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천제 2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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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424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암천제 207화
207화
두 사람의 말싸움이 점입가경으로 치닫자, 결국 독고무령이 나섰다.
“물러서게, 사혁.”
싸움이 난다해도 중년인은 진사혁이 충분히 처리할 수 있는 자였다.
문제는 소란이 길어질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앞으로의 일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진사혁은 중년인을 향해 씨익 웃으며 마지막으로 한마디 더했다.
“눈이 작으니까 사람도 알아볼 줄 모르는군, 비키랄 때 비키지 말이야.”
그 말에 중년인의 작은 눈에서 한광이 쏟아졌다.
“어린놈이 뜨거운 맛을 봐야 정신을 차리려나 보구나!”
순간이었다. 중년인이 스윽, 발을 내딛으며 진사혁을 향해 손을 뻗었다.
진사혁도 잘됐다는 듯 망설이지 않고 마주 손을 뻗었다. 상대가 먼저 손을 쓴 이상 독고무령도 뭐라 하지 않을 것이었다.
“어쭈? 쥐가 사람에게 달려드네?”
“이 멧돼지 같은 놈이!”
두 사람의 손이 찰나 간에 얽혀 들며 가죽북 터지는 소리가 울렸다.
퍼버벅!
대여섯 번의 권격이 뒤엉키는가 싶더니, 중년인이 뒤로 서너 걸음 밀려났다.
재빨리 중심을 잡은 중년인은 이를 악물고 진사혁을 노려보았다.
곰 같은 놈이 반걸음 정도 물러선 채 철탑처럼 우뚝 서 있다.
자신이 밀렸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지 중년인은 눈을 치켜뜨며 소리쳤다.
“이제 대답해도 소용없다! 모두 잡아가서 한 놈 한 놈 족쳐주마!”
동시에 황보세가의 무사들이 독고무령 일행을 부챗살처럼 에워쌌다.
그때 독고무령이 중년인을 향해 말했다.
“일을 복잡하게 만드는군.”
“너는 또 웬 놈이냐? 이번에는 네놈이 나서겠다는 거냐? 푸하하하, 나 황보도경이 오늘 완전히 놀림감이 되었군. 강호의 친구들이 알면 부끄러워서 얼굴도 들지 못할 일이 아닌가?”
중년인, 황보도경은 황망하다는 듯 웃음을 터트리고는, 노기 띤 표정으로 독고무령을 노려보았다.
황보세가의 별종. 한때 그렇게 불린 그였다.
본가의 간부가 되지 못하고 한직인 선착장의 감시책임자가 된 것도, 그의 성격이 유별나 높은 사람과 잘 어울리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황보세가의 사람 누구도 그를 업신여기지 않았다.
그가 지닌 절정의 무위도 무위지만, 한번 물면 놓지 않는 미친개가 바로 그인 것이다.
“오늘 한번 제대로 미쳐봐야겠군.”
그는 두 손을 맞잡고 와드득, 뼈 갈리는 소리가 나도록 손가락을 꺾었다.
순간 그의 전신에서 무거운 기운이 흘러나왔다.
조금 전 진사혁과 손을 나눌 때와는 또 다른 모습.
황보도경을 바라보는 독고무령의 눈빛이 깊어졌다.
‘일개 순찰조의 책임자치고는 제법이군. 역시 황보세가라 이건가?’
그는 황보도경이 어떤 신분인지 알지 못했다. 그러니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후회할 일은 하지 않는 게 좋을 텐데?”
“후회? 후회는 네놈이나 해!”
황보도경이 버럭 소리치고는 땅을 박찼다.
찰나 간에 거리가 좁혀지고, 황보도경이 두 주먹을 휘두르자 권풍이 휘몰아치며 독고무령을 향해 밀려갔다.
독고무령은 성큼 한 걸음 내딛으며 황보도경의 권풍 속으로 손을 내밀었다.
황보도경은 바위조차 부숴버리는 권세 속으로 뛰어드는 독고무령이 가소롭기만 했다.
이십 년 동안 특별하게 단련된 자신의 주먹은 무쇠만큼이나 단단하다. 또한 주먹에 실린 단철신공의 기운에 부딪치면 도검조차 부서지기 일쑤다.
하거늘 맨손으로 자신의 주먹을 맞상대하려 하다니!
그는 독고무령을 단숨에 쓰러뜨리겠다는 듯, 내지르는 두 주먹에 더욱 강력한 기운을 응집시켰다.
스치기만 해도 살점이 터져나가고, 정면으로 부딪치면 뼈가 부서질 것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그가 예상했던 거와 영 딴판으로 흘렀다.
떠더덩!
둔중한 소리가 고막을 먹먹하게 울리더니, 황보도경의 몸뚱이가 뒤로 튕겨졌다.
“크윽!”
털썩!
황보도경은 바닥에 떨어짐과 동시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곧바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두 팔은 물론이고, 온몸이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후들거려서 발을 내딛으면 꼬꾸라질 것만 같았다.
순간 독고무령이 일어선 황보도경을 향해 다시 손을 뻗었다.
눈앞이 거대한 손 그림자로 꽉 차는가 싶은 순간, 황보도경은 목이 콱 막혀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독고무령이 가히 번개보다 빠른 손짓으로 그의 목을 움켜쥔 것이다.
“당주!”
“손을 놓아라!”
당황한 황보세가의 무사들이 다급히 소리쳤다.
그러나 황보도경의 생사가 염려되어 달려들지는 못했다.
독고무령은 황보도경의 눈을 직시한 채 나직이 말했다.
“선택은 당신이 하시오. 죽고 싶다면 죽여주고, 살고 싶다면 살려주겠소. 단, 황보세가와 더 이상 쓸데없는 악연을 쌓고 싶진 않으니, 오늘 일에 대해선 잊어야 할 거요.”
황보정과 황보광에 이어 또 황보세가의 사람들과 얽혀 들었다.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황보세가는 정주와 개봉 일대를 장악하고 있는 거대세력.
마찰이 커지면 자신의 계획이 틀어질지도 모르는 것이다.
“끄으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황보도경은 독고무령을 쳐다보았다.
손발을 꼼짝할 수 없는 상태. 거기다 무사가 목이 잡혀 있으니 치욕적인 상황임은 분명한데, 분한 마음이 들 정신도 없었다.
어떻게 자신이 이렇게 당할 수 있단 말인가!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재수 더럽게 없는 꿈을.
그때 들려온 독고무령의 말은 그의 머릿속에 든 의문조차 날려버렸다.
“당신의 실력으로는 우리를 막을 수 없소. 그래도 막겠다면, 별수 없지. 모두 때려눕히고 가는 수밖에.”
마음 같아서는 죽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런데 막상 죽겠다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쓰벌, 홀아비로 죽으면 저승에서 힘들다는데…….’
억지로 그런 어이없는 이유를 생각해봤지만, 꼭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앞에 있는 자는 강하다. 자신을 일수에 무너뜨릴 정도로. 너무 강해서 분노도 일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황보세가에서 누가 이자를 꺾을 수 있을까?
가주인 황보중경이? 아니면 조부인 황보대진이?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내기를 하자면 자신이 없다.
그 두 양반이 자신을 일수에 꺾을 수 있을까? 그것도 단철신공을 펼친 자신을?
솔직히 말해서, 그럴 수 있는 확률은 반의 반도 안 된다.
결국 앞에 있는 자는 절대의 경지에 이른 고수라는 말.
그게 사실이라면, 자신이 졌다는 건 창피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황보도경은 자신의 생각을 정당화시키며 억지로 입술을 떼었다.
“이, 일단 손을…….”
독고무령은 황보도경의 목을 풀어주면서 앞으로 밀쳤다.
비틀거리며 대여섯 걸음 물러선 황보도경은 밭은기침을 터트리며 목을 주물렀다.
“콜록, 콜록…….”
그때까지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던 황보세가의 무사들 중 두엇이 그에게 달려갔다.
“당주! 괜찮으십니까?”
“이놈들! 네놈들이 감히 본가와 싸우겠다는 거냐?”
나머지 무사들도 무기를 빼들고 포위망을 좁혔다.
“뒤로 물러나!”
황보도경이 그들을 향해 다급히 손을 저었다.
상대는 수하들이 상대할 수 있는 자가 아니었다. 자칫하면 수하들은 수하들대로 잃고 세가의 이름도 진흙탕에 떨어질지 몰랐다.
그는 숨 쉬기가 좀 나아지자 천천히 고개를 들고 독고무령을 바라보았다.
“그대는 누구지?”
“잊을 사람인데 알아서 뭐하려고 그러는 거요?”
“크큭, 하긴 그것도 그렇군.”
그래도 궁금함을 참지 못하겠는지 다시 물었다.
“이름을 알려주지 못할 이유라도 있나? 좌우간 수상하긴 수상하군.”
독고무령은 어떻게든 자신에 대한 것을 알아내려는 황보도경을 무심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렇게 죽고 싶소?”
눈이 마주친 순간, 황보도경은 뱀 앞의 개구리처럼 입을 꾹 다물고 부르르 떨었다.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 솜털이 곤두서는 느낌.
눈 한번 깜박하지 않고 자신의 말을 실행으로 옮길 수 있는 자의 눈빛이었다.
‘빌어먹을……. 뭐 저런 놈이 다 있어?’
그는 이름 하나에 목숨을 걸고 싶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잊을 생각도 없었고.
자신이 누군가? 황보세가의 별종, 미친개가 아닌가.
‘오늘은 그냥 보내주지. 하지만 내가 왜 미친개라고 불리는지 곧 알려주마. 어디 누가 이기나 보자!’
그는 속으로 이를 갈며 옆으로 비켜섰다.
독고무령은 두 번 다시 그를 보지 않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진사혁이 황보도경의 곁을 스쳐지나가며 씩 웃었다.
“팔다리 멀쩡한 걸 다행으로 아쇼.”
황보도경은 진사혁을 쏘아보며 빠드득 소리가 나도록 이를 갈았다. 그는 독고무령보다 진사혁이 더 얄미웠다.
‘멧돼지 같은 놈, 내 반드시 네놈의 대갈통을 터트려 줄 것이다.’
* * *
독고무령 일행이 개봉에 도착한 것은 어스름이 밀려들 무렵이었다.
성문을 통과한 그들은 곧장 추월루로 향했다.
전에 왔을 때는 길거리에 오가는 사람이 거의 없었는데, 오늘은 넓은 길이 술과 여인을 찾아 오가는 취객들로 가득했다.
당연히 추월루의 상황도 전에 왔을 때와 완전히 달랐다.
독고무령은 잠시 멈춰 서서 추월루를 바라보았다.
불야성이 따로 없다. 추월루 전체를 화려하게 밝히고 있는 각양각색의 등불이 바람에 흔들린다.
그 아래에서 끊이지 않고 드나드는 취객들은 마치 꿀을 보고 달려드는 개미떼 같기만 하다.
상인, 무사, 학사, 노소를 불문하고 온갖 사람들이 드나든다.
‘추월, 조병탁, 왜 나를 속인 거지?’
그들에게 맡기지 않았다면 따로 조사를 해봤을 것이다.
결국 몇 달의 시간만 허비한 셈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독고무령은 실망하지 않았다. 자신을 속이고 사람을 태원까지 보내 자신의 정체를 파악하려 했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그는 그 이유와 유하령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다면 오늘의 방문에서 의외의 결과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만나보면 알겠지.’
그가 추월루의 삼 층 전각을 바라보는데, 추월루를 둘러보던 진사혁이 혀를 내두르며 감탄사를 터트렸다.
“정말 굉장하군!”
“저 커다란 장원이 전부 기루라는 건가?”
다른 사람들도 기루라 하기에는 너무 엄청난 추월루의 규모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런데 모용설은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눈살을 찌푸렸다.
“술을 마시려면 주루에 가서 마시지, 왜 기루에 가서 마시는 거지?”
관조운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벌과 나비가 꿀단지에서 꿀을 먹는 것보다, 꽃에 앉아서 꿀을 따는 게 훨씬 보기 좋지요.”
모용설이 관조운을 흘겨보았다.
관조운은 모용설의 신경이 유난히 날카로워졌다는 것을 알기에 모른 척 앞만 바라보았다.
그때 독고무령이 걸음을 옮겼다.
“그만 들어가 봅시다.”
독고무령 일행은 앞서 들어가는 사람들의 꼬리를 물고 추월루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사람들이 밀려가는 건물로 가지 않고, 별원으로 향하는 회랑으로 빠졌다.
“어디를 가시려는 겁니까, 무사님들?”
건물의 그림자 속에서 한 사람이 나오며 독고무령 앞을 막았다.
이제 서른 정도의 장한이었다. 얼굴은 웃고 있지만, 독고무령 일행을 살피는 눈빛은 달빛보다 더 차가웠다.
독고무령은 그가 막는 이유를 알기에 담담히 말했다.
“별원으로 가려는 거요.”
“그곳은 손님들이 갈 수 없는 곳입니다. 그냥 저쪽 전각으로 가셔서 즐기시지요.”
“나도 알고 있소. 전에 가봤으니까.”
장한은 독고무령이 가봤다고 하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당신은 루주에게 가서, 태원에서 온 손님이 별원의 조 학사를 찾아왔다는 말이나 전해주시오.”
장한은 혼란스러운지 바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때 한 사람이 건물을 돌아 나오며 그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총관인 막도환이었다.
“무슨 일인가?”
장한이 재빨리 상황을 설명했다.
“손님들이 별원으로 가려고 해서 막고 있는 중입니다.”
막도환은 장한의 말을 들으며 독고무령 일행을 둘러보았다. 그러다 감가기를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어디선가 본 기억이 나는데 정확히 생각나지 않는다.
“별원으로?”
“예, 총관님. 그런데 조 학사님을 만나러 왔다면서 루주님께 전갈을 해 달라고…….”
막도환의 표정이 급변했다. 그제야 감가기가 누군지 깨달은 것이다.
“당신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