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천제 16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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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99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암천제 169화
169화
독고무령은 담담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건장한 체구의 두 청년과 호리호리한 몸매의 여인.
그들은 이십 대 중반에서 후반으로 보였는데, 곧장 창문 쪽의 자리로 향했다.
여인과 청의를 입은 청년의 등에는 검이 매어져 있고, 갈의를 입은 청년의 손에는 박도가 들려 있었다.
당당한 표정, 붉은 기가 도는 태양혈, 형형한 눈빛.
겉모습만 보아도 능히 일류고수로 부족하지 않은 자들이었다.
독고무령은 자신의 앞을 지나가는 그들을 보며 그들이 사형제들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세 사람이 지닌 기운 자체가 비슷하게 느껴진 것이다.
그때 점소이가 요리를 가져와서 독고무령 앞에 내려놓았다.
“맛있게 드십쇼!”
점소이의 커다란 목소리에, 지나가던 세 남녀 중 한 청년이 독고무령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손에 박도를 든 갈의청년이었다.
그는 고개를 돌리려다 갸웃거리며 다시 독고무령을 바라보았다.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게 있는데 그것이 뭔지 바로 떠오르지 않았다.
“사제, 무슨 일인가?”
그가 머뭇거리자, 앞서 걷던 청의청년이 고개를 돌리고 물었다.
갈의청년은 별것 아니라는 투로 대답했다.
“아닙니다, 사형.”
그리고 다시 걸음을 옮기려는데 마음에 걸린 점이 뭐였는지 갑자기 떠올랐다.
‘맞아. 우리는 저자가 앉아 있다는 것을 못 느꼈어!’
검을 지니고 있다. 무사라는 말.
앉아있는 자세나, 자신들을 보고도 눈빛 한 점 흔들리지 않는 걸로 봐서 범상한 자는 아닌 듯했다.
그런데 그런 자를 보고도 자신들은 사람이 없는 것처럼 행동했다.
어이가 없었다. 그렇게 신경이 무뎌서야 어떻게 험한 강호를 헤쳐 나간단 말인가!
그가 멍하니 서 있는 걸 보고 호리호리한 여인이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형, 아는 사람이에요?”
“아, 아니.”
“그런데 왜 그래요?”
그걸 뭐라고 답한단 말인가?
갈의청년은 대충 얼버무리며 사형과 사매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그냥 좀 눈에 익은 사람 같아서. 하, 하…….”
독고무령은 너스레를 떨며 사형제들의 자리로 가는 갈의청년을 보며 소채를 입에 넣었다.
‘역시 사형제들이군. 그런데 어느 문파 사람들이지?’
그가 의문을 가진 채 요리를 거의 다 비웠을 때였다.
도저히 궁금해서 못 참겠는지 갈의청년이 자리에서 일어나 독고무령에게 다가갔다.
독고무령은 자신에게 다가온 갈의청년이 빤히 바라보자 고개를 들었다.
“볼일이라도 있소?”
“그게……. 하, 하. 강호에서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형장이 누군지 알고 싶어서 말이오.”
진사혁만큼은 아니지만, 제법 건장한 체격이다.
맑은 눈빛, 정갈한 기운. 적어도 남의 뒤통수는 치지 않을 사람처럼 보인다.
독고무령은 담담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남을 알려면, 먼저 자신을 밝히는 게 강호의 예의라고 알고 있소만.”
갈의청년은 머쓱하게 웃으며 뒤통수를 긁었다.
“하, 하. 이거 강호초출이라는 게 여지없이 드러났군요.”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모자람이 드러나면 감추기에 급급하다. 그런데 앞에 있는 자는 자신의 부족함을 스스럼없이 내보인다.
독고무령의 입가로 보일 듯 말듯 미소가 번졌다.
‘성격이 좋군.’
그때 갈의청년이 두 손을 맞잡고 포권을 취하며 자신을 소개했다.
“천수옥이라 하오. 북태(北台) 용천문(龍天門)의 제자외다.”
자신의 신분을 모두 밝힐 수는 없는 일.
독고무령은 가명을 말하려다가 멈칫했다.
본명을 밝힐 수 없다지만, 언제까지 사람을 상대하며 가명으로 대할 것인가? 그런 생각이 든 것이다.
그는 작심한 듯 포권을 취하며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가명 아닌 가명을.
“백무령이라 하오.”
천수옥은 넉살 좋게 독고무령의 앞자리 의자를 빼냈다.
“식사하시는데 잠시 앉아도 되겠소?”
“마음대로.”
천수옥은 털썩 의자에 앉더니 곧장 질문을 했다.
“백 형은 강호를 돌아다닌 지 얼마나 되셨소?”
“일 년 정도 되었소.”
천수옥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럼 지금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 잘 아시겠구려.”
그 말에 청의청년과 호리호리한 여인도 관심을 가지고 독고무령을 바라보았다.
독고무령은 천수옥의 호기심 가득한 눈을 보며 말했다.
“어느 정도는. 그동안 태원과 양천 일대를 돌아다녔으니까.”
천수옥의 눈이 커졌다.
태원과 양천 일대라면 전쟁의 중앙지가 아닌가.
“호오, 그럼 그 이야기 좀 해주시오.”
궁금한 것은 천수옥만이 아니었다. 청의청년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여인에게 말했다.
“사매, 이리 와라. 우리 자리를 옮기자.”
그는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더니 독고무령의 바로 옆 탁자에 자리를 잡았다. 속이 뻔히 보이는 행동이었지만, 옆자리에 앉았다고 뭐라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천수옥이 가만 놔두지 않았다.
“아, 사형. 차라리 이리 오십쇼. 여기 백 형하고 인사도 나누고 말이죠.”
청의청년은 천수옥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식사하는데 방해될까봐 그런다. 더구나 우리가 가면 자리가 꽉 차는데 불편할 것 아니냐? 내가 사제처럼 무턱대고 들이미는 사람인 줄 알아?”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포권을 취했다.
“나는 도청진이라 하오. 그리고 여기 내 사매는…….”
그가 말하기도 전에 여인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홍려려라고 해요.”
“백무령이오.”
세 사람이 인사를 나누자 천수옥이 재빨리 끼어들었다.
“사실 사형과 사매도 강호초출이나 마찬가지지요.”
“흥, 나는 그래도 두 번이나 나와 봤다.”
“그래봐야 사부님 심부름 때문에 나갔다 온 것뿐이지 않습니까?”
“사부님 심부름이 어디 단순한 것이더냐?”
“어쨌든 강호를 종횡한 것은 아니잖아요.”
남들이 보면 제법 강호 물을 먹은 것처럼 보이는 두 사람이 강호초출이냐, 아니냐를 놓고 말다툼을 한다.
독고무령의 무심한 표정에 자잘한 웃음이 떠올랐다.
“사실 이번 싸움은…….”
독고무령이 살짝 입을 열자, 언제 그랬냐는 듯 두 사람이 입을 닫고 독고무령을 주시했다.
독고무령은 자신의 짐작보다 두 사람이 순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덕분에 말을 이어가는 그의 마음도 편해졌다.
“숨겨진 게 많은 싸움이오. 해서 나도 지금 남쪽으로 내려가려던 참이오.”
독고무령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천수옥이 물었다.
“숨겨진 게 많다니, 뭐가 말이오?”
“은룡산장이 제왕성의 성주 위지천백의 배후였다는 것부터가 숨겨진 사실이 아니겠소?”
“하긴…….”
“그런데 세 분이 강호에 함께 나온 걸 보니 목적이 있는 것 같은데, 어디로 갈 생각이오?”
독고무령이 말을 돌려 질문하자, 천수옥이 힐끔 도청진을 바라보았다.
도청진은 독고무령을 똑바로 바라본 채 나직이 입을 열었다.
“우리는 적사보로 갈까 하오. 사부님께서는 제왕성의 패권일로(覇權一路)가 못마땅하긴 하지만, 하북 놈들이 산서에 와서 설치는 꼴은 볼 수가 없다며 우리더러 힘을 보태라 하셨소. 무천련이 무너지지만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제길!”
도청진이 말을 끌며 아쉬운 표정을 짓자, 독고무령이 무심한 표정으로 말했다.
“무천련은 무너졌을지 몰라도, 무천련에 몸 담았던 사람들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소.”
“그럼, 그들이 아직 건재하단 말이오?”
“최소한 전보다 약하지는 않소.”
그때 홍려려가 눈을 반짝이며 끼어들었다.
“아! 암천사신인가 하는 사람이 이끄는 무천단을 말하나 보군요. 우리도 그 사람에 대한 말은 들었어요. 그런데 그 사람이 정말 그렇게 강한가요?”
독고무령은 자신을 평가하려니 속으로 머쓱했지만, 최대한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듣기로는 제법 강하다고 하더이다.”
천수옥이 동경의 눈빛으로 허공을 보며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이십 대 중반이라는데, 얼마나 강해서 그런 소문이 도는지 모르겠구려. 정말 한번 만나봤으면 좋겠소.”
도청진이 그런 천수옥을 째려보며 피식 웃었다.
“소문은 과장된 것이 많은 법이지. 다 믿었다가는 큰코다치는 곳이 강호다, 사제.”
“그래도 어느 정도는 사실이니까 그런 소문이 도는 것 아니겠습니까? 사형, 혹시 그를 시기하는 것 아닙니까?”
발끈한 도청진이 천수옥을 노려보며 코웃음을 쳤다.
“시기? 흥, 솔직히 말해서, 그가 강하면 얼마나 강하겠느냐? 쳇, 앞에 있으면 한번 붙어볼 텐데……. 이 기회에 나도 별호를 하나 지어볼까? 암천무신(暗天武神), 어때?”
“어이구, 우리 사형. 이제 보니 대단한 분이셨구려. 이런 대단한 사형이 어쩌다가 전에는 맞고 왔는지…….”
“사제, 너……!”
두 사람이 엉뚱한 일로 티격태격하는 동안 홍려려는 독고무령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다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손뼉을 짝, 치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백 소협의 이름이 그 암천사신인가 하는 사람하고 같네요. 호호호호. 참, 신기하네요.”
제아무리 낯 두꺼운 독고무령도 그 말에는 입이 닫혔다.
모른다고 할 수도 없고, 이제 와서 ‘내가 바로 암천사신 독고무령이오.’ 할 수도 없는 일 아닌가.
그는 ‘그도 그렇군요.’하는 표정으로 피식 웃으며 소채를 향해 젓가락을 뻗었다.
‘그거 참, 그게 뭐가 그리 신기하다고…….’
* * *
독고무령이 용천문의 세 사형제를 만난 그 시각.
적사보에선 위지천백과 위지성이 마주 앉았다.
“준비는 되었느냐?”
“예, 아버님.”
“적을 칠 때는 숨 돌릴 틈을 주어서는 안 된다. 또한 후퇴해야 할 상황에서는 미련 없이 돌아서야 한다. 알았느냐?”
“명심하겠습니다.”
“좋다, 그럼 이번 일의 선봉은 너에게 맡기겠다.”
“감사합니다, 아버님!”
위지천백과 위지성이 마주 앉은 지 반시진이 지나지 않아 적사보의 문이 활짝 열렸다.
활짝 열린 문을 통해 쏟아져 나온 무사들은 곧장 동쪽으로 내달렸다.
숫자는 모두 이백여 명. 하나같이 형형한 안광을 뿜어내는 고수들이었다.
그와 같은 시각.
대우에서 북쪽으로 십 리가량 떨어져 있는 마장에서도 암암리에 말 삼백 필이 움직였다.
적사보를 감시하던 밀호방의 정보원들은 제왕성 무사들의 갑작스런 출동을 보고는 연락을 취하기 위해서 다급히 움직였다.
하지만 그들이 미처 모르는 사실이 있었다.
제왕성은 단지 은룡산장과 싸우러 갈 무사들만 움직인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수상한 행동을 하는 놈들은 무조건 잡아라! 대항하거나 도주하는 놈들은 적의 간자라 생각하고 척살하라!”
집법전주 노태릉의 명이 떨어지자, 집법전 휘하 사십 명의 집법무사들이 은밀하게 적사보를 빠져나갔다.
위지성이 이백의 무사와 함께 움직인 직후였다.
* * *
독고무령이 객잔을 나서려하자 용천문의 세 사람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백 형, 함께 갑시다.”
독고무령은 그들의 뜻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실력도, 마음씀씀이도 마음에 드는 사람들이었다. 다른 곳으로 가도록 놔두기에는 아까웠다. 더구나 적사보로 가는 것은 더욱 원치 않았다.
“내 걸음이 빠르니 따라오려면 힘이 좀 들 거요. 그래도 괜찮다면 따라오시오.”
천수옥이 자신 있게 대답했다.
“하하, 우리도 녹록한 실력은 아니니 걱정 마시오.”
객잔을 나선 독고무령은 곧장 대우로 향했다.
두촌에서 대우까지는 이백오십 리.
서둘러야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의 뒤에는 용천문의 세 사람이 따라오고 있었는데, 독고무령은 그들이 능력껏 따라오게 놔둔 채 걸음을 빨리했다.
결국 용천문의 세 사람은 독고무령의 걸음을 따라가기 위해서 경공을 펼치듯 달려야 했다.
그래도 자존심이 있는지 천천히 가자는 말은 하지 않았다.
독고무령은 그들이 뒤처지지 않게 적절히 속도를 조절했다.
일류수준의 무공을 지닌 도청진과 천수옥은 따라오는데 큰 무리가 없었다.
문제는 홍려려였다.
그녀는 두 시진가량을 그렇게 달리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독고무령은 그녀의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는 것을 알면서도 속도를 조금 늦추었을 뿐 멈추지는 않았다.
강호에 뛰어들어서 살아남으려면 이보다 몇 배나 힘든 경우도 이겨내야 한다. 조금 지쳤다고 멈추면 그 순간에 사신이 뒷덜미를 붙잡는다.
이들이 가고자 하는 강호는 그런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