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천제 13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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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4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암천제 130화
130화
운양은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꾹 참고 제법 무게 있는 표정으로 말했다.
“당장은 그 정도면 됩니다.”
“하긴 많은 사람을 보낼 수 없는 천룡방의 사정도 생각해 줘야겠지.”
장만익과 도정환과 사중인의 표정이 벌게졌다.
그들이 어찌 모를까. 천룡방에서 열다섯 명만 온 것을 독고무령이 비웃고 있다는 걸.
“콜록, 콜록…….”
운양은 도저히 참을 수 없자, 웃음 대신 기침을 터트리며 고개를 숙였다.
자신은 백 명이면 된다고 했다. 그런데 저 말을 듣고도 백 명만 보낼까?
절대 아닐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거기다 대고 육풍원이 뒤통수를 한 대 더 때렸다.
“백 명이라. 그것도 바로 와야 써먹을 수 있을 텐데…….”
장만익이 눈에 힘을 주고 말했다.
“걱정 마시오, 육 형. 최대한 빨리 도착하도록 할 테니까.”
천룡방의 사람들이 방을 나가자, 독고무령은 깊게 가라앉은 눈으로 운양을 바라보았다.
“이제 일원궁과 전궁산장, 화천문의 일만 마무리되면 대충 준비가 되겠군. 운양, 그들에게서 연락 온 것 없나?”
“전궁산장에선 사흘 안으로 올 겁니다. 그리고 일원궁도 관조운이 직접 무사들을 데리고 나올 거라 합니다. 산서 전체가 술렁이는 판이니, 그들이 움직여도 제왕성은 신경 쓸 틈이 없을 것입니다.”
천룡방 사람들이 없는데도 운양이 존대하자 독고무령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냥 편하게 말해.”
그러나 운양은 조용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앞으로는 계속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수하가 상관에게 함부로 말하는 걸 보면, 천룡방 사람들이 우리를 삼류문파로 볼 거 아닙니까?”
옆에 있던 나호민과 육풍원이 당연하다는 듯 거들었다.
“당연한 말이오. 어떤 단체든 위계가 엄중해야 남이 얕보지 못하는 법이외다.”
“두말하며 잔소리지. 나는 삼류문파의 똘마니가 되긴 싫네.”
그 일에 대해선 독고무령도 더 고집을 피우지 않았다.
진사혁이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어차피 그건 본인이 알아서 해야 할 일이었다.
“자네가 정 그렇다면 할 수 없지. 그런데 화천문은 여전한가?”
“아직 특별한 말이 없습니다.”
“그럼 며칠이 지난다 해도 마찬가지겠군.”
“글쎄요…….”
“마지막으로 사람을 보내 보게. 만일 그때도 답이 없다면, 양우천이라는 자를 만나라고 하게.”
제왕성과 싸울 생각이 없다면 언제 적으로 변할지 모른다.
지금은 적과 친구, 두 가지 선택만이 있을 뿐.
벽도정이 만약 친구이기를 포기한다면 결국 자신의 생각대로 하는 수밖에.
* * *
몇 가지 소문이 삭풍을 타고 산서 전역으로 퍼졌다.
암천회가 퍼뜨린 소문이었다.
-하북의 신비단체 은룡산장의 수백 무사가 산서로 들어왔다. 그들이 바로 일원궁과 철검보를 친 자들이라고 한다.
-제왕성이 산서를 넘보는 은룡산장을 치기 위해서 각 문파에 무사파견을 요청했다.
-아무래도 제왕성이 타파의 무사들을 화살받이로 세우려 하는 것 같다.
산서의 패권 다툼에 하북의 세력이 끼어들었었다는 소문이 돌자 산서의 무인들이 술렁거렸다.
제왕성을 따르는 문파에선 많든 적든 무사들을 제왕성에 파견하고 돌아가는 상황을 주시했다.
제왕성과 무천련이 싸울 때와는 또 다른 상황.
평생 한 번 볼까말까 한 싸움이 벌어진다는 말에 산서의 무인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동쪽으로 향했다.
전쟁지역으로 향하는 무리는 모두 세 부류.
제왕성과 함께하려는 자들. 제왕성과 은룡산장에 한을 품을 자들. 그리고 마지막 하나가 가장 많았는데, 그들은 이도저도 아닌 단순한 구경꾼들이었다.
구경꾼들이 전쟁터로 가는 이유는 단순했다.
잘하면 이름 석 자 강호에 남길지 모른다. 설령 그게 아니어도, 두 번 다시 못 볼 전쟁은 구경할 수 있지 않겠는가 말이다.
그렇게 단 사나흘 사이, 수천의 무사들이 이동했다.
제왕성보다는 은룡산장에 부담이 되는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제왕성과 백오십 리를 두고 대치한 은룡산장은 나흘이 지나도록 움직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바람에 살얼음 위를 걷는 것처럼 긴장만 더욱 고조되었다.
돌 하나만 떨어져도 터져버릴 것 같은 팽팽한 분위기!
서연과 우현 반경 백 리 일대에 모인 강호인들은 숨을 죽이고 귀만 열어놓았다.
* * *
산서 강호인들의 모든 눈과 귀가 동쪽에 집중된 사이, 적지 않은 사람들이 십여 차례에 걸쳐 태원으로 들어섰다.
암천회의 삼당인 흑도삼파의 수하들은 태원의 골목골목을 암암리에 철저히 차단하고 그들의 이동을 도왔다.
태원에 들어선 사람들의 숫자는 육십여 명.
마지막으로 남문을 통해 들어선 다섯 사람 중에는 전궁산장의 장주 설자웅도 끼어 있었다.
흑도삼파 수하들은 미로와 같은 태원의 골목길로 그들을 안내한 후, 일반가옥으로 위장한 비로를 통해 풍운장으로 들여보냈다.
독고무령은 설자웅과 전궁산장의 수석호법인 전호양이 안으로 들어서는 걸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독고무령이 포권을 취하자, 설자웅도 마주 포권을 취하며 인사말을 건넸다.
“수고가 많네.”
말투는 담담했지만, 그는 아직도 걱정이 사라지지 않은 상태였다.
반쪽의 무천단이 힘을 키웠다고 해봐야 얼마나 커졌을까. 이들과 합세해서 제왕성에 타격을 줄 수 있을까?
복수하려는 마음으로 오긴 왔는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앞길이 막막한 것이다.
“자리에 앉으시지요.”
독고무령이 의자를 권하자 설자웅과 전호양이 자리에 앉았다.
곧 시비가 차를 들고 들어오더니 세 사람의 잔을 채웠다.
하지만 설자웅은 차를 쳐다보지도 않고 독고무령을 향해 입을 열었다.
“오면서 소식을 들었네. 제왕성과 은룡산장이라는 곳이 전쟁 직전이라 하더군.”
“전쟁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다만 누가 먼저 상대를 치느냐 하는 순서만 남았지요.”
“그 사이에서 우리가 뭘 할 수 있다고 보는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습니다. 그중 어떤 것을 먼저 할 것인지, 그것이 문제일 뿐이지요.”
“무천단에 그럴만한 힘이 있나?”
마침내 본론을 꺼내든 설자웅의 눈빛이 강렬하게 빛났다.
독고무령은 무심한 눈으로 설자웅을 직시했다.
“제왕성과 정면대결을 할 정도의 힘은 아직 갖추지 못했습니다. 하나 상황을 잘만 이용하면 저들에게 치명타를 가할 정도의 힘은 되지요.”
전호양이 콧소리를 내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훗, 정면대결이라……. 자넨 제왕성의 힘을 너무 얕보는군.”
“제왕성의 힘을 얕본 것은 제가 아니라 과거 무천련을 이끌던 다섯 분이셨지요.”
그 말에 설자웅의 눈썹이 송충이처럼 꿈틀거렸다.
그러나 독고무령은 조금도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제왕성의 힘을 경시하지 않았다면 무천련이 그토록 허망하게 당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게다가 저들의 배후를 걱정하는 분도 없었지요. 철검보에 모였던 사람들이 떠나지만 않았어도, 지금 이 자리에 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설자웅도 거기에 대해선 마땅히 대꾸할 말이 없었다. 그 역시 철검보를 떠난 사람 중 하나였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설자웅은 이마를 씰룩거리며 어렵게 입을 열었다.
“경계했다고 해도 버틸 수 없었을 거네. 저들의 힘은 우리 예상보다 너무 강했어.”
그 말에 대해서는 독고무령도 순순히 수긍했다.
“그랬을지도 모르지요. 그러니 저도 지나간 일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문제는 앞으로 일입니다. 우리가 하려는 일은 은밀함과 신속을 요구하는 일이어서, 서로를 믿지 않으면 절대 안 됩니다. 쓸데없는 의문으로 시간을 지체하면 동료들의 목숨이 사라진다는 사실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
“정말 그들에게 타격을 줄 만한 힘이 갖춰지긴 한 건가?”
여전히 반신반의하는 설자웅이다.
독고무령은 그에게 현재의 상황을 간단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동안 무천단을 중심으로 하나의 단체를 조직했습니다. 본래의 무천단보다 훨씬 강하지요. 그리고 천룡방이 우리를 돕게 될 겁니다.”
일순간 설자웅과 전호양의 눈이 커졌다.
단체를 조직했다느니, 과거의 무천단보다 강하다느니 하는 말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들의 귀에는 오직 하나의 이름만이 왱왱거렸다.
“천룡방이라고!”
“하북의 천룡방이 우리와 함께한단 말인가?”
독고무령은 눈이 화등잔만 해진 두 사람에게 천룡방과 손을 잡은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그들은 제왕성도 견제할 겸, 은룡산장을 상대하려고 합니다. 목적이 같은 이상 친구가 되기에 충분하지요.”
“말이 친구지, 자칫하면 그들의 하수인으로 전락하기 십상이네. 그에 대한 대책은 있는가?”
“천룡방은 절대 저희를 하수인으로 부릴 수 없습니다. 제가 그렇게 놔두지 않을 것이니까요.”
“허어…….”
설자웅은 곤혹스럽기만 했다.
독고무령이 천룡방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무천련조차 안중에 두지 않던 그들이다. 하거늘 나이도 어린 독고무령에게 지고 들어가겠는가?
‘도무지 겁을 모르는 친구로군. 세상이 자신의 뜻대로 흐르는 줄 아나?’
결국 설자웅은 독고무령이 뭘 잘못 생각하고 있는지 알려주기로 했다.
“자네가 아직 천룡방에 대해 잘 모르는가본데, 그들은 절대 약자와 친구를 맺는 자들이 아니네. 그들은 오대세가 중 하나인 팽가조차 눈 아래로 내려다보는 자들이라네. 정말 그들과 함께 손을 잡으려고 한다면, 고개를 숙일 각오까지 해야 할게야.”
그때 밖에서 경비무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회주께 아룁니다. 천룡방의 장로님께서 오셨습니다.”
“안으로 모시게.”
독고무령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문이 열리고 장만익이 들어왔다.
“허허허, 손님이 있었군.”
“인사 나누시지요. 이분은 전궁산장의 장주님이신 설 대협이십니다. 그리고 이분은…….”
설자웅과 전호양이 엉거주춤 일어나며 포권을 취했다.
“설자웅이오.”
“전호양이라 하오.”
“장만익이라 하외다.”
설자웅과 전호양의 눈이 한껏 커졌다.
‘단철신검 장만익!’
장만익의 이름은 결코 설자웅에 뒤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강호에서는 장만익의 이름이 설자웅보다 반 계단은 더 위에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전호양이야 말할 것도 없었고.
그런 장만익이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독고무령에게 친근하게 굴자, 설자웅과 전호양은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장만익은 그들과 대충 인사를 나누고는, 마치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칭찬받고 싶어 하는 사람처럼 독고무령에게 말했다.
“좋은 소식이 있어서 내 한달음에 달려왔네.”
“좋은 소식이라고요?”
“그렇다네. 방주께서, 최선을 다해 회주를 도우라며 이백의 정예를 보내주신다지 뭔가. 허허허.”
백 명을 청했는데 이백 명이 오고 있다고 한다. 더 올지 모른다는 것은 짐작했지만, 그래도 예상보다 많은 인원이다.
어쨌든 나쁠 건 없었다. 다다익선. 자신들을 누를 정도만 아니면 많을수록 좋은 일이었다.
“이제야 뭐가 되는 거 같군요. 수고하셨습니다.”
“허허허, 우리도 최선을 다할 테니 잘해보도록 하세!”
“그야 물론이지요.”
그 모습을 보는 설자웅과 전호양은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대체 이게 어찌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