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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제 165화

무료소설 암천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863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암천제 165화

 

165화

 

 

 

 

 

 

“예, 백부님.”

 

백화명의 입가에 실쭉 웃음이 그려졌다.

 

백부!

 

어디 그렇게 불리는 사람이 한둘이랴. 그런데도 그 말을 직접 들으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오오오! 나에게 조카가 생기다니. 그것도 친조카가!

 

그는 행여나 독고무령이 자신을 실없는 사람으로 볼까봐, 최대한 자신의 마음을 감춘 채 심드렁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험, 어디 물어봐라. 내 아는 대로 답해주마.”

 

그때 백화명의 부인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부산을 떨었다.

 

“어이구, 이럴 때가 아니지. 차라도 내와야 하는데……. 먹을 만한 게 있을지 모르겠네.”

 

백화명은 그런 부인을 째려보며 혀를 찼다.

 

“쯔쯔쯔, 손님이 오면 그런 것은 기본이지…….”

 

“당신 때문에 괜히 긴장해서 그랬잖아요.”

 

“그게 왜 나 때문이야? 이놈이 엉뚱한 소리를 해서 그랬지.”

 

백화명의 부인은 입을 삐죽이고는, 독고무령을 보며 환하게 웃었다.

 

“조금만 기다려라. 내 금방 내올 테니까.”

 

독고무령의 눈빛이 잘게 흔들렸다.

 

가슴이 뭐라 할 수 없는 기분에 촉촉이 젖어든다.

 

이게 가족이라는 걸까?

 

 

 

잠시 후, 어설픈 분위기가 가라앉자 독고무령이 먼저 찾아온 목적을 말했다.

 

“황궁 안의 상황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있겠습니까?”

 

“황궁 안의 상황?”

 

“현재의 황궁은 동창이 좌지우지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해서 저는 그들을 견제하는 세력이 있는지 그걸 알고 싶은 것입니다.”

 

백화명의 표정이 굳어졌다.

 

동창이라면 이가 갈리는 그였다.

 

아버지인 백이 대학사가 죽은 것도 동창이 권력을 잡았기 때문이었고, 자신이 지금처럼 살아가는 것도 동창 때문이 아니던가.

 

“왜 그걸 알려고 하는 것이더냐?”

 

“저는 산서 강호에 몸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당금 산서 강호 일에 황궁의 세력이 끼어들어서, 뭔가 알아야 대처를 할 수 있을 것 같아 알아보려는 겁니다.”

 

백화명이 잠시 대답을 미뤘다. 그 사이 문이 열리고 백화명의 부인이 차를 들고 들어왔다.

 

백화명은 부인이 따라놓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입을 열었다.

 

“음, 동창을 견제하는 세력이라면 당연히 금의위지.”

 

“당금의 금의위는 힘을 못 쓰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백화명이 피식 웃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그렇게 보이겠지. 하지만 동창에게 밀린 지 벌써 이십 년이 넘었다. 그동안 금의위도 놀고만 있지는 않았을 게다.”

 

“혹시 그들 중 알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이 백부가 비록 이곳에 칩거하고 있지만, 사람과 완전히 연을 끊은 것은 아니다. 내 한 사람을 알려줄 테니 그를 만나봐라. 아마 내 조카라고 하면 간이나 쓸개라도 빼줄 것이다.”

 

백화명은 ‘백부’, ‘조카’에 유난히 힘을 주어 말하고는, ‘그까짓 거!’ 하는 표정을 지었다.

 

 

 

* * *

 

 

 

백화명이 말한 사람의 이름은 전무호. 나이는 마흔 중반으로 백화명과 열두어 살 정도 차이가 났다.

 

그는 백화명과 같은 사문의 후배로, 현재 금의위 북진무사 휘하의 천호장이었는데, 백화명과는 친형제처럼 지낸다고 했다.

 

독고무령은 백화명의 집을 나와서 전무호를 만나러 갔다.

 

백화명이 하루 자고 다음날 가라고 했지만, 편히 잘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대신 떠나기 전에 반드시 들르겠다는 약속을 했다.

 

독고무령이 찾아간 전무호의 집은 남문로에 있었다.

 

어둠이 밀려드는 시각.

 

독고무령이 문을 두드리자 어린 시동이 나왔다.

 

독고무령은 백화명이라는 이름을 대고 전무호를 찾았다.

 

비록 백화명이 말한 것처럼 간, 쓸개를 빼줄 정도는 아니었지만, 전무호는 독고무령을 반갑게 맞이했다.

 

“자네가 그 고집쟁이 형님의 조카라고?”

 

“예, 독고무령이라 합니다.”

 

“흠, 그래, 무슨 일인데 밤이 다 된 시각에 찾아온 건가?”

 

전무호는 질문을 던지고 독고무령을 살펴보았다.

 

커다란 키, 탄탄해 보이는 몸. 등에 진 기다란 봇짐에는 아무래도 무기가 든 것처럼 보였다.

 

‘자리 하나 봐 달라고 하는 건가?’

 

금의위가 동창에 밀린다고는 해도, 천호장이면 어림군에 사람 하나 집어넣을 정도의 힘은 있었다.

 

그는 좀처럼 부탁을 하지 않는 백화명이 조카를 위해 나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독고무령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듣고 몸이 굳어버렸다.

 

“백부께선 동창의 세력을 견제하는 황궁의 세력으로 금의위를 말씀하시더군요. 해서 몇 가지 물어볼 것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 모르겠군.”

 

전무호는 일단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고 독고무령을 주시했다.

 

독고무령은 전무호의 눈을 직시한 채 직설적으로 입을 열었다.

 

“산서에서 벌어지고 있는 강호의 일에 대해 아시고 계실 거라 봅니다만.”

 

금의위는 황궁의 일만이 아니라 밖의 동향도 살핀다. 하기에 산서에서 벌어지는 일을 모르지 않았다.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의 주축세력 중 하나가 은룡산장이 아니던가.

 

“조금 알고 있지. 그런데 왜 그 이야기를 꺼내는 건가?”

 

“은룡산장을 동창에서 움직이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이 그런지요?”

 

전무호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독고무령에게 한 가지 의문점을 먼저 물었다.

 

“화명 형님의 조카라 했지?”

 

“그렇습니다.”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게 아니라면 그분에게는 조카가 없네. 그런데 갑자기 조카라는 사람이 와서 나에게 동창의 일을 묻다니, 무슨 의도로 묻는 건가?”

 

예리한 눈빛. 작은 의심의 꼬투리조차 놓치지 않겠다는 전문가의 눈빛이다.

 

독고무령은 가라앉은 눈으로 전무호를 보며 반문했다.

 

“백부님의 동문 후배 분이라 들었습니다. 그럼, 그분에게 동생이 한 분 계셨다는 것은 알고 계시겠군요.”

 

“동생? 장명 형님을 말하는……. 설마…… 자네가?”

 

무심코 대답하던 전무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제야 독고무령의 얼굴과 오래 전에 보았던 백장명의 얼굴이 겹쳐 보인 것이다.

 

“허어, 그랬군, 그랬어…….”

 

독고무령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고 전무호의 대답을 기다렸다.

 

전무호는 목이 타는지 앞에 놓인 차로 입술을 적셨다.

 

독고무령이 백화명의 단순한 조카도 아니고, 친조카라는 것을 안 이상 망설일 것도 없었다. 그렇다면 자신의 조카와도 같으니까.

 

“자네가 뭘 모르고 있는 것 같군. 은룡산장은 동창에서 움직이는 게 아니네.”

 

“아니라고요? 그럼……?”

 

“오히려 동창이 은룡산장에 의해 움직인다고 봐야 맞겠지.”

 

좀처럼 놀라지 않던 독고무령조차 놀라지 않을 수 없는 말이었다.

 

“자세히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네. 은룡산장의 주인이 누군지 아는가?”

 

“노태군 말입니까?”

 

“노태군이라……. 그렇지. 그곳에서는 그렇게 불리겠지. 하나 그보다는 유공공이라 해야 정확할 거네.”

 

유공공? 그럼 그가 환관이란 말인가?

 

독고무령은 차갑게 가라앉은 눈을 하고서 전무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전무호의 입에서 분노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들에게 당하며 살아온 세월의 한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한때 황제 폐하의 혜지를 흔들어 천하를 어지럽게 만들었던 그 노괴가 동창의 힘을 이용해서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고는, 그곳에서 동창과 환관들을 주물럭거리고 있지. 그러니 어찌 은룡산장이 동창을 움직인다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맙소사! 그 정도였단 말인가?

 

경악한 독고무령은 이를 악물고, 좀 더 깊은 질문을 던졌다.

 

“외부로 나간 자가 간섭하려면 그에 대항하는 자들도 있을 게 아니겠습니까?”

 

전무호가 쓴웃음을 지은 채 답답하다는 투로 말했다.

 

“제독동창이나 장인태감은 물론이고, 첩형과 태감의 대부분이 그의 수족이거늘, 누가 감히 그의 뜻을 거스른단 말인가?” 

 

“그럼, 아직까지도 그에게 대항할만한 자들이 없단 말입니까?”

 

그 질문에 전무호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는 물끄러미 독고무령을 바라보더니, 입술을 씹으며 말했다.

 

“아주 없다고는 볼 수 없지.” 

 

독고무령이 넌지시 떠보았다.

 

“백부께서는 금의위도 많은 준비를 했을 거라고 하셨습니다만.”

 

“끄응, 그 형님도 참, 쓸데없는 말을 했군.”

 

“백부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제가 동창에 반대하는 세력을 물었기에 대답한 것일 뿐이니까요.”

 

전무호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독고무령을 쳐다보았다.

 

“대체 왜 그리 자세한 것을 알려고 하는 건가?”

 

독고무령이 무심한 표정을 지은 채 대답했다.

 

“은룡산장도 은룡산장이지만, 제왕성마저 황궁의 세력과 손을 잡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싸움이 어떤 식으로 결말이 나든, 산서가 피로 물드는 건 불을 보듯 뻔한 일이지요. 그걸 막기 위해서 알려는 것입니다.”

 

전무호의 입가에 씁쓸하게 느껴지는 조소가 떠올랐다.

 

“자네가 그걸 안다고 해서 막을 수 있겠나?”

 

“제 옆에는 목숨을 걸고 저를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천호장님이 생각하시는 것처럼 그리 작은 힘은 아니지요.”

 

“호오, 그래?”

 

여전히 조소가 사라지지 않은 표정. 그래봐야 당랑거철이 아니냐는 마음인 듯했다.

 

독고무령이 물었다.

 

“산서의 일을 아신다면, 무천련에 대한 것도 아시겠군요.”

 

“들어봤지. 제왕성과 은룡산장에게 당해서 련 자체가 해체된 거나 다름없는 상태라고 하더군. 요즘은 암천사신이란 자가 나타나서 제왕성을 곤란하게 만들고 있다는 말을 듣긴 들었네만…….”

 

말을 이어가던 전무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가 머릿속에서 오락가락했다. 한데 그 정체가 쉽게 잡히지 않는다.

 

‘뭐지? 분명 뭔가가 걸리는데…….’

 

그때 독고무령이 물었다.

 

“그럼, 암천회라는 이름은 들어봤습니까?”

 

“암천회? 혹시 암천사신이……?”

 

바로 그때였다. 머릿속에서 오락가락하던 것의 정체가 갑자기 눈앞에 드러났다.

 

전무호는 눈을 홉뜨고 독고무령을 쳐다보았다.

 

“자네…… 이름이 뭐랬지?”

 

“독고무령이라 했지요.”

 

“독고무령…….”

 

독고무령의 이름을 되뇌던 전무호의 눈이 점점 커졌다.

 

“암천사신 독고무령! 그럼…… 자네가?”

 

독고무령은 당장이라도 벌떡 일어설 것 같은 전무호를 바라보며 무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만의 힘으로 힘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산서가 피로 뒤덮이는 것을 원치 않는 사람들이 힘을 모은다면, 그 일을 막지 못할 것도 없지 않겠습니까?”

 

그것은 질문이 아니었다. 압박이었다.

 

전무호는 조소를 지우고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독고무령을 노려보았다.

 

제왕성을 공포에 떨게 한 암천사신이 눈앞에 있다.

 

그렇다면 치기어린 청년의 말이라고만 생각할 수가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독고무령이 그 일을 전격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도 보지 않았지만.

 

“대단한 자신감이군. 하지만 세상은 자신감만으로 움직일 수 없는 법이라네. 자네가 진정 암천사신이라 해도 말이야.”

 

“해보지도 않고 물러서는 것보다는 낫다고 봅니다만.”

 

전무호의 눈매가 꿈틀거렸다.

 

“단순한 강호의 싸움이 아니네. 더구나 황궁의 관리들은 가시밭길을 걷는 걸 싫어한다네. 하거늘 누가 불구덩이에 뛰어들려 하겠는가?”

 

“때로는 불구덩이인 줄 알면서도 뛰어들려는 사람들이 있지요. 제가 찾고자 하는 사람은 그런 사람입니다. 천호장님께 그리하라고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혹시라도 그런 사람을 알고 있다면 소개만 시켜주시지요.”

 

마치 겁이 나면 빠지라는 말처럼 들린다.

 

그러잖아도 불만을 꾹꾹 누른 채 살아온 전무호로선 속이 끓어오를 일이었다.

 

“나는 상대가 강하다고 해서 비겁하게 도망이나 치는 사람이 아니네! 불의에 대항해서 싸우다 죽는 걸 망설인다면 어찌 남자라 하겠는가!”

 

“그럼 더욱 잘 되었군요. 어떻습니까? 잘못된 일을 바로잡으려 하는데 도와주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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