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천제 134화
무료소설 암천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7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암천제 134화
134화
바위조차 부숴버릴 강력한 힘이 실린 격돌.
독고무령은 두 걸음 물러선 채 적수천을 응시했다.
적수천도 한 걸음 물러서서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제법 검 좀 쓸 줄 아는군. 나의 일도를 그리 쉽게 막아내다니 말이야.”
“쉽지 않을 거라 하지 않았소?”
“어디 다시 한번 받아봐라.”
적수천은 다시 도를 눕히며 기운을 일으켰다. 시험만 해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우위를 보이긴 했어도 그 차이가 많이 나지 않은 상황이다.
일개 정보상인을 단번에 제압하지 못하다니!
은근히 자존심이 상한 그는 자신의 존재를 확실하게 각인시킬 작정을 했다.
성질 사나운 개를 다스리려면 기가 죽을 때까지 패야 한다. 그래야 주인에게 달려들지 못할 테니까.
후우웅.
적수천의 도에서 낮은 도명이 울렸다.
독고무령도 검을 느릿하니 들어 올렸다.
상대보다 나은 무위를 보이면 안 된다. 그러면 협상 이전에 의심을 먼저 하게 될 테니까.
그래서 약간 밀리는 모습을 보였는데, 그 정도로는 포기할 생각이 없는 것 같다.
독고무령은 검을 반쯤 사선으로 들어 올린 채 나직이 말했다.
“곧 제왕성과 싸워야 할 텐데, 정말 우리까지 적으로 만들 생각이오?”
“흥! 제왕성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위지천백이 직접 나서지 않는 한 우리의 상대는 아니다. 그대들이 더해진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없지.”
“대금을 결제할 줄 알고, 오면서 정보를 하나 더 가져왔는데, 그럼 필요가 없겠군.”
적수천이 멈칫하며 반문했다.
“정보?”
“당신들이 얼마나 자세히 아는지 몰라도, 제왕성은 절대 만만한 곳이 아니오. 만일 당신들의 생각이 모두 옳을 거라 생각하고 제왕성과 싸우려 한다면, 내 장담하지만 십중팔구 당신들이 패할 수밖에 없소.”
적수천의 눈에서 살광이 흘러나왔다.
손에 들린 도에서도 한광이 스멀거리며 피어났다.
“감히……!”
하지만 독고무령은 그 모습을 보고도 무심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위지천백은 철저한 자요. 그가 자신 없는 싸움을 걸었을 것 같소?”
“흥! 그자는 몇 년 전만 해도 본장 앞에서 개처럼 기었던 자였다.”
독고무령이 냉소를 머금은 채 입을 열었다.
“언제 적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군. 하나만 알려 주겠소. 그가 무천련을 무너뜨릴 수 있음에도 왜 놔두었는지 아시오? 바로 당신들의 힘을 끌어내기 위해서요. 그리고 그의 생각대로 당신들이 나오자, 그는 정보를 흘려서 일원궁과 철검보로 하여금 당신들을 치도록 했소. 자신들의 힘은 최대한 아끼면서. 다시 말해, 처음부터 지금까지 당신들은 그의 생각대로 움직이고 있단 말이오. 그래도 모르겠소? 그는 하북에 남은 당신들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그것까지 계산하고, 이제 이길 수 있다는 자신 하에 일을 벌인 거란 말이오.”
적수천은 이를 지그시 악물고 독고무령을 노려보았다.
노태군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일이다. 하지만 확신을 가지지는 못한 상태다.
그리고 자신 역시 제왕성이 강하다는 것만 알았지, 설마 은룡산장을 능가하는 힘을 갖추었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런데 독고무령의 말을 들어보니, 자신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 문제가 훨씬 심각하지 않은가.
‘사실이 그렇다면, 암문을 적으로 돌려봐야 좋을 게 하나 없다.’
개인적인 분노를 내세울 때는 더더욱 아니었다.
그는 마음이 돌아선 즉시 조금 전의 결정을 미련 없이 포기하고 도를 거두어 들였다.
“으음, 좋다. 그럼 조금 전의 내 제의에 대해선 잠시 보류하기로 하지.”
독고무령도 검을 거두고는 슥, 손을 내밀었다.
적수천이 손을 바라보자, 독고무령이 말했다.
“거래는 확실히 해야 하지 않겠소? 대금을 주면 정보를 주겠소. 본문의 부문주가 워낙 철저해서 말이오.”
얄밉게까지 느껴지는 행동.
하지만 적수천은 별 말없이 품속에 손을 넣어 전표를 꺼냈다.
원래는 가지고 오지 않으려 했다. 모든 일을 자신의 생각대로 매듭지으려 했으니까.
그런데 혹시 모르는 일이라며 헌원조가 가져가라고 해서 가져왔는데, 다행이었다.
“여기 있네.”
독고무령은 은자 오천 냥짜리 전표를 쓱 훑어본 후 아무렇게나 품속에 집어넣고 정보를 건네주었다.
“제왕성이 움직이면, 과거 무천련에 속했던 자들이 움직일 것 같소. 우리는 그들이 제왕성의 뒤를 치려고 그러는 게 아닌가 생각하고 있소.”
적수천의 날카롭게 갈라진 눈이 조금 커졌다.
“그게 정말인가?”
“정황으로 봐서 구 할 이상 정확한 정보요.”
적수천의 두 눈에 열기가 떠올랐다.
“아주 좋은 정보군.”
독고무령의 두 눈 깊숙한 곳에서도 차디찬 한광이 일렁였다.
‘물론 좋은 정보지. 비록 일 할이 빠진 구 할 확률이지만. 그러니 방어만 하려 하지 말고, 죽기 살기로 제왕성과 싸워라. 네놈들을 살려 보내는 것도 그 때문이니까.’
제2장 혈풍(血風)은 불기 시작하고……
독고무령이 적수천을 만난 다음 날이었다.
밤이 깊어갈 무렵, 대풍장에서 근 일천의 무사들이 개미 떼처럼 쏟아져 나왔다. 웅크리고만 있던 제왕성의 무사들이 마침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멀리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밀호방의 요원은 즉시 약속지점으로 달려가 불을 피웠다.
남들이 보면 단순한 모닥불에 불과했다.
그러나 십 리가량 떨어진 곳에 있던 밀호방의 삼호(三狐)는, 보였다 안 보였다 하는 그 불꽃을 유심히 보고는 또 하나의 모닥불을 피웠다.
그리고 반 시진 후.
서연에서 백 리 떨어진 수양의 조양표국에 밀호방의 요원 하나가 달려 들어갔다.
“제왕성이 움직였습니다!”
그 소식이 전해지자 팽팽한 긴장감이 조양표국을 짓눌렀다. 마침내 본격적인 전쟁의 서막이 오른 것이다.
* * *
제왕성의 공격은 핏빛 태양이 떠오르면서 시작되었다.
그들은 다섯 갈래로 나누어져서, 은룡산장의 무사들이 모여 있다는 귀원장으로 향했다.
헌원조는 오 리 밖에서 포위망을 펼치고 있는 은룡산장의 무사들 반 이상을 이백 장 이내로 불러들였다.
그러고는 일부만 남겨 제왕성의 무사들과 싸우다 후퇴하도록 명을 내렸다.
제왕성의 무사들은 미리 파악한 공격로를 통해 빠르게 접근했다.
그때 은룡산장의 무사들이 뒤로 후퇴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사기가 오를 대로 오른 상태. 제왕성의 무사들은 머뭇거리지 않고 후퇴하는 은룡산장의 무사들을 뒤쫓았다.
철혈전주 곽대천이 이상 징후를 눈치 챘을 때는, 이미 오로에서 시작된 공격이 은룡산장의 이차 포위망 안으로 들어간 후였다.
일천의 무사들이 이차 포위망 안으로 들어오자, 마침내 은룡산장의 무사들이 반격하기 시작했다.
직후, 십 리가량 떨어진 산 정상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밀호방의 요원이 반쯤 마른 풀을 모아 연기를 피웠다.
독고무령은 밀호방 이호가 보고하고 밖으로 나가자 눈을 감고 의자에 등을 기댔다.
‘마침내 전쟁의 서막이 올랐다.’
이제부터 한 치 앞도 못 보는 안개 속 싸움이 될 것이다.
누가 이길 것인지, 누가 져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인지 아무도 모른다.
승자의 이름은 하늘로 떠오를 것이고, 패자의 이름은 만장 지옥 속으로 추락할 것이다.
그 사이에 자신이 있다.
세상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아도 상관없다. 어차피 세상의 눈을 의식하고 살아온 삶이 아니지 않은가.
자신의 잃어버린 삶을 찾기 위해서, 새로운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하나뿐이다.
최선을 다하는 것!
독고무령은 숨을 느릿하니 몰아쉬고는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때가 되면, 모든 힘을 쏟아 제왕성의 팔을 자르고, 은룡산장의 발을 베어낼 것이다.
이제 그 ‘적절한 때’를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 * *
사시 초가 되자, 평복을 입고 양민이나 일반무사로 위장한 천룡방의 무사들이 삼삼오오 조양표국에 도착하기 시작했다.
때로는 서너 명이, 때로는 대여섯 명이 조양표국으로 들어왔다.
그렇게 이 각이 지나자, 이백열두 명 전원이 도착했다.
마중 나간 천룡방 사람들은, 그들 중 갈색 비단무복을 입은 서른 전후의 장한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심지어 방주 외에는 누구에게도 쉽게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는 장만익조차 놀람을 감추지 못하고 그에게 다가갔다.
다른 자와 달리 갈색 비단으로 된 무복을 입고, 손잡이에 청옥이 박힌 검을 옆구리에 찬 장한. 그는 바로 천룡방주 북리중현의 큰아들인 북리사웅이었던 것이다.
“허어, 방주께서 소방주를 보내실 줄은 생각도 못했네.”
“수고가 많으십니다, 장로님.”
“수고는 무슨…….”
방주가 천룡방의 후계자나 다름없는 사람을 보냈을 때는 그만한 목적이 있을 터. 장만익은 조금 굳어진 표정으로, 북리사웅과 함께 온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북리사웅과 함께 온 자들 중에는 도정환이나 사중인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무공을 지닌 자들이 대여섯 명이나 되었다.
특히 북리사웅 옆에 서 있는 흑염의 사십 대 중년인은 겉모습만으로도 위맹함이 절로 느껴질 정도였다.
그는 지원무사의 반을 차지하는 비룡단의 단주 범여종이었는데, 천룡방 내에서 이십 위 안에 든다는 고수였다.
“아우도 왔구먼.”
장만익이 담담히 웃으며 범여종을 반겼다.
범여종도 힘차게 포권을 취하며 조용히 웃었다.
“이곳에서 형님을 뵈니 더욱 반갑습니다그려.”
“허허허, 그러게 말이네. 자, 소방주, 안으로 들어가세.”
북리사웅은 주위를 둘러보며 넌지시 물었다.
“무천단주라는 자는 나오지 않았습니까?”
“안에 있네.”
범여종이 눈살을 찌푸리며 부리부리한 호안을 부라렸다.
“한단에서 여기까지 달려왔는데 나와 보지도 않다니, 정말 오만한 자로군요.”
“지금 회의 중이라네. 제왕성이 두 시진 전에 우현의 귀원장을 공격하기 시작했거든.”
북리사웅과 범여종이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제왕성이 공격했다고요?”
“그렇다네. 일단 들어가지.”
돌아서려던 장만익이 멈칫하더니 한마디 더 했다.
“그리고 소방주나 범 아우가 알아야 할 것이 하나 있네. 독고무령이라는 사람은 무천단의 단주이면서 암천회의 회주이기도 하네.”
북리사웅이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암천회요?”
“그렇다네. 정확히 말해서 암천회 산하에 무천단이 있는 격이지.”
범여종이 조소를 지었다.
“그래봐야 무천련의 잔여세력일 것 아닙니까? 본방이 도와준다면 감지덕지해서 튀어나올 것이지…….”
장만익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 쉽게 보지 말게. 그는 이 우형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자네. 뭐 가서 직접 보면 알겠지만…….”
장만익은 말을 흐리며 걸음을 옮겼다. 말로는 이해시키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북리사웅과 범여종은 내심 경악하며 장만익의 뒤를 따라갔다.
대체 어떤 자이기에 장만익이 함부로 할 수 없단 말인가?
독고무령은 천룡방의 간부들이 다가오는 걸 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장만익과 도정환과 사중인을 제외하고 모두 다섯, 하나같이 절정 이상의 경지에 오른 고수들이었다.
그러한 고수를 다수 보낸 걸로 봐서 은룡산장의 힘을 약화시킬 절호의 기회라 생각한 듯했다.
그때 일 장 앞까지 다가온 장만익이 걸음을 멈추고는, 북리사웅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회주, 본방의 소방주이신 북리 공자일세.”
앉아 있던 모두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천룡방주의 아들이 직접 오다니!
독고무령 역시 놀람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별반 표정을 드러내지 않고 포권을 취했다.
“독고무령입니다.”
북리사웅은 독고무령을 유심히 살펴보며 마주 포권을 취했다.
“북리사웅이오.”
신검룡(神劍龍) 북리사웅.
독고무령은 그 이름을 기억 속에서 찾아내고 담담히 입을 열었다.
“먼 길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바로 그때, 장만익의 소개가 있기도 전에 범여종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나는 범여종이라 하네. 본방의 비룡단을 맡고 있지.”
그는 포권을 취하며, 두 손에서 은근히 기운을 쏟아냈다.
독고무령은 모른 척, 맞잡은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반갑습니다.”
순간 범여종의 미간에 잔주름이 그어졌다.
쏘아낸 기운이 철벽에 부딪친 듯 되돌아오는데, 오히려 반탄 되면서 더 강해진 듯, 가만히 서서 받아내기가 힘들 정도였다.
‘이익…….’
그는 뒤로 밀리지 않기 위해 내력을 더욱 강하게 끌어올렸다.
그걸 바라보던 육풍원이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놈의 성질은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하군. 아무리 그래도 덤빌 사람에게 덤벼야지 말이야. 하긴 죽고 싶으면 뭔 짓을 못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