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천제 19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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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68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암천제 198화
198화
독고무령은 눈을 동그랗게 뜬 운양에게 사실을 말해주었다. 이제는 더 숨길 것도 없었고, 앞으로의 일을 위해서라도 운양이 알아야 했다.
“그러기에는 황궁과의 관계가 너무 깊어. 동창의 배후인 노태군을 치기 위해서라지만, 친왕과 도찰원, 금의위까지 망라된 세력과 손을 잡은 사람이네. 그가 과연 단순히 강호를 얻는 것으로 만족할 거라고 보나?”
운양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게…… 정말입니까?”
“내가 직접 확인한 거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 역시 그가 동창을 견제하기 위해서 그들과 손을 잡았다고 생각했지. 그런데 생각할수록 그게 아닌 것 같아.”
머리를 빠르게 굴리던 운양이 눈을 크게 뜨며 더듬거렸다.
“그럼, 설마…… 역…… 모?”
“글쎄, 그것까지는 모르겠네. 다만 분명한 것은, 그의 욕심이 산서 강호를 차지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거라는 거지.”
산서 강호를 놓고 싸우는 것만 해도 엄청난 일인데, 그보다 상황이 훨씬 심각하다.
황궁이라니! 역모라니!
운양의 어깨가 후드득 떨렸다.
“흐으……. 제길, 이거 보통 문제가 아니군요.”
역모에 휘말리면 단순히 제왕성만 무너지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산서의 강호문파 전체에 벼락이 떨어질 것이다.
흑도의 세력도 거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
황궁은 본보기를 보이기 위해서라도, 도검을 든 자 누구든 용납하지 않을 테니까.
과거 막위지가 염려했던 것처럼.
독고무령은 운양이 잔뜩 웅크린 걸 보고 담담히 말했다.
“너무 걱정할 건 없네. 나도 나름대로 생각한 것이 있으니까. 최소한 암천회는 황궁의 위세에 눌려 지내지 않을 것이네.”
“정말 그렇게 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그리 되기 위해선 조건이 하나 있네. 제왕성이 우리 손에 무너져야 한다는 것.”
운양의 눈빛이 파르르 떨렸다.
제왕성을 무너뜨려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문제는 제왕성의 힘이 최고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사대천왕이 모두 몰려왔고, 산서의 강호인들이 천 명이나 제왕성을 돕기 위해 가담하지 않았는가.
과연 그러한 제왕성을 암천회가 이길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하면 승률이 이 할도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하다. 왜 이렇게 가슴이 떨린단 말인가?
“우리가 이길 수 있을까요?”
“승률이 일 할만 되도 가능성은 있는 법이지. 그런데 내가 보기엔 승률이 일 할은 넘을 것 같네. 그럼 충분해. 시간은 아직 많으니까.”
말을 맺는 독고무령의 두 눈에서 신광이 번뜩였다.
전보다 더 맑고 깊은 눈빛.
한없이 빨려 들어갈 것만 같다.
운양은 그 눈빛의 의미를 깨닫고 어이가 없었다.
‘뭐, 뭐야? 다 죽을 만큼 부상을 입은 것 아니었나? 한 형과 삼공 어르신은 분명 그렇게 말했는데……. 어째 전보다 더 강해진 것 같잖아?’
하여간 불가사의한 친구다.
도대체 그 끝은 어디일까?
그때 독고무령이 물었다.
“제왕성은 이번 기회에 은룡산장과의 싸움을 마무리 지으려 할 거네. 더 시간을 끌어봐야 좋을 게 없다는 걸 그들도 알고 있으니까 말이야. 일단 돌아가고 있는 상황을 알았으면 싶군.”
속으로 한숨을 내쉰 운양은 먼저 진가철방의 일을 꺼냈다.
그는 진사혁으로부터 들은 진가철방에서 벌어진 일을 모두 말하고, 진사혁과 진원명을 비롯해 이십여 명의 고수들이 풍운장에 와 있다는 것도 말해주었다.
독고무령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어르신이?”
“그분도 회주를 만나보고 싶어 합니다.”
당분간 밀호방에 있으며 자신의 복귀를 비밀로 붙이려 했다. 최소한 제왕성과 은룡산장의 대회전이 끝날 때까지만이라도. 위지천백이 알면 상황이 또 달라질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아무래도 계획을 조금 바꿔야 할 것 같다.
“그분을 이리 모시고 오게. 나에 대한 말을 하지 말고. 적을 속이려면 나부터 속여야 하니까. 그런데 혹시 혈왕에 대한 정보는 들어온 것이 없나?”
“그게…… 오리무중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회주님과 혈왕 중 누가 먼저 나타나나 내기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지요.”
“흔적은?”
“귀신이 곡할 노릇입니다. 양천 쪽으로 움직인 것 같기는 한데,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고 있습니다. 수백 리 밖으로 떠나갔다면 모를까…….”
그 말이 떨어진 순간, 독고무령의 눈 깊은 곳에서 이채가 번뜩였다.
‘수백 리 떨어진 곳?’
운양은 독고무령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모르기에 자신의 말을 이어갔다.
“좌우간 은룡산장은 혈왕을 찾느라 혈안이 되어 있는데, 현 상태라면, 설사 혈왕이 돌아온다 해도 제왕성을 막아낼 수 없을 것입니다. 사대천왕이 모두 모였다는 말에, 선택을 망설이던 산서의 강호인들이 제왕성 쪽에 붙었거든요.”
혈왕은 누구도 예상치 못했을 만큼 강했다.
운양은 모른다. 아니, 다른 누구도 모른다. 그가 얼마나 강한지.
그가 있다면 상황이 달라질 것이다.
그런데 은룡산장의 가장 중요한 전력인 그가 없다.
위지천백이 운이 좋은 것인가, 아니면 그것도 위지천백의 머릿속에 들어있던 것인가?
지나친 억측일지 모른다. 제정신이 아닌 혈왕이 위지천백과 연관되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말이다.
‘어쩌면 없는 게 나을지도. 잘못하면 소천이 죽을지도 모르니…….’
독고무령은 차라리 그렇게 생각하기로 하고 잠시 혈왕에 대한 이야기는 뒤로 미뤘다.
“천룡방 일에 대해선 들었겠지?”
운양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들었습니다. 북리사웅, 그 빌어먹을 놈이 겁나서 도망쳤다더군요. 그래봐야 혈왕에게 걸려서 반 수 이상이 참혹하게 죽고 말았지만 말입니다.”
역시 소전의 말대로 혈왕이 천룡방의 무사들을 죽인 것 같다.
운양이 확신하듯이 말할 때는 그만한 증거가 있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배신을 하더니 결국 그 꼴이 되었군.’
언제고 기회가 되면, 천룡방에 그날의 일을 추궁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최소한 한 사람만큼은 예외였다.
‘장만익, 그날 당신이 보여준 기개를 생각해서, 언제든 당신의 부탁을 한 가지 들어주지.’
독고무령은 스스로와 약속하고 운양을 직시했다.
“사상자가 얼마나 났지?”
운양의 표정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사십 명이 죽고, 백 명이 넘게 부상을 입었습니다.”
“삼공 어르신은?”
“도공 어르신은 중상을 입어서 상당기간 치료를 받아야 할 것 같고, 불공 어르신과 선공 어르신은 그래도 좀 나은 편입니다.”
독고무령은 속으로 안도했다. 혈왕의 손아래서 죽지 않고 살아왔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모두 몇 명이나 되지?”
“흑도삼당의 사람을 제외하고도 칠백입니다.”
칠백. 생각했던 것보다 많다. 그만큼 운양이 기를 쓰고 사람들을 모았다는 말.
하지만 그조차도 제왕성의 전력에 비하면 반도 되지 않는다. 그나마도 제왕오로와 진가철방이 합류했기에 그 정도라도 쳐줄 수 있는 것이다.
그들만으로 제왕성과 정면으로 싸워 이긴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이상, 제왕성도 무리하지는 않을 것이네. 은룡산장과의 싸움에서 이긴다 해도 그들 역시 피해가 적지 않을 테니까. 그동안 정리할 것은 정리하고, 사람들을 더 모으도록 하지.”
그것이 바로 그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려 하는 이유였다.
자신이 모습을 드러내면, 위지천백은 무리를 해서라도 태원을 칠 것이 분명하다.
등후양에게 자신과 싸운 이야기를 들었다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턱 밑에 비수를 남겨 놓지 않는 것은 병법의 기본이 아니던가.
하지만 자신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 위지천백도 여유를 부릴 것이다.
제왕성의 힘을 정비해야 좀 더 큰 욕심을 부릴 수 있을 테니까.
자신이 생각하는 여유 시간은 최소 한 달 정도. 길면 그 이상이 될 수도 있다.
그 정도의 시일이면 몇 가지 일 정도는 처리할 수 있을 터. 그 후라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독고무령은 생각을 정리하고 운양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몇 군데는 내가 직접 가볼 생각이네. 얼굴을 드러내지 않을 생각이니, 인피면구나 좋은 것 몇 개 구해주게, 운양.”
* * *
초운이 찾아온 것은 석양이 질 무렵이었다.
“그자는 태평객잔에 머물고 있어요. 점소이에게 물어보니 객잔에 투숙한 지 사흘 되었다고 했어요.”
“그가 만나는 사람에 대해선 알아봤느냐?”
“예, 공자. 그는 두 사람을 부리고 있었는데, 그들의 행동이 조금 묘해요. 언뜻 보면 그냥 태원 일대를 쏘다니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자들이 돌아다니는 중심에 풍운장이 있어요. 아무래도 풍운장에 대해서 뭔가를 조사하고 다닌 것 같아요.”
“풍운장 주위를?”
독고무령의 두 눈에서 이채가 반짝였다.
추월루의 사람들이 풍운장을 가운데 두고 그 주위를 돌아다닌다는 것은, 그들의 목적이 자신이라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결국 자신에 대한 것을 알아냈다는 말.
하긴 자신이 본 추월은 절대 보통 여인이 아니었다. 이제야 자신에 대한 것을 알아낸 것이 의아할 정도다.
‘아니지, 내가 누군지 정도는 벌써부터 알고 있었을지도…….’
그렇다면 바로 접근하지 않는 이유가 뭘까?
자신에 대한 것을 보다 정확히 알아보려고?
운양은 꾸준히 추월루로 사람을 보냈다. 추월과 조병탁은 유하령에 대한 정보를 아직 얻지 못했다고 했다.
정보를 얻지 못했다고 했으면 그만이지, 사람까지 보내 자신에 대한 것을 알아보려는 이유는?
문제는 그것이었다.
조병탁이 유하령을 애틋하게 생각하는 마음을 모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뭔가 있지 않고서야 추월루의 주요인물을 태원에 보낸다는 것은 지나친 일처리다.
‘혹시…… 유하령에 대한 것을 아는 게 있어서……?’
자신을 믿지 못하는 한,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말하지 않을 수도 있다. 믿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지 못한 상태에서 말했다가는 자칫 그녀가 위험해질 수도 있으니까.
‘만나보면 알겠지.’
초운이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진원명이 운양과 함께 왔다.
이유도 모르고 따라온 진원명은 독고무령을 보더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네……?”
“말씀드리지 않고 모셔서 죄송합니다.”
진원명은 한참 동안 독고무령을 바라보고는 탄식하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이거야 원……. 좌우간 자네가 그리했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독고무령은 진원명이 자리에 앉자, 자신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운양에게 했던 말을 간단하게 정리해서 말했다.
제왕성에 대한 것은 물론, 앞으로 자신이 하고자 하는 계획까지.
진원명은 설명을 다 듣고 나서야 이를 갈았다.
“그랬군, 그랬어. 그래서 그놈이 우리 진가철방을 손본 거였어. 무기는 둘째 치고, 본가가 힘을 가지고 있으면 군과 관이 반기를 들 수도 있으니까 말이야.”
“혈왕이 없는 한, 은룡산장은 사기가 떨어져서 얼마 버티지 못할 겁니다. 전쟁을 승리로 끝내고나면 진가철방을 또 압박할지 모르는데, 괜찮겠습니까?”
진원명은 결연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걱정 말게. 이미 만반의 준비를 해놓았으니까. 설령 놈들에게 무너진다 해도, 우리 진가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네. 아마 우리 진가를 몰살시키려면, 놈들도 단단히 각오해야 할 게야. 철방이 놈들의 시신으로 가득 찰 테니 말이야.”
독고무령은 진원명의 말에서 물러나지 않겠다는 의지를 엿보았다. 누구도 무너뜨릴 수 없는 단호한 의지의 벽을.
그러나 제왕성도 막대한 피해를 입겠지만, 진가철방은 아예 전멸을 각오해야 한다. 굳이 위험을 자초할 이유가 없었다.
“일단 군과 관에 있는 진가의 형제들에게 전해주십시오. 절대 제왕성에 대항하려 하지 말라고 말입니다. 그 문제는 제가 생각한 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