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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제 183화

무료소설 암천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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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암천제 183화

 

183화

 

 

 

 

 

 

제1장 적과의 동침(同寢)

 

 

 

 

 

통나무집으로 돌아온 독고무령이 서신을 다 읽을 즈음 진사혁이 들어왔다.

 

“무슨 일인가?”

 

독고무령은 서신을 내려놓고 진사혁을 바라보았다.

 

“위지천백이 진가철방에 사람을 보냈다는군.”

 

진사혁의 표정이 굳어졌다.

 

“왜?”

 

“진가철방을 자신들 편으로 끌어들일 생각인 모양이네.”

 

“흥! 그런다고 넘어갈 줄 아나? 걱정 말게. 진가철방은 절대 제왕성을 돕지 않을 테니까.”

 

“그래서 걱정하는 거네. 위지천백은 자신의 뜻을 거부당하는 걸 좋아하는 자가 아니니까 말이야.”

 

진사혁의 이마에 굵은 주름이 그어졌다.

 

“위지천백이 진가철방을 칠지도 모른다는 건가?”

 

“그럴 가능성이 높네.”

 

“그래봐야 좋을 게 없을 텐데? 본가를 잘못 건드리면 오히려 된통 당할 거네. 아마 은룡산장과 싸우기도 전에 산서의 군이 먼저 제왕성을 가만 안 둘 걸?”

 

진사혁은 군과 관을 믿는 듯했다.

 

그러나 독고무령은 상황이 그렇게 흐르지 않을 것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군과 관은 진가철방의 편을 들어주지 않을 거네.”

 

“그게 무슨 말이지? 군과 관에는 숙부님들이 계시네. 그분들이 보고만 있을 거라 생각하나?”

 

“위지천백이 진가철방을 자신 있게 건드릴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야.”

 

독고무령은 간단하게 위지천백과 황궁과의 관계를 설명해주었다. 비밀을 요하는 일이어서 아직 대외적으로는 밝힐 때가 아니었지만, 위지천백이 진가철방을 노리는 이상 최소한 진사혁만은 알고 있어야 했다.

 

진사혁의 눈이 화등잔처럼 커지고 얼굴이 납덩이처럼 굳어졌다.

 

“그게 사실인가?”

 

독고무령은 무거운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무래도 정확한 상황을 알아봐야겠어.”

 

진사혁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내가 직접 가봐야겠네.”

 

어차피 그럴 것임을 알았기에 독고무령은 진사혁을 말리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자신도 가고 싶었다.

 

하지만 언제 은룡산장과 제왕성의 싸움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인 만큼 그는 백천산을 비울 수가 없었다.

 

“철검위를 몇 명 데려가도록 하게.”

 

“그럴 필요 없네. 일이 터지면 여기도 사람이 부족할 텐데…….”

 

“대여섯 명 정도는 큰 차이가 없네. 걱정 말고 데려가게. 그리고 다급한 일이 생기면 즉시 밀호방을 통해서 연락하도록 하고.”

 

진사혁은 더 이상 사양하지 않고 독고무령의 뜻을 받아들였다.

 

“알겠네. 그렇게 하지. 별일 없으면 바로 돌아오도록 하겠네.”

 

 

 

* * *

 

 

 

휘이이잉!

 

언젠가부터 바람 속에서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여름을 알리는 열풍(熱風).

 

햇살은 이글거리며 타오르고, 대지에선 열기에 버석버석해진 먼지가 피어올랐다.

 

메말라 거북등처럼 갈라진 대지.

 

자라다 말고 누렇게 말라버린 잡초.

 

세상이 비가 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데도, 황사바람만이 세상을 휩쓸 것처럼 불어댈 뿐, 하늘에는 구름 한 점 보이지 않았다.

 

청색비단무복을 입은 중년인이 아홉 명의 무사를 이끌고 적사보를 방문한 것은, 초여름 가뭄이 극성을 부리던 오월의 어느 날이었다.

 

“어서 오게나. 오느라 수고 많았네.”

 

위지천백은 미소를 지으며 청색비단무복을 입은 중년인을 반겼다.

 

철탑처럼 단단하게 보이는 몸. 어린아이 머리통만 한 주먹. 그가 바로 두 손을 떨치면 하늘이 무너진다는 붕천신장(崩天神掌) 백리환이었다.

 

사대천왕 중 장왕(掌王)으로 불리는 절대고수.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형님? 오다가 일이 있어서 조금 늦었습니다.”

 

백리환은 위지천백 일 장 앞에 멈춰 서서 포권을 취하며 묵직한 목소리로 인사했다.

 

위지천백은 조용히 웃으며 그의 인사를 받았다.

 

“아니야, 적당한 때에 잘 와주었네.”

 

“혼날 줄 알았는데 그리 말씀하시니 안심이 되는군요. 하하하하.”

 

영호진광이 두 사람 사이로 끼어들었다.

 

“이거 저는 못 본 척하깁니까?”

 

“그럴 리가 있나? 그러다 자네 도에 내 멋진 수염이 잘리면 어쩌라고?”

 

백리환이 눈을 크게 뜨고 수염을 쓰다듬었다.

 

영호진광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끄응, 그때 일을 아직도 잊지 않았다니, 그러고 보니 형님도 뒤끝이 꽤나 길군요. 앞으로는 조심해야겠습니다그려.”

 

“그걸 이제야 알았나?”

 

구 년 전, 처음 만났을 때 서로의 강함에 반해 비무를 벌인 적이 있었다.

 

당시 비무에서 영호진광은 어깨의 옷자락이 찢어졌고, 백리환은 수염이 잘렸었다.

 

승부는 비겼지만, 백리환은 자신의 수염이 잘렸다며 꽤나 억울해 했었는데, 아직도 그 일을 잊지 못한 듯했다.

 

위지천백은 두 사람의 사정을 알기에 호탕한 웃음을 터트리며 한마디 했다.

 

“하하하! 정 억울하면 다시 붙어보게. 멍석은 내가 깔아주지.”

 

영호진광이 흠칫하며 고개를 내둘렀다.

 

“싫습니다. 보나마나 복수하겠다고 제 수염을 뽑으려고 할 텐데요?”

 

“나도 싫네. 듣자하니 자네의 도가 더 날카로워졌다고 하던데, 이번에는 수염이 아니라 머리카락이 잘릴지 모르지 않은가?”

 

위지천백은 빙그레 웃으며 자리를 가리켰다.

 

“하지 않을 거면 자리에 앉지.”

 

그때 위지성이 전각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백리환을 보더니 환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성아가 백리 숙부를 뵙습니다!”

 

“어이구, 이게 누구야? 전에 봤을 때는 꼬맹이였는데, 이제 완전히 청년이 되었구먼. 그래, 장가는 언제 가지?”

 

“예? 숙부님도 참…….”

 

“뭐가 참이야? 지금쯤이면 아이가 둘은 있어야 맞는데. 아니지, 이건 형님이 문제군.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손자 보고 싶은 마음이 없으신 겁니까?”

 

위지천백이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하, 이번 일만 끝나면 보낼 생각이네. 내 어찌 손자 보고 싶은 마음이 없겠나?”

 

“그럼, 제가 여아 하나 소개시켜 줄까요?”

 

“여아? 괜찮은 사람 있나?”

 

백리환이 은근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있죠. 그것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말입니다.”

 

“호오, 그래? 누군데 자네가 그리 말하는가?”

 

“제가 조금 전에 일이 있어 늦었다고 했지 않습니까?”

 

“흠, 그랬지.”

 

“산서로 오기 전에 사숙을 뵈려고 숭산에 들렀습니다. 그곳에서 정말 참한 여아를 하나 봤지요. 처음에는 소림사 바로 옆에 웬 여자아이가 사나 싶었는데, 그 아이의 부친이 몸이 아파서 자비원에 휴양 차 와 있다고 하더군요.”

 

“멀지 않은 곳이라더니, 웬 숭산?”

 

백리환이 씩 웃으며 대답했다.

 

“그 아이의 부친이 바로 장가장의 장주더군요. 제가 알기로는 장가장의 장가철방이 제왕성에 무기를 대주는 걸로 알고 있는데, 아닙니까?”

 

“아, 진중의 장가장 말인가? 맞아, 그러고 보니 나도 들은 적이 있는 것 같군. 장가장의 딸이 미색도 뛰어나고 마음씨도 곱다고 했지.”

 

“제 눈이 엉터리가 아니라면, 조카의 배필로 손색이 없을 겁니다.”

 

“흐음, 그래?”

 

위지천백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천하에 대한 욕망을 앞세우다 보니 아들의 혼사에 너무 무신경 했다.

 

그러다 보니 아들의 나이 벌써 스물일곱. 더 미루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더구나 백리환이 그리 말할 정도라면 부족함이 없는 여인일 터. 망설일 것도 없었다.

 

“좋아, 이번 일이 끝나고 나면 혼사를 서둘러야겠군.”

 

위지성은 이야기가 이상하게 흐르자, 당황한 표정으로 다급히 화제를 돌렸다.

 

“아버님, 숙부님, 그보다 당장 할 일부터 논의하시지요.”

 

위지천백은 조용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해야지. 백리 아우도 왔으니 이제 늙은 여우를 때려잡는 일만 남았군.”

 

화기애애하던 분위기는 그것으로 끝이 나고, 지붕이 내려앉을 것 같은 무거운 분위기가 어깨를 짓눌렀다.

 

그리고 곧 위지천백의 입이 열리며 숨을 턱 막히게 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싸움을 길게 가져갈 생각이 없네. 피해가 좀 나더라도, 여우와 늑대를 한 번에 모두 잡아버릴 생각이야. 허나 그 전에 해결해야 할 일이 하나 있네. 자네와 진광이 수고 좀 해줘야겠어.”

 

“우리 둘이 말입니까?”

 

“그렇다네. 진가철방에 좀 다녀오게나.”

 

뜬금없이 철방에 다녀오라고 하자, 백리환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철방? 철방에 무슨 일을 하러가는데 우리 둘이 함께 가야한단 말입니까?”

 

“내가 좀 도와달라고 했더니, 돈을 주겠다고 하더군. 그런데 내가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거든.”

 

말을 잠시 멈춘 위지천백의 눈빛이 무심하게 가라앉았다.

 

그가 필요한 것 중 하나는 병기다. 진가철방의 뛰어난 병기를 얻을 수 있다면, 제왕성의 무력이 일 할 이상 강해질 테니까.

 

물론 사람들까지 제왕성의 밑으로 들어오면 그거야말로 금상첨화였고.

 

하지만 사실 진가철방의 고집을 꺾으려는 건 꼭 그 이유 때문만이 아니었다.

 

진가는 군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가문이 아닌가. 자칫하면 노태군의 입김에 넘어갈지 모르는 일.

 

그는 그러한 일이 일어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나는 뒤에 거추장스런 자들이 있는 걸 싫어하네. 특히 친구가 아닌 자가 있을 때는 더욱 그렇지. 자네들이 가서 그들의 답을 좀 받아오게나. 내가 원하는 것을 주고 친구가 될 것인지, 아니면 거부하고 적이 될 것인지.”

 

“하, 하. 아니 철방의 고집을 꺾는데 나와 진광이 가야 하다니, 세상에 그런 철방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군요.”

 

“그곳의 노인 중 하나는 자네들에 비해서 약하지 않다네. 물론 그 늙은이 외에도 고수가 상당히 많지. 아마 자네들이 데려온 사람들을 모두 데려가야 할 거야.”

 

백리환은 경악한 표정으로 위지천백을 바라보았다.

 

위지천백은 헛소리를 하지 않는다. 더구나 이런 농담은 더욱 하지 않는다. 사실이라는 말.

 

그때 문득, 오래 전부터 전해지던 어느 철방에 대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태원 북쪽에 천하를 뒤흔든 절대고수가 백수십 년 전에 세운 철방이 하나 있다고 했다.

 

그런데 두렵든, 아니면 껄끄럽게 생각하든, 산서의 그 어떤 강호세력도 그들을 건드리지 않는다고 했다.

 

백리환은 그 소문을 그저 ‘전대의 절대고수에 대한 예로 그렇게 대하는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말았다.

 

그런데 그게 아닌 것 같다.

 

“혹시…… 그곳이 절대무제 진고영이라는 분이 세웠다는 곳 아닙니까?”

 

“바로 그곳이라네.”

 

백리환은 그제야 간단한 일이 아님을 알고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알겠습니다. 까짓 거 과거 절대무제의 무공이 얼마나 강한지 한번 견식해 보지요.”

 

“자네들이 그곳을 처리하는 동안 나는 또 다른 일을 하나 마무리 지을 거네. 늙은 여우는 그 후에 사냥하도록 하지.”

 

위지천백이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살기와 호승심이 뒤섞인 웃음이었다.

 

‘독고무령, 어디 내 그물에서 재주껏 도망쳐 보거라. 그럼 내 너를 진정으로 인정하마. 후후후후…….’ 

 

 

 

* * *

 

 

 

노태군은 은룡산장에서 전해진 서찰 한 장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뱀눈처럼 차갑고 고요하던 그의 눈빛이 찰나 간이나마 열기가 피어나며 흔들렸다. 그것은 분노의 표출이었다.

 

“호광이…… 죽었다고?”

 

서신을 건네준 후, 묵묵히 기다리던 적수천이 착잡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예, 아버님. 아무래도 마기를 이겨내지 못했나 봅니다.”

 

와락!

 

서신을 움켜쥔 노태군의 붉은 입술에서 분노 섞인 말이 흘러나왔다.

 

“병신 같은 놈. 천아가 흡수한 것에 비하면 이 할의 마기도 되지 않거늘, 겨우 그것을 이겨내지 못해서 그 꼴이 되다니.”

 

적수천은 고개를 숙인 채 가만히 입술을 깨물었다.

 

양아들이긴 해도 자식이 죽었다. 부친이라면 당연히 슬퍼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노태군은 슬픔보다 분노를 먼저 표출한다.

 

본래 그런 사람이라는 걸 모르지 않았다. 황자악이 죽었을 때도 그러했으니까.

 

그 성격을 알면서도 막상 또 그런 말을 듣자 가슴 한구석에 싸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죽어도 저리 말하실까?’

 

반면, 헌원조는 입을 닫고 허공만 바라보았다. 

 

자신이 제자처럼 키운 군호광이 죽었다는 것은 그에게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노태군을 너무 원망하지 마라, 호광. 어차피 그럴 거라는 걸 다 알고 있지 않았더냐?’

 

이십 년 전, 우연히 노태군과 동창제독 정 공공의 이야기를 엿들은 후, 노태군이 자신들을 진정으로 대해주리라는 기대를 버린 그였다.

 

 

 

“피도 섞이지 않은 놈들 좀 죽는다고 내가 슬퍼할 거 같은가? 자네도 순진하구먼. 그 애들은 그저 내가 내리는 명령이나 제대로 수행하면 되네. 능력이 딸려 죽는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클클클.”

 

 

 

그렇다고 해서 크게 실망하지도 분노하지도 않았다.

 

어느 정도는 알고 있던 일.

 

노태군이 자신들을 그저 손발처럼 사용할 수 있는 이용물로 생각한다면, 자신 역시 노태군을 그렇게 생각하고 살면 되니까.

 

자신의 꿈을 키워줄 발판 정도로!

 

‘아무리 그래도 호광은 당신을 진정으로 따랐거늘……. 노태군, 당신은 오늘의 그 말을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것이다.’

 

그때 노태군이 언제 화를 냈냐는 듯 담담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미 군호광의 죽음은 잊어버린 듯.

 

“그건 그렇고, 위지천백이 잠시 휴전을 청했다고?”

 

적수천은 착잡한 표정을 감추고 고개를 들었다.

 

“예, 아버님. 뒤를 노리는 무천련의 잔당이 암천사신을 중심으로 암천회라는 단체를 만들었는데, 그놈들을 먼저 처리한 다음 승부를 겨루자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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