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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제 201화

무료소설 암천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234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암천제 201화

 

201화

 

 

 

 

 

 

* * *

 

 

 

모용설은 창문을 열고, 별이 눈꽃처럼 가득한 하늘을 바라보았다.

 

요 며칠 간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수련을 하려 해도 정신집중이 되지 않았고, 동생과 대화하는 도중에도 넋을 놓기가 일쑤였다.

 

모두가 독고무령 때문이었다.

 

어떻게 된 걸까? 얼마나 많이 다쳤기에 이레가 넘었는데도 돌아오지 않는 걸까? 설마 부상이 너무 심해서 오랫동안 돌아오지 못하는 건 아니겠지?

 

최악의 경우, 죽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러한 경우는 생각하기도 싫었다.

 

‘아냐, 그럴 리가 없어!’

 

모용설은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스스로의 생각을 부정했다.

 

전만 해도 그저 조금 좋아하는 정도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자신의 마음을 확실히 알 것 같았다.

 

‘알고 있어요? 내가 당신을 좋아하고 있다는 걸. 사모하고 있다는 걸. 제발 무사히만 돌아와 줘요, 제발……. 당신이 원하면 여자로 되돌아갈게요. 옷도 갈아입고, 항상 단정한 모습으로 당신 앞에 서 있을게요.’

 

별을 보며 소원을 비는 어린 소녀처럼 그녀는 간곡히 빌었다.

 

감정이 복받쳐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진즉 백천산으로 달려갈 걸. 그 사람 곁에 있었으면 어떻게든 도움이 되었을 텐데.

 

“흑.”

 

끝내 그녀의 입에서 울음소리가 외마디 신음처럼 흘러나왔다. 뒤에서 의아해하는 목소리가 들린 것은 그 직후였다.

 

“무슨 일이 있었나? 왜 우는 거지?”

 

모용설은 벼락을 맞아 석상이 되어버린 것처럼 몸이 굳었다.

 

그도 잠시, 그녀는 방 안에 회오리바람이 일어날 정도로 홱! 몸을 돌렸다.

 

“당신……?”

 

한데 모르는 사람이 뒤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

 

흠칫한 그녀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누구……?”

 

그녀는 굳은 표정으로 옆구리의 검을 잡아가다 말고 독고무령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목소리도 그렇고, 눈빛도 그렇고. 얼굴만 다를 뿐 분명 독고무령이었다.

 

“회주?”

 

독고무령은 인피면구를 벗고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맞아. 잘 있었나?”

 

모용설은 목이 콱 막혀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머릿속이 텅 빈 것 같아서 아무런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대답 대신 몸을 날렸다.

 

독고무령은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두 손을 뻗어 그녀의 몸을 보듬었다.

 

가녀린 새 한 마리가 안락한 집 안으로 날아들 듯이 모용설이 품안에 깊숙이 안겼다.

 

그는 품에 안긴 채 몸을 잘게 떠는 모용설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눈가에는 이슬이 맺혀 있고, 악다문 입술에선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왜 우는 거지?”

 

모용설은 얼굴을 독고무령의 가슴에 깊이 묻었다.

 

눈물이 독고무령의 가슴옷자락을 적시는데도 개의치 않았다.

 

바보 같은 사람! 당신 때문에 울고 있잖아요!

 

그녀는 그렇게 외치며 가슴을 후려치고 싶었다.

 

하지만 가슴을 후려치는 대신 다른 방법으로 자신의 마음을 알렸다.

 

고개를 들자 한 뼘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독고무령의 얼굴이 있었다.

 

그녀는 무엇엔가 홀린 것마냥, 까치발을 들고 떨리는 입술로 독고무령의 입술을 덮었다. 지금 상황이 꿈이 아니기만을 빌면서.

 

독고무령은 피하지 않고 그녀를 보듬은 손에 슬며시 힘을 주었다.

 

아릿한 복숭아향이 입 안에 가득 찬 순간, 그의 심장이 화산에서 분출되는 용암처럼 뜨겁게 달아올랐다.

 

 

 

* * *

 

 

 

새벽이 되자 지하석실로 사람들이 모였다.

 

진사혁 등 전날 저녁에 만난 네 사람 외에, 여섯 명이 합류했다. 석도명, 감가기, 염부중, 기호정, 종리청 그리고 모용설까지.

 

종리청이 포함된 것은 의외였지만, 그리 걱정하지는 않았다.

 

몇 번의 목숨을 건 전투 이후 누구보다 많은 발전을 이룬 사람이 바로 그였다. 

 

감추고 있던 가문 무공도 어느 정도 완성했고, 구명절혼수 역시 독고무령과 진사혁을 제외하곤 가장 높은 경지까지 익힌 상태였다.

 

문제는 모용설이었다.

 

독고무령은 본래 모용설이 합류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하남과 하북을 쉬지 않고 강행군하다 보면 어떤 상황이 닥칠지 모르는 일. 일행으로 데려가기에는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너무 험난했다.

 

하지만 그러한 이유로는 모용설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그럼 나 혼자서라도 쫓아가겠어요. 더 이상은 누군가를 기다리면서 마음 졸이며 살고 싶지 않아요.”

 

 

 

그렇게 말하는데 뭐라 한단 말인가.

 

모용설은 복수를 위해 여자이기를 포기할 정도로 굳센 마음을 지닌 여인. 충분히 그리하고도 남을 사람이었다. 

 

물론 실력도 충분했고. 

 

그러니 합류를 허락하는 수밖에.

 

 

 

비가 올 것처럼 습기 찬 바람이 불던 어느 여름 날 아침.

 

열한 명의 무사가 서너 명씩 짝을 지어 태원성 남문을 나섰다.

 

덩치가 곰만큼 큰 진사혁만이 조금 튀게 보일 뿐, 나머지 사람들은 간간이 남문을 드나드는 낭인무사들처럼 평범한 차림새였다.

 

그들은 남문을 나서자마자 빠르게 남쪽으로 향했다.

 

 

 

* * *

 

 

 

독고무령이 일행과 함께 태원을 떠나던 그날 정오 무렵.

 

제왕성의 이천 무사가 서연에서 십 리 떨어진 언덕 위를 뒤덮었다.

 

위지천백은 언덕 한가운데 삐죽 솟은 바위 꼭대기에 서서 서연을 바라보았다.

 

날이 맑고 황사바람이 불지 않아서인지, 은룡산장의 무사들이 웅크리고 있는 대풍장이 뚜렷이 보였다.

 

“놈들의 상황은?”

 

바로 옆에 서 있던 위지성이 대답했다.

 

“저희들이 오는 걸 알고 바짝 긴장해 있는 상태입니다, 아버님.”

 

“군은 움직이는 곳이 없겠지?”

 

“노태군이 근처의 위소 다섯 군데에 명을 내렸다고 합니다만, 단 한곳도 움직였다는 보고가 없습니다.”

 

보고하는 위지성의 입가에 잔잔한 웃음이 걸렸다.

 

위지천백도 만족한 듯 나직이 웃음을 흘리며 노태군을 비웃었다.

 

“후후후후, 당연히 그렇겠지. 노태군, 많이 답답하겠구나. 하지만 걱정 마라, 지옥에 가면 그 답답함도 느낄 수 없을 테니까.”

 

그때 백리환이 말문을 열었다.

 

“혈왕이라는 자와 한번 싸워보고 싶었는데, 그가 없다니 조금 아쉽군요.”

 

“대신 귀천사사 중 둘이 있으니, 그중 하나를 맡게나.”

 

“하하하, 어쩔 수 없죠. 그자로 만족하는 수밖에.”

 

한쪽에 서 있던 등후양은 두 사람의 대화에 눈빛이 잘게 떨렸다.

 

지난 며칠이 악몽 같았다. 혈왕을 떠올릴 때마다 진저리가 쳐지고, 암천사신을 생각할 때면 한숨이 나왔다.

 

다른 사람은 모른다. 혈왕이 얼마나 엄청난 괴물인지. 암천사신이 얼마나 강하고 냉철한 자인지.

 

모두 혈왕이 자신과 팽팽한 접전을 벌이다가 갑자기 떠나버린 것으로만 알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대충 그렇게 말하고 말았으니까.

 

하지만 진실은 조금 달랐다.

 

팽팽한 접전은 사실이지만, 자신과 북천삼괴가 함께 손을 썼다. 거기에 젊은 청년 고수도 하나 끼어 있었고.

 

그렇게 다섯이 달려들고 나서야 혈왕은 조금씩 밀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혈왕과 자신을 동시에 상대하며 암천회의 사람들을 도주하게 만든 사람이 바로 암천사신인 것이다.

 

‘만일 나 혼자였다면, 이 자리에 서 있지 못했을지도…….’

 

그 생각을 하면 입 안이 씁쓸하기만 했다.

 

자존심이 상하긴 하지만, 혈왕과 암천사신이 자신보다 강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암천사신과 혈왕!

 

중원 천하에 그들보다 강한 고수가 몇이나 될 것인가?

 

강호의 하늘로 여겨지는 삼성(三聖), 오존(五尊), 사마(四魔), 사대천왕(四大天王). 그들 중 자신보다 강할 거라 생각되는 자들은 대여섯 명 정도다.

 

하지만 그들이라 해도 혈왕과 암천사신을 능가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더구나 두 사람은 젊지 않은가 말이다.

 

강호는 곧 새로운 하늘의 등장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경악할 것이다.

 

‘훗, 그 두 사람과 동시에 싸운 사람이 앞으로 있을까?’

 

등후양은 엉뚱한 생각을 하며 실소를 흘렸다.

 

바로 그때, 위지천백의 손이 번쩍 들리고, 좌우에서 북소리가 울렸다.

 

둥! 둥! 둥!

 

공격을 알리는 북소리.

 

뒤이어 단호한 의지가 실린 위지천백의 명령이 대기를 뒤흔들었다.

 

“공격을 시작하라!”

 

그는 기습과 정면대결 중 정면대결을 택했다.

 

단 한 번의 싸움으로 은룡산장의 기를 완벽하게 꺾어버릴 작정이었다.

 

변명조차 할 수 없는 완벽한 승리의 쟁취!

 

그 기세를 타고 꿈을 향해 나아가리라!

 

천하를 오시하는 모습으로 서 있는 위지천백의 몸에서 기운의 폭풍이 회오리를 일으켰다.

 

“우리도 가세! 가자, 성아!”

 

철저히 계획된 작전에 따라 이천의 무사가 움직인다.

 

쏴아아아아!

 

숫자는 이천에 불과하지만, 그 기세만큼은 백만대군에 못지않았다.

 

산사태가 나서 언덕이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은 광경!

 

앞서가는 자는 앞서가는 대로, 뒤따라가는 자는 뒤따라가는 대로 가슴속에서 화산의 용암이 분출하는 듯했다.

 

심장이 쿵쿵거렸다.

 

온몸이 불속에 빠진 듯 뜨거워졌다.

 

마침내 산서의 주인을 가리는 건곤일척의 대회전이 벌어지기 직전인 것이다!

 

“은룡산장은 우리의 적이 될 수 없다! 단숨에 무너뜨려라!”

 

“동창의 개들을 모조리 쓸어버려라!”

 

와아아아아!

 

 

 

전각 삼 층에 서 있는 노태군의 눈에서 혈광이 번들거렸다.

 

저 멀리 하늘에서 붉은 연기가 퍼져나가는 게 보였다.

 

적의 공격을 알리는 폭죽.

 

마침내 제왕성의 공격이 시작된 것이다.

 

“모두 몇 놈이나 된다더냐?”

 

적수천이 바위처럼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천 정도 된다 합니다, 아버님.”

 

예상보다 훨씬 많은 숫자였다. 제왕성의 모든 무사들이 정면으로 쳐들어오는 거란 말인가?

 

후방으로 움직이는 자들이 있다 했는데, 그럼 그 정보는 거짓이었단 말인가?

 

설령 거짓이 아니라 해도 숫자가 그리 많지는 않을 것 같다. 자신은 삼 할의 병력을 후방으로 돌렸거늘!

 

노태군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과 상황이 다르게 전개되자 다급히 소리쳤다.

 

“수천! 뒤를 막기 위해 가 있는 사람들을 모두 불러들여라!”

 

“예! 아버님!”

 

노태군은 적수천에게 명을 내리고 뿌드득 이를 갈았다.

 

두 배에 가까운 무사들의 숫자는 그리 문제되지 않는다.

 

개개인을 놓고 보면 은룡산장의 무사들이 훨씬 강하니까.

 

정작 그가 염려하는 자들은 사대천왕이었다.

 

그들은 일당백의 절대고수.

 

자신이 위지천백을 맡는다 해도 셋이 남는데, 사령귀안과 백골마존만으로는 그들 중 둘을 막기도 버겁다.

 

추양양을 비롯한 세 명의 호법이 힘을 합친다면 한 사람 정도는 상대할 수 있지 않을까?

 

문제는 그들 셋을 막기 위해 핵심전력을 모조리 동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악문 그는 속이 터질 것 같았다.

 

혈왕은 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혈왕만 있다면 걱정할 것도 없다. 혈왕이 사대천왕 중 둘만 막아준다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질 테니까.

 

그런데 정작 있어야 할 지금 자신의 곁에 없다.

 

자신만을 위해 움직여야 할 인형이!

 

끓어오른 분노가 노태군의 붉은 입술 사이로 분출했다.

 

“빌어먹을! 소한, 네놈이 감히 나를 배신하다니! 네놈을 잡으면 뼈를 발라서 개먹이로 던져줄 것이니라!”

 

하지만 언제까지 분노만 터트리고 있을 수는 없었다.

 

해일처럼 밀려든 적이 이미 삼백 장 앞까지 다가온 상태였다.

 

“유경.”

 

“예, 주군.”

 

“구구객에게 내가 준 약을 복용시켰느냐?”

 

방유경의 입가로 가느다란 웃음이 번졌다.

 

“예, 주군. 지금쯤 약기운이 퍼지고 있을 것입니다.”

 

노태군의 두 눈에서 살광이 번쩍였다.

 

“소모품으로 쓰기에는 아깝지만 어쩔 수 없지. 애들이야 다시 키우면 될 일……. 위지천백, 어디 누가 이기나 해보자. 혈왕이 없다고 해서 네놈을 막을 방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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