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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제 191화

무료소설 암천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81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암천제 191화

 

191화

 

 

 

 

 

 

‘크읍!’

 

독고무령은 신음을 삼키며 뒤로 날아갔다. 

 

등후양은 되돌아온 검을 움켜쥐고는, 창백해진 얼굴로 세 걸음을 물러섰다.

 

혈왕도 눈을 부릅뜬 채, 허공에서 몸을 한 바퀴 뒤집고 땅에 내려섰다.

 

삼 장을 날아 겨우 땅에 내려선 독고무령은 더 참지 못하고 한 움큼의 피를 토해냈다.

 

“웩!”

 

“크크크, 이제야 네놈을 잡게 되는구나!”

 

혈왕이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며 독고무령에게 다가갔다.

 

십여 장의 거리가 순식간에 칠팔 장으로 줄어들었다.

 

그때 등후양이 지지 않겠다는 듯 검을 쥐고 신형을 날렸다.

 

혈왕이 홱 고개를 돌리고 등후양을 향해 손을 휘둘렀다.

 

“저놈은 내 것이라고 했지, 늙은이!”

 

생각지도 못한 혈왕의 공격!

 

단순히 행동을 제지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혈왕의 공격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빌어먹을 놈!’

 

등후양은 황급히 검을 휘둘러서 혈왕의 장력을 막았다.

 

콰광!

 

형편없이 이 장가량을 밀린 등후양은 튀어나올 것처럼 불거진 눈을 한 채 혈왕을 노려보았다.

 

“네놈이 감히……!”

 

“죽고 싶다면 죽여주지. 하지만 잠시만 기다려라. 내 저놈을 먼저 죽이고 그대를 죽여줄 테니까. 후후후후.”

 

독고무령은 두 사람이 다투는 사이 뒤로 몸을 날렸다.

 

혈왕이 가소롭다는 듯 광소를 터트리며 쫓아갔다.

 

“크하하하, 어딜 가겠다는 거냐!”

 

거리가 순식간에 오륙 장으로 줄어들었다. 

 

독고무령은 이를 악물었다.

 

피를 토하면서 급격히 내력이 흔들린 터. 현 상태로는 혈왕의 추격을 따돌리기가 쉽지 않았다.

 

‘쉽게 당하진 않을 거다, 혈왕!’

 

푹.

 

그는 오른발을 땅에 두 치 정도 박아 넣어서 몸을 멈춰 세우고는, 번개처럼 신형을 돌리며 검을 뻗었다.

 

“와라, 혈왕!”

 

번쩍!

 

검첨에서 청광이 회오리치며 혈왕을 향해 뻗어나갔다.

 

혼신을 다한 일검!

 

수천제마구겁무 중 다섯 번째 춤사위의 마지막 손짓을 검으로 펼친 것이었다.

 

절대 놀랄 것 같지 않던 혈왕의 눈이 커졌다.

 

생각지도 못한 반격 때문만은 아니었다.

 

검첨에서 뻗은 청광 안에서 거대한 검이 덮쳐든다.

 

자신의 몸속에 깃든 음악한 기운이 갈가리 찢기며 비명을 지르는 것만 같다.

 

절대상극의 기운이 실린 천장(天將)의 일검!

 

혈왕은 악귀처럼 일그러진 얼굴로 소리쳤다.

 

“죽어라! 죽어!” 

 

미친 듯이 휘두르는 그의 두 손에서 핏빛 장력이 구름처럼 쏟아졌다.

 

콰르릉! 콰광!

 

번천지복의 굉음과 함께, 바위로 된 바닥이 터져 나갔다.

 

세상이 뒤집히는 충격은 단순히 바위만 부순 것이 아니었다.

 

전력을 다한 혈왕의 반격은 독고무령의 몸을 뒤로 날려버렸다.

 

독고무령은 얼굴이 흙빛으로 변한 채 오 장 밖으로 나가 떨어졌다.

 

반면 혈왕은 뒤로 대여섯 걸음을 물러난 뒤 몸을 세웠다.

 

고개를 드는 그의 두 눈에서 혈광이 번들거렸다.

 

“크으……. 죽일 놈…….”

 

그때, 혈왕의 오륙 장 뒤에서 기회를 엿보고 있던 등후양이 독고무령을 향해 날아갔다.

 

충격이 심한지, 이번에는 혈왕조차 그를 막지 못했다.

 

바로 그 순간!

 

“회주!”

 

“무령아!”

 

절벽 위에서 네 사람이 뛰어내렸다.

 

한무종과 북천삼괴였다.

 

그들은 절벽 위에서 상황을 주시하던 중 독고무령이 위험에 처하자 앞뒤 가리지 않고 뛰어들었다.

 

독고무령은 그들을 말리고 싶었지만, 몸을 가누기조차 힘든 상태인데다 말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안 돼! 그들은 당신들이 막을 수 있는 자들이 아니야!’

 

한무종이 먼저 독고무령의 앞을 막고 등후양의 공세를 차단했다.

 

쩌정!

 

가볍게 휘두른 등후양의 일검에 한무종의 몸이 옆으로 주르륵 밀렸다. 부릅뜬 눈에 핏줄이 도드라진 게 상당한 충격을 받은 듯했다.

 

하지만 등후양은 바로 독고무령을 공격할 수가 없었다. 이번에는 북천삼괴가 그의 앞을 가로막은 것이다.

 

북천삼괴를 알아본 등후양의 눈빛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이제 보니 북천의 노망난 늙은이들이었군!”

 

“흥! 너는 우리와 놀자!”

 

“킁! 남자새끼가 부상당한 사람을 공격하다니, 이름이 아깝구나!”

 

“사대천왕은 그렇게 이름을 얻었나 보군!”

 

등후양은 북천삼괴의 속을 긁는 소리에 이를 빠드득 갈았다. 

 

“이 늙은이들이!”

 

그 사이 한무종이 독고무령을 향해 소리쳤다.

 

“어서 가십시오, 회주!”

 

독고무령은 흩어지는 내력을 안간힘으로 모으고 허리를 세웠다.

 

혈왕은 방해자가 나타나자 붉은 눈을 치켜뜨고 노성을 내질렀다.

 

“너는 절대 내 손에서 도망칠 수 없다!”

 

그는 훌쩍 몸을 날려 등후양과 북천삼괴의 머리를 타넘으려 했다.

 

하지만 북천삼괴가 가만 놔두지 않았다.

 

“흥! 어린놈이 버릇이 없구나! 감히 누구 머리 위를 넘어가려고!”

 

귀도가 몸을 날려 혈왕을 막았다.

 

그러나 혼자서는 혈왕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퍼벅!

 

귀도는 혈왕의 장력에 뒤로 주르륵 밀렸다.

 

그나마도 혈왕이 약간의 내상을 입은 데다 전력을 다하지 않아서 그 정도로 그친 것이었다.

 

혈왕이 시뻘건 혈광을 번뜩이는 눈으로 귀도를 바라보았다.

 

분노가 극에 이르러 광기 어린 눈에서 혈광이 번들거렸다.

 

그는 핏빛으로 변한 두 손을 들어 올리며 음울한 목소리를 흘려냈다.

 

“누구든, 내 앞을 막는 놈은 다 찢어죽일 것이다.”

 

오싹 소름이 돋은 귀도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혈왕이 마왕이라면, 귀천사사 정도는 마졸에 불과했다.

 

세상에 이렇게 소름끼치는 인간이 있을 줄이야!

 

“흐으, 뭐 이런 괴물이 있어?”

 

그때였다. 어디선가 으스스한 소성이 가느다랗게 울렸다. 

 

삐이이이이…….

 

순간, 당장 귀도를 찢어죽이겠다고 달려들던 혈왕의 눈빛이 급격하게 흔들렸다. 

 

뇌리 저편에서 누군가가 그를 부른다. 

 

거역할 수 없는 절대의 명령.

 

혈왕의 두 눈에서 갈등이 일었다.

 

본래대로라면 소성의 부름에 응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러나 암천사신을 죽여야만 한다는 본능이 그를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한무종이 재빨리 귀도의 옆에 서서 혈왕의 앞을 막았다.

 

“회주! 어서 가십시오! 회주가 가셔야 우리도 도망치지요!”

 

독고무령도 그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저들이 혈왕을 얼마나 막아낼 수 있을까? 잘해야 삼사 초?

 

하지만 함께 있으면 모두 죽는다.

 

자신이 벗어나야 저들에게도 살 수 있는 희망이 있는 것이다.

 

독고무령은 흩어진 내력을 필사적으로 끌어 모았다.

 

잠깐 사이 내력이 끌어모은 그는 한무종과 북천삼괴에게 전음을 보냈다.

 

<내가 숲으로 뛰어들면, 그대들도 즉시 이곳을 떠나시오!>

 

그러고는 미련을 두지 않고 땅을 박찼다.

 

독고무령이 도주하는 걸 본 혈왕은 무의식중에 본능대로 움직였다. 그는 독고무령을 쫓아 신형을 날리며 일갈을 내질렀다.

 

“어림없다, 암천사신!” 

 

“어딜 가느냐, 괴물아!”

 

한무종과 귀도가 전력을 다해 그를 막았다.

 

동시에 혈왕이 휘두른 손에서 혈광이 번쩍였다.

 

콰광!

 

한무종과 귀도가 철벽에 부딪친 것마냥 뒤로 튕겨졌다.

 

핏물 섞인 신음이 한무종의 입에서 절로 튀어나왔다.

 

“크억!”

 

귀도는 팔이 부러졌는지 왼팔이 팔꿈치 부위에서 덜렁거렸다.

 

“제길! 크으읍.”

 

혈왕은 한무종과 귀도를 일수로 튕겨내고 독고무령의 뒤를 쫓았다.

 

독고무령은 혈왕의 추적을 뿌리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한 걸음이라도 더 멀어지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자신이 멀어져야 한무종과 삼괴가 살아날 가능성이 많아지기 때문이었다.

 

그나마도 다행이라면, 등후양이 마불과 치선에게 막혀서 쫓아오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가 두 번의 도약으로 십여 장을 달렸을 때다.

 

“크하하하! 암천사신, 너는 절대 내 손을 벗어날 수 없다!”

 

혈왕의 광소와 함께 뒤에서 음악한 기운이 온몸을 짓누르며 밀려드는 게 느껴졌다.

 

거리는 대충 사오 장 정도.

 

이를 지그시 악문 독고무령은 암천유성류를 펼치며 태천일심의 기운을 등으로 집중시켰다.

 

남은 공력은 삼사 할 정도. 어설픈 대항은 위기만 키울 뿐이다.

 

그는 또 한 번 혈왕의 장력을 이용하기로 했다. 위험하긴 해도 정면으로 부딪치는 것보다 나을 듯했다.

 

그에겐 금강불사공이 있지 않은가!

 

자신의 계획이 성공한다면, 십여 장 앞에 있는 숲속으로 단숨에 뛰어들 수 있을 것이다.

 

숲속이라면 평지보다 살아날 가능성이 일 푼이라도 많아질 터. 

 

‘나는 최후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내 주검을 보기 전에는 이겼다 생각하지 마라, 혈왕!’

 

혈왕의 장력이 바로 등까지 다가온 걸 느낀 그는 힘껏 땅을 박찼다.

 

순간이었다.

 

쾅!

 

천만근의 바위가 등을 후려친 듯한 충격!

 

혈왕의 장력에 튕겨진 그의 몸뚱이는 쏘아진 화살처럼 숲을 향해 날아갔다.

 

독고무령은 아득해진 정신을 붙잡기 위해서 입술을 힘껏 깨물었다.

 

언뜻, 가물거리는 귓가에 조금 전보다 더 강한 소성이 들렸다.

 

삐이익!

 

“크흐으으…….”

 

뒤이어 혈왕의 입에서 기이한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독고무령은 날아가는 와중에도 고개를 돌려 혈왕을 바라보았다.

 

우뚝 서서 고개를 쳐든 혈왕이 몸을 떨고 있다.

 

사방으로 뻗친 채 펄럭이는 머리카락. 핏빛 혈안에서 뿜어지는 혈광. 극한의 분노가 치민 모습이다.

 

결코 자신을 향한 것이 아니다.

 

그럼 누굴 향한 걸까?

 

그때 문득, 괴이한 생각이 들었다.

 

전에 보았던 얼굴은 아니어도 혈왕임은 분명하다.

 

그런데 하늘로 쳐든 저 얼굴이 왠지 낯익게 느껴진다.

 

‘왜 저 얼굴이 낯익게 느껴지는 거지?’

 

그 모든 걸 보고, 느낀 것은 찰나에 불과했다.

 

생각을 정리할 시간도 없이, 독고무령의 몸은 나무를 부러뜨리며 숲속으로 떨어졌다.

 

우지끈, 털썩!

 

“쿨럭!”

 

독고무령은 두어 차례에 걸쳐 핏물을 토해내고 검으로 땅을 짚었다.

 

뱃속에 바위가 들어찬 것처럼 몸이 무겁게 느껴졌다. 워낙 큰 충격을 받아서인지 고통조차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악착같이 정신을 차리고, 검을 지팡이삼아 몸을 일으켰다.

 

무엇 때문인지 혈왕이 공격을 멈췄다.

 

그러나 언제 자신을 쫓아올지 모르는 일. 그 전에 최대한 멀어져야 했다.

 

독고무령은 후들거리는 몸을 이끌고 우거진 숲속으로 더욱 깊게 들어갔다.

 

삼괴와 한무종이 걱정되었지만, 당장 자신이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이곳에서 멀어지는 것뿐이었다.

 

그때 혈왕의 살기에 찬 괴성이 계곡 안을 뒤흔들었다.

 

“크아아아! 모두 죽여 버리겠다!”

 

뒤이어 귀도와 마불의 고함이 들렸다.

 

“놈이 미쳤다! 도망가!”

 

“한가 꼬마야! 놈은 우리에게 맡기고 어서 피해!”

 

“어르신!”

 

“어서 무령이를 따라가라니까!”

 

“등가야! 일단 저 미친놈부터 막고 보자!”

 

등후양도 혈왕의 공세에 휘말렸는지 노성을 내질렀다.

 

“이놈! 이제 보니 완전히 미친놈이로구나! 네놈이야말로 내 손에 죽어라!”

 

갑자기 상황이 괴이하게 돌아간다.

 

독고무령은 갑작스런 혈왕의 행동이 의아했지만, 돌아설 정신도, 그럴 여유도 없었다.

 

눈앞이 안개 낀 것처럼 뿌옇게 흐려졌다. 앞에 있는 나무가 둘 셋으로 보였다. 멈추면 그 자리에서 쓰러질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순간.

 

검을 지팡이 삼아 비틀거리며 달려가는데 갑자기 몸이 아래로 푹 꺼졌다.

 

‘헛!’

 

온몸이 축 처지는 느낌!

 

겨우 잡고 있던 정신이 아득해지며 눈앞이 캄캄해졌다.

 

독고무령은 엉겁결에 급히 손을 뻗어 봤다.

 

잡히는 것은 바싹 말라버린 나뭇가지와 낙엽뿐.

 

순간적으로 몸이 허공에 붕 뜨는가 싶더니, 그것으로 현실과의 연결고리가 완전히 끊겨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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