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천제 15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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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5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암천제 150화
150화
두 흑의장한은 정신을 반쯤 잃은 남호종을 업고 뒷문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모용회는 남호종이 업힌 몸으로 떠나가는 것을 보면서 냉랭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암천사신이라는 놈은 반드시 내가 죽여주마, 호종.”
제8장 어둠 속의 사냥
만금도국의 지하밀실로 향하는 비밀통로는, 만금도국의 뒷문 건너편의 작은 장원에 있었다.
독고무령은 맨 뒤로 처져서, 추적자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다음 제일 늦게 장원으로 들어갔다.
적극적으로 관여하지 않았을 뿐, 마운방 역시 모든 상황을 알고 암암리에 움직이던 터. 독고무령 일행이 장원으로 들어가자 마인걸이 직접 나와서 일행을 맞이했다.
“죄송하오, 회주. 군사가 절대 나서지 말라고 해서 많은 도움을 주지 못했소.”
독고무령도 운양의 뜻을 알기에 마인걸을 추궁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군사의 말은 절대적인 법. 그대들이 잘못한 것은 조금도 없소. 일단 부상자들을 안으로 들이도록 하시오.”
마인걸은 즉시 구양조를 업은 진사혁과 구양소현, 운양, 손 부인과 여량삼호를 비밀통로와 연결된 방 안으로 안내했다.
그러다 독고무령을 비롯한 몇 사람이 들어갈 생각을 않자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회주께선 안 들어가실 겁니까?”
“이제부터 놈들을 사냥할 생각이오. 이곳에 남은 사람들은 마 당주에게 부탁하겠소.”
“예, 회주.”
대답하던 마인걸은 자신도 모르게 으스스 어깨를 떨었다.
태원의 밤이 핏빛으로 물드는 게 눈에 보이는 듯했다.
‘당분간 밖으로 나갈 생각을 말아야겠어.’
곧 진사혁이 부리나케 뛰어나왔다.
“나도 가자고.”
독고무령은 기다리던 진사혁이 나오자 몸을 돌렸다.
자신이 남긴 말이 전해졌다면, 놈들은 북문 근처에서 자신들을 찾고 있을 것이었다.
* * *
어둠에 잠긴 북문 일대의 대기는 이질적인 기운에 장악당한 채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이질적인 기운의 정체는 북문 일대의 골목을 뒤지고 있는 삼십여 명의 강호고수들에게서 흘러나오는 살기였다.
그들이 북문 근처 백여 장 일대를 뒤진 지 벌써 일각째.
무사들이 무기를 든 채 눈을 번뜩이며 사방을 들쑤시자, 불안을 느낀 근처의 양민들은 집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갔다.
심지어 객잔과 주루에 있던 사람들조차 밖으로 나다니지 않고 돌아가는 상황만 주시했다.
그 사이 제왕밀전의 무사들은 복잡하게 얽힌 북문 일대의 골목을 샅샅이 뒤지고, 점차 수색망을 서쪽으로 옮겨 갔다.
하지만 다시 반각이 지나가는데도 누구 하나 무천련의 잔당으로 보이는 무리를 발견하지 못했다.
‘빌어먹을! 이령주가 없으니까 당장 답답하군.’
교은척은 짜증난 표정으로 골목을 빠져나와 제법 넓은 공터로 나섰다.
제왕밀전 최고의 추적술을 지닌 남호종이 잘못 알고 말했을 리는 없었다.
아니, 남쪽과 동서쪽에서 객잔에 접근했으니 그들이 갈 곳은 북쪽밖에 없는 상황. 잘못 말하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그런데 놈들이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흔적마저 남겨진 게 없다.
‘어떻게 된 거지?’
교은척은 이마를 찌푸린 채 좌우를 둘러보았다.
문득 저만치, 공터 건너편 골목에서 나오는 흑의장한이 보였다. 자신이 이끄는 삼령의 수하 중 하나였다.
“그쪽은 어떻더냐?”
“아무 것도 없습니다. 몇 사람에게 물어봐도 수상한 자들을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령주.”
그때였다. 수하를 바라보던 교은척의 눈이 한껏 커졌다.
커다랗게 뭉친 어둠이 수하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위험해!”
그는 앞으로 튀어나가며 소리를 질렀다.
한순간의 착각이었지만, 단순한 착각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어둠이 뭉친 것이 아니라 사람의 기운이 뭉친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경고가 끝나기도 전이었다.
고개를 허공으로 쳐든 흑의장한이 낫으로 베인 허수아비처럼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끄으으…….”
교은척은 노성을 내지르며 검을 뻗었다.
“이놈! 마침내 나타났구나!”
마침내 그토록 찾던 놈들 중 하나가 나타난 것 같다.
자신이 소리쳤으니 곧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모여들 터. 놈이 제아무리 강하다 해도 그때까지만 잡고 있으면 되었다.
두 걸음 만에 수하 앞에 당도한 교은척은 묵묵히 서 있는 독고무령을 향해 전력을 다한 공세를 펼쳤다.
“죽어라, 이놈!”
독고무령은 교은척의 검이 코앞까지 다가온 후에야 검을 휘둘렀다.
쾅!
독고무령의 검이 교은척의 검을 사정없이 튕겨냈다.
거대한 힘은 교은척의 검을 튕겨낸 것으로도 모자라 몸까지 밀어냈다.
교은척은 옆으로 밀려나면서도 악착같이 검을 휘둘렀다.
독고무령은 옆으로 주르륵 밀려나는 교은척을 향해 한 발을 내딛으며 검을 뻗었다.
순간 시퍼런 아지랑이가 검첨에서 피어오르는가 싶더니, 독고무령의 검이 사라졌다.
교은척은 본능적으로 위기를 느끼고 정신없이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그가 피하기에는 독고무령의 움직임이 너무나 빨랐다. 더구나 어둠속에서 펼쳐지는 천뢰광혼은 그야말로 밤하늘을 가르고 떨어지는 벼락만큼이나 빨랐다.
번쩍!
태천일심의 기운이 실린 검첨이 찰나 간에 교은척의 목을 뚫고 빠져나왔다.
동시에 교은척의 두 눈이 벼락이라도 맞은 듯 홉떠졌다.
‘끄억!’
천천히 검을 거두어들인 독고무령은 어둠 너머를 바라보았다.
대여섯 명의 흑의장한이 여기저기서 몰려들고 있었다.
‘아, 악마검! 이, 이놈이 암천사신…….’
교은척은 그들에게 뭐라 말해주고 싶었지만, 목이 뚫린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쿵!
독고무령은 교은척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걸음을 옮겼다.
그가 다가가자 흑의장한들 중 누군가가 소리쳤다.
“삼령주를 죽인 놈이다! 모두 합공해!”
그리고 곧 여섯 명의 흑의장한들은 너나할 것 없이 무기를 빼들고 독고무령을 향해 달려들었다.
독고무령은 그들이 다가오는 것을 보며 검을 옆으로 늘어뜨렸다.
서너 번의 도약으로 독고무령에게 다가온 흑의장한들은 각자가 지닌 무기를 휘두르고 찌르며 공세를 퍼부었다.
순간 독고무령의 신형이 좌우로 흔들리는가 싶더니, 유령처럼 흑의장한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두 사람이면 절정의 고수조차 죽일 수 있다는 제왕밀전의 무사들이었다.
그러나 암천사신은 그들이 상대하기에는 너무 강했다.
독고무령의 검이 번쩍인 순간, 한 사람의 심장이 갈라지고, 좌수가 허공을 움켜쥠과 동시 또 한 사람의 목이 꺾였다.
“커억!”
와직!
“끄어억!”
피하려 해도 피할 수 없는 빠름!
잡으려 해도 천변만화하는 움직임이 유령 같기만 하다.
유령처럼 움직이는 죽음의 인도자, 암천사신!
흑의장한들은 제대로 된 공세도 펼쳐보지 못한 채 두 명의 동료가 죽어버리자, 해쓱하게 질린 얼굴로 물러서기에 바빴다.
그 사이에 또 한 명의 흑의장한이 입을 쩍 벌린 채 주저앉았다.
그의 가슴에서 취익, 소리와 함께 뿜어지는 핏줄기!
어둠이 붉게 물든다.
“방어에 치중하고 사람들이 오기를 기다려라!”
공포에 질린 목소리가 진저리치며 울렸다.
예닐곱 명의 흑의장한이 그곳으로 날아든 것은 그 직후였다.
독고무령은 무저갱의 심해처럼 깊은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검을 가볍게 떨쳤다.
후우우웅!
검명이 용의 울음처럼 울리며 어둠을 뒤흔든 순간, 독고무령의 신형이 유령처럼 흔들리며 그들을 덮쳤다.
그리고 곧 도살이나 다름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십 대 일의 싸움.
먼저 두려움에 질린 것은 제왕밀전의 무사들이었다.
콰광! 쩌저적!
거대한 검강의 기운은 그들을 무기와 함께 튕겨내고 베어버렸다.
제왕밀전의 무사들은 몇 수 지나기도 전에 여섯 명이 바닥에 널브러지자, 무기를 정신없이 휘두르며 주춤주춤 물러났다.
그 사이에도 제왕밀전의 무사들이 계속 공터로 몰려들었다. 몰려든 자들은 지체 없이 동료들과 힘을 합쳐 독고무령에게 달려들었다.
“놈을 죽여라!”
“도망가지 못하게 포위해!”
늦게 나타난 자들의 눈에는 오직 죽어간 동료만이 보였다. 하기에 상대가 누군지도 모른 채 살기 띤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그들은 먼저 알아야 했다. 자신들이 지옥에서 온 사신과 맞서고 있다는 걸!
독고무령은 출렁이는 어둠을 암향호접무로 누비며 흑의장한들을 하나씩, 하나씩 제거했다.
어둠도 숨을 죽이고 독고무령의 도살을 지켜보기만 했다.
멋모르고 달려들던 자들의 얼굴에도 서서히 공포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칠팔 명이 더 쓰러지고, 남은 사람이 열 명도 채 안 될 즈음에는 독고무령의 그림자만 보여도 미친 듯이 도검을 휘둘렀다.
독고무령은 서두르지 않고 다섯 명의 원혼을 더 지옥으로 보냈다.
바로 그때였다. 한줄기 검강에 밤하늘이 갈라지며 독고무령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지금까지 싸웠던 자들과는 천양지차의 위력을 지닌 공세!
독고무령은 태천일심의 기운을 끌어올리고 뇌정파혼세로 상대의 공세를 맞받아쳤다.
콰앙!
쏴아아아아!
강기의 폭풍이 주위로 퍼져나가며 건물의 벽을 무너뜨렸다.
“뒤로 물러서!”
근처에 있던 자들은 대경하며 급급히 물러섰다.
그 사이 독고무령을 공격했던 자가 사 장 밖으로 날아 내렸다. 제왕밀전의 제일령주 이정효였다.
이정효는 여력을 이기지 못하고 서너 걸음을 더 물러난 다음 몸을 세웠다.
두 눈이 경악으로 물든 그는 독고무령을 노려보며 잇새로 물었다.
“암천사신?”
독고무령은 깊게 가라앉은 눈으로 이정효를 바라보았다.
“용케 알았군. 그대가 저들의 수장인가?”
“곧 그분이 오실 것이다.”
“그런가? 다행이군. 찾아다닐 필요가 없게 되었어.”
이정효의 눈매가 꿈틀거렸다.
혼자서 제왕밀전의 무사들을 모두 상대하겠다는 건가?
그것은 절대의 경지에 오른 고수가 아닌 다음에야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상대는, 결코 절대의 고수가 아니었다. 자신이 잘못 판단하지 않았다면.
물론 사방에 쓰러져 있는 수하들의 주검이 스물이 넘어 보이지만, 그래도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훗, 미친놈.”
이정효의 입에서 절로 비웃음이 흘러나왔다.
독고무령은 그런 이정효를 주시하며 내력을 끌어올렸다.
전면에서 상당한 기운을 지닌 자가 무서운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기운만으로 따져서는 앞에 있는 자보다 강한 자가.
적의 수장인가?
독고무령의 딱 다물린 입술 사이로 고저 없는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두고 보면 알겠지.”
그의 손에 집중된 태천일심의 기운이 검신을 타고 죽 흘렀다. 짙푸르던 그의 검신이 유난히 더 파랗게 변했다.
처음으로 구성의 내력을 끌어올린 것이다.
그때 허공에서 비웃음이 가득한 콧소리가 들리며 한 사람이 내려섰다.
“훗! 내가 암천사신을 너무 높게 평가했나? 이렇게 쉽게 모습을 드러내다니 말이야.”
모용회는 천천히 지상으로 내려서며 독고무령을 노려보았다.
그가 내려서는 뒤쪽으로 십여 명의 흑의장한과 사령주 양중명이 나타났다.
독고무령은 그들을 보고는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이제 다 나온 거 같군, 사혁!”
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광소가 터져 나왔다.
“우하하하! 뒤는 걱정 말게! 우리가 맡아줄 테니까!”
진사혁을 필두로 호위무사대가 골목 구석에 있는 건물의 문을 박차고 나타나더니, 파도처럼 제왕밀전의 무사들을 향해 밀려갔다.
이제 나타날 사람은 모두 나타난 상태. 쓸데없이 끼어드는 자들은 호위무사대가 막아줄 터다.
독고무령은 굳이 시간을 끌지 않고 모용회를 향해 신형을 날렸다.
“이제 본격적으로 사냥을 시작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