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학사 13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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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40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당학사 135화
팽화의 말에 호현이 이곳에서 지내도 되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전각 안에서 시비 둘이 걸어 나왔다.
“이곳에서 머무는 동안 호 대협의 시중을 들어 줄 초린과 정란입니다. 너희는 호 대협이 머무는 동안 불편함이 없도록 각별히 모셔야 할 것이다.”
팽화의 지시에 시비들이 작게 무릎을 굽히며 예를 취했다. 그런 둘에게 호현을 맡긴 팽화는 고개를 숙이고는 장원을 나섰다.
“저희를 따르시지요.”
꾀꼬리같이 쾌활한 목소리를 가진 초린은 단아한 외모를 가진 소녀였다. 그리고 정란은 얼굴도 동그랗고 눈도 동그랗게 생긴 것이 무척 귀여운 인상이었다.
둘의 안내를 따라 전각 안으로 호현이 들어갔다. 전각은 대청과 방 두 개, 그리고 서재와 목욕을 할 수 있는 작은 방으로 꾸며져 있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벽 곳곳에는 귀해 보이는 그림과 글씨들이 걸려 있었다.
호현이 전각을 구경하고 있을 때 정란이 옷을 들고 나타났다.
“대인, 옷을 갈아입으시지요.”
“감사합니다.”
정란이 안내해주는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던 호현의 귀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저 사람이 팽문 소가주님의 은인이라며?”
“아까 팽화 대총관께서 당부하셨잖아. 소가주님의 은인이니 모시는데 각별히 신경 쓰라고.”
“그런데 어떤 은인이지?”
“글쎄…… 복장을 보면 학사이신 듯한데…….”
“신기하네. 내가 위 무사한테 한번 알아볼까?”
“이번 참에 위 무사한테 알랑거릴 핑계를 찾아서 좋겠다?”
“어머! 얘는 내가 언제 알랑거렸다고 그러니. 너야말로 요즘 황 서기한테 알랑거리면서.”
“어머! 지금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방 밖에서 들리는 두 시비의 소리에 호현은 미소를 지었다. 자신 앞에 있을 때에는 조용한 모습이었는데 둘만 있으니 그 나이대의 소녀들의 쾌활함이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제갈연 아가씨는 잘 지내는지 모르겠구나. 방헌에 보내는 편지에 안부를 물을 것을 그랬나?’
속으로 중얼거린 호현은 옷을 갈아입고는 밖으로 나왔다. 자신이 나오는 소리에 입을 다물고 공손히 고개를 숙이는 초린과 정란의 모습에 호현이 속으로 웃었다.
“옷은 마음에 드십니까?”
초린의 말에 호현이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을 내려다보았다. 무인들이 입는 무복이었는데 질 좋은 비단으로 만들어 감촉이 무척 좋고 보기에도 좋았다.
“편하고 아주 좋습니다.”
“그럼 벗은 옷은……?”
“옷은 왜……?”
“세탁을 하려 합니다.”
“제가 알아서 하겠으니 놔두십시오.”
“아닙니다. 저희는 대인을 편히 모시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대인께서 직접 옷을 세탁하시면 저희에게 불호령이 떨어집니다.”
정란의 말에 호현이 입맛을 다시며 포권을 했다.
“그럼 수고 부탁드리겠습니다.”
호현의 말에 초린이 안으로 들어가 벗어 놓은 옷을 챙겨 나왔다.
초린이 사라지고 나자, 북경에 왔으니 뭘 해야 하나 잠시 생각하던 호현이 정란을 바라보았다.
“혹시…… 오평서라는 분을 아십니까?”
오평서는 바로 죽대선생의 큰 제자이자, 호현의 대사형이었다. 사형들이 사는 북경이니 사형들의 소식을 알아보려는 것이다.
“오평서?”
의아해하는 정란을 보며 호현이 말했다.
“예전에는 한림원 학사셨습니다만…….”
잠시 생각을 하던 정란이 고개를 저었다.
“한림원 학사이셨던 분을 저 같은 시비가 어찌 알겠습니까.”
“아, 그렇군요.”
실망스러운 표정을 짓는 호현을 보며 정란이 말했다.
“황궁에 물건을 들이는 정 총관이시라면 아는 관리 분들이 많으니 알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제가 알아볼까요?”
정란의 말에 호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정 총관이라는 분을 만날 수 있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저를 따라오세요.”
정란이 앞장서 걸음을 옮기자 호현이 그 뒤를 따랐다. 정란을 따라 하북상단을 걷던 호현이 문득 물었다.
“그런데 아까 팽화 대인이 대총관이라 들었는데 정 대인도 총관입니까?”
“저희 상단을 하북팽가에서 운영하는 것은 아시지요?”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희 상단에는 상단주가 없습니다. 대신 저희 상단에는 팽화 대총관이 계시지요. 그리고 그 밑에 비단과 식량, 소금, 철, 금 등을 각각 관리하는 열 분의 총관께서 계십니다. 그러니까 팽화 대총관께서 상단을 총괄하시고 총관들께서 각각 맡은 사업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중 정 총관께서는 황궁으로 들어가는 물품들을 관리하는 분이시고요.”
“아, 그렇군요.”
그렇게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며 걸음을 옮기는 사이 커다란 창고들이 줄지어 있는 곳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조심해서 다뤄!”
“야! 그 향낭들 똑바로 안 옮겨! 그거 한 움큼이 네놈 십년 삯보다 더 비싸!”
“빨리 빨리들 해라! 오늘 중으로 물품을 모두 정리해야 한다!”
창고 앞은 사람들의 고함으로 무척 시끄러웠다. 조용한 곳을 좋아하는 호현으로서는 상당히 적응하기 힘든 장소였다.
호현이 주위의 고함과 소란스러움에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정란이 한 노인을 데리고 다가왔다.
화려한 화의를 입은 노인이 호현에게 깊이 고개를 숙이며 포권을 했다.
“정읍이 은공께 예를 올립니다.”
과한 예를 올리는 정읍의 모습에 호현이 놀라 급히 포권을 해 보였다.
“은공이라니, 말이 과하십니다.”
“아닙니다. 팽가의 은혜로 평생을 하북상단에서 일을 해 온 이 늙은이에게 소가주와 팽가는 제 전부입니다. 그런 저에게 소가주와 팽가의 은인은 저에게도 은인입니다.”
정읍의 목소리에서 팽가를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진 호현은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 예를 계속 거절하기만 하는 것도 도리가 아니라 생각한 것이다.
‘감사한 마음은 감사히 받는 것이 도리지.’
두 사람이 서로 예를 주고받을 때 정란이 슬며시 입을 열었다.
“호 대인께서 찾는 분이 계십니다.”
정란의 말에 정읍이 고개를 들어보였다.
“호 대인께서 찾는 분의 이름이 어떻게 되십니까? 북경 일대에 제 발이 닿지 않는 곳이 없으니 제가 찾아드리겠습니다.”
“전 한림원 학사셨던 오평서라는 분입니다.”
호현의 말에 잠시 생각을 하던 정읍이 입을 열었다.
“혹 전 한림원 대학사이신 박현 노사의 제자이신 오평서 대인을 말씀하십니까?”
죽대선생의 본명인 박현이라는 말에 호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혹 어떻게 사시는지 알고 계신 것이 있습니까?”
“오평서 대인은 현재 정사품 첨도어사 직을 맡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첨도어사라는 말에 호현의 얼굴에 놀람이 어렸다. 명나라의 중앙 감찰기관인 도찰원의 높은 지위였다. 첨도어사면 도찰원 수장의 좌우 보좌관의 지위이니 말이다.
어떻게 보면 도찰원의 눈과 귀라고 할 수 있는 중요한 자리였다.
게다가 품계로만 따진다면 죽대선생이 낙향하기 전의 관직인 한림원 대학사보다 품계가 하나 더 높은 것이다.
‘대사형이 고관이 되신 것을 알면 스승님께서 무척 기뻐하실 터인데……. 게다가 도찰원이라면 나라의 기강을 바로 잡는 곳이니 더욱 좋아하실 것이다.’
기쁜 얼굴을 하는 호현의 모습에 정읍이 슬며시 물었다.
“그런데 오평서 대인과는 어찌 아는 사이이신지……?”
“제 사형이 되십니다.”
사형이라는 말에 순간 정읍의 얼굴에 경멸이 어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급히 표정을 다스린 정읍이 고개를 숙여 보였다.
“저는 해야 할 일이 있어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조금은 쌀쌀하게 들리는 정읍의 목소리에 호현의 얼굴에 의아함이 어렸다.
‘왜 저러는 거지?’
급히 사람들에게 걸어가는 정읍을 보던 호현이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는 정란을 향해 말했다.
“상단 밖으로 좀 나가 보아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에요. 길을 잘 모르실 터이니 제가 안내를 해드리겠습니다.”
“괜찮습니다.”
“아니에요. 북경의 길은 미로처럼 복잡하게 엮여 있어 처음 다니는 사람들은 길을 잃어버리기 십상이에요.”
정란의 말에 호현이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대로 북경의 길은 복잡하고도 복잡해서 오랜만에 온 그로서는 길을 찾기 어려운 것이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호현의 말에 정란이 미소를 지으며 앞장서 걸음을 옮겼다.
제6-9장 호현, 사형들을 수소문하다
북경의 거리를 걸으며 호현은 사람들에게 물어 오평서의 집을 찾고 있었다.
“첨도어사? 모르겠는데?”
“오평서? 그게 누구인데?”
“글쎄…… 모르겠습니다만.”
고관들의 집들은 유명한 편이라 쉽게 오평서의 집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 호현은 당혹스러운 눈으로 주위를 바라보았다.
아무도 첨도어사의 집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없는 것이다.
‘어찌 해야 하나?’
속으로 중얼거리던 호현의 눈에 작은 식당 하나가 들어왔다.
‘식당?’
식당을 잠시 보던 호현이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대인, 배고프시면 다른 좋은 곳이 있습니다.”
정란의 말에 호현이 고개를 저었다.
“밥을 먹으러 가는 것이 아닙니다.”
“네? 그럼 식당에는 왜……?”
정란의 말에 호현이 웃으며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 호현의 모습에 정란은 아미를 찡그리며 식당을 바라보았다.
딱 봐도 누추하게 생긴 것이, 좋지 않은 식당이었다.
‘대총관께서 호 대인을 편히 모시라고 돈까지 쥐어 주었는데……. 그 돈이면 일월루에서 최고급 음식을 먹어도 충분한데.’
호현 덕에 맛있는 음식을 좀 먹어 볼 수 있을까 생각을 했던 정란으로서는 맥이 풀리는 것이다.
사실 시비가 주인과 겸상을 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지만 오랜 시비 생활로 눈치가 빠른 정란이 보기에 호현은 좋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좋은 사람은 자신처럼 예쁘고 귀여운 시비를 두고 혼자만 밥을 먹지는 않는 법이다.
하지만 호현이 가자는데 시비가 안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니…… 작게 한숨을 쉰 정란은 호현의 뒤를 따라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호현과 정란이 안에 들어가자 점소이가 웃으며 그 둘을 반겼다.
“어서 옵셔! 자, 이리로 앉으십시오.”
점소이의 안내를 받으며 탁자에 앉은 호현이 문득 정란을 바라보았다.
자신은 밥 생각이 없지만 정란은 모르는 것이다.
“혹시 정란 소저, 배고프시면 음식을 시킬까요?”
“어찌 시비가 주인과 같이 식사를 할 수 있겠어요. 저는 괜찮아요.”
정란의 말에 호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래도 앉기는 하십시오. 그렇게 서 계시면 제가 불편합니다.”
호현의 말에 정란의 아미가 순간 찡그러졌다. 예의상 한 번 거절을 한 것인데 호현이 알겠다고 바로 답을 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눈치가 없는 거야, 아니면 원래 성격이 저런 거야?’
정란이 속으로 중얼거리고는 자리에 앉았다.
그런 정란을 본 호현이 점소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간단한 차와 다과를 좀 내주십시오.”
“금방 대령하겠습니다.”
말과 함께 점소이가 돌아서려 하자 호현이 급히 말했다.
“그리고 혹 이곳이 하오문과 연결이 됩니까?”
호현의 말에 점소이가 그를 돌아보았다.
“그것은 왜……?”
아니라는 말이 아닌 왜라는 물음에 호현은 미소를 지었다. 관련이 없다면 아니라고 했을 것인데 왜라고 한 것을 보니 관련이 있기는 한 모양이니 말이다.
“하오문에 의뢰를 할 것이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기다리시면 하오문에서 사람이 찾아올 것입니다.”
점소이가 부엌 쪽으로 걸어가자 정란이 의아한 듯 호현을 바라보았다.
“하오문에 의뢰를 넣으시려고요?”
“하오문을 아십니까?”
“그럼요. 하오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나요. 하오문에 의뢰하실 것이 있으면 저에게 말씀하시지. 제 동무 중에 하오문에서 일을 하는 친구가 있거든요.”
“아, 그러셨군요. 다음에 의뢰할 것이 있으면 정란 소저에게 부탁드리겠습니다.”
정란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점소이가 간단한 다과와 차를 가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