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천제 18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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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54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암천제 189화
189화
위지천백은 결국 사대천왕을 모두 끌어들인 것인가? 그들 외에 또 끌어들인 자들이 없을까?
그건 아무도 모른다. 위지천백 외에는.
독고무령은 깊게 침잠된 눈빛으로 등후양을 직시했다.
일반적으로 무왕과 신왕의 무위는 장왕과 도왕보다 한 수 위로 알려져 있다.
도왕에게서 자신과 겨룬 상황을 보고받고 보낸 듯하다.
하지만 지금의 자신은 그때와 또 달랐다. 천궁신검이 제아무리 강하다 해도 지고 싶은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위지천백, 그대는 아직 나를 모른다!’
두 사람이 대치하고 있는 사이, 멈칫했던 싸움이 다시 불붙기 시작했다.
등후양이 나타났다는 것에 제왕성 무사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것만 같았다.
더 이상 지체하면 빠져나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
독고무령은 검을 들어 등후양을 가리켰다.
“위지천백의 능력이 놀랍기만 하군. 하지만 그대들 뜻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찰나였다. 그의 검첨에서 휘황한 청광이 번뜩였다.
승천만화의 공법에 따라 태천일심의 기운이 움직인 것이다.
검의 기운이 밀려들기 전에 만근의 압력이 먼저 짓누른다.
가슴이 답답해진 등후양은 반사적으로 손을 저으며 표정이 굳어졌다.
쿠궁!
둔중한 벽력음이 울리며 독고무령과 등후양 사이의 대지가 풀썩 들썩였다.
뒤이어 그 여파가 오 장 이내를 휩쓸었다.
쏴아아아!
해일이 밀려가듯 가공할 기운이 사방으로 퍼진다.
“헉! 피해!”
“크어억!”
미처 대피하지 못한 자들이 그 여파에 휩쓸려 사방으로 튕겨졌다.
순간적으로 독고무령의 눈 깊은 곳에서 기광이 번쩍였다.
‘방법이 있다!’
그는 옆으로 몸을 날리며 일갈을 내질렀다.
“무천단은 뒤로 물러나시오!”
상대의 공격을 겨우겨우 막고 있던 무천단의 무사들은 천명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다급히 뒤로 몸을 날렸다.
제왕성과 은룡산장의 무사들은 무천단이 물러서자 악착같이 뒤쫓으며 달려들었다.
비록 찰나 간이었지만, 그 바람에 두 세력 간에 틈이 벌어졌다.
순간 독고무령의 웅혼한 검세가 그 사이로 떨어졌다.
콰르릉!
겉보기에 유난히 화려해 보이는 뇌정진천세와 천뢰만영이었다.
무천단을 뒤쫓으려던 제왕성과 은룡산장의 무사들이 주춤거리며 독고무령의 공세를 막아냈다.
콰광! 쩌저정!
단 일 검에 서너 명의 무사들이 뒤로 튕겨지고, 그 바람에 간격이 더욱 크게 벌어졌다.
하지만 등후양이 독고무령의 행동을 그대로 놔두지 않았다.
그는 허리띠처럼 두르고 있던 연검을 풀어 손에 쥐고 독고무령을 덮쳤다.
“네 상대는 나다, 암천사신!”
황금빛 노란 검강 줄기가 황룡처럼 꿈틀거리며 달려든다.
기다리던 바!
독고무령은 빙글 몸을 돌리며 등후양의 공세에 정면으로 부딪쳐갔다.
“와라, 등후양!”
맑은 검강이 쭉 뻗는가 싶더니, 황룡과 뒤엉킨 채 터져 나갔다.
콰과과광!
강기의 파편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며 일대를 공황 상태로 몰아갔다.
독고무령은 반탄력을 이용해 뒤로 십여 장을 날아갔다.
그러고는 또다시 무천단의 무사들을 물러나게 하고 제왕성과 은룡산장의 무사들을 공격했다.
검광이 벼락처럼 번쩍인다.
사지가 잘리고 가슴이 쪼개어지며 피가 솟구친다.
처참한 비명!
공포에 질린 악다구니!
난데없이 날아들어 죽음을 내리는 독고무령은 진정 사신이나 다름없었다.
제왕성과 은룡산장의 무사들은 자신도 모르게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자신들의 주위에 수백의 숫자가 있음에도 마음속에서 한번 일어난 공포는 잠재울 수 없었다.
등후양은 자신이 이용당했다는 생각에 담담하던 얼굴이 분노로 물들었다.
“교활한 놈!”
그는 즉시 독고무령을 향해 신형을 날리며 다시 연검을 휘둘렀다.
그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독고무령이 그의 공격을 기다리고 있다는 걸.
독고무령은 등후양과 당장 생사결을 나눌 생각이 없었다.
그와 한 번씩 부딪칠 때마다 칠팔 장의 공간이 생긴다. 암천단과 무천단이 숨 쉴 틈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하기에 그는 등후양이 기왕이면 좀 더 많이, 더욱 강하게 공격해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콰과광! 쩌저정!
그렇게 삼 초의 격돌이 더 이어졌다.
독고무령은 계속 물러나고, 등후양은 공세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그 바람에 싸움의 양상이 이상하게 흘렀다.
등후양이 뭔가 이상함을 느꼈을 때는, 이미 암천회의 무사들과 제왕성, 은룡산장의 무사들이 나누어지며 그 사이에 보이지 않는 선이 그어진 뒤였다.
독고무령의 뜻을 제일 먼저 눈치 챈 것은 사마초였다. 그는 몸을 날리며 악을 쓰듯이 외쳤다.
“등 대협! 놈의 수작에 놀아나지 마십시오! 도주하기 위해서 사람들을 갈라놓으려는 겁니다!”
거의 동시에 독고무령의 목소리가 계곡을 흔들었다.
“모두 이곳을 빠져나가시오!”
기다렸다는 듯, 독고무령의 명을 전해들은 중간간부들이 일제히 소리쳤다.
“따라와라! 이곳을 빠져나간다!”
암천회의 무사들은 앞뒤 사정 보지 않고 무조건 뒤로 신형을 뺐다.
갑작스런 상황!
제왕성과 은룡산장의 무사들은 곧바로 그들을 뒤쫓지 못했다.
위지성과 적수천이 정신을 차린 것은 서로 간의 간격이 십여 장 벌어진 뒤였다.
두 사람은 독고무령의 잔수에 말려들었음을 알고 다투듯이 악을 썼다.
“놈들을 쫓아라!”
“뭐하느냐! 쫓아!”
찰나였다.
독고무령이 훌쩍 몸을 날려 추격하려는 자들의 중앙으로 뛰어들더니, 십성의 공력을 끌어 올린 채 검을 휘둘렀다.
천뢰무적파천검 중 일곱 번째, 천뢰무적세!
콰과과과…….
부챗살처럼 퍼져나가는 열여덟 겹의 검강이 부딪치는 모든 것을 부수며 흐른다.
무기도 사람도 잘라지고 터져나가며 지옥도가 펼쳐진다.
두 눈을 부릅뜬 등후양이 독고무령의 뒤를 쫓았지만, 이미 지옥은 펼쳐진 뒤였다.
그는 노성을 내지르며 연검을 휘둘렀다.
“이노오오옴!”
독고무령은 조소를 흘리며 검의 방향을 틀었다.
연속된 충격으로 내력이 흔들렸지만, 조금도 표내지 않고 오히려 일갈을 내질렀다.
“뜻대로 해주니 고맙군!”
그 말에 등후양의 눈빛이 흔들렸다. 이미 몇 번이나 이용당한 그이기에 또 이용당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렇다고 자신이 공격하지 않으면 막을 자가 없는 상황.
그는 이를 악물고 내력을 쏟아냈다.
일 검에 암천사신을 쓰러뜨리겠다는 듯!
독고무령은 수십 줄기의 황금빛 검강이 쏟아지는 것을 바라보며 검을 앞으로 뻗었다.
순간, 검첨에서 안개처럼 흘러나온 검강이 회오리치며 등후양의 공세를 차단했다.
수천제마구겁무의 일식이 검으로 펼쳐진 것이다.
쩌저저적!
찰나, 두 기운이 얽혀드는가 싶더니, 황금빛 검강이 갈가리 찢기며 터져 나가고, 대기가 진저리치며 출렁였다.
부서진 기운은 사방으로 퍼져나가며 두 사람을 중심으로 한 직경 십여 장 안쪽의 모든 것을 파괴했다.
독고무령은 연이어 두 번째 춤을 검으로 펼치며 등후양을 압박했다.
등후양도 혼신의 힘을 끌어내 독고무령의 공세에 맞섰다.
콰과광!
진정 벼락이 떨어진 것만 같았다.
고막을 터트릴 것 같은 굉음!
두 사람을 중심으로 먼지구름이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제왕성과 은룡산장의 무사들 중 반 수 이상이 두 사람의 싸움으로 인해 움직이지 못하고 멈칫거렸다.
독고무령이 바라던 대로 추격하려던 자들의 허리가 끊어진 상황.
바로 그때였다.
먼지구름 속에서 독고무령의 신형이 솟구쳤다.
칠팔 장을 솟구친 독고무령은 암천유성류를 펼쳐 일단 등후양에게서 멀어졌다.
이미 암천회의 무사들은 대부분이 숲속으로 들어간 상태.
뒤쫓는 자들과 이십여 장의 거리를 두고 있었다.
그가 암천회의 무사들을 뒤쫓는 자들의 뒤로 날아들 무렵, 뒤늦게 등후양이 독고무령을 쫓아 신형을 날렸다.
천하의 천궁신검이 산서에서 겨우 이름을 알린 청년 하나 잡지 못하고 계속 이용만 당하다니!
그의 분노가 하늘까지 닿았다.
“이놈! 네놈도 남자라면 끝까지 승부를 가리자!”
수백의 적이 있는 곳에서 승부를 가리자고?
독고무령은 대꾸할 가치도 없는 말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암천회의 무사들을 뒤쫓는 자들을 공격했다.
포위해서 공격하면 그가 아무리 강하다 해도 불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 하지만 제왕성과 은룡산장의 무사들은 결코 합공해서 공격하지 않았다.
오히려 서로의 눈치를 보며 상대에게 떠맡겼다.
비록 일시적으로 손을 잡았다 해도 적은 적. 여차하면 동료라 생각했던 자들 손에 죽을지 모르는 것이다.
독고무령은 그 점을 철저히 이용했다.
암향호접무를 펼치며 신출귀몰하는 그는 가히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의 검이 휘둘러질 때마다 사지가 잘리며 피가 튀었다.
절정의 고수들도 안색이 납빛으로 변한 채 그의 공격을 막아내기에 급급했다.
그렇게 그의 검에 대여섯 명이 쓰러질 무렵 등후양의 공세가 들이닥쳤다.
이제까지와 달리, 독고무령은 등후양을 상대하지 않고 그대로 땅을 박찼다.
앞뒤로 막히면 빠져나가기가 그만큼 힘들어질 터. 더 이상은 무리였다.
‘나중에 단 둘이 만나면, 그때 확실히 꺾어 주지!’
그때 문득, 악전고투하며 적을 상대하고 있는 장만익과 천룡방 사람들이 보였다.
열다섯 중 겨우 일곱이 남았는데, 그들마저도 미처 도망치지 못하고 갇힌 상태였다.
이대로 벗어난다면 끝날 일이었다.
그러나 죽을지 모른다는 걸 알고도 돌아온 자들을 그냥 놔둘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끝까지 말썽이군!’
독고무령은 숲 쪽으로 가려던 계획을 틀어 장만익 쪽으로 날아갔다.
그가 방향을 틀 줄 몰랐던 제왕성과 은룡산장의 무사들이 움찔하며 주춤거렸다.
하지만 등후양은 잘 되었다는 듯, 노호성을 내지르며 독고무령을 공격했다.
“이놈! 이제야 싸울 마음이 든 것이더냐! 모두 비켜라! 내가 놈을 처리할 것이니라!”
독고무령은 허공에 뜬 상태로 천뢰광혼을 펼쳤다.
한 줄기 청광이 등후양을 향해 쭉 뻗어나갔다.
등후양은 망설이지 않고 연검을 흔들어 독고무령의 공세를 막았다.
콰르릉!
뇌음이 울리며 독고무령의 신형이 허공으로 삼 장가량 치솟는가 싶더니 한 마리 대붕처럼 허공을 날았다.
얄밉게도 끝까지 자신의 힘을 이용한다.
끝내 등후양의 이성이 끊어지고, 십여 년 만에 그의 입에서 쌍소리가 튀어나왔다.
“이 빌어먹을 새끼가!”
하지만 독고무령은 그의 욕을 들어줄 겨를이 없었다.
그는 땅에 내려섬과 동시 장만익과 천룡방 무사들을 둘러싸고 있는 자들을 공격했다.
단숨에 칠팔 명을 베고 튕겨낸 독고무령은, 후방이 대충 뚫리자 장만익에게 소리쳤다.
“어서 떠나시오!”
장만익은 주름진 눈꺼풀을 파르르 떨고 이를 악물었다.
“알겠네. 모두 가자!”
피로 물든 사중인과 도정환이 힐끔 독고무령을 바라보고는 장만익을 따라 내달렸다.
독고무령은 그들이 떠나는 것을 보지도 않고 몸을 돌렸다.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등후양이 날아오는 게 보였다.
‘일 검에 승부를 내야 한다!’
승천만화를 이루어 태천일심의 기운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게 되었다 해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나마 내력 소모가 더디기에 망정이지, 전이었다면 심각한 내상을 입었을 것이다.
‘여기서 더 내력을 소모해선 안 된다.’
그럼 끝장이다. 초절정의 고수 정도를 상대할 수 있는 상태로는 절대 빠져나갈 수 없을 테니까.
이를 악문 독고무령은 검을 중단으로 들어 올리고는, 태천일심의 기운을 끌어올린 채 수천제마구겁무의 세 번째 춤사위를 떠올렸다.
순간 무엇을 보았는지 등후양의 벌겋던 얼굴이 순간적으로 하얗게 변했다.
동시에 두 사람의 검세가 이 장거리를 두고 얽혀들었다.
눈앞에서 거대한 검이 떨어진다.
전신을 갈기갈기 찢어발길 것 같은 환영!
“흐읍!”
등후양의 입에서 처음으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 와중에도 그는 연검에 전 공력을 쏟아 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