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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제 193화

무료소설 암천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85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암천제 193화

 

193화

 

 

 

 

 

 

진사혁의 몸이 바윗덩이처럼 굳어졌다.

 

천망!

 

하늘의 그물. 단순히 풀이하면 그렇다.

 

하지만 그 안에는 봉인된 전설이 숨 쉬고 있었다.

 

진가철방은 그동안 일반 무기만을 만들어 온 것이 아니었다. 쇠를 다루는 장인들인 만큼, 암기에 대한 것도 연구를 했다.

 

그런데 팔십 년 전, 당시 가장 뛰어난 장인이었던 선조 한 분이 가공할 살상력을 지닌 암기를 만들어내고 천망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천망은 암기라 하기보다는 화탄에 가까웠다. 하지만 화약의 용도는 그리 크지 않았기에 진가철방에선 암기로 분류했다.

 

어쨌든 천망의 위력이 어찌나 강한지, 하늘의 그물이 펼쳐지면 절정고수들조차 빠져나가지 못한다는 말이 철방 내에서 공공연히 돌 정도였다.

 

그러나 선조는 만들어 놓고도 절대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천망을 시험하다가 실수해서,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 죽음을 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절정고수였던 아들이.

 

그 후로 진가철방은 암기에 대한 연구를 더 이상 하지 않았다. 

 

만든다 해도 천망보다 더 뛰어난 암기를 만들 수도 없는 터. 그 시간에 무공과 일반 도검을 만드는 일에 더 전념하기로 한 것이다.

 

진사혁도 천망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바가 있기에 몸이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천망이 정말 알려진 대로의 위력이라면, 제왕성이 쳐들어온다고 해도 상대하지 못할 것이 없다.

 

비록 백 개 정도에 불과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적 수백 명은 고혼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으니까.

 

“일단 아버님께서 일어나시는 게 우선일 것 같군요.”

 

“상황이 정리될 때까지 기다려보자. 그래도 정신이 들지 않는다면, 하는 수 없지. 내가 죄를 뒤집어쓰는 수밖에.”

 

“조부님!”

 

“내 한 목숨이 뭐가 대수란 말이냐? 오늘 내가 죽어서 가문을 지킬 수 있었다면, 놈들과 함께 죽었을 거다! 하지만 내가 죽는다 해도 놈들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치욕을 감수하고 사는 길을 택했을 뿐이야!”

 

비장함이 절절히 느껴지는 말투.

 

한번 결심하면 누구도 꺾을 수 없는 진원명의 고집이다.

 

진사혁은 토를 달지 않았다. 조부의 고집을 꺾을 자신도 없고, 지금으로썬 그 이상의 대책을 세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런 조부의 열정이 그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어서 반대라는 건 생각할 수 없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진사혁은 그만 안 해도 될 말을 해버렸다.

 

“만일 잘못된다면, 소손도 조부님과 함께 책임을 지겠습니다!”

 

진원명은 결코 손자의 결심을 대견하게 보지 않았다.

 

오히려 눈에 쌍심지를 켜고 진사혁을 야단쳤다.

 

“장차 진가를 이끌어야 할 놈이, 뭐라고? 이 늙은이와 함께 책임을 지겠다고? 에라이, 멍청한 놈! 잔말 말고 나가서 네 애비부터 돌봐!”

 

아무래도 진짜 화가 난 것 같다. 하긴 어떻게든 살아서 가문을 이끌어야 할 자신이 조부와 함께 죽겠다는 말을 했으니 화가 나는 게 당연할지도 몰랐다.

 

“예, 조부님!”

 

진사혁은 도망치듯이 진원명의 방을 나왔다.

 

진원명은 날듯이 방을 나간 진사혁의 등을 바라보며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놈, 이제 보니 등이 넓군. 내보내긴 잘 내보냈어. 저 정도면 늙은이들이 다 죽어도 걱정할 것 하나도 없겠는 걸?’

 

그러니 다 죽어도 진사혁만큼은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는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우인 진원정이 생사를 넘나들며 운공하고 있는 중이었다. 공력이 어느 정도 회복되었으니 조금이라도 도움을 줘야 했다.

 

‘늙었다고 다 죽은 뼈다귀 취급하려는 놈들에게, 늙은이의 매운 맛을 보여주겠네, 아우. 기대하게나!’

 

 

 

* * *

 

 

 

위지천백은 안으로 들어서는 백리환과 영호진광을 보며 눈을 가늘게 좁혔다.

 

행색이 떠날 때와 많이 달랐다. 아무래도 진가철방에 가서 한바탕하고 온 듯했다.

 

그의 입가에 의미모를 묘한 미소가 떠올랐다.

 

“어찌 되었는가?”

 

백리환이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하마터면 돌아오지 못할 뻔했습니다.”

 

“호오, 그 정도였나?”

 

“그런 자들이 왜 강호 일에 관여하지 않고 철방이나 하고 있는지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그들이 말하지 않던가?”

 

“선조의 유명이라는 말을 듣긴 했습니다만, 대저 어떤 사람이 명예를 싫어한단 말입니까?”

 

“그러니 별종이지. 그래, 피해가 많지는 않았는가?”

 

영호진광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여섯 명이 죽고 열두어 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끝장을 내버릴까 생각했습니다만, 대의를 위해 참았지요.”

 

끝까지 싸웠다면 몇 명이나 돌아올 수 있었을까?

 

솔직히 그게 부담스러웠다. 자신과 백리환은 몰라도, 수하와 동료들은 대부분 돌아오지 못했을 테니까.

 

진가철방은 그만큼 까다로운 상대였다.

 

백리환의 마음도 영호진광과 같았다. 그는 헛기침을 하며 말문을 돌렸다.

 

“험, 좌우간 일단 기를 눌러놓고, 제왕성에 협조하는 것만이 살길이라는 걸 알려주기는 했습니다만, 어떻게 나올지는 저도 확신을 못하겠습니다.”

 

“그 정도면 되었네. 그들의 기세가 꺾인 이상, 군과 관에 있는 진가의 사람들도 함부로 움직이지 못할 것이네. 잘못하면 본가가 무너질지 모른다는 것을 알았을 테니 말이야.”

 

영호진광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가족들이 당했으니 오히려 더 날뛸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어설프게 건들면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우리에게 진가철방을 언제든지 몰살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걸 알게 된 이상 그리하지 못할 것이네.”

 

백리환이 고개를 모로 꼬며 물었다.

 

“그래서 저희를 직접 보낸 겁니까? 저들을 확실하게 누르기 위해서?”

 

위지천백이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반문했다.

 

“뭐 그런 이유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 왜? 불만인가?”

 

“불만은 없습니다. 오랜만에 긴장해서 전력을 쏟아 봤으니까요. 뭐 몇 사람이 죽은 게 좀 아쉽긴 하지만…….”

 

약하면 죽는다. 그것이 칼날 위를 걸어가는 강호인의 운명이다. 변명은 필요 없다.

 

백리환과 영호진광은 누구보다 강호의 세계를 잘 아는 사람.

 

두 사람은 수하와 동료들이 죽은 것에 분노를 느끼긴 했지만, 돌아선 후로는 미련을 갖지 않았다.

 

“허허허, 그리 생각한다니 다행이군. 사실 자네들이나 되니까 간단하게 일을 처리하고 왔지, 그들을 완벽하게 제압하려면 본성의 감춰진 고수들이 모두 출동했어야 할 거네.”

 

“어째 칭찬 같기는 한데…….”

 

백리환과 영호진광은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위지천백은 대충 그 이야기를 끝내고 화제를 돌렸다.

 

“지금쯤 또 다른 일이 끝났겠군. 이제 본격적으로 놈들을 쓸어버리고 우리의 천하를 세우도록 하지.”

 

백리환과 영호진광의 눈에서 신광이 번뜩였다.

 

그들이 산서에 온 것은 단순히 의형인 위지천백을 돕기 위해서만이 아니었다.

 

위지천백이 제시한 조건이 그들의 마음을 흔들지 못했다면, 오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그들 역시 이번 싸움의 상대인 은룡산장이 황궁과 연관되었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사대천왕의 마음을 흔들 정도의 조건.

 

그것은 다름이 아니었다.

 

위지천백은 형형한 안광을 뿜어내는 두 사람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우리, 천하를 경영해보세! 진짜 왕이 되어서 말이야!”

 

 

 

 

 

 

 

제5장 풍운장으로 몰려드는 사람들

 

 

 

 

 

머리가 지끈거린다. 온몸이 쇠몽둥이로 두들겨 맞은 듯 감각이 없다.

 

어떻게 된 거지? 여기가 어디지?

 

눈을 뜬 것 같은데 앞이 캄캄하다.

 

꿈을 꾸고 있는 걸까?

 

꿈속이어서 눈을 감았는데도 뜨고 있다고 느끼는 걸까?

 

팔을 움직여 보았다.

 

큰 이상은 없는 것 같은데 천근만근 무겁게 들렸다. 동시에 팔에서 시작된 짜릿한 통증이 전신을 치달렸다.

 

온몸이 부서져 나가는 극한의 고통!

 

그런데 통증이 느껴지자, 지난 시간이 환영처럼 머릿속에서 스치고 지나갔다.

 

‘그래, 싸웠었지.’

 

그냥 싸운 것이 아니다.

 

제왕성과 은룡산장이 암천회를 제거하기 위해 쳐들어왔다.

 

자신은 그들을 도피시키고, 마저 전장을 벗어나려다가 등후양과 혈왕의 합공을 받았었다.

 

어렴풋이 혈왕에게 쫓기던 일이 떠올랐다. 분노에 찬 표정으로 공격하던 등후양의 얼굴도.

 

그리고 곧 한무종과 북천삼괴가 자신을 살리기 위해 앞을 막았던 일도 떠올랐다.

 

문득 혈왕의 공격을 금강불사공으로 받아내던 때가 떠오르자 이가 절로 악물렸다. 

 

‘비몽사몽간에 숲속을 달렸었지.’

 

그 후 어딘가로 떨어지는 기분이 들면서 정신을 잃었다. 자신이 현재 있는 곳이 바로 그곳인 듯했다.

 

코를 찌르는 낙엽 썩은 냄새. 몸이 낙엽에 파묻혀 있는 것 같다. 

 

독고무령은 냄새를 역겨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썩은 것이나마 낙엽이 고마웠다. 

 

아무리 금강불사공을 익혔다 해도 이토록 두껍게 쌓인 낙엽이 아니었다면 죽거나, 중상을 입었을지 몰랐다.

 

‘한 형과 삼괴 어르신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군.’

 

무사히 도망갔을까?

 

‘무사해야 하는데…….’

 

독고무령은 그들의 안전을 빌면서 눈을 다시 감았다 떴다.

 

안력을 돋우자 희미하게나마 뭔가가 보였다.

 

‘바위틈인가?’

 

저만치 앞쪽에 석벽이 있다. 석벽까지의 거리는 이 장 정도. 바위틈치고는 제법 넓었다.

 

독고무령은 힘겹게 고개를 들고 위를 바라보았다.

 

시커먼 어둠만이 보였다.

 

높이는 얼마나 될까? 출구는 있는 걸까?

 

어쨌든 중요한 것은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이다.

 

‘후우, 일단은 몸부터 추스르자. 이곳이 어디든 몸을 추슬러야 빠져나갈 수 있을 테니까.’

 

그는 눈을 감고 천천히 태천일심의 기운을 움직여 보았다.

 

태천일심의 기운은 일반적인 심법으로 쌓은 공력과는 그 근본이 다르다. 

 

내상이 깊고 임독맥에 큰 충격을 받긴 했어도, 태천일심의 기운은 별 다른 방해를 받지 않고 그의 뜻에 따라 움직였다.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걸까?

 

한 번의 운공에 평소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걸린 것처럼 느껴진다.

 

무아지경에서 깨어난 것만도 어느덧 십여 번.

 

상당히 많은 시간이 흐른 것 같다.

 

밖의 상황은 어떻게 되었을까?

 

독고무령은 일단 운공을 멈추고 몸 상태를 살펴보았다.

 

여기저기 욱신거리긴 해도 부러지거나 크게 다친 곳은 없었다. 공력도 조금은 회복된 듯했다.

 

고금 최고의 호신공을 가르친다며 자신을 두들겨 팬 마불이 오늘처럼 고맙게 느껴지기는 처음이었다.

 

‘금강불사공이 아니었다면 이보다 몇 배는 더 큰 부상을 입었겠지. 어쩌면 죽었을지도 모르고.’

 

공력은 이 성 정도에서 더 이상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는 상태. 그래도 크게 걱정되지는 않았다.

 

심맥에 큰 타격을 입지 않았으니,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나아지지 않겠는가.

 

지금은 살아있다는 것, 움직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하늘이 고마웠다.

 

“후우우우…….”

 

길게 숨을 내쉰 독고무령은 낙엽에 반쯤 박혀 있는 검을 빼들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이곳이 어떤 곳인지 알아봐야 했다.

 

단순히 바위가 갈라진 곳인지, 아니면 양쪽이 꽉 막힌 수직갱인지, 자세한 걸 알아야 어떻게 할 것인지 결정할 수 있었다.

 

몸을 일으키자, 그제야 온몸의 뼈마디가 부서질 듯이 아우성쳤다. 몸이 떨리면서 식은땀이 절로 흐르고, 머릿속에서 번개가 치는 듯했다.

 

“으음……. 후으읍.”

 

숨을 깊게 들이쉰 독고무령은 가만히 서서 사지로 내력을 흘려보냈다.

 

몸이 후끈 달아오르며 고통이 조금씩 잦아들었다. 떨림도 천천히 진정되었다.

 

그는 느릿하니 걸음을 떼어서 낙엽더미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약간 경사진 아래쪽으로.

 

방향을 확신할 수 없는 상황. 경사의 아래쪽을 내려가는 곳이라 생각한 것이다.

 

조금 전보다 움직임이 훨씬 편했다. 다만 쪼개진 돌들이 발에 걸려서 걷기가 쉽지 않을 뿐.

 

멈칫한 독고무령은 검으로 바위를 때렸다.

 

챙!

 

불꽃이 반짝이며 찰나 간이나마 주위가 밝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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