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천제 15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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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6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암천제 157화
157화
제1장 제왕은 야망의 대지로 나오고
“어디 말해보게.”
“본문에 접수된 청부 중 귀원장과 관련된 것이 하나 있소. 혹시 아실지 모르겠소만, 귀원장에 어린 소년이 하나 잡혀 있다고 하더군요. 모용소양이라고…….”
“모용소양?”
잠시 생각에 잠긴 듯 적수천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독고무령이 적수천의 기억을 도와주었다.
“청부인의 말에 의하면, 오래 전 어떤 물건 때문에 대신 잡혀갔다고 했소.”
“흠, 그러고 보니 저번에 아이 하나를 본장으로 옮겼는데, 그 아이를 말하는 것 같군.”
“그 아이가 십칠팔 세 정도의 소년이라면 아마 맞을 거요. 그 아이를 우리에게 내주면 어떻겠소?”
“그 아이를 몇 년째 붙잡아 놓고 있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지. 미안하지만 그 일은 어려울 것 같군.”
“그 이유가 혹시, 그 물건 때문이 아니오?”
“정확히는 몰라도 자네 말이 거의 맞을 거네.”
“만일 우리가 그 물건을 찾아준다면? 그래도 안 되겠소?”
적수천은 거친 수염이 자란 턱을 쓰다듬었다.
“흠, 그렇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
“역시 당신은 거래를 아는 분이오. 좋소, 그 부탁만 들어준다면, 우리 역시 당신들의 조건을 받아들이겠소.”
어르고 뺨치고, 독고무령은 빠르게 이야기를 매듭짓고 넌지시 말을 돌렸다.
“북경에 갈 일이 있을지 모르는데, 혹시 도움을 청할만한 분을 천거해 주실 수 있소?”
“북경에?”
“본문이 커지다 보니 북경에 갈 일도 생기는군요.”
“흠, 문파의 번성을 축하하네. 그러한 일이라면 얼마든지 도와줄 수 있지.”
‘축하라……. 내가 왜 북경에 가려는지 알고 나면 그럴 수 없을 걸?’
독고무령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살짝 고개를 숙였다.
“고맙소.”
독고무령이 장원을 나선 것은 도착한 지 한 시진 만이었다.
다행히 비는 멈춘 상태였다.
퐁! 퐁!
독고무령이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낙숫물소리를 들으며 장원을 나서는데, 뒤에 바짝 붙어 따라오던 모용설이 나직이 말했다.
“고마워요, 회주.”
“고마워할 것 없어. 거래였을 뿐이니까.”
“그래도 고마워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도…….”
독고무령은 무심코 고개를 돌리다 멈칫했다. 모용설의 물기 가득한 두 눈이 자신을 주시하고 있었다.
“고마워요.”
젖은 목소리가 그녀의 입에서 나직이 흘러나옴과 동시, 그녀의 두 눈에 가득하던 물기가 주르륵 흘러 내렸다.
독고무령은 더 이상 이러쿵저러쿵하지 않고 묵묵히 걸음만 옮겼다.
적수천은 독고무령이 나간 방문을 바라보며 나직이 물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대답은 바로 뒤에 서 있던 자들 중 하나가 했다.
“아무래도 수상한 놈들입니다.”
적수천은 고개를 돌려서 삼십 대 중반의 나이에 뾰족한 턱을 지닌 악조응을 쳐다보았다.
악조응은 본래 동창의 당두로 강호의 정보를 수집하는 일을 맡고 있었는데, 실력이 탁월해서 방유경이 특별히 끌어들인 자였다.
“무엇이 수상하다는 것인가?”
“일개 정보장사꾼치고는 너무 자신만만하고 태연합니다. 더 이상한 점은, 아직까지 산서에 암문이라는 곳이 존재하고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철저한 조직이라는 말일 수도 있잖은가?”
“그건 그렇습니다만…….”
“만약 저들이 우리의 적이라면 왜 우리를 돕겠는가?”
“다른 목적이 있다면 못할 것도 없겠지요.”
“다른 목적이라…….”
“제가 저들의 뒤를 자세히 캐보겠습니다.”
“흠, 그래?”
적수천은 손가락으로 탁자를 톡톡 두들겼다.
어차피 그런 목적으로 자신을 따라온 사람이다. 자신이 진행하는 일을 믿지 못한다는 게 자존심이 상할 일이긴 하지만, 노태군의 승낙이 떨어진 이상 막을 수도 없었다.
그는 잠시 시간을 둔 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조심해야 할 거네. 만만찮은 실력을 지닌 놈들이니까.”
악조응의 입술 끝이 살짝 비틀어졌다.
“걱정 마십시오. 무공은 딸릴지 몰라도 추적에 있어서만큼은 최고의 능력을 지녔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놈들은 우리가 쫓고 있다는 것을 꿈에도 모를 겁니다.”
* * *
독고무령은 호위무사대와 함께 태평하(太平河)를 따라 남하했다.
장원을 출발해서 반 시진쯤 지났을 때 뒤에 꼬리가 붙은 것을 눈치챘다.
움직임이 워낙 은밀한데다 상당한 거리를 두고 따라와서 모를 뻔했다. 그런데 계곡으로 들어가며 바람이 갑자기 방향을 바꾸는 바람에 그의 감각에 걸려든 것이다.
독고무령은 모른 척하고서 같은 속도로 전진했다.
다시 반 시진. 골이 깊은 계곡으로 들어선 그는 꼬리를 제거하기로 작정했다.
“누군가가 우리 뒤를 따라오고 있소. 내가 처리할 것이니, 그대들은 아무 일 없는 것처럼 그대로 가시오.”
호위무사대에게 지시를 내린 그는 조금씩 뒤로 처졌다.
그리고 구비를 하나 도는 순간, 계곡 가장자리의 고목 위로 몸을 날렸다.
스물을 셀 시간이 지날 즈음, 몇 사람이 어둠을 헤치고 유령처럼 나타났다.
‘모두 일곱이군.’
나무 위에 몸을 숨긴 독고무령은 그들을 바라보았다.
자신조차 하마터면 몰랐을 정도의 은밀한 움직임. 작은 흔적만으로도 정확하게 뒤를 쫓는다.
전문적으로 추적술을 익힌 자들.
‘적수천의 눈에선 특별하게 의심하는 빛이 없었다. 그럼, 누가?’
저들 중 누군가가 암문을 의심하고 있다. 문제는 그것이었다.
독고무령은 그들이 다 지나간 후에야 나무에서 내려왔다.
소리 없이 내려선 그는 암향호접무를 펼치며 유령처럼 추적자들의 뒤를 따라갔다.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거래가 틀어지는 한이 있어도 자신의 정체가 밝혀지면 안 된다. 최대한 흔적을 남기지 않고 소멸시키는 수밖에!
암문 무사들을 뒤쫓던 악조응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얼음가루가 등줄기에 쏟아진 기분!
갑자기 오한이 들었다.
‘뭐, 뭐지?’
그는 이를 악물고 홱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별 이상이 없는 듯 보였다.
그러나 곧 그는 무엇이 이상한지 깨닫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두 사람이 없어!’
일곱 명이 삼 장 간격을 유지한 채 이동했다.
그런데 지금은 자신까지 합해서 다섯 명만이 남아 있었다.
그가 걸음을 멈추자 나머지 네 사람도 걸음을 멈추었다.
자신이 아는 한 그럴 리는 거의 없지만, 악조응은 행여나 두 사람이 조금 뒤처진 것이 아닌가 하고 잠시 기다렸다.
그러나 우려했던 대로 시간이 지나도 두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일단 이곳을 벗어난다. 거리를 일 장으로 좁혀라. 가자!”
그는 나직이 소리치고 앞으로 달렸다. 네 사람도 그를 따라 달렸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악조응은 뒤따라오는 수하들을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헉!’
그는 하마터면 발이 꼬여 넘어질 뻔했다.
기껏해야 일 장의 거리를 두고 달렸거늘, 또 한 사람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악조응은 엄습하는 두려움에 머리끝이 삐죽 솟았다.
“웬 놈이냐!”
그는 암문의 사람들에게 들키는 것은 아랑곳없이 소리를 질렀다.
바로 그 순간.
빤히 보고 있는 와중에 수하 하나의 목이 옆으로 꺾어지는 게 보였다.
그는 악을 쓰며 검을 뽑아들었다.
“피해!”
동시에 목이 잘린 자의 몸에서 피가 솟구쳤다.
독고무령은 유령처럼 움직이며 또 한 사람의 목을 베어내고는 검을 뻗어서 어둠을 갈랐다.
결국 악조응을 제외한 여섯 명의 무사는 마지막까지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한 채 모두 죽음을 당했다.
“죽어!”
공포에 질린 악조응은 미친 듯이 검을 휘두르며 독고무령을 향해 달려들었다.
독고무령은 몸을 살짝 비틀어 악조응의 검을 피하고는, 어깨를 스쳐지나가는 검신을 단숨에 움켜쥐었다.
퍽!
거의 동시에 독고무령의 발이 악조응의 복부를 깊숙이 파고들어서 척추까지 꺾어버렸다.
“꺼억!”
입을 쩍 벌린 악조응은 뒤로 이 장가량 튕겨져 바닥에 널브러졌다.
독고무령은 손에 들린 악조응의 검을 한쪽에 내던지고, 쓰러져 있는 악조응에게 다가갔다.
“끄으으…….”
악조응은 바닥을 기며 몸을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독고무령이 그대로 놔두지 않았다.
우두둑!
그는 악조응의 팔을 발로 차서 부러뜨리고는 마혈마저 제압했다.
“이제부터 몇 가지 물을 것이다. 순순히 대답한다면 고통 없이 죽여주지.”
혀를 깨물고 싶어도 그럴 수 있는 힘마저 남지 않은 상태. 악조응은 큭큭거리며 독고무령을 비웃었다.
“크크, 어, 어리석은……. 너는 내 입을 열지 못해. 괜한 짓 하지 말고 그냥 죽여라.”
비웃음을 흘리는 그의 입에서 핏물이 쏟아졌다.
독고무령은 악조응을 내려다보며 고저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동창에서는 고문을 견디는 법도 가르친다는 말을 들었지. 하지만 그대들이 하는 고문과 내가 하는 고문은 조금 다르다는 걸 알아야 할 거야.”
“쓸데없는 짓…….”
“자신 있으면 견뎌 봐라, 동창의 개.”
독고무령은 무심히 말하며 검첨으로 악조응의 등에 있는 혈도 몇 군데를 찍었다.
뒤이어 검기가 척추를 타고 흐르는 신경에 충격을 주자, 악조응의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그리고 곧 그의 몸이 제멋대로 뒤틀리기 시작했다.
딱 벌어진 그의 입이 덜덜거리며 이가 부서질 듯이 부딪치고, 튀어나올 듯이 커진 두 눈은 터질 것처럼 시뻘겋게 충혈 되었다.
“흐으으으, 안…… 돼. 끄어어어…….”
독고무령은 검첨으로 악조응의 등을 훑어 내리며 나직이 말했다.
“어떻게 죽을 것인지, 선택은 그대가 하도록.”
툭, 투둑…….
시간이 지나자 악조응의 몸 안에서 뭔가가 끊어지고 부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으어, 어, 어…….”
불구덩이에 빠진들 이보다 더 고통스러울까!
악조응은 이대로 죽기만을 바랐다. 죽으면 모든 고통이 사라질 것이 아닌가 말이다.
그런데 죽음도 그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정신을 잃을 정도가 되면 고통이 누그러진다.
그리고 곧이어 조금 전보다 더 지독한 고통이 밀려든다.
그게 더 악조응을 미치게 했다. 잠시 후에 밀려들 고통을 생각하며 혼이 새카맣게 타들어가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악조응은 금방이라도 핏물이 튀며 터져버릴 것 같은 혈안을 뒤집어 깐 채, 몸을 덜덜 떨며 제발 죽여주기를 간청했다.
“주, 죽여…….”
하지만 독고무령은 무심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렇게 반각.
더 견디지 못한 악조응은 죽음을 갈구하는 목소리로 애원했다.
“마, 말……. 제발…….”
독고무령은 그제야 악조응의 제압된 혈도 하나를 풀어주고 질문을 던졌다.
“누가 너에게 지시를 내렸지?”
“방…… 유경.”
“귀원장에 와 있는 은룡산장의 주요인물을 아는 대로 이야기해 봐.”
“노태군……. 사사와…… 혈왕…… 좌우시위…… 구구객…….”
“사사는 어떤 자들이지? 혈왕은? 자세히 말해 봐.”
“사사는…… 비밀에 쌓인 전대 거마 넷……. 혈왕은…… 노태군의 제자……. 자세한 건 나도 잘…….”
“앞으로의 계획은?”
악조응의 눈동자가 흐릿해졌다.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는 말.
“그건…… 내가 알 수 있는 게 아니…… 제발…… 이제 죽여…….”
독고무령도 어차피 그에게 많은 기대를 한 것은 아니었다.
자신이 손을 써서 목숨을 더 연장한다 해도 기껏해야 몇 마디 할 수 있는 정도.
독고무령은 자신을 애원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악조응을 향해 손을 저었다.
“약속대로 죽여주마.”
칼날 같은 기운이 악조응의 미간에 틀어박혔다.
퍽!
단월인을 펼쳐 악조응을 죽음으로 인도한 독고무령은 고개를 들고 눈을 좁혔다.
‘사사와 혈왕, 구구객이라…….’
밀호방의 정보원들조차 몰랐던 이름이 나왔다.
그만큼 비밀에 싸인 자들이라는 소리. 강한 자들이라는 말이다.
전체의 상황에 변화를 줄 만큼 커다란 변수의 등장.
위지천백은 그들을 알고 있을까?
모르고 있다면 더 많은 피가 흐를 것이다.
독고무령은 어둠조차 얼려버릴 것 같은 눈빛으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잠시 생각에 잠긴 사이, 앞서갔던 암천위와 모용설이 되돌아왔다.
모용설은 죽어 있는 악조응을 힐끔 쳐다보았다.
의외로 편안해 보이는 표정이다. 분명 고문을 당했을 것이거늘.
그녀는 생각도 못했다. 악조응이 왜 그런 표정을 지으며 죽었는지. 그가 드디어 죽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얼마나 안도했는지.
“은룡산장에서 보낸 자들인가요?”
독고무령은 모용설의 질문에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고 암천위에게 명령을 내렸다.
“이자 외에도 여섯이 더 죽어 있을 거요. 흔적을 완벽히 지우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