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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제 159화

무료소설 암천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7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암천제 159화

 

159화

 

 

 

 

 

 

후우웅!

 

거세게 불던 바람조차 위지천백을 피해가는 듯하다.

 

위지성은 오늘따라 아버지가 더욱 크게 보였다.

 

그리고 그만큼 마음이 무거워졌다.

 

‘야망이라…… 과연 내가 아버지가 원하는 것만큼 할 수 있을까?’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위지성은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는 않았다. 

 

아버지가 실망할지 모르니까.

 

바로 그때 앞서 달리던 자들 중 한 사람이 뒤돌아보며 소리쳤다.

 

“적사보에서 마중을 나왔습니다, 성주님!”

 

저만치에서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말 십여 필이 다가오는 게 보였다.

 

위지성은 숨을 천천히 들이쉬며 걸음에 힘을 주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다! 세상에 나 위지성의 이름을 알릴 것이다! 그래, 지금은 그것에 모든 것을 걸자!’

 

 

 

* * *

 

 

 

-귀원장에 은룡산장의 무사들이 집결하고, 적사보에 제왕성의 무사들이 집결했다!

 

-비밀에 가려져 있던 은룡산장의 장주가 나오고, 제왕성에선 천검무왕 위지천백이 직접 나섰다!

 

 

 

소문은 바람보다 더 빠르게 퍼졌다.

 

유월의 후끈한 바람에서 비릿한 피 냄새가 맡아졌다. 우현에서 벌어진 대혈전 때 스며든 피가 썩어서 나는 냄새 같기도 했고, 앞으로 흐를 피 냄새가 미리 나는 것 같기도 했다

 

땅에서 올라오는 열기보다 더 숨 막히게 하는 비릿함!

 

그것은 역겨우면서도 무인들의 피를 끓게 했다.

 

충동을 이기지 못한 무인들은 검을 쥐고, 도를 질끈 동여매고 터전을 떠나 자신들이 택한 세력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누구는 대우와 서연으로 가고, 누구는 우현으로 갔다.

 

그리고 어느 누구는 중간에서 방향을 틀어 태원으로 향했다.

 

그 광경은 마치 썩어가는 짐승의 사체에 꼬여드는 파리들 같았다.

 

 

 

독고무령은 정보망을 총 가동한 채, 백천산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근시일 내에 직접적인 대규모 전투는 벌어지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제왕성과 은룡산장은 지난번 싸움에서 참담한 실패를 맛보았다. 그러니 성급한 대결로 지난날의 전철을 밟으려 하지 않을 것이었다.

 

아마 모든 눈과 귀를 총동원해서 조금이라도 자세한 것을 알아내기에 혈안이 되어 있겠지. 

 

그걸 파악하는 데만도 적지 않은 시간을 소모할 것이 분명했다.

 

우려하는 것은, 그 와중에 자신들이 드러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다행이라면 암문의 정보를 제왕성과 은룡산장이 신뢰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잔잔한 물결이 언제 해일처럼 바뀔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 방심하면 이용하려던 파도에 거꾸로 뒤집히는 배와 같은 꼴이 될지도 모른다.

 

 

 

모두가 신경을 곤두세우고 제왕성과 은룡산장을 주시한 지 이틀째 되던 날.

 

독고무령은 막위지의 말대로 북경에 가보기로 결심했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또 시간이 날지 모르는 상황이다.

 

그리고 잘하면 뜻밖의 소득을 얻을지도 몰랐다.

 

그 즈음 운양에게서 두 가지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하나는 생각보다 많은 자들이 영입되어 풍운장이 활기를 되찾고 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구양손이 빠르게 나아서 정신을 차렸다는 것이었다.

 

마침 독고무령의 호출로 진사혁이 와 있던 터였다.

 

그는 그 말을 듣더니 툴툴거리며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양반, 목숨 한번 끈질기군.”

 

하지만 두 눈에선 기쁜 빛이 역력했다.

 

독고무령도 오랜만에 농담조의 말을 했다.

 

“내 자네 말을 꼭 전하겠네.”

 

진사혁이 눈을 부릅떴다.

 

“그 말을 하면 회주와 나의 관계도 끝장이네. 아주 멀리 도망가 버릴 테니까.”

 

독고무령은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

 

“구양 낭자도 만나지 않을 생각인가?”

 

진사혁이 졌다는 듯 홱 고개를 돌리며 투덜거렸다.

 

“제길, 누님만 아니면 정말 도망갈 수 있는데…….”

 

독고무령은 피식 웃으며 말을 돌렸다.

 

“어제 보니 관천뇌곤의 중육식이 거의 완성된 것 같은데, 이제 후삼식을 익혀야 하지 않겠나?”

 

순간 진사혁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그는 당장이라도 곤을 쥐고 벌떡 일어날 것 같은 표정으로 독고무령을 노려보았다. 누가 보면 싸우자고 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눈에 힘을 주고서.

 

“말 나온 김에 시작하지.”

 

관천뇌곤 후삼식의 구결은 선문답 같은 형태로 비결(秘訣)에 적혀 있는데, 일반적인 구결과 궤가 달랐다.

 

풀이한다는 것 자체부터가 힘들고, 겨우 풀이를 해줘도 깨달음이 없는 사람은 익힐 수 없었다.

 

후삼식 중 단 일초라도 익힌 사람이 백수십 년 간 열 명이 안 되었으니 그 어려움이 오죽하랴.

 

그나마도 마지막 삼초 무유관천(無有貫天)에 입문한 사람은 오직 진원명뿐이었다. 비록 이십 년이 지나도록 완성을 못하고 있긴 하지만.

 

하기에 진사혁은 독고무령이 관천뇌곤의 후삼식을 거론하자 흥분되지 않을 수 없었다.

 

독고무령은 품속에서 작게 말린 두루마리를 하나 꺼내 진사혁에게 건네주었다.

 

진사혁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두루마리를 건네받았다.

 

“이게 뭔가?”

 

“자네, 관천뇌곤의 후삼식을 펼칠 수 있나?”

 

“아니.”

 

“그럼, 나에게 전체 구결을 알려줄 수 있나?”

 

진사혁이 곰처럼 큰 눈을 굴리며 머뭇거렸다.

 

“에…… 그건…… 집안의 허락이 있어야…….”

 

독고무령이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 어차피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아. 그건 내가 본 관천뇌곤과 자네가 대충 말해준 후삼식을 나름대로 떠올리면서 풀이해본 거네. 관천뇌곤 후삼식 진본과는 다를 수도 있지만, 조금은 도움이 될 거야. 내가 익힌 구겁무의 깨달음까지 조금 섞여 있으니까.”

 

진사혁은 조급한 마음을 억누르고 조심스럽게 두루마리를 펴보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입에서 ‘억!’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 이게…… 어떻게……?”

 

진사혁은 더듬거리며 동그래진 눈으로 독고무령을 쳐다보았다.

 

두루마리에는 후삼식 중 첫 번째, 무음관천(無音貫天)에 대한 해석이 적혀 있었다.

 

그런데 그 흐름이 비결과 거의 같지 않은가 말이다.

 

다른 점이라면, 비결의 글은 선문답과 같아서 아무리 봐도 머리만 지끈거리는데, 두루마리에 적힌 글은 보는 순간 머릿속에서 뭔가가 떠오르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당장 익혀보고 싶을 정도로!

 

그러니 진사혁이 어찌 기쁘지 않을까.

 

독고무령은 진사혁의 마음을 눈치 채고 넌지시 물었다.

 

“어떤가? 너무 많이 다른 건 아니겠지?”

 

다르냐고?

 

진사혁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후우, 조부님이나 아버님이 이걸 보시면 기절하시지나 않을지 모르겠군.”

 

반응을 보니 다행히 자신의 노력이 헛되지는 않은 것 같다.

 

독고무령은 잔잔한 웃음을 띤 채 진사혁을 바라보았다.

 

“지금은 하나이지만, 곧 나머지 둘도 풀이할 수 있을 거네. 자네가 후삼식을 완벽히 재현하면 그분들도 인정할 거야.”

 

진사혁이 뒤통수를 긁으며 머쓱한 웃음을 지었다.

 

“그거야 뭐 당연하지. 아참, 그건 그렇고, 왜 나를 부른 건가?”

 

독고무령은 별일 아니라는 표정으로 담담히 말했다.

 

“잠깐 다녀올 곳이 있네. 사람들에게는 산 뒤에 있는 동굴에서 며칠간 수련한다는 핑계를 댈 참이네.”

 

거짓말까지 하고 자리를 비운다는 말에 진사혁의 표정이 굳어졌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만큼 사안이 가볍지 않다는 말과도 같았다.

 

“장로님께는 알려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육 장로님께는 알릴 생각이네.”

 

독고무령이 육풍원을 지명해서 말하자, 진사혁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천룡방 사람들은 알지 못하게 할 건가?”

 

독고무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호위무사대로 하여금 동굴을 지키게 하게나. 그럼, 저들도 의심하지 못할 거네.”

 

뭔가가 이상한 듯 진사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다 곧 이상함의 정체를 생각해내고 눈을 크게 떴다.

 

‘응? 그럼 호위무사대도 없이 간다는 건가?’

 

하지만 그보다 먼저 독고무령이 입을 열었다.

 

“그리고 자네는 내 대신 동굴 안에서 무음관천을 익히도록 하게.”

 

이제 하나를 풀이했을 뿐인데도, 이르게 그것을 건넨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내가 대신?”

 

독고무령은 진사혁이 반발을 못하도록 압박했다.

 

“갔다 올 때까지 진전이 없으면, 다음 것은 알려주지 않을 거네. 그러니 알아서 열심히 해.”

 

진사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 그게…… 며칠 사이에 얼마나 익힌다고…….”

 

“자네도 알겠지만, 후삼식은 깨달음의 무공이네. 깨달음은 오랜 세월 수련했다고 해서 찾아오는 게 아니네. 때로는 하루아침에 찾아오기도 하지. 내가 자네 철방에 가서 공명을 느꼈던 것처럼 말이야.”

 

그것도 그럴법했다. 실제 그런 사람이 눈앞에 있지 않은가 말이다.

 

“뭐, 열심히 해보기는 해보겠는데…….”

 

“지금 벌어지는 싸움이 결과를 좌우할지 모를 만큼 중요한 일이어서 그러는 거니, 자네가 이해해주게.”

 

중요한 일이라는데 뭐라 할 건가.

 

그래도 한 가지만은 놓치지 않았다.

 

“근데 어딜 가려고 그러는 건가?”

 

곰처럼 둔해도 물을 건 다 묻는 진사혁이다.

 

독고무령은 차마 진사혁에게까지는 숨기지 못하고 쓴웃음을 지으며 목적지를 알려주었다.

 

“북경에 가려는 거네.”

 

“북경에 간다고?”

 

무의식중에 터져 나온 목소리가 제법 크다. 거기다 때맞춰서 누군가가 방 앞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독고무령은 재빨리 진기를 퍼뜨려 소리를 차단했다.

 

동시에 문밖에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회주,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모용설의 목소리다.

 

‘들었을까?’

 

그럴 가능성이 컸다. 진사혁의 목소리가 오죽 컸는가 말이다.

 

독고무령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몰래 다녀오려고 진사혁을 자기 대신 동굴에서 지내게 한 것인데, 그렇게 큰소리로 말하다니.

 

하지만 어쩌랴, 이미 엎질러진 물이거늘.

 

“들어와.”

 

모용설은 여전히 천으로 입과 목 부분을 감싼 모습이었다.

 

그녀는 안으로 들어오더니, 묘한 표정으로 독고무령과 진사혁을 번갈아보았다.

 

독고무령은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담담하게 물었다.

 

“무슨 일이지?”

 

모용설은 품속에서 작은 주머니를 꺼내 탁자에 올려놓았다. 모용회에게서 얻은 주머니였다.

 

“이거, 회주가 맡아주세요.”

 

“왜 나에게 그걸 맡기려 하는 것이지?”

 

모용설은 입술을 잘근거리며 속삭이듯이 말했다.

 

“혹시라도 저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회주가 소양이를 구해주세요. 솔직히 말해서 저보다 회주가 생존가능성이 높잖아요. 이유는 그게 다예요.”

 

“하지만…….”

 

모용설이 손을 들어 독고무령의 입을 막았다.

 

“부탁이에요.”

 

독고무령은 그녀를 똑바로 응시했다.

 

왠지 모르게 전과 많이 달라 보였다.

 

‘동생 때문에 걱정이 많이 되나 보군.’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모용소양을 구하려면 자신이 관여해야 될 일. 모용설이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정말 나에게 이것을 맡겨도 괜찮겠나?”

 

모용설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독고무령은 탁자 위에 놓인 주머니를 집어 들었다.

 

“좋아. 그럼, 내가 당신의 동생을 구할 때까지 보관하고 있지.”

 

그때 모용설이 독고무령에게 물었다.

 

“그런데 북경에는 왜 가시려는 거죠?”

 

적수천을 만났을 때 북경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었다. 그걸 아는 모용설이기에 이유가 더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독고무령이 답을 망설이는데, 진사혁이 속도 모르고 입을 열었다.

 

“중요한 일이 있다는군.”

 

독고무령은 눈만 돌려서 진사혁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진사혁은 꿈쩍도 하지 않고, 왜 그렇게 보냐는 표정으로 마주 보았다.

 

‘좌우간 눈치라고는…… 좀 전에는 눈치 빠르게 내 말을 이해하더니…….’

 

독고무령은 별수 없이 간단히 대답해주었다.

 

“누굴 좀 만나서 알아볼 게 있다.”

 

“그럼 저도 같이 가요.”

 

난데없는 동행 요청.

 

독고무령은 당연히 거부하려고 했다. 그런데 모용설이 먼저 선수 쳤다.

 

“북경에 아는 분이 있어요. 그분이 아직도 북경에 계시다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거예요.”

 

“내가 만나려는 사람은 일반 양민이 아니다.”

 

모용설이 묘한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분도 일반 양민이 아니에요. 황궁의 관리거든요.”

 

질기군.

 

독고무령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둘만의 여행.

 

왠지 모르게 바람 한 줄기가 가슴을 쓸며 지나가는 기분이었다.

 

‘가만, 그럼 가는 길에 그 일을 처리해야겠군. 이호에게 보정에 있는 밀호방 사람을 알아봐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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