 

“서연에서 지원군이 온다면 분명 더 어려워질 겁니다. 놈들의 공격을 기다리는 것보다는 우리가 먼저 치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단, 무작정 달려가서는 안 됩니다. 이번에는 우리가 철저히 조직적으로 움직이도록 하지요.”

 

세 동생이 모두 적을 공격하자는 결정을 내린다.

 

헌원조도 더 이상 고집 피우지 못했다.

 

“좋다. 그럼 그렇게 하지. 다행히 저들의 후위로 무천련의 잔존세력이 다가가고 있다고 하니, 그들의 힘을 잘만 이용하면 우리의 피해를 줄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게 사실입니까? 그거 정말 잘 됐군요!”

 

“그놈들, 조금 빨리 왔으면 이곳에서 끝장낼 수 있었을 텐데.”

 

황자악과 군호광은 기뻐하면서도 무천련의 미적거림에 불만을 터트렸다.

 

하지만 적수천은 미간을 찌푸린 채 헌원조의 말을 되새겼다.

 

‘그들은 제왕성뿐만이 아니라 우리도 원수로 생각할 것이다. 그리 기뻐할 상황은 아니야.’

 

그래도 어쨌든, 그들을 잘만 이용하면 제왕성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을 터. 적수천은 모든 것을 좋은 쪽으로 생각하려 했다.

 

“그럼 놈들을 공격할 때 후면은 비워두도록 하지요.”

 

사방 중 하나만 비워도 그만큼 나머지 세 방향에 힘을 쏟을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이득이었다.

 

“이번 싸움에서 승리하면, 암문에 두둑한 보상을 해줘야겠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형님?”

 

암문을 멸시하며 배척하던 황자악이 웬일로 보상을 운운한다. 헌원조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왕성과의 본격적인 싸움에서 그들의 정보를 이용하려면 그렇게 해야겠지.”

 

 

 

* * *

 

 

 

대풍장의 정문이 열리고 수백 명의 무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남의 눈도 의식하지 않고 곧장 동쪽으로 달려갔다.

 

“늦으면 안 된다! 전력으로 달려라!”

 

공노명은 장원 안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를 지그시 악문 그의 눈에서 서늘한 기운이 일렁였는데, 평소의 고요하던 그의 눈빛과는 전혀 달랐다.

 

‘흥! 노태군, 그대가 자랑하는 삼군 삼단의 무력이 아무리 강해도 본성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가 아는 한, 은룡산장에선 삼군 삼단 중 셋 이상이 나왔다.

 

설령 오늘의 전쟁에 나선 제왕성의 무사들이 전멸해도, 적과 공멸할 수 있다면 최후의 승자는 제왕성이 될 것이다.

 

하물며 자신들이 월등한 전력. 최소한 삼사 할은 남을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후의 전쟁은 이미 승자가 결정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공노명은 서늘한 웃음을 지으며 동쪽을 바라보았다.

 

‘노태군, 그대는 성주를 너무 몰라. 그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서연의 장원에서 수백 명의 무사들이 빠져나간 지 이 각이 지날 무렵, 독고무령도 해수촌의 통나무집을 나왔다.

 

귀원장도 움직임을 준비하고, 서연에선 지원무사들이 쏟아져 나온 상황. 때가 된 것이다.

 

그런데 의외였다. 제왕성의 지원무사들이 서연을 출발한 지 이 각이 지났다. 족히 이십 리는 갔을 터. 그들을 만나려면 당연히 북쪽으로 가야 했다.

 

그런데 그는 북쪽으로 가지 않고, 서쪽으로 길을 잡는 것이 아닌가.

 

의아한지 진사혁이 물었다.

 

“회주, 북쪽으로 가야 하는 거 아냐?”

 

독고무령은 걸음을 옮기며 무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먼저 처리해야 할 자가 있네. 서두른다면 그를 처리하고 따라가도 늦지 않아.”

 

“대체 누구를 처리하려고……?”

 

그때 독고무령의 생각을 눈치 챘는지, 용설이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설마…… 공노명을……?”

 

전율이 벼락처럼 사람들의 뇌리를 후려쳤다.

 

제왕성의 총군사, 제왕의 머리, 제유(帝儒) 공노명!

 

그는 산서의 무인들에게 위지천백과는 또 다른 두려움을 주는 자였다.

 

말 한마디로 일파를 무너뜨릴 수 있는 사람.

 

그 어느 문파가 그를 두려워하지 않으랴!

 

사람들은 아연한 표정으로 독고무령을 쳐다보았다.

 

독고무령은 걸음을 옮기며 대답해 주었다.

 

“서연에서 적어도 삼사백이 빠져나갔을 거네. 그럼 남은 자는 백이 조금 넘는 무사와 공노명의 호위대 정도. 지금이 아니면 그를 잡을 기회가 없어.”

 

공노명이 죽고, 제왕성의 일천 무사도 죽고, 은룡산장의 팔백 무사도 죽는다면, 산서에 바람이 일기 시작할 것이다.

 

천지를 휘어감을 거대한 용권풍이!

 

독고무령이 원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제3장 머리를 자르다

 

 

 

 

 

해수촌에서 서연의 대풍장까지 오십여 리.

 

비록 산맥이 가로막고 있긴 하지만, 완만한 계곡이 서연까지 이어져 있어 그리 험한 길은 아니었다.

 

독고무령과 삼괴 그리고 스물다섯 명의 호위무사대는 경공을 펼쳐 계곡을 통과했다.

 

반 시진 뒤.

 

쉬지 않고 오십여 리를 달린 그들은 대풍장이 보일 즈음에야 걸음을 늦추었다.

 

그들은 대풍장을 향해 걸어가며 호흡을 고르고 흐트러진 내력을 다스렸다.

 

그리고 일각 후, 그들은 서쪽 담을 넘어 장원으로 들어갔다.

 

“웬 놈이냐!”

 

멀리서 그들을 발견한 경비무사 하나가 소리쳤다.

 

경비무사는 모두 셋이었는데, 그들은 사방에 대고 소리만 지를 뿐 다가오지는 않았다.

 

“누군지 신분을 밝혀라!”

 

“수상한 놈들이 담을 넘어왔다!”

 

어차피 발견될 거라 생각하고 침입한 터다.

 

독고무령 일행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공노명이 있을 거라 짐작되는 대풍전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그때 전각 사이에서 대여섯 명이 나오더니 무기를 빼들고 앞을 막았다.

 

“멈춰라! 웬 놈들이 감히 이곳에 들어온 것이냐!”

 

촌각을 다투는 상황. 독고무령은 시간을 아끼기 위해 처음부터 검을 뽑아들었다.

 

쩌저적! 따당!

 

일 검에 두 사람의 검이 부러지며 허공으로 튀어 오르고, 부러진 검을 들고 있던 자들도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뒤이어 뛰어든 삼괴와 진사혁이 나머지 넷을 처리했다.

 

“흥! 감히 이 어르신에게 놈이라니!”

 

귀도가 경비무사의 목을 단숨에 부러뜨려 옆으로 내던지고 독고무령의 뒤를 따라갔다.

 

동시에 마불과 치선도 두 명의 무사를 대충 때려눕히고는 부리나케 발을 놀렸다.

 

잘못하면 길을 잃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삼괴는 독고무령에게서 이 장 이상을 떨어지지 않았다.

 

그 뒤를 호위무사대가 따라갔다.

 

그들은 쐐기 형태를 이룬 채 두 줄로 늘어서서 서로가 서로를 보호하며 이동했다.

 

경험 많은 석도명이 중간에서 전체를 조율했는데, 그는 쐐기 형태의 진세가 조금만 흐트러져도 소리쳐 주의를 일깨웠다.

 

“진세를 흐트러뜨리지 마라! 적이 도망가면 그냥 놔둬!”

 

양쪽의 선두는 진사혁과 한무종이 섰다.

 

두 사람은 앞을 막는 자들에게 추호의 인정도 남기지 않고 손을 썼다.

 

그리고 곧, 대풍장에 피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소리지?”

 

공노명은 차를 마시다 말고 고개를 들었다.

 

“속하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문 옆에 서 있던 중년무사가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그는 군사각의 호위무사대를 이끄는 유경원이라는 자였다.

 

밖으로 나간 그는 공노명이 마저 차를 다 마시기도 전에 다급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들이 장원에 들어왔습니다, 각주! 지금 장원에 남아있는 무사들이 막고는 있습니다만, 적들이 강해서 피해가 점점 늘고 있습니다!”

 

급박한 목소리다. 상황이 그만큼 좋지 않다는 말.

 

찻잔을 내려놓은 공노명은 눈살을 찌푸렸다.

 

은룡산장의 무사들이 이곳까지 쳐들어 왔을 리가 없었다.

 

‘무천련의 잔당들이 움직일지 모른다더니, 그들인가?’

 

그럴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그들이 대대적으로 움직였다면, 제왕성의 정보를 책임지고 있는 신이당이 모르고 있었을 리가 없었다.

 

공노명은 침중한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몇 명이나 되느냐?”

 

“모두 이십여 명입니다.”

 

“이십여 명?”

 

숫자가 이십여 명밖에 안 된다는 말에 공노명의 표정이 조금 펴졌다.

 

장원에 남은 무사들의 숫자만도 백수십 명. 대부분이 일류 수준에 달한 고수들인데다, 그들을 이끄는 몇 사람은 절정고수였다.

 

거기에 삼십 명에 달하는 자신의 호위대가 있다.

 

그의 호위대는 모두가 최고의 정예들. 그중 세 명의 조장은 절정에 달한 고수였고, 특히 호위장 유경원은 사전 삼단의 주인들조차 무시하지 못하는 강자였다.

 

무천련의 잔당 중 고수들만 모였다 해도 호위대라면 막을 수 있을 터였다.

 

공노명은 크게 걱정하지 않고 명을 내렸다.

 

“네가 직접 호위대를 이끌고 가서 놈들을 잡아라.”

 

“예, 각주!”

 

 

 

독고무령은 자신을 막는 자들을 뚫고, 쏘아진 화살처럼 일직선으로 나아갔다.

 

그의 옆에선 삼괴가 바락바락 소리 지르며 달려드는 자들을 막고, 진사혁과 호위무사대는 뒤에 남겨진 자들을 처리했다.

 

그야말로 폭풍이 갈대숲을 쫘악 가르고 지나가는 듯했다.

 

순식간에 사오십 명이 쓰러지고, 청석이 깔린 바닥에 붉은 핏물이 흘렀다.

 

상황이 그리 되자 달려들던 자들도 주춤거렸다.

 

공포에 질린 무사들 중 누군가가, 되지도 않는 소리를 지르며 무사들을 꺼꾸러뜨리는 삼괴를 보고 소리쳤다.

 

“부, 북천삼괴다! 분명 북천삼괴야!”

 

“뭐, 뭐야? 그 노망난 늙은이들이 왜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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