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천제 15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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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2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암천제 151화
151화
이정효가 먼저 그의 앞을 막았다.
“흥! 전주님을 상대하려면 나를 먼저 뚫어야 할 것이다!”
이정효가 나서자 모용회는 그 자리에 서서 지켜보기만 했다.
이정효는 제왕밀전의 이인자이자 자신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 고수. 이기지 못한다 해도 수십 초는 견딜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것이다.
그 순간, 독고무령이 몸을 날린 그 상태로 검을 내려쳤다.
후우웅!
이정효는 별 다른 생각 없이 독고무령의 공격을 검으로 막아갔다.
조금 전과 그리 큰 차이가 없어 보이는 공세다. 그 정도면 뒤로 몇 걸음 물러나는 정도로 그칠 터였다.
자신이 몇 번 검을 받아내는 동안이면, 모용회가 암천사신의 검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생각일 뿐. 구성의 공력에 태천일심의 기운마저 실린 독고무령의 공세는 조금 전과 천양지차였다.
쩌정! 쾅!
검에서 시작된 충격은 찰나 간에 이정효의 몸 내부를 뒤흔들어버렸다.
“크으으윽. 이, 이런…… 속았…….”
이정효는 목구멍이 콱 막히는 충격에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조금 전에 비해 배는 강한 충격!
심장이 터질 것처럼 답답했다.
주르륵 밀려나는 그를 향해 독고무령의 좌수가 흔들렸다.
칼날보다 예리하고 번개처럼 빠른 귀혼낙의 일격!
이정효는 밀리는 와중에도 몸을 틀어 독고무령의 공격을 피했다.
하지만 충격으로 몸이 둔해진 그는 완전히 피하지 못하고 어깨에 일격을 맞고 말았다.
퍽!
“허억!”
이정효의 쩍 벌어진 어깨에서 피가 튀었다.
대경한 모용회는 곧바로 몸을 날려 독고무령을 공격했다.
“물러서라, 정효!”
독고무령은 이정효를 그대로 놔둔 채 모용회의 공격을 막았다. 상대는 절대에 근접한 무공을 지닌 자. 방심은 금물이었다.
모용회는 전 공력을 다 끌어올린 채 독고무령을 공격했다.
그는 찰나 간에 삼 초의 공격을 펼치며 독고무령을 압박했다.
독고무령은 뇌정파혼세와 철혼무벽으로 완벽히 모용회의 공격을 틀어막았다.
삼 초의 공격이 실패로 돌아가자, 모용회는 전 공력을 끌어올려 다시 다섯 번의 공세를 펼쳤다.
하지만 초수가 쌓일수록 반탄된 기운에 의한 충격이 그의 몸에 쌓여갔다.
결국 팔 초를 연이어 펼친 모용회는 쌓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도대체 이놈은……!’
독고무령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천뢰광혼과 천뢰만영을 펼치며 방어를 공세로 전환했다.
쩌저정!
눈으로는 따라잡을 수 없이 빠르고 강력한 공격이다.
모용회는 연신 뒤로 밀려나며 이를 악물었다.
몸속에서 천둥이 치는 듯한 충격!
혈맥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부푼 그는 반격할 생각조차 못했다.
“이익! 차아앗!”
콰르릉! 떠덩!
독고무령의 공세는 찰나의 틈도 보이지 않고 이어졌다.
이를 악문 모용회는 혼신을 다해 독고무령의 오 초 공세를 막아내고는, 재빨리 뒤로 서너 걸음을 물러나 거리를 벌렸다.
바로 그 순간, 독고무령의 검이 실처럼 가느다랗게 산산이 쪼개지는가 싶더니, 수백 줄기의 실이 춤을 추듯 부드럽게 출렁였다.
검영이 가느다랗게 쪼개진 것만 이상하게 생각될 뿐, 옆에서 보면 의아할 정도로 약하게 보이는 공격이었다.
그러나 당사자인 모용회는 눈을 부릅뜨고 이를 악물었다.
“흐읍!”
고오오오!
허공 가득 수백의 검영이 피어나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뇌전으로 변해 쏟아진다.
약간의 여유가 생기자, 독고무령이 수천제마구겁무의 첫 번째 춤을 검으로 펼쳐낸 것이었다.
수천제마구겁무는 형(形)이 아닌 의념으로 펼치는 대능력이기에, 어떤 형태로 펼쳐도 상관없을 거라 생각한 것이다.
상대는 초절정고수. 시험을 해보기에는 적당한 상대였다.
독고무령은 구겁무의 첫 번째 춤이 의도했던 대로 펼쳐지자, 내심 만족하며 검을 뻗었다.
첫 번째 춤의 마무리였다.
콰아아아아!
순간 모용회는 귀청을 터트릴 듯한 공명음에 고막이 먹먹해지고, 전신이 난자될 것만 같은 환영에 짓눌렸다.
견디지 못한 모용회는 최후를 위해 아껴두었었던 천라십이검을 전력으로 펼쳐 독고무령의 공세에 대항했다.
콰르르릉! 쩌정!
두 사람 주위에서 강기의 폭풍이 회오리처럼 솟구쳤다.
그와 동시에 머리가 풀어헤쳐진 모용회가 참담한 표정으로 튕겨졌다.
“크으윽!”
한 걸음 뒤로 물러선 독고무령은 여전한 표정으로 검을 들어 모용회를 가리켰다.
그 역시 지나친 내력의 소모로 적지 않은 충격이 있었지만, 겉으로는 조금도 표를 내지 않았다.
바로 그때, 이정효가 두 사람이 갈라선 틈을 타 독고무령을 향해 몸을 날렸다.
“여기도 있다, 독고무령!”
독고무령은 검을 비틀어 방향을 바꾸었다.
호랑이처럼 이글거리는 눈으로 달려드는 이정효의 표정에는 어떤 각오가 어려 있었다.
그것은 자신의 목숨을 내던져 상관을 구하겠다는 필사의 의지였다.
‘수하 하나는 잘 두었군.’
독고무령은 이정효의 뜻을 읽고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주기로 했다.
후우웅!
일순간, 이정효를 향한 그의 검첨에서 시퍼런 뇌전이 회오리처럼 맴돌았다.
뇌전의 회오리는 찰나 간에 이정효의 검에서 뿜어진 기운을 집어삼켜버렸다.
고오오오!
동시에 석 자 크기의 시퍼런 구가 형성되는가 싶더니, 독고무령이 검을 앞으로 다섯 치가량 밀어내자 굉음을 울리며 터져 나갔다.
콰앙!
“커억!”
이정효는 반쪽만 남은 검을 든 채 이 장이나 튕겨져 나뒹굴었다.
그는 그 와중에도 악착같이 입을 열어 소리쳤다.
“전주, 일단 이곳을 피하……!”
그 시간은 그야말로 눈 한 번 깜박일 시간에 불과했다.
그 사이 몸을 추스른 모용회는 으드득, 어금니가 부서질 정도로 이를 악물고 검을 움켜쥔 손에 모든 공력을 집중했다.
이정효가 피하라 하지만, 그는 도주할 마음이 없었다.
이미 수하들은 거의 다 쓰러진 상태였다.
살아서 적과 대치하고 있는 사람은 서너 명뿐. 그나마도 조금만 지나면 전멸할 터였다.
수하들을 모두 죽이고 돌아가서 무슨 낯으로 성주를 뵌단 말인가!
“정효! 네가 가서 성주께 말씀드려라! 임무를 못 다한 죄, 죽음으로써 벌을 받겠노라!”
“전주……!”
“마지막 명령이다! 어서 가라!”
모용회는 악을 쓰듯 외치고는 독고무령을 향해 몸을 날렸다.
활활 타오를 것 같은 눈빛. 전보다 오히려 강해진 것처럼 느껴지는 기운이다.
‘선천진기를 끌어올린 건가?’
생명의 근원인 선천진기를 끌어올렸다는 것은 동귀어진하겠다는 뜻.
모용회의 뜻을 짐작한 독고무령은 조금도 방심하지 않고 검을 휘돌렸다.
떠더덩! 쩌적!
어둠이 터져나가고, 대기가 갈가리 찢겨지며, 주위 일대가 폭풍에 휘말린 것처럼 들썩였다.
하지만 그도 잠시, 사오 초의 공방이 이어질 즈음 모용회의 입에서 피화살이 뿜어졌다.
“쿠헉!”
순간 태천일심의 기운이 모용회의 전신을 엄습했다.
휘몰아치며 밀려드는 기운의 여력을 이기지 못한 모용회는 칠팔 보를 물러선 다음 한 움큼의 핏물을 토해냈다.
“우웩!”
허리를 반쯤 굽힌 그는 부들부들 몸을 떨며 독고무령을 올려다보았다.
“정말…… 무섭구나. 나, 모용회가 이렇게 허망하게 당하다니……. 왜 너를 암천사신이라 하는지…… 이제야 알겠…….”
피이익!
그가 핏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말하는 사이, 그의 몸 곳곳에서 실 같은 핏줄기가 솟구쳤다.
안간힘으로 검에 의지하고는 있지만, 그 힘조차 빠지면 죽음이 그를 찾아올 것이었다.
모용회에게서 눈을 뗀 독고무령은 오연히 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조금 전 자신과 싸우던 자가 살아서 도주했지만, 독고무령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마침내 한밤중의 사냥이 끝났다.
이들을 죽였다고 풍운장에서 죽어간 사람들이 살아서 돌아오지는 않겠지만, 원혼이라도 위로가 될 터였다.
그는 죽어가는 모용회를 향해 나직이 입을 열며 검을 들어 올렸다.
“모용회라 했나? 그대의 어리석은 판단으로 벌어진 일이니, 죽음을 너무 아쉬워 말아라.”
그때 뒤쪽에서 다급한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자, 잠깐만요!”
독고무령은 다급한 고함소리의 주인이 누군지 알기에 검을 멈추고 기다렸다.
그 사이 용설이 독고무령의 앞으로 달려오더니 모용회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저 사람에게 물어볼 게 하나 있어요. 조금만……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어차피 놔두어도 죽는다. 죽을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어 일찍 목숨을 거두려 했을 뿐.
독고무령은 용설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격동을 참고 있는 표정. 단순히 이름만 아는 것 같지가 않다.
“아는 사람이오?”
“아직 확실치는 않아요. 하지만 한 가지만 확인하면 알 수 있을 거예요.”
“오래 견디지 못할 테니, 궁금한 것이 있으면 지금 물어보시오.”
용설은 입술을 잘끈 씹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모용회라 했죠? 혹시…… 모용우라는 이름을 아나요?”
어느 순간, 꺼져가던 모용회의 눈빛이 거대한 파도를 만난 나룻배의 사공처럼 흔들렸다.
“어, 어떻게 네놈이……?”
용설의 눈빛도 거세게 떨렸다.
“그럼…… 모용청이라는 이름도 알겠군요.”
“그, 그는…… 내 형…….”
순간 용설의 떨리는 눈에 이슬이 맺혔다. 입술을 깨문 그녀는 앞을 가린 천을 풀고, 원망이 가득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형이라고요? 그래요, 그랬군요……. 그래도 죽기 전에는 형이라고 불러주는군요.”
그녀의 입에서 짓씹힌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모용회의 꺼져가던 눈빛에 곤혹함이 떠올랐다.
앞에 있는 여인이 누군데, 부친과 배다른 형의 이름을 꺼내고 자신을 원망어린 눈으로 바라본단 말인가?
“너, 너는 누구……?”
“그분이…… 바로 제 아버지죠. 당신 때문에 돌아가신 그분이…….”
모용회의 몸이 학질이라도 걸린 사람처럼 부들부들 떨렸다.
“그, 그럼…… 네가……?”
용설은 주먹을 움켜쥔 채 악을 쓰듯이 쏘아붙였다.
“맞아요, 제가 바로 설이에요! 흑, 아버지와 어머니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알아요? 그래도 동생이라고, 당신을 보호하겠다며 입을 다물었다가 한밤중에 쳐들어온 놈들에게 죽음을 당하셨어요. 당신이 그렇게 싫어했던 아버지가……. 정작 일을 저지른 당신은 모든 걸 아버지에게 뒤집어 씌웠는데……. 멍청한 아버지는 당신을 보호한다고 온 식구를 다 죽음으로 몰아넣었단 말이에요!”
“커억!”
모용회의 입에서 다시 피화살이 뿜어졌다.
“나, 나는…… 그런 줄…… 몰랐…….”
“몰랐다고요? 뭘요? 가문의 몰살을 몰랐단 말인가요? 아니면 아버지가 당신 때문에 돌아가셨다는 걸 몰랐단 말인가요!”
“정말……. 큭…… 큭…….”
모용회의 입에서는 목소리 대신 피만 뿜어졌다.
독고무령은 손을 뻗어, 격공의 수법으로 모용회의 가슴 부위 대혈을 몇 군데 후려쳤다.
퍼버벅!
모용회의 입에서 덩어리진 핏덩이가 쏟아졌다.
용설, 모용설은 독고무령이 손을 쓴 뜻을 알기에 입술을 깨물며 기다렸다.
그때 모용회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정말…… 미안……. 크큭…….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지옥에 가면…… 형님에게…… 무릎 꿇고…….”
그는 더 견딜힘이 없는지, 검을 잡은 채로 무릎을 꿇었다. 마치 모용설의 아버지에게 무릎을 꿇기라도 하듯이.
그러고는 처연한 눈빛으로 모용설을 바라보며 서서히 옆으로 쓰러져 갔다.
모용설은 다급히 그의 몸을 붙잡고 소리쳤다.
“정신 차려요! 그렇게 죽으면 어떻게 해요! 소양이를 구하려면 당신이 가져간 물건이 있어야 한단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