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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제 173화

무료소설 암천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08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암천제 173화

 

173화

 

 

 

 

 

 

그들을 바라보는 독고무령의 눈빛이 어둠보다 더 깊숙이 가라앉았다.

 

‘더도 덜도 필요 없다. 그 둘만 죽여도 노태군의 심기가 흔들릴 것이다.’

 

노태군이 전면전을 작심했다면, 숨겨두었던 고수들을 동원했을 거라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사시가 넘어갈 무렵 이호가 찾아와 말했다.

 

 

 

“조금 괴이하게 보이는 노인 둘이 끼어있다 들었습니다. 그들의 정체를 알아보려 했습니다만,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만이 지닌 특징 같은 것은 없소?”

 

이호는 잠시 생각하더니, 보고받은 내용 중 두 노인에 대한 대목을 정리해 말했다.

 

“한 노인은 얼룩덜룩한 누더기 옷을 입고 있었고, 한 노인은 검은 천으로 온몸을 감싸고 있었다 합니다.”

 

그때였다. 한쪽 구석에 앉아 있던 북천삼괴가 우르르 이호에게 다가갔다.

 

이상했다. 세 사람 모두 평소처럼 실실 웃지도 않고 제법 심각한 표정이었다.

 

귀도가 이호를 잡아먹을 것처럼 노려보며 물었다.

 

“방금 누구라고 했지?”

 

마불이 이호의 눈앞에 얼굴을 바짝 들이댔다.

 

“얼룩덜룩한 누더기 옷이 혹시 파랗고 빨간 옷 아니냐?”

 

치선은 웃음이 사라진 얼굴을 손가락으로 그으며 물었다.

 

“시커먼 놈은 얼굴 여기에 기다란 흉터가 있다고 하지 않든?”

 

이호가 대답했다.

 

“그렇게 들었습니다, 어르신.”

 

북천삼괴의 얼굴이 금 간 얼음처럼 갈라졌다.

 

“빌어먹을, 그놈들이 살아 있었다니.”

 

“킁, 제기랄, 염라사자는 뭘 하느라 그런 악귀들을 잡아가지 않은 거지?”

 

“쓰벌, 약을 새로 만들어야겠네. 그놈들 잡으려면 어지간한 약으로는 안 될 텐데…….”

 

북천삼괴가 두 노인을 아는 듯했다.

 

문제는, 천하의 북천삼괴가 두려움을 느끼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었다.

 

대체 그들이 누군데 거칠 것 없다는 북천삼괴가 저런단 말인가.

 

독고무령이 삼괴에게 물었다.

 

“그들이 누군데 그러십니까?”

 

귀도가 어깨를 늘어뜨린 채 대답했다.

 

“저 꼬마의 말이 사실이라면, 파랗고 빨간 누더기 옷을 입은 놈은 홍백이 분명해.”

 

“킁, 검은 천으로 몸을 감싼 놈은 묵귀자일 거고.”

 

그때 치선이 이호에게 다시 물었다.

 

“그 두 놈만 있다던? 혹시 네 놈인데 둘만 본 거 아니야?”

 

대답은 독고무령이 했다.

 

“혹시 사사라 불린다는 자들 중 두 사람이 아닌가 싶군요.”

 

순간 치선의 얼굴이 누렇게 변했다.

 

“사, 사사? 그럼 네 놈이 다 살아 있다는 말이잖아?”

 

“대체 그들이 누군데 그러십니까?”

 

치선이 눈알을 좌우로 굴리며 그들에 대해 설명했다.

 

“귀천사사라고 하는 잡놈들인데, 십삼마 중 제일 악독한 놈들이다. 사람 죽이는 것을 즐기는 놈들이지. 우리가 삼불곡에 처박히기 전에 그놈들이 사라졌다는 말을 들었는데…… 빌어먹을!”

 

 

 

귀천사사(鬼天四邪).

 

명부의 지옥사자라 불리는 자들. 중원 정파의 공적으로 몰려서 수십 년 전에 행방을 감춘 자들.

 

그들이 은룡산장에 있음은 노태군에게 힘이 됨과 동시에 약점으로도 작용할 것이다.

 

전이었다면 동창이라는 막강한 힘으로 그들의 존재를 덮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위지천백은 동창과 적이 되기로 작정한 자. 오히려 그들의 존재를 알면 환호할 것이다. 확실한 명분을 가지고 고수들을 끌어들일 수 있을 테니까.

 

‘죽었다는 걸 알게 되면 더 좋아하겠지.’

 

분명 그럴 것이다. 강력한 적을 힘들이지 않고 제거한 셈이 될 테니까.

 

‘위지천백, 오늘은 그대를 위해서 저 둘을 처리해주마.’

 

그리고 그에게 더 많은 대가를 받아낼 생각이었다. 

 

아주 많이…… 치가 떨리도록…….

 

‘기대해도 좋을 거다.’

 

독고무령은 무심한 눈으로 암천을 바라보고는 절벽 위에서 그대로 몸을 날렸다.

 

 

 

헌원조는 어둠 저만치에 한 사람이 서 있는 것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한 사람 정도야 걱정거리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목구멍에 뭔가가 걸린 것만 같았다.

 

“웬 놈인데 우리의 앞을 막은 것이냐?”

 

독고무령은 대답 대신 엄지손가락으로 검을 밀어 올렸다.

 

딸깍.

 

작은 소리인데도 유난히 똑똑하게 귀청을 파고든다.

 

말 등에 정좌한 채 앉아 있던 홍백이 즐겁다는 듯 킬킬거렸다.

 

“킬킬, 죽고 싶어 환장한 놈들이 또 있군!”

 

그때 뒤쪽에 있던 구여청이 짜증을 내듯 소리쳤다.

 

“나가서 놈을 치워라!”

 

그의 명령이 떨어지자, 패령군의 무사 둘이 독고무령을 향해 달려갔다.

 

그들이 독고무령의 일 장 앞에 도달한 순간.

 

쉬익!

 

어둠이 사선으로 갈라지는가 싶더니, 마치 발이 뭔가에 걸린 듯 두 사람이 갑자기 앞으로 꼬꾸라졌다.

 

헌원조는 흠칫하며 독고무령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순간적으로 몸서리쳐지는 기운을 느꼈다 싶은 순간 패령군의 두 무사가 쓰러졌다.

 

발에 뭔가가 걸려서 쓰러진 것이 아니었다. 몸을 들썩이는 걸로 봐서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듯했다.

 

아무리 어둠 속이라지만, 자신의 눈으로도 확인치 못할 만큼 빠른 검세라니. 

 

헌원조는 자신도 모르게 소름이 끼쳤다.

 

순간, 그의 뇌리에 한 사람의 모습이 갑자기 떠올랐다.

 

단 몇 수 만에 황자악을 죽이던 자.

 

자신에게 처음으로 공포를 심어준 자의 모습이!

 

거기에 산서를 진동시키는 어떤 이름이 겹쳐진 순간, 그는 이를 악물고 검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혹시…… 암천사신……?”

 

하지만 독고무령은 그의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고, 홍백과 묵귀자를 바라보며 무심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홍백, 묵귀자. 맞나?”

 

홍백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어린놈이 어떻게 우리를 아는 거지?”

 

“그거야 지옥에 가서 물어보고…….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 봐라. 그 정도는 들어주지.”

 

말 등에 앉아 있던 홍백의 두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그 말, 방금 나한테 한 거냐, 꼬마야?”

 

반면 묵귀자의 눈은 실처럼 가늘어졌다.

 

“심장이 뚫려도 말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군.”

 

독고무령은 천천히 검을 사선으로 올리며 나직이 말했다.

 

“다 했으면 이제 죽는 일만 남았군.”

 

말끝마다 속을 긁는다.

 

홍백이 두 손을 우드득 소리가 나도록 꺾으며 하얗게 웃었다.

 

“이런, 이런. 우리를 아는 것 같아서 곱게 죽여주려고 했더니, 스스로 힘들게 죽을 길을 택하는구나.”

 

독고무령은 미끄러지듯 뒤로 죽 물러섰다.

 

순간적으로 십여 장의 거리가 이십여 장으로 벌어졌다.

 

“자존심이 있는 늙은이들이라면 다른 사람이 끼어드는 것을 원치 않을 것 같은데. 아니어도 상관없지만…….”

 

독고무령이 슬쩍 심기를 건드리자, 홍백의 눈매가 역팔자로 꺾어졌다.

 

“오냐, 이놈! 제발 도망이나 가지 마라!”

 

그는 말 등에서 그대로 솟구치더니 곧장 독고무령을 향해 날아갔다.

 

헌원조가 다급히 소리쳤다.

 

“놈은 암천사신이란 자입니다! 조심하십시오!”

 

홍백은 그 말에 더 열이 받았다. 

 

감히 자신에게 조심하라니!

 

자신이 질 거라 생각한단 말인가?

 

그는 자신의 정체가 드러날까 봐 어지간하면 사용하지 않는 유백령(幽魄靈)의 기운을 쌍장에 끌어 모으고 버럭 소리쳤다.

 

“흥! 걱정마라! 내 저놈의 심장을 빼내서 주둥이에 처박을 것이니라! 누구도 끼어들지 마!”

 

독고무령은 무심한 눈으로 홍백을 바라보며 검을 들었다.

 

일순간, 태천일심의 기운이 검신을 휘감으며 검첨까지 쭉 뻗는가 싶더니, 한 줄기 벼락이 어둠을 찢어 발겼다.

 

이전보다 훨씬 자유롭고 강한 기운이 검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

 

유백령의 기운을 쏟아내던 홍백은 이를 악물고 공력을 팔성에서 구성으로 더 끌어올렸다.

 

‘흡!’

 

일 장의 거리인데도 몸이 두 쪽으로 갈라지는 기분이 든다.

 

여태껏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섬뜩함에 등골이 오싹해진다.

 

찰나 간, 독고무령의 천뢰광혼과 홍백의 유백령이 정면으로 얽혀들었다.

 

쩌저적! 쾅!

 

독고무령은 두 기운이 정면으로 부딪치는 순간, 기이한 기운이 검을 타고 흘러듦을 느꼈다.

 

몹시 기분 나쁜, 끈적거리는 뭔가가 손끝으로 밀려드는가 싶더니 손끝이 저릿해졌다.

 

일반 기운과는 전혀 다른 괴이하고도 사이한 기운.

 

뒤로 두 걸음 물러난 그는 태천일심의 기운으로 그 기운을 밀어냈다.

 

“켈!”

 

그때 홍백이 괴상한 웃음을 터트리며 훌쩍 몸을 날렸다.

 

비록 상대의 검세에 부서지며 완전하게 전이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자신이 쏟아낸 유백령 일부가 상대의 몸으로 스며든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그렇다면 이제 곧 몸이 마비될 터. 심장을 뽑아내서 주둥이에 처넣는 일만 남았다.

 

홍백은 갈고리처럼 구부러진 두 손을 앞세우고 자신만만하게 독고무령을 향해 쇄도했다.

 

독고무령은 뒤로 계속 물러나며 홍백의 공격을 검으로 막아냈다.

 

그렇게 사오 초가 흐르자 홍백의 얼굴에 여유가 생겼다.

 

“어디 다시 한번 지껄여봐라, 꼬마야!”

 

독고무령은 칠팔 보를 더 물러선 다음 검을 늘어뜨렸다.

 

그러고는 홍백이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도 움직이지 않았다.

 

홍백은 입술을 혀로 핥고는 땅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이제 끝낼 때라 생각한 듯했다.

 

독고무령은 홍백과의 거리가 일곱 자로 줄어들었을 때서야, 검을 든 우수가 아닌 좌수를 들어 올렸다.

 

살소를 흘리며 두 손을 뻗던 홍백은 갑자기 숨이 턱 막히는 느낌에 눈을 부릅떴다.

 

그러나 두 사람의 거리는 그 순간에 다섯 자로 좁혀진 상태.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거리였다.

 

동시에 난생처음으로 느끼는 공포가 홍백의 뇌리를 지배했다.

 

그것은 수천제마, 독고무령의 의지였다.

 

독고무령은 당한 것처럼 홍백을 끌어들이고는, 좌수로 수천제마의 일수를 펼쳤다.

 

떠덩!

 

갈고리 같던 홍백의 두 손이 좌우로 튕겨지고, 거대한 손 그림자가 홍백의 가슴에 틀어박혔다.

 

쾅!

 

“크악!”

 

홍백은 혼이 산산이 부서지는 충격에 참담한 비명을 토하며 뒤로 튕겨졌다.

 

그와 동시였다. 움직이지 못하는 것처럼 서 있던 독고무령의 신형이 유령처럼 홍백을 따라붙었다.

 

후우웅!

 

그의 검에서 어둠을 쥐어짜는 공명음이 울리며 수십 줄기 벼락이 그물처럼 펼쳐졌다. 

 

“홍백! 이 교활한 놈이……!”

 

묵귀자가 뒤늦게 상황을 깨닫고 신형을 날렸다.

 

하지만 독고무령이 의도적으로 주춤주춤 물러나는 바람에 거리가 더 멀어져 있던 터다.

 

그가 두 번의 도약으로 독고무령을 덮어가는 사이, 독고무령의 검에서 뿜어진 천뢰만영이 어둠을 갈기갈기 찢으며 홍백의 몸조차 뒤덮어 버렸다.

 

찰나였다.

 

홍백의 머리가 옆으로 미끄러지며, 목에서 피분수가 솟구쳤다.

 

거짓말 같은 현실에 묵귀자를 둘러싼 어둠이 흔들렸다.

 

찰나의 틈이었지만, 독고무령이 암향호접무를 펼쳐 묵귀자의 공세에서 빠져나가기에는 족한 시간이었다.

 

뒤로 삼 장가량 물러난 덕에 묵귀자의 신형이 한눈에 들어온다.

 

독고무령은 자신의 검에 태천일심의 기운을 구성까지 끌어 올리고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묵귀자를 공격했다.

 

“이노오오옴!!!”

 

묵귀자는 오십 년을 함께 지낸 동료의 죽음에 분노했다.

 

그가 아무리 천하에 다시없는 악인이라 해도 친우처럼 지내온 홍백이 눈앞에서 죽어간 것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죽이리라! 갈가리 찢어서 씹어 먹으리라!

 

묵귀자는 혼신의 내력을 모조리 끌어올리고 독고무령의 공세에 맞섰다.

 

멀리서 보면 검은 구름이 그의 전신에서 흘러나와 독고무령을 뒤덮는 듯 보였다.

 

독고무령은 홍백의 괴이한 사공을 한 번 경험했기에 묵귀자의 기괴한 무공을 얕보지 않았다.

 

한때 십삼마 중 가장 악독하고 강했던 자들 중 하나가 아닌가.

 

계책을 써서 홍백을 먼저 처리한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만일 두 사람이 한꺼번에 달려들었다면 이긴다 해도 심각한 부상을 각오해야 했을 것이었다.

 

독고무령은 천뢰무적파천검 중 삼 초를 연달아 펼치며 묵귀자의 묵귀마령공을 파훼해 나갔다.

 

천둥소리가 울리고 시커먼 먹구름 사이에서 벼락이 뻗어 나왔다.

 

우르릉! 쩌저적! 콰광!

 

그렇게 오륙 초가량 지날 무렵이었다.

 

독고무령의 검세가 갑자기 변하며 먹구름을 휘어 감았다.

 

수천제마구겁무가 검으로 펼쳐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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