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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제 131화

무료소설 암천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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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암천제 131화

 

131화

 

 

 

 

 

 

제1장 암천회(暗天會), 태원을 떠나 세상 밖으로

 

 

 

 

 

암회색 어둠이 태원성 머리 위로 내려앉을 즈음.

 

풍운전으로 각 세력의 수장들을 비롯한 암천회 간부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십여 명이 들어서는 데도 누구 하나 입을 여는 자가 없었다. 무거운 분위기 때문인지, 풍운전을 밝히는 서른여섯 개의 황촛불에 비친 그들의 얼굴에는 옅은 긴장감마저 보였다.

 

독고무령은 상석에 서서 사람들이 들어서는 모습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그가 사람들을 소집한 것은 무사들을 수양으로 이동시키기 위함이었다.

 

서연과 우현 모두 수양에서 백 리 정도.

 

지금으로선 수양만큼 양 세력의 움직임을 파악하기에 적절한 곳이 없었다.

 

머물 장소를 마련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철검보가 무너지면서 문을 닫은 조양표국이라면 수백 명이 가도 충분할 만큼 넓으니까.

 

둥! 둥!

 

열여덟 명의 간부들이 모두 도착함과 동시, 때맞춰 태원성 남문에서 술시를 알리는 북소리가 울렸다.

 

독고무령은 사람들이 모두 자리에 앉자 운양에게 물었다.

 

“운양, 조양표국에선 뭐라 하던가?”

 

무거운 분위기에 눌려 있던 운양이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전쟁의 불똥이 튈까봐 불안했나 봅니다. 일 년 빌리는 대가로 은자 삼천 냥을 준다고 했더니 감지덕지하더군요.”

 

“좋아, 그럼 내일 새벽부터 사람들을 이동시키지.”

 

“알겠습니다.”

 

독고무령은 운양에게 명을 내리고 장만익을 바라보았다.

 

“한단에선 언제쯤 무사들이 올 것 같습니까?”

 

장만익은 잠시 생각하고는 조금 자신 없는 투로 대답했다.

 

“늦어도 모레면 도착할 거네.”

 

“그들에게 연락해서, 이곳이 아닌 수양의 조양표국으로 가라고 하십시오.”

 

“알겠네.”

 

독고무령은 간단하게 지시를 내리고 둘러앉은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암천단, 전궁산장, 무천단. 천룡방, 밀호방 그리고 흑도삼파로 이루어진 암천삼당을 이끄는 사람들과 암천회의 장로들이 모두 모여 있다.

 

밀호방과 암천삼당을 제외하더라도, 현재 풍운장에 모인 정예무사들의 숫자는 사백 정도다.

 

천룡방의 무사들이 도착하면 육백. 거기에 관조운이 일원궁의 무사들과 함께 합류하면 칠백은 될 것이다.

 

‘화천문을 끌어들이고, 운양이 산서의 무사들을 지속적으로 영입한다면 일천은 되겠군.’

 

물론 제왕성과 은룡산장에는 아직 비할 바가 아니다.

 

그러나 전면에 드러나지 않고 움직인다면 충분히 위협을 줄만한 힘이다. 

 

짧은 시간의 결과치고는 함께 있던 사람들조차 놀랄 정도의 무력.

 

그러나 독고무령의 계획은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그는 자신의 운명을 조롱하고 왜곡한 세상에 순응할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하늘이 아무리 짓눌러도, 절대 지고 싶지 않았다.

 

무심한 눈으로 사람들을 둘러보던 독고무령의 입에서 나직하면서도 힘이 실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제 내일부터,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폭풍 속으로 뛰어들게 될 것입니다. 앞으로는 타당한 이유 없는 불복종을 용납지 않을 것인즉, 함께할 자신이 없는 분들은 지금 자리에서 일어나 이곳을 나가주시기 바랍니다.”

 

자신들의 가장 큰 무기는 적이 아직 암천회의 움직임을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차후에 이탈자가 나와선 안 된다.

 

수많은 목숨이 걸린 일. 독고무령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후부터는 오직 친구와 적만이 있을 뿐이다. 잡은 손을 놓으면 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모두의 목숨이 걸린 일이니까.

 

잠시 침묵이 흘렀다.

 

시간이 지나도 누구 하나 일어나지 않았다.

 

천룡방의 사람들 역시 약간의 불만이 있음에도 자리를 지켰다. 무거운 침묵이 어색한지 장만익이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험험, 저들이 언제 부딪칠 거라 보는가?”

 

독고무령은 무심한 표정으로 그에 대한 답을 주었다.

 

“아무래도 우리가 원하는 때 싸우는 게 가장 좋겠지요.”

 

원하는 때 싸운다?

 

조금은 의아한 대답이다.

 

하지만 장만익은 곧 독고무령의 말뜻을 깨닫고 얼굴이 굳어졌다.

 

“저들의 싸움을 임의대로 조정한단 말인가? 그게 가능하겠나?”

 

“가능하게 만들면 되는 일 아니겠습니까?”

 

대답하는 독고무령의 두 눈이 빛 한 점 없는 심해처럼 가라앉고, 입가에는 차가운 조소가 걸렸다.

 

장만익은 두어 가지 더 묻고 싶었지만, 눈이 마주치자 입을 닫았다.

 

 

 

* * *

 

 

 

새벽 어스름이 밀려올 무렵, 지하통로를 통해서 수백 명의 무사가 은밀하게 풍운장을 빠져나갔다.

 

나호민이 이끄는 무천단 오십. 육풍원과 우도진이 이끄는 암천단 이백. 설자웅과 전호양이 데려온 전궁산장의 무사 육십. 장만익을 비롯한 천룡방의 사람 열다섯. 모두 삼백삼십 명이었다.

 

건너편 건물로 나온 그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태원을 벗어났다. 

 

그동안 암천삼당의 수하들은 무사들이 지나갈 길을 철저히 감시하며 수상한 자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막았다.

 

그 일은 워낙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서 태원에 사는 사람들조차 그들의 이동을 알지 못할 정도였다.

 

그렇게 이동이 시작된 지 한 시진이 지나자 동쪽하늘에 찬란한 태양이 떠올랐다.

 

“계획대로 모두 떠났습니다, 회주.”

 

독고무령은 운양의 보고를 들으며 좌측을 바라보았다. 그의 좌측에는 구양손과 구양조가 앉아 있었다.

 

“이곳을 부탁하겠습니다.”

 

구양손이 씁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우리도 참가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네.”

 

구양손은 내력을 반 이상 잃어서 일반 무사나 다름없었고, 구양조는 한쪽 팔을 거의 못 쓰는 상태였다.

 

“이곳에서 무사들 수련을 도와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역할을 하시는 겁니다. 너무 마음 쓰지 마십시오.”

 

“그건 그러네만……. 어쨌든 몸조심하게.”

 

독고무령은 조용히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운양, 한시도 방심해서는 안 될 거네. 저들의 움직임을 철저히 살피도록 하게.”

 

운양이 씩 웃었다.

 

그는 태원에 남기로 했다. 대신 밀호방의 이인자이자, 그동안 실질적으로 정보원들을 지휘해온 이호가 동행했다.

 

“걱정 마십시오. 그게 제 특기 아닙니까?”

 

“미끼는 제대로 던져졌겠지?”

 

“물론입니다. 지금쯤이면 확인까지 마쳤을 겁니다.”

 

독고무령의 입가에 냉소가 걸렸다.

 

“그럼 나도 서둘러야겠군. 그들이 기다릴 테니 말이야.”

 

“삼괴 어르신이 좀이 쑤신 모양입니다. 제발 좀 어서 데려가십시오.”

 

운양의 너스레에 독고무령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각 후.

 

독고무령은 삼괴와 호위무사대로 새롭게 탈바꿈한 철검위의 무사들을 거느리고 태원의 동문을 나섰다.

 

마침내 산서를 휘감을 거대한 회오리 한 줄기가 태원을 떠나 세상으로 나간 순간이었다.

 

 

 

* * *

 

 

 

한 장의 지도가 커다란 탁자 위에 펼쳐졌다.

 

지도에는 산서의 중동부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는데, 묵향이 나는 걸로 봐서 작성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했다.

 

“놈들의 숫자는 모두 팔백. 여기, 여기, 여기. 장원을 중심으로 철저하게 방어형태를 취한 형태요.”

 

공노명은 지도를 나무막대기로 가리키고는 눈을 가늘게 좁혔다.

 

“바로 공격할 줄 알았는데 의외외다. 그 바람에 놈들의 의향을 알아내고 대책을 세우는데 닷새나 소비했으니…….”

 

옆에서 콧등을 매만지던 오십 대 초반의 초로인이 힐끔 공노명을 바라보았다.

 

거친 수염, 호랑이처럼 부리부리한 눈, 툭 뛰어나온 광대뼈로 인해 그렇잖아도 강한 인상을 더욱 강하게 보이는 자. 

 

그가 바로 철혈전의 주인인 곽대천이었다.

 

“군사, 어제 누군가로부터 정보가 하나 들어왔다 들었습니다만.”

 

공노명이 곤혹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우리는 저들의 방어 형태만 파악했을 뿐인데, 저들을 칠 수 있는 공격로까지 파악한 자들이 있더구려.”

 

“정확한 정보입니까?”

 

“그 정보의 정확성을 확인하기 위해서 사람들을 보내 봤는데, 한 치도 틀리지 않고 정확하다는 말을 전해왔소.”

 

곽대천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본성의 정보원들조차 아직 파악하지 못한 걸 그토록 세세히 알다니. 믿어도 될지 모르겠군요.”

 

정보의 정확성과 믿음은 또 다르다. 들어온 정보가 아무리 정확하다 해도 상대가 확실치 않는 정보는 신뢰할 수 없는 것이다.

 

적이 역이용하기 위해서 건넨 정보일 수도 있잖은가?

 

공노명도 그 점을 모르지 않았다.

 

“본 군사 역시 그 점이 조금 찜찜했소. 허나 적이 이런 고급정보를 건네줄 이유가 없는 이상 어느 정도는 믿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오.”

 

그건 그랬다. 은룡산장으로선 있는 것도 감춰야 할 판이다. 하물며 자신들을 노출시켜서 무슨 이득이 있을까?

 

함정을 파놓고 적이 말려들길 바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은룡산장으로서도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

 

공노명은 은룡산장이 그런 모험을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정면으로 싸워도 제왕성에게 지지 않을 거라는 자신감에 차 있는 자들이 아니던가.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정보를 십 할 신뢰하는 것도 아니었다.

 

“철저히 검증된 정보만 취할 것이니 너무 염려할 것 없소.”

 

공노명은 철저한 사람이다. 제왕성에서 그걸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곽대천은 더 이상 토를 달지 않고 질문을 돌렸다.

 

“그걸 보낸 자는 대체 누굽니까?”

 

“정체를 확인하지는 못했소. 다만 정보가 확실하다면 은자 만 냥을 달라는 걸로 봐서, 정보상인이 기회라 생각하고 이번 전쟁에서 한몫 잡으려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소이다.”

 

“웃기는 자들이군요. 만일 우리가 주지 않는다면 어쩌려고…….”

 

“그럼 제왕성이 신용 없다고 천하에다 소문내고 다니겠지요.”

 

소문을 두려워할 제왕성이 아니다.

 

그러나 은자 만 냥 때문에 제왕성의 자존심을 팽개칠 수는 없는 일. 더구나 이용가치가 있다면 돈이 문젠가?

 

정보를 건넨 자도 그 정도는 알고 미리 정보부터 건넸을 것이다.

 

그때 둘러앉아 있던 다섯 명의 중년인 중 거친 눈썹이 사납게 보이는 자가 벌떡 일어나 물었다.

 

“공격은 언제 할 겁니까, 군사? 적의 진세도 파악했고 공격로까지 알았는데, 이대로 계속 보고만 있을 겁니까?”

 

그는 제검전의 전주인 석무종이었다. 

 

삼십여 명의 수하를 잃은 그는 적을 치지 않고 대풍장에서 죽치고 있는 것이 불만이었다.

 

공노명은 석무종을 바라보았다.

 

수하를 잃은 석무종의 마음을 그가 왜 모를까.

 

하지만 급할수록 돌아가야 한다. 성급함은 패배의 늪으로 빠져드는 지름길이다.

 

“마지막 점검이 끝나면 공격할 것이오. 하나 적을 공격하기 전에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소. 저들의 숫자는 우리보다 적지만 모두가 최고의 정예들이오. 절대 방심은 금물이외다.”

 

석무종이 가슴을 탕탕 치며 자신 있게 말했다.

 

“걱정 마십시오! 나 석무종, 그렇게 무턱대고 달려드는 사람 아닙니다. 맡겨만 주면 선두에서 놈들을 쓸어버리겠습니다!”

 

 

 

* * *

 

 

 

퍽!

 

귀원장에 또 한 번 화살이 날아들었다.

 

정문에 화살이 틀어박히자, 경비를 서고 있던 자들이 대경해서 주위를 살폈다.

 

“웬 놈이냐?”

 

“주위를 뒤져라!”

 

몇 사람이 검을 뽑아들고 화살이 날아온 곳으로 달려갈 때였다. 경비무사 중 하나가 일전의 일을 기억해내고는 급히 정문에 꽂힌 화살을 뽑았다.

 

그는 화살에 매달린 서신을 보더니, 즉시 장원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헌원조는 수하가 가져온 서신을 펼쳐보고 표정이 굳어졌다.

 

앞에 앉아 있던 적수천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뭔데 그러십니까?”

 

“제왕성이 움직일 것 같다고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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