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학사 154화
무료소설 무당학사: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00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당학사 154화
자신의 뒤에 서는 방윤을 본 호현이 말했다.
“입관을 하고 돌아가겠으니 방 총관께서는 이만 장으로 돌아가십시오.”
“그래도 어떻게 공자님만 혼자 두고…….”
“저는 어린아이가 아니랍니다. 이 일은 제가 알아서 할 수 있습니다.”
호현의 말에 잠시 망설이던 방윤이 고개를 숙여 보였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말과 함께 방윤이 품에서 작은 주머니를 꺼내 내밀었다.
“이건……?”
“입관비가 필요할 것입니다.”
“그것이라면 저도 돈이 있습니다.”
죽대 선생과 제갈현진이 노자로 쓰라고 준 돈이 아직 많이 남아 있었기에 굳이 방윤에게서 돈을 받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그래도 모자랄 수 있으니 가지고 계십시오.”
주머니를 떠안기듯 내미는 방윤의 모습에 호현은 어쩔 수 없이 돈을 받았다.
“그럼 집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방윤은 공손히 고개를 숙이고는 몸을 돌려 걸어갔다.
그 모습을 보던 호현은 그에게서 받은 주머니를 열어보았다.
‘이런…….’
주머니 안에는 고양이 눈처럼 생긴 묘안석과 금강석 등의 보석들이 들어 있었다.
‘너무 과한 물건을 주시고 가셨구나.’
보석들을 보던 호현이 주머니를 품안에 넣었다.
방윤이 가고 나서 한참 후에도 호현은 여전히 줄에 서 있었다. 줄에 선 호현은 힐끗 줄 앞을 바라보았다. 이상하게 사람이 들어가면 한참이 있어도 나올 줄을 모르는 것이다.
‘입관절차가 복잡한가?’
줄을 선 사람들을 훑어보던 호현은 자신의 앞에 있는 학사를 바라보았다.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백발의 학사는 손에 든 서책 한 권을 보며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모든 사람이 인덕(仁德)을 지향하고, 인덕을 갖춘 사람만이 정치적으로 높은 지위에 앉아 인애(仁愛)의 정치를 한다면, 세계의 질서도 안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공자님의 사상인데?’
학사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공자의 사상을 계속 읊던 백발의 학사가 서책을 넘기더니 새로운 글을 읊었다.
“군주는 민중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정치를 해야 하며 백성들을 경제적으로 넉넉하게 한 다음 도덕교육을 해야 한다. 불인(不仁)한 군주는 쫓아내 인의(仁義)한 자를 군주로 세워야 할 것이다.”
‘맹자지론까지? 대체 무엇을 하는 거지?’
공자와 맹자의 사상을 읊고 있는 노학사를 호현이 보고 있을 때 노학사가 급히 서책을 덮었다.
“지금 뭐하는 것인가!”
“네?”
“지금 내 답안을 훔쳐보고 있었잖나!”
화를 내며 고함을 지르는 노학사의 행동에 호현이 의아해 할 때, 줄에 서 있던 학사들이 일제히 그들을 노려보았다.
“조용히 합시다.”
“당신들 때문에 머리가 어지럽잖습니까!”
사람들의 고함에 노학사가 호현을 향해 손가락질을 했다.
“이자가 내 답안을 훔쳐보고 있었소!”
노학사의 말에 호현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시험을 보는 것도 아닌데 지금 무슨 답안을 말하는 것입니까?”
“이놈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당연히 입관 시험에 대한 답안이 아니겠느냐!”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구나.’
노학사를 보던 호현이 물었다.
“저는 노사께서 무슨 소리를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몰라?”
“그렇습니다.”
호현의 말에 그를 노려보던 노학사가 말했다.
“회시를 치르기 위해 천유학관에 입관하러 온 것이 아닌가?”
“맞습니다.”
“이놈!”
갑자기 일갈을 지른 노학사가 호현의 멱살을 잡았다.
“그러고도 내 답안을 보지 않았다 하는 것이냐!”
자신의 멱살을 잡은 노학사의 손을 급히 떨쳐낸 호현이 말했다.
“대체 왜 이러십니까? 저는 천유학관에 입관을 하러 왔을 뿐, 노사의 답안을 보려고 한 적이 없습니다.”
“입관을 하러 왔으니 내 답안을 훔쳐보았겠지!”
막무가내로 자신의 답안을 훔쳐보았다고 날뛰는 노학사를 호현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 모르겠구나.’
얼굴이 붉어진 채 화를 내고 있는 노학사를 보던 호현이 포권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저는 호북 방헌학관에서 온 호현입니다. 무언가 오해를 하고 계신 듯한데 저는 노학사님의 답안을 보려고 한 적이 없으며, 또한 무슨 문제에 대한 답안인지도 알지 못합니다.”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예를 보이는 호현의 모습에 노학사가 그를 노려보았다.
“흥! 나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자신의 말을 믿지 않는 노학사의 모습에 호현이 졌다는 듯 양손을 들어 보였다.
“그럼 믿지 마십시오. 저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흥! 남의 답이나 훔쳐보려는 자가 이곳이 어디인 줄 알고. 네놈은 절대 이곳에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
노학사의 말에 그 앞줄에 있던 서른 중반의 학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천유학관의 입관 시험은 남의 답이나 보려고 하는 자가 넘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지요. 저런 자에게 신경 쓰지 마시고 노학사께서는 입관 시험이나 준비를 하시지요.”
자신을 거들어주는 학사의 행동에 노학사가 그 말이 옳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한 번 내 답안을 보려고 한다면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야.”
으름장을 놓은 노학사가 자신의 서책으로 고개를 돌리는 것을 보며 호현은 눈살을 찡그렸다.
호현으로서는 무슨 소리인지도 모르는 일에 추궁을 당한 격이니 화가 나기도 하고 어이가 없기도 한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어른에게 화를 내는 것도 예가 아니기에 호현은 분한 마음을 삭였다.
‘스승님과 비슷한 연배의 어른과 다툴 수도 없으니, 참아야 한다.’
노학사와의 영문 모를 시비가 끝나고 나서야 호현의 차례가 되었다.
점심때쯤 와서 해가 저물 때가 돼서야 호현의 차례가 되었으니 두 시진 이상을 이곳에서 줄을 선 셈이었다.
천유학관의 문을 들어서자 그의 눈에 한 학사가 작은 탁자를 앞에 두고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호현이 들어서자 탁자에 앉아 있던 젊은 학사가 그를 맞이했다.
“추운데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일단 입관 시험을 치르시기 전에 이거라도 한 잔 드십시오.”
젊은 학사가 탁자 옆 화로에 걸려 있던 주전자에서 물을 따라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찻잔을 내밀자 호현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자연지기를 다루게 된 이후 추위를 잘 느끼지 않게 되었지만, 추운 겨울에 하루 종일 서 있다 보니 따스한 찻물이 반가운 것이다.
“감사합니다.”
찻잔을 양손으로 잡고 그 온기를 느끼고 있을 때 학사가 붓을 들었다.
“수학을 하신 학관과 학사님의 이름 그리고 나이와 향시에 합격한 해를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호북 방헌학관에서 수학한 호현입니다. 나이는 올해 열아홉이며 향시에 합격한 해는 이 년 전입니다.”
호현이 하는 말을 적어 내려가던 학사의 얼굴에 놀람이 어렸다.
‘이 년 전이라면 열일곱에 향시에 합격하였다는 말인가?’
지금 시기에 입관하러 오는 사람들은 구 할 이상이 회시를 치르기 위해 온, 향시에 합격한 거인(擧人)들이다.
그래도 별의별 연령대의 거인들을 본 학사였지만 열일곱에 향시에 합격한 사람은 보지 못한 것이다.
‘열여덟에 향시를 합격한 사람도 천재라 불리는데…… 그보다 일 년이나 더 빠르다니.’
대단하다는 듯 호현을 보던 젊은 학사가 자신이 적은 종이를 들고는 일어났다.
“따르십시오.”
학사가 앞장서서 학관 안으로 들어가자 호현이 그 뒤를 따라 움직였다.
제7-8장 합격자 없는 시험
학사를 따라 안으로 들어선 호현은 작은 방으로 안내되었다.
드르륵!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 호현은 작은 탁자에 앉아 있는 중년의 학사를 볼 수 있었다.
호현이 들어서자 힐끗 그를 본 중년의 학사가 앞에 있는 의자를 가리켰다.
“나는 천유학관에서 수신(修身)을 담당하고 있는 동관이라 하네.”
“호북 방헌학관의 호현입니다.”
“앉게.”
호현이 의자에 앉자 동관이 호현에 대해 적혀 있는 종이를 바라보았다.
종이를 보던 동관의 얼굴에 순간 놀란 빛이 어렸다.
‘열일곱에 향시 합격?’
놀란 눈으로 호현을 보던 동관이 입을 열었다.
“열일곱에 향시를 합격했다는 것이 사실인가?”
“맞습니다.”
“허! 대단하군.”
웃으며 호현을 보던 동관이 잠시 종이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입관 절차를 시작하겠네. 그럼 먼저 입관을 하려는 이유가 무엇인가?”
“회시를 준비하려 합니다.”
“그렇군.”
종이에 무언가를 적은 동관이 다시 물었다.
“그러면 회시를 치를 때까지만 천유학관에 적을 둘 생각인가?”
“그렇습니다.”
잠시 호현을 보던 동관이 입을 열었다.
“본 천유학관의 입관 시험에는 두 가지가 있네. 첫째는 본 학관에 정식으로 입관을 하려는 학사들을 위한 시험이네. 그리고 둘째는 자네처럼 시험을 목적으로 입관을 하려는 학사들을 위한 시험. 이렇게 두 가지가 있네. 자네의 경우는 물론 후자의 것이 되겠지.”
“시험은 어떻게 치르게 되는 것입니까?”
“몇 가지 질문을 할 것이네. 당연한 말이지만 그 질문에 대답을 잘하면 합격이고 아니면 불통(不通)이네.”
“알겠습니다.”
“어디 보자…….”
호현을 잠시 보던 동관이 입을 열었다.
“백성들을 다스리는 데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 생각하나?”
“인애하는 마음을 가지고 의로써 대하며 법으로 다스려야 한다 생각합니다.”
호현의 말에 동관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나름 호현의 답이 마음에 든 것이다.
“좋은 답이군. 하지만 너무 이상적인 내용 아닌가? 입관하려는 것이 아니라 학사로서는 그런 이상론으로도 충분하지만 자네는 백성들을 다스리는 위정자의 길을 가려는 사람이네. 위정자는 이상보다는 백성들의 생활에 도움이 되는 실학을 할 줄 알아야 하네.”
“옳은 말씀입니다.”
“이상론 말고 백성들을 다스리는 데 필요한 것을 이야기 해 보게.”
동관의 물음에 잠시 생각을 하던 호현이 입을 열었다.
“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법은 지금도 있네.”
“물론 법은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말하는 법은 백성들에게만 해당하는 법이 아닌 나라의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법을 말하는 것입니다.”
잠시 말을 멈춘 호현이 입을 열었다.
“군왕조차도 죄를 물을 수 있는 법이라면 세상 그 누구도 그 법의 테두리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자네 말은 군왕조차도 죄를 물을 수 있는 강한 법을 만들겠다는 말이군. 그리고 그 법의 대상은 아마 현 조정의 관료들이고 말이네.”
“그렇습니다. 관료가 저지른 죄와 부정은 일반 백성 수십, 수백의 희생을 낳게 됩니다. 윗물을 맑게 하면 아랫물은 절로 깨끗해질 것입니다.”
호현의 설명에 그를 보던 동관이 피식 웃었다.
“자네가 지금 하는 말조차도 이상론에 불과하네.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은 바로 자네가 말한 윗물이네. 그들이 자신들의 목을 조이는 법을 만들고 집행을 하리라 보는 것인가?”
자신의 말에 얼굴이 굳어진 호현을 보던 동관이 그에 대해 적혀 있는 종이를 보며 입을 열었다.
“그 정도 생각만으로 향시에 합격을 했다는 것이 놀랍군.”
비꼬는 듯한 동관을 보던 호현은 입술을 깨물었다.
“다른 할 이야기 없나? 할 이야기가 없다면 자네는 불통이네.”
불통을 주겠다는 동관의 목소리에 호현은 얼굴이 붉어졌다.
“세상의 모든 이론과 방법에는 허점이 존재합니다. 허점이 있다 하여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면 세상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렇다 해도 허점이 있는 것을 아는데 시도를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문제가 있는 정치의 폐해는 모두 백성들에게 돌아갈 것이니 말이네.”
동관을 잠시 보던 호현이 말했다.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무엇인가?”
“회시를 준비하기 위해 입관을 하는 사람들이 모두 저와 같은 문제를 받는 것입니까?”
“모두 같은 문제를 받지는 않네. 하지만 내용들은 대부분 비슷하지. 나라를 다스리는 법, 백성들을 다스리는 법, 황상을 보필하는 법 등등의 문제가 있네. 아! 혹시 자네만 문제가 어렵다고 생각을 해서 그런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