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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제 156화

무료소설 암천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33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암천제 156화

 

156화

 

 

 

 

 

 

독고무령의 질문에 북리사웅이 톡 쏘듯이 대답했다.

 

“별일 아니오. 그냥 당분간 지원무사를 보내줄 수 없다는 연락이 왔을 뿐이오.”

 

왠지 서툴게 느껴지는 변명.

 

하지만 독고무령은 그를 추궁하지 않았다.

 

어차피 천룡방을 전적으로 믿고 일을 진행한 것이 아니다. 천룡방은 그저 그들이 맡은 일만 충실히 해주면 되는 것이다.

 

그래도 독고무령은 한마디 충고를 던져 천룡방의 움직임을 제어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북리 형이나 천룡방의 사람들이 나에게 어떤 마음을 가지든 그건 상관없소. 그러나 개인적인 마음 때문에 전체적인 계획이 틀어지는 것은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오. 서로의 화합을 위해서라도 그 점만큼은 명심해주길 바라겠소.”

 

감히 이름도 없는 암천회의 회주 따위가 하북제일세인 대 천룡방의 소방주인 자신을 위협하자는 건가?

 

북리사웅은 가슴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틀린 말이 아니기에 꾹 눌러 참고 한마디로 대답했다.

 

“걱정 마시오. 나도 그 정도는 아니까.”

 

그때 장만익의 전음이 북리사웅의 귀청을 파고들었다.

 

<소방주, 방에서 온 소식을 말해주어야 하지 않겠나?> 

 

<말해봐야 좋은 소리도 못들을 텐데, 미리 알릴 필요가 있겠습니까?>

 

장만익의 이마에 세 줄기 골이 파였다.

 

<그건 그렇네만…….>

 

<상황을 봐서 적절한 때가 오면 말하도록 하겠습니다.>

 

북리사웅은 자신의 생각을 고집하며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장만익과 범여종, 도정환, 사중인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만 나가지요. 암천회 분들끼리 할 말이 있는 모양인데, 우리가 있어서 말을 못하나 봅니다.”

 

비아냥거림마저 섞인 까칠한 말투.

 

육풍원은 눈을 부라리며 북리사웅의 등을 노려보았다.

 

그러다 자신을 향해 고개를 젓는 독고무령을 보고 입만 씰룩거렸다.

 

‘건방진 놈! 언제 제대로 걸리면 주둥이를 그냥, 콱!’

 

 

 

독고무령은 미시가 되자 암천위를 소집했다. 적수천을 만나기 위해 우현까지 가려면 더 늦기 전에 출발해야 했다.

 

그는 이번에도 암천위만 대동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약속장소가 귀원장 근처라는 것을 알고 모용설이 악착같이 동행하겠다고 나섰다.

 

“소양이가 그곳에 정말 없는지 확인하고 싶어요. 승낙해 주세요, 회주.”

 

간절한 표정.

 

독고무령은 그녀의 마음을 알기에 두어 가지만 당부하고 동행을 허락했다.

 

“허락하기 전까지는 절대 개인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럴게요.”

 

“그대의 검은 너무 특이해서 누구나 알아볼 거다. 그러니 그 검은 놓고 다른 검을 가져가라.”

 

“알았어요.”

 

“그들이 그대를 알아볼지도 모르니…….”

 

모용설은 독고무령이 말하는 와중에 목과 얼굴의 반을 가린 천을 풀었다. 그리고 머리를 위로 쓸어 올리더니 머리띠로 묶었다.

 

손볼 것도 없이 그것만으로도 완벽에 가까운 변신이었다. 남자가 여자로 변해버렸으니까.

 

“여기다 여자 옷까지 입으라고는 하지 마세요.”

 

그녀의 변신(?)을 묵묵히 바라보던 독고무령이 넌지시 말했다.

 

“다른 사람처럼 눈 밑을 천으로 가려라.”

 

그대는 그 모습이 더 튀니까.

 

“말대로 다 할 게요.”

 

장유유와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지닌 모용설이다.

 

특히 힘들게 살아오며 자연스럽게 밴 애잔한 눈빛은 보듬어주고 싶은 마음이 절로 일 정도다.

 

독고무령은 눈빛이 흔들리기 전에 몸을 돌리고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거 참. 전에는 영락없이 발톱세운 고양이 같았는데…….’

 

분명 그랬는데, 지금은 비 맞은 강아지처럼 느껴진다.

 

여자가 변화무쌍한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변한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가자.”

 

 

 

* * *

 

 

 

신시 무렵.

 

은룡산장의 무사들이 일제히 귀원장에 들어서자, 전에 비할 수 없이 무거운 기운이 장원 전체를 내리눌렀다.

 

교자에서 내린 노태군은 헌원조와 적수천의 안내를 받아 귀원장에서 제일 화려한 태원각으로 들어갔다.

 

두 명의 시위와 소한과 사사가 그를 바짝 따라가고, 냉막한 표정의 장소천은 그들보다 서너 걸음 뒤처진 채 일정한 보폭으로 걸음을 옮겼다.

 

동공이 핏빛으로 물든 그는 이전의 장소천이 아니었다.

 

잠천혈왕(潛天血王). 일명 혈왕.

 

노태군이 그리 부르는 존재일 뿐.

 

전각 안으로 들어간 노태군은 헌원조와 적수천이 자리에 앉자 장소천을 향해 손짓했다.

 

“그리 앉아라.”

 

장소천은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처럼 노태군이 가리키는 의자에 조용히 앉았다.

 

헌원조와 적수천은 그런 장소천을 보고 이를 지그시 악물었다.

 

‘소천이를 저런 괴물로 만들다니, 지독한 늙은이.’

 

만일 자신들이 선택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괴물이 되든가, 아니면 처참한 죽음을 당했을 것이 분명했다. 두 사람은 그 생각을 하자 한기가 몰려왔다.

 

그때 노태군이 붉은 입술을 오물거리며 헌원조를 바라보았다.

 

“위지천백은 아직 움직이지 않았다 하더냐?”

 

“아직은 움직이지 않은 것 같습니다만, 오늘 오후에 암문 사람들과 만나기로 했으니 어떤 소식이든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암문 사람과 만나기로 했다고?”

 

“예, 아버님. 이틀 전에 연락이 왔습니다. 그들이 먼저 연락을 취했다는 것은, 뭔가 전해줄 것이 있다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그들의 정보가 본장의 사람들이 전해오는 것보다 더 정확하다 했지?”

 

“지금까지는 그렇습니다. 해서 당분간 그들을 이용할 생각입니다.”

 

“흐음, 그래?”

 

노태군은 눈을 가늘게 뜨고 방유경을 바라보았다.

 

“유경, 네 생각은 어떠냐?”

 

“나쁘지 않은 생각 같사오나, 전적으로 그들에게 의지할 수는 없는 일이라 사료되옵니다.”

 

“그건 그렇지. 어쨌든 오늘 만나기로 했다 하니 두고 보면 알겠지.”

 

“허락하신다면, 소신이 사람을 딸려 보내서 그들에 대한 것을 정확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노태군은 혀로 붉은 입술을 핥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도록 해라.”

 

 

 

* * *

 

 

 

신시가 되자 맑던 하늘에 구름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대기 중에서 습기가 눅눅하니 느껴졌다.

 

언제 비가 올지 모르는 일. 독고무령 일행은 걸음을 빨리했다.

 

전에 만났던 폐찰에 도착하자, 기다리고 있던 밀호방의 팔호가 그들을 다른 곳으로 안내했다.

 

약속장소는 폐찰에서 동쪽으로 이십여 리 떨어진 곳에 있는 작은 장원이었다. 그곳에서 귀원장까지는 십오 리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했다.

 

툭, 툭, 툭…….

 

폐찰을 출발하는데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다행히 독고무령 일행이 약속장소에 도착할 때까지는 비가 본격적으로 내리지 않았다.

 

하지만 약속장소인 작은 장원에 도착할 즈음, 천둥소리가 들리며 제법 굵은 빗방울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투두두둑! 쏴아아!

 

현판도 달려 있지 않은 작은 장원은 완만한 산자락 아래에 지어져 있었다.

 

탕탕!

 

팔호가 문을 두드리자, 주인으로 보이는 중년인이 직접 나왔다. 

 

겉으로는 평범한 유생처럼 보이는 자였다. 하지만 그의 몸속에서는 결코 유생이 지닐 수 없는 강맹한 기운이 휘돌고 있었다.

 

“무슨 일로 오셨소이까?”

 

“적씨 성을 가진 분을 만나러 왔소.”

 

중년인은 더 묻지 않고 독고무령 일행을 안으로 들였다.

 

“따라오시구려.”

 

장원 건물은 네 채의 집이 사각을 이룬 사합원식 구조로, 마치 낙향한 유생이 살아가는 집처럼 조용했다.

 

안으로는 독고무령과 염부종과 모용설만이 들어가고, 나머지는 빗속으로 사라졌다.

 

그들이 비를 맞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이 그들을 위해서도 나았기에 독고무령도 말리지 않았다.

 

독고무령이 건물 중앙의 정원으로 들어서자 방문이 하나 열리더니 적수천이 모습을 드러냈다. 낯빛이 좋지 않은 걸 보니 아직 몸이 완전치 않은 듯했다.

 

그는 독고무령과, 독고무령을 뒤따라 들어온 두 사람을 둘러보고는 가벼운 고갯짓으로 방을 가리켰다.

 

“이리 들어오게.”

 

 

 

독고무령이 자리에 앉자 염부중과 모용설이 그의 뒤에 시립했다.

 

적수천도 세 명의 호위무사와 함께 있던 터라 두 사람이 함께 자리한 것을 말리지 않았다.

 

그는 독고무령의 뒤에 서 있는 두 사람을 쓸어보고는, 곧 눈을 내려 독고무령을 직시했다.

 

“먼 길 오느라 수고했네.”

 

“거래를 위해서라면 만 리라도 가야 한다는 게 본문의 방침이오.”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네. 암문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줄 수 있나? 급한 일이 있으면 연락을 할 수 있는 곳 말이야.”

 

“귀원장의 정문에 파란 깃발을 꽂으면 본문의 사람이 연락할 거요.”

 

“우리가 귀원장에 없을 때는 문제가 되지 않겠나?”

 

“그때는 근처의 높은 나무에 파란 깃발을 매달으시오.”

 

언제든 주시하고 있다는 말. 그리 기분 좋은 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당장은 암문의 정보가 필요하니 참는 수밖에.

 

“꽤나 신비를 좋아하는군.”

 

적수천이 비꼬듯이 말했다.

 

독고무령이라고 해서 왜 적수천의 마음을 모를까.

 

그는 눈빛 한 점 흔들리지 않고 담담히 받아쳤다.

 

“우리 같은 사람들이 이 험한 강호에서 살아가려면 그럴 수밖에 없소.”

 

적수천은 독고무령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하지만 곧 더 이상의 추궁을 포기하고 말을 돌렸다.

 

“할 수 없지. 그래, 제왕성의 움직임에 대해서 아는 게 있나?”

 

“공노명이 죽었다는 것은 알고 계실 거라 보오만.”

 

“들었네. 암천사신이라는 자가 죽였다고 하더군.”

 

“그럼, 태원에서 제왕성의 비밀세력인 제왕밀전의 고수 상당수가 죽었다는 건 알고 있소?”

 

움찔한 적수천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제왕밀전? 대체 누가 그들을 죽였단 말인가?”

 

독고무령은 남 이야기하듯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무천련의 잔당과 암천사신이오.”

 

“으음…….”

 

적수천이 한광을 번뜩이며 침음성을 흘렸다.

 

독고무령은 그런 적수천을 보며 담담히 말을 이었다.

 

“해서 우리는,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서 제왕성의 성주가 직접 나설 거라고 생각하고 있소. 물론 그들의 주 상대는 은룡산장이 되겠지만.”

 

“생판 처음 들어본 제왕밀전이 등장했다시피 제왕성의 세력은 겉으로 밝혀진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고 알고 있네. 혹시 그들에 대해 아는 게 있나?”

 

“정보료만 적절히 준다면 알아봐 줄 수 있소.”

 

“얼마를 바라는 건가?”

 

“은자 오만 냥.”

 

“너무 많군.”

 

“그 일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거라 봅니다만.”

 

“물론 위험이 따르겠지. 하나 은자 오만 냥도 적은 금액이 아니네.”

 

“오만 냥으로 수십, 수백 명의 정예무사를 살릴 수 있다면 그리 많은 금액도 아니지요.”

 

적수천은 한 점 흔들림 없는 독고무령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건방지게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다.

 

생각 같아서는 바닥에 때려눕힌 다음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패를 쥔 사람은 자신이 아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상대의 의도대로 따를 생각도 없지만.

 

“좋아. 오만 냥을 주지. 허나 단순히 제왕성의 비밀조직을 알려주는 것만으로는 안 되네. 그 정도는 우리도 어느 정도 알고 있으니까.”

 

“덤으로, 그들이 움직이면 바로 알려주겠소.”

 

독고무령이 한 발 물러서자, 적수천은 기회를 잡았다는 듯 더욱 세게 몰아붙였다.

 

“거기에 더해서 암천사신과 무천련의 움직임까지 알려주게.”

 

독고무령은 귀면을 찡그리며 짐짓 마뜩치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은자 오만 냥에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오?”

 

“대신 우리에게 부탁할 것이 있으면 하게. 본장에 해가 되지 않는 일이라면 들어주지.”

 

순간, 독고무령의 눈 깊숙한 곳에서 기광이 번뜩였다.

 

“부탁이라……. 아! 그러고 보니 적당한 것이 하나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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