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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제 200화

무료소설 암천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319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암천제 200화

 

200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대답.

 

손양은 어이가 없는지 입만 살짝 벌린 채 말을 잇지 못하고, 옆에 있던 네 사람도 손양과 비슷한 표정으로 독고무령을 바라보기만 했다.

 

한참만에야 손양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역시나 비웃는 투로.

 

“그럼, 너도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강하겠구나.”

 

순간, 방 안에 기이한 기운이 흘렀다.

 

부드러운 그 기운은 오로가 미처 반응을 보이기 전에 방 안을 완전히 장악했다.

 

오로는 뒤늦게 그 기운의 주인이 독고무령임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들이 깨달았을 때는, 이미 태천일심의 기운이 그들의 몸을 완전히 휘어감은 뒤였다.

 

몸이 축 처지는 느낌!

 

숨을 쉬기조차 힘들어지자, 오로는 다급히 내력을 끌어올려서 태천일심의 기운에 대항하려고 해보았다.

 

바로 그때, 독고무령이 손을 들어 허공에 저었다. 마치 춤을 추듯이!

 

수천제마구겁무의 두 번째, 제마참혼겁(制魔斬魂劫)이었다.

 

일순간, 공력을 일으켜 대항하려던 오로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거대한 손이 허공에서 자신들을 짓누른다. 당장 머리 위로 떨어질 것처럼!

 

환영이라면 너무나 두려운 환영이었다.

 

정신이 짓눌리며 머릿속이 멍해지는 기분. 몸이 떨리고 사지가 축 늘어졌다.

 

그때 독고무령의 목소리가 오로의 귀청을 울렸다.

 

“저는 자만하지 않습니다. 위지천백을 얕보지도 않습니다. 어르신들이 생각한 것보다 강한 사람이 세상에는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아셨으면 합니다.”

 

목소리가 끝남과 동시 태천일심의 기운이 거짓말처럼 걷어졌다.

 

오로는 숨을 몰아쉬며 독고무령을 바라보았다.

 

가늘게 떨리는 눈에는 경악이 파도처럼 출렁이고 있었다.

 

급습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어서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그럼 다섯이 힘을 합쳐서 정식으로 겨루면 이길 수 있을까?

 

전만 해도 코웃음 치고 말았을 것이다.

 

자신들이 누군가! 

 

그러나 지금은 자신이 없었다. 

 

겨우 정신을 차린 막위지가 힘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 실력으로도 위지천백을 이길 수 없단 말이냐?”

 

“직접 싸워보지 않았으니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만, 사대천왕의 한 사람인 등후양을 생각해보면, 위지천백의 무위가 저보다 아래는 아닌 것 같습니다.”

 

“후우, 어쩌면 네 말대로, 우리가 위지천백을 너무 모르고 있었던 것 같구나.”

 

“그는 제가 상대하면 될 일, 어르신들께선 어르신들이 하실 수 있는 일을 맡아주시기 바랍니다.”

 

손양이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힘없이 말했다.

 

“제길……. 정말 늙긴 늙었나 보군.”

 

 

 

* * *

 

 

 

제왕오로와 헤어진 독고무령은 곧바로 운양의 방으로 갔다.

 

이야기를 해놨는지 운양의 방을 지키던 경비무사들은 독고무령을 순순히 안으로 들였다.

 

“이야기는 잘 끝났습니까?”

 

운양이 웃음 지으며 말했다. 궁금한 게 잔뜩 있을 텐데도 내색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전과 달라진 면이 적지 않게 보인다.

 

허둥대지 않고, 집착하지 않고, 넓게 본다.

 

제왕밀위에 의해 풍운장이 피로 뒤덮인 날 이후부터인 듯했다.

 

독고무령은 기꺼운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는 암천오로(暗天五老)라고 부르도록 하게.”

 

완벽히 암천회의 사람이 되었다는 말.

 

운양은 환호라도 지르고 싶은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정말 잘 되었군요. 그분들과 진가의 사람들이 합류한 이상, 이제는 제왕성이 달려들어도 겁날 것 없습니다.”

 

적어도 태원 안에서는 제왕성도 함부로 날뛸 수 없다.

 

전에는 멋모르고 방심하다 당했지만, 이제는 아니다. 암천회의 모든 사람이 감시하고 있는 상황. 제왕성의 무사들이 대규모로 들어오면 곧바로 대응할 수 있는 것이다.

 

독고무령은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내일 아침에 출발할 거네. 내가 말해준 사람들을 지하로 데려오도록 하게. 그동안 잠깐 나가서 볼일 좀 보고 오지.”

 

 

 

 

 

 

 

제8장 의문(疑問) 그리고 남행(南行)

 

 

 

 

 

태평객잔은 그리 화려한 객잔이 아니었다.

 

하지만 내부 장식이 화려하지 않아서 오히려 사람들의 마음을 평안하게 해주는 장점이 있었다.

 

모종경이 사흘이나 태평객잔에 머무는 것은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탁.

 

찻잔을 내려놓은 모종경은 담담한 표정을 지은 채 생각에 골몰했다.

 

‘언제까지 그자를 기다려야 하는 거지? 루주께선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자에 대한 것을 알아오라 했는데, 이거 사람을 봐야 알아보든지 말든지 할 거 아닌가?’

 

암천사신 독고무령이 풍운장의 주인이라는 것은 알게 모르게 소문이 나서 그리 어렵지 않게 알아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암천사신이 제왕성과 은룡산장의 협공에 당해서 행방불명이라는 소문이 들려온 것이다.

 

겨우 찾았는데 또 행방불명이라니!

 

그는 데려온 수하 둘을 시켜 지난 사흘 동안 암천사신 독고무령에 대한 것을 알아보았다.

 

태원에서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점소이도 알고, 삼류무사들도 알고, 거지들도 알았다.

 

그들로부터 어느 날 밤에 벌어진 암천사신과 제왕성 비밀무사들 간의 싸움에 대한 것을 들었다.

 

하지만 그들이 아는 것은 그것이 전부였다. 심지어 그의 얼굴을 알고 있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오히려 얼굴을 알고 있는 자신이 그들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셈인 것이다.

 

‘제길, 풍운장으로 찾아가서 직접 물어볼 수도 없고…….’

 

모종경이 눈살을 찌푸린 채 속으로 투덜대고 있는데 누군가가 문을 열었다.

 

모종경은 자신의 수하가 들어온 줄 알고 잔뜩 짜증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들어온 사람은 수하가 아니었다.

 

옆구리에 특징 없는 검을 찬 평범한 얼굴의 청년이었는데, 짙은 갈색 옷을 입은 그는 인피면구를 쓴 독고무령이었다.

 

독고무령은 태연하게 방문을 닫고 모종경을 향해 돌아섰다.

 

“누군가?”

 

“당신에게 물어볼 것이 있어서 왔소.”

 

모종경은 다리에 힘을 주고 언제든 반격을 취할 수 있는 자세를 취했다.

 

“허락도 받지 않고 들어와서 물어볼 것이 있다? 내가 물어본 것에 대해선 대답도 않고 말인가?”

 

독고무령은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모종경이 앉아 있는 탁자 앞으로 다가갔다.

 

탁자 앞에 멈춰선 그는 목소리를 살짝 변형시켜 모종경에게 물었다.

 

“이곳에 무슨 일로 온 거요?”

 

“무, 무슨 말인가?”

 

“정주에서 이곳까지 왔을 때는 목적이 있을 것 아니오?”

 

모종경은 눈을 부릅뜨고 독고무령을 바라보았다.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내 친구 중 하나가 당신을 알아보았소. 그가 그러더구려. 당신을 정주 추월루에서 봤다고 말이오. 본래는 그 친구가 오려고 했는데, 다른 일로 바빠서 나를 보냈소.”

 

추월루라는 이름이 나오자 모종경의 얼굴이 창백하게 굳어졌다.

 

그 이름을 알고 있다면, 앞에 있는 청년의 친구가 바로 그날 추월루에 왔던 사람 중 하나라는 말.

 

그렇다면 부정한다는 것 자체가 쓸데없는 일이었다.

 

“난…… 그냥 태원에 볼 일이 있어서…….”

 

독고무령은 짐짓 인상을 쓰며 모종경을 압박했다.

 

“말하지 않겠다면 별수 없이 강제로 입을 여는 수밖에 없소. 죄 될 게 없다면 말해줘도 될 것 같소만. 내 친구 말로는, 추월루주가 보내서 온 것 같다고 하던데, 아니오?”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말한다.

 

모종경은 더 버티기가 힘들었다. 어차피 이렇게 된 이상 어느 정도는 사실대로 말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게…… 루주의 명을 받고 온 것뿐이다.”

 

“뭘 알아보라고 보낸 것이오?”

 

“그날 추월루에 왔던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알아보려 한 것뿐, 다른 이유는 없다.”

 

“혹시 유하령에 대한 것을 알아내서 온 것은 아니오?”

 

모종경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반문했다.

 

“유하령?”

 

유하령에 대해 조금도 모르는 사람의 표정. 거짓된 표정이 아니다.

 

그럼 정말로 단순히 자신에 대한 것을 알아보려 한 것인가?

 

이번에는 독고무령이 의아한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정말 그 이름을 모르시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군.”

 

이상한 일이었다.

 

앞에 있는 자는 추월루의 부총관이다. 추월루주와 조병탁이 유하령에 대한 것을 알아보고 있다면, 그 이름을 모를 리가 없다.

 

그들은 유하령에 대해 아무런 신경도 쓰고 있지 않은 건가?

 

그럴지도 몰랐다. 그들에게는 사라진 유하령을 찾을 의무가 없지 않은가.

 

독고무령은 씁쓸한 마음과 약간의 분노가 동시에 일었다.

 

신경 써서 알아보고 있다고 했는데, 그럼 운양이 보낸 사람에게 여태 거짓된 말만 했다는 건가?

 

부총관이 유하령이라는 이름을 모를 정도라면 그럴 가능성이 컸다. 그들이 사람을 부렸다면, 최소한 그 이름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추월, 그날의 일에 대해서 앙갚음하려고 나를 찾으려 하는 거냐?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냐?’

 

그 어떤 것이든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당신의 주인에게 전하시오. 혹시라도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다면, 하지 않는 게 추월루를 위해서라도 좋은 거라고 말이오.”

 

독고무령은 그 말만 남기고 몸을 돌렸다.

 

모종경이 다급히 그를 불렀다.

 

“이, 이보게! 나도 한 가지 물어볼 게 있네.”

 

“물어보시오.”

 

“대가는 충분히 줄 테니, 독고무령에 대해서 아는 대로 말해주게나.”

 

독고무령은 아주 간단하게 그의 질문에 답했다.

 

“비밀이니 알려하지 마시오. 객지에 와서 죽고 싶지 않다면.”

 

 

 

* * *

 

 

 

독고무령이 돌아왔을 때는, 사람들이 지하석실에 모두 모여 있었다.

 

운양, 진사혁, 관조운, 전유곤, 사공화정, 모두 다섯이었다.

 

운양을 제외한 네 사람은 독고무령을 보더니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운양이 극도의 비밀을 요구하며 부른 것도 의아하거늘, 풍운장의 안전과 직결된 지하석실에 모르는 사람이 있다니.

 

하지만 진사혁은 곧 독고무령의 허리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숨을 멈췄다.

 

곰처럼 우직하게 생긴 그의 눈가에 물기가 맺혔다.

 

“내 그럴 줄 알았어. 그럼 그렇지. 그놈들에게 당할 자네가 아니지…….”

 

진사혁은 투덜거리듯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눈가에는 물기가, 입가에는 웃음이. 관조운과 전유곤과 사공화정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만 지었다.

 

독고무령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떠올랐다.

 

“정말 죽을 뻔했다네. 한 형과 삼공이 제 때에 와서 겨우 살아났지.”

 

관조운 등은 독고무령의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의문이 풀렸다.

 

“회주?”

 

“이런! 어디서 많이 본 체격이다 했더니……!”

 

“헛! 회주가 아니시오?”

 

웅성거리며 들썩거리는 그들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이제는 독고무령이 없는 상태에서 제왕성과 싸운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암천회에 칠팔백의 사람이 모였지만, 그것도 암천사신이 있어야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마침내 그가 돌아왔다.

 

사람들은 졸였던 마음이 한순간에 풀어지자, 쿵쾅거리는 심장을 가라앉힐 수가 없었다.

 

그것은 조금도 꾸밈이 없는 순수한 격동이었다.

 

독고무령은 대기를 타고 전해지는 격동의 열기를 느끼고 조용히 포권을 취했다.

 

“그동안 걱정을 끼쳐 미안하오.”

 

잠깐 사이 눈가의 물기를 슬쩍 닦아낸 진사혁이 소리치듯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한 형에게 들어보니까, 혈왕의 장력에 맞고 숲속에 떨어진 후 사라졌던데. 이제 몸은 괜찮아? 왜 이런 곳에서 보자고 했지?”

 

한꺼번에 세 가지 질문을 던진 진사혁은 커다란 눈을 부릅뜨고 독고무령의 입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독고무령은 차분한 말투로 질문에 대답했다.

 

“숲을 벗어나다가 암벽의 틈새로 빠졌다네. 낙엽이 두텁게 쌓여 있어서 미처 알 수가 없었지. 다행히 그곳에서 몸을 다 고치고 나왔다네. 그리고 내가 이곳에서 보자고 한 것은, 아직 나에 대한 것이 알려지면 안 되기 때문이네.”

 

이후 운양에게 했던 말을 간단하게 설명한 독고무령은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진사혁이야 말할 것이 없고, 관조운과 전유곤, 사공화정의 무위도 이미 절정의 마지막 단계에 올라있는 상태였다.

 

옆에서 조금만 도와준다면 곧 절정의 단계를 넘어서 초절정의 경지에 진입할 수 있을 듯했다.

 

짧은 시간 만에 그러한 경지를 엿볼 수 있게 된 것은 팽팽한 긴장 속에 실전과 집중수련을 병행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독고무령은 만족한 표정으로 내일의 계획을 설명했다.

 

“내일 아침에 이곳을 떠날 거요. 함께 떠날 사람은 열 명 정도로 생각하고 있소. 미리 말하지만, 험한 길이 될 거요. 어쩌면 목숨 걸 일이 시시각각으로 닥칠지도 모르오. 강제로 명령을 내릴 생각은 없으니 사정이 있는 분은 미리 말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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