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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제 132화

무료소설 암천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0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암천제 132화

 

132화

 

 

 

 

 

 

군호광이 제일 반겼다.

 

“그동안 답답했는데 잘 됐습니다!”

 

그러나 황자악은 눈살을 찌푸리고 헌원조를 쳐다보았다.

 

“놈들의 말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저번에도 뒤따라오는 지원대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지 않아서 피해가 많았잖습니까?”

 

“그건 그들의 잘못이라고만 할 수가 없다. 일차 침입자들이 전부인 걸로 안 우리의 실수 역시 작지 않았어. 그나마 그 정보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더 큰 피해를 입었을 것이 아니냐?”

 

“그건 그렇지만, 기왕 뒤따라오는 자들에 대한 것까지 알려줬으면 피해가 훨씬 적었을 거 아닙니까?”

 

“어쨌든 그것만으로도 은자 삼천 냥의 값어치는 충분히 했지 않느냐? 그럼 된 거다. 문제는 지난 일이 아니라 앞으로의 일이지.”

 

황자악도 그 말에는 따로 할 말이 없었다. 상황이야 어찌 되었든, 당시의 정보로 제왕성의 공격을 물리치고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었으니까.

 

“그럼, 형님께선 그들의 말을 믿고 움직이실 겁니까?”

 

“지금은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이다. 나 역시 그들을 완전히 믿지는 않아. 물론 확실한 정보까지 외면할 필요는 없겠지만.”

 

헌원조는 서신을 내려놓고 눈을 들었다.

 

“일단 그들에게 더 자세한 정보를 얻어내야겠어. 돈은 좀 들겠지만, 그들의 정보를 잘만 이용하면 제왕성의 뒤통수를 칠 수 있을 거다.”

 

군호광이 고개를 돌렸다.

 

“큰형님, 놈들의 수가 많다 해도 저희 무사들과는 상대가 안 되는 놈들입니다. 자존심이 있지, 굳이 계략을 써서 상대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헌원조의 얼굴에 잔잔한 웃음이 떠올랐다.

 

“호광, 자신감을 가지는 것은 좋지만, 상대를 과소평가하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제왕성은 우리가 알던 것보다 더 강하다. 주인을 물려고 했을 때는 그만한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군호광이 형제들 중 가장 어려워하는 사람이 바로 헌원조였다. 

 

나이 차이도 나이 차이지만, 어릴 때부터 스승처럼 군호광을 가르친 사람이 바로 헌원조였기 때문이다.

 

그러한 마음은 그의 무공이 헌원조에게 뒤지지 않는 정도가 되었는데도 마찬가지였다.

 

“솔직히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희 은룡산장이 제왕성에 뒤지는 전력도 아닌데, 하찮은 강호의 잡인들에게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저는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지금은 전쟁 중이다. 전쟁에서 승패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개개인의 무력이 아니라 전쟁을 이끌어 나가는 병법이지. 그 점을 잊지 마라.”

 

군호광은 털썩, 의자에 등을 기대었다.

 

여전히 불만인 표정.

 

하지만 헌원조는 군호광의 마음을 알기에 그대로 놔두었다.

 

“수천, 네가 그들을 만나 봐라.”

 

“제가요?”

 

모든 일을 냉정하게 바라보고 침착하게 움직이는 적수천이다. 게다가 무공 역시 자신의 아래가 아니다.

 

지금과 같은 일에는 그가 최고의 적임자였다.

 

“그들을 만나서 좀 더 자세한 것을 알아보도록 해라.”

 

“아예 그들을 포섭해서 우리의 정보통으로 쓰면 어떻겠습니까? 본장에서 산서에 심어놓은 정보원들보다 유능한 자들이라면, 나중에도 쓸모가 많을 것 같습니다만.”

 

적수천의 의견에 헌원조의 이마가 좁혀졌다.

 

촌각의 차이로 생사가 오가는 전쟁이 코앞이다. 뛰어난 정보단체를 얻을 수 있다면 전쟁의 향방이 달라질 것이었다.

 

“좋은 생각이긴 한데, 저들이 받아들일지 모르겠군.”

 

“제가 한번 설득해 보겠습니다.”

 

“좋아. 시도해 보는 것도 나쁠 건 없겠지. 그들이 정말 능력이 있는 것처럼 보이면…… 관직에 대한 제의도 해 봐라.”

 

적수천의 입가에 가느다란 웃음이 걸렸다.

 

“알겠습니다, 큰형님. 아마 저들에게는 돈보다 그게 더 매력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 *

 

 

 

독고무령은 조양표국에 도착하자마자 각 단체의 수장들과 함께 앞으로 할 일에 대해 논의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본격적인 작전이행시 인원을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독고무령은 거침없이 자신의 생각을 밀어붙였다.

 

“무천단과 전궁산장, 그리고 앞으로 합류하게 될 무천련의 사람들에게 제왕성 쪽의 일을 맡길 생각입니다.”

 

그 말을 듣고 설자웅이 물었다.

 

“은룡산장은?”

 

“그들은 천룡방과 암천단이 맡지요.”

 

이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마땅한 대안이 없는 이상 독고무령의 의견을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보다는, 독고무령의 기세에 짓눌려서 이견을 제시할 수가 없었다는 말이 더 정확했다.

 

심지어 천룡방을 대표하는 장만익조차 입만 뻥끗하다 고개를 끄덕일 정도였으니, 다른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육풍원과 우도진을 비롯해 독고무령의 말에 무조건적으로 따르는 사람들이야 그러려니 할 뿐이고.

 

각 단체의 수장들은 회의가 끝나고 나서야 자신들의 등줄기로 땀이 흐른 것을 깨닫고 표정이 굳어졌다.

 

특히 장만익의 뇌리에는 암천사신 독고무령이라는 이름이 화인(火印)처럼 박혔다.

 

천하의 절대자들과 나란히!

 

‘방주께 뒤지지 않는 기세야. 허어, 보통이 아니라는 건 알았지만, 설마 이 정도였다니…….’

 

 

 

그렇게 회의가 끝나고 신시가 다 지나갈 즈음.

 

독고무령이 진사혁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유난히 턱이 긴 서른 중반의 장한이 찾아왔다.

 

그가 바로 산서에 퍼진 밀호방의 정보요원들을 총지휘하는 이호(二狐)였다.

 

운양은 그에 대해 많은 말을 하지 않고, 무조건 믿을만한 사람이라고만 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따르던 사람으로 의형이나 같은 사람이라면서.

 

독고무령이 이호와 이야기를 나눈 것은 두어 번에 불과했지만, 운양이 왜 깊은 신뢰를 주는지 이해가 되었다.

 

속이 깊고 모든 일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조심스러운 사람.

 

또한 ‘생각은 깊게 하고 결론을 내릴 때는 단호하게’라는 철칙을 철저히 지키는 사람이 이호였다.

 

정보를 다루는데 평생을 바친 자답게.

 

“무슨 일이오?”

 

독고무령이 담담히 묻자, 이호는 허리를 숙이며 나직한 저음으로 보고를 올렸다.

 

“사호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회주님. 한데 그들이 저희 쪽 사람 중 중대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책임자와 만나기를 원한다고 합니다.”

 

사호(四狐)라면 은룡산장을 담당하고 있는 정보원들을 지휘하는 자.

 

독고무령의 눈 깊숙한 곳에서 기광이 일렁였다.

 

‘중대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책임자’라 했다. 

 

그러한 사람과 만나려 할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

 

그리고 그 정도의 책임자를 요구했을 때는 상대측도 그만한 지위에 있는 자가 나온다는 말. 최소한 은룡산장의 무사들을 이끄는 최고위급 간부 중 하나가 직접 나올 게 분명하다.

 

독고무령은 적 지휘부의 능력도 알아볼 겸, 정확한 진의를 파악하기 위해 자신이 직접 가기로 했다.

 

“그 일은 내가 직접 처리하겠소.”

 

진사혁이 독고무령을 바라보았다.

 

“회주가 직접? 제왕성이 움직이기 직전인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호랑이굴로 들어가지 않으면 호랑이 새끼를 얻을 수 없지[不入虎穴 不得虎子]. 보다 큰 것을 얻으려면 때론 무리도 해야 한다는 생각이네. 그리고 제왕성의 일은 너무 걱정할 것 없네. 설령 그들이 당장 움직인다 해도 서너 시진 정도는 시간이 있으니까.”

 

“뭐 회주의 생각이 그렇다면 할 수 없지. 언제 갈 건가?”

 

“저들에게 연락하고 나면 바로 출발할 생각이네.”

 

진사혁은 독고무령의 말이 떨어지자 엉덩이를 들었다.

 

“호위대에게 준비하라고 해야겠군.”

 

회주 혼자 보낼 수는 없었다. 당연히 호위대인 철검위가 따라가야 했다.

 

그러나 독고무령은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진사혁의 행동을 제지했다.

 

그는 철검위를 데려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아니 데려갈 수가 없었다.

 

“자네와 철검위는 이곳에서 대기하게.”

 

진사혁의 눈이 커졌다.

 

“설마 회주 혼자 가겠다는 건 아니겠지?”

 

“물론 사람들을 데려갈 거네.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말이야.”

 

“그런데 왜……?”

 

“철검위는 모두가 철검보에서 은룡산장의 무사들과 싸웠던 사람들이야. 저들 중 알아보는 자가 있을지 모르네.”

 

변장을 하고 갈 수도 있었다. 자신도 인피면구를 쓰고 갈 생각이니까.

 

그러나 만에 하나 들킬 경우 그간의 노력이 허무하게 공염불이 될 터. 굳이 사람 하나 만나면서 그러한 위험을 감수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다고 혼자 갈 수는 없었다. 저들에게 당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 해도 비상시 연락해야 할 사람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천룡방의 무사들도, 전궁산장의 무사들도, 무천단의 무사들도 은룡산장에서 알아볼지 모르는 일.

 

독고무령은 깊게 생각하지 않고, 암천단의 사람들 중 열 명을 추리기로 했다.

 

“가서 육 장로께 적당한 사람들로 열 명만 뽑아서 보내달라고 하게. 염부중과 기호정, 전학을 포함해서.”

 

암천단에 들어와 수련하면서 발군의 진전을 보였던 자들이 있다.

 

개중에는 흑도삼파에서 들어온 자도 있었고, 운양이 영입한 자도 있었다.

 

특히 그중에서도 독고무령이 지명한 염부중과 기호정, 전학은 곧 절정의 경지에 들어설 거라 예상될 정도로 특출 난 실력을 지닌 사람들이었다.

 

 

 

입을 한 자쯤 내민 진사혁이 나간 지 일각가량이 지나자, 열 명의 암천단원이 육풍원을 따라서 방으로 들어왔다.

 

암천단원들은 자신들이 회주의 호위로 임명되었다는 것에 상기된 표정들이었다.

 

일개 흑도방파의 무사에서, 낭인에서, 대문파로 발돋움하기 직전인 암천회 회주의 호위무사가 되었으니 어찌 가슴이 뛰지 않으랴.

 

그들과 함께 온 육풍원은 마치 자신이 추천해서 그리 된 것처럼 목에 힘을 주었다.

 

“회주, 이놈들을 호위대로 쓴다고?”

 

“그럴 생각입니다.”

 

육풍원은 뒤에 늘어선 열 명의 무사들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회주의 호위무사가 된 것을 영광으로 알아라! 실수해서 암천단의 명예를 욕되게 하는 놈은 내가 가만 안 둔다!”

 

이제 암천위(暗天衛)가 된 암천단원들은 힘차게 대답했다.

 

“예, 단주!”

 

“네놈들이 죽어도 회주는 지켜야 한다! 명심해라!”

 

암천단원들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그러나 호위무사가 된 이상 당연한 일. 그들은 전장에 뛰어드는 병사들처럼 결연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명심하겠습니다!”

 

육풍원은 그들의 대답이 마음에 든 듯 흐뭇하게 웃고는, 독고무령을 보며 말했다.

 

“회주, 내 아이들이어서가 아니라 정말 쓸 만한 놈들이라네.”

 

뒤에 서 있던 암천단원들은 어깨에 힘을 주며 육풍원을 힐끔거렸다.

 

저럴 수가! 호랑이 같은 단주가 저런 따뜻한 말을 할 때가 있다니!

 

그런 표정이었다.

 

독고무령은 그들의 표정만 보고도 평소 육풍원이 암천단원들을 어떻게 대했는지 알 것 같았다. 또한 육풍원의 본심이 생각했던 것보다 차갑지 않다는 것에 잔잔한 웃음이 나왔다.

 

“저도 그리 알고 있습니다. 육 장로께서 수고 많으셨습니다.”

 

하지만 육풍원의 변심(?)은 잠시잠깐뿐이었다.

 

“하하하, 뭐 그 정도야…… 좌우간 시킬 일 있으면 걱정 말고 맘대로 부리게나. 혹시라도 불만을 털어놓는 놈은 나중에 나에게 말하고 말이야.”

 

순간 암천단원들의 힘이 들어간 어깨가 축 처졌다.

 

‘그럼 그렇지.’

 

 

 

* * *

 

 

 

독고무령과 암천위(暗天衛)는 조양표국을 나서자마자 곧장 약속장소인 우현 남동쪽 청고산의 폐찰(廢刹)로 향했다.

 

경공을 펼쳐 빠르게 달린 지 한 시진 반. 청고산에 도착한 일행은 폐찰이 있다는 남쪽 계곡으로 들어섰다.

 

청고산은 그리 크지 않은 산이었다.

 

약속시간이 반 시진 정도 남은 상태. 저들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면 주변을 살펴보기에는 충분했다.

 

폐찰을 찾은 것은 계곡에 들어선 지 일각가량이 지날 무렵이었다.

 

폐찰은 청고산 중턱의 절벽 밑에 있었는데, 워낙 오래 되어서 넝쿨과 잡초가 마당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독고무령은 인피면구를 쓰고, 암천위는 검은 천으로 눈 밑을 가린 채 기둥과 지붕만 남은 문을 넘어 폐찰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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