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천제 22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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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99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암천제 225화
225화
동시에 등을 통해서 장소천의 급박해진 혈류가 감지되었다.
독고무령은 급히 걸음을 멈추고 장소천의 몸을 내려놓았다.
장소천은 서지 못하고 그대로 힘없이 주저앉았다.
고개를 돌린 독고무령의 눈에 이를 악문 장소천의 얼굴이 보였다.
어찌나 세게 물었는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아마도 자신에게 부담이 될까봐 악착같이 참은 듯했다.
멍청하게!
“소천!”
대경한 독고무령은 급히 장소천의 맥문을 잡고 상세를 확인했다.
상세는 별 다른 변화가 없었다. 그저 혈류만 빨라져 있을 뿐.
하지만 독고무령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장소천을 쳐다보았다.
“소천, 내가 누군지 알겠는가?”
장소천은 구겨진 얼굴에 억지로 미소를 띠며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혈류 속에서 미미한 사기가 느껴졌다.
참으로 질긴 기운이다. 미처 다 제거하지 못한 기운이 깊이 숨어있다가 기어 나온 것 같았다.
그러나 다행히도 장소천의 정신을 완전히 장악하지는 못한 상태였다.
“놈인가?”
독고무령의 질문에 장소천이 눈을 깜박였다. 그렇다는 듯.
“정말 끈질기군. 내가 도와줄 테니 놈을 몰아내게.”
독고무령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장소천의 명문혈에 손을 얹었다.
아무도 오가지 않는 산속이어서 방해될 것은 없었다. 문제는 시간이 얼마나 걸릴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저것 따질 때가 아니었다.
겨우 몰아낸 혈왕의 정신이 다시 장소천의 정신을 장악하고 폭주한다면, 장소천의 현재 몸으로는 버틸 수 없을 듯했다.
사기는 쉽게 제거되지 않았다. 희미한 잔재들이어서 일일이 찾아내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더구나 사기가 임맥과 독맥을 타고 머리 쪽으로 움직이다 보니 여간 조심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독고무령이 사기들을 한 올 한 올 찾아내서 태천일심의 기운으로 제압할 때마다 장소천의 몸이 움찔거리며 파르르 떨렸다.
최대한 조심하고 있음에도 장소천에게는 적지 않은 충격이 가해지는 것이다.
독고무령도 그 점을 모르지 않았다. 하기에 서두르지 않고 조심스럽게 기운을 움직였다.
시간이 오래 걸려도 하는 수 없었다.
힘이 들어도 해야만 했다.
장소천을 살릴 수만 있다면, 장이생 부부와 유유의 얼굴에서 함박웃음만 볼 수 있다면 그러한 것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컥!”
장소천이 앉은 자세에서 피를 토했다. 역시나 고약한 냄새가 나는 시커먼 피였다.
독고무령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태천일심의 기운으로 다시 한번 장소천의 임맥과 독맥을 씻어냈다.
이제는 미미하던 사기조차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적어도 몇 달은 운기해야 정상으로 되돌아오겠군.’
거의 탈진하다시피한 장소천이다. 공력의 근원이나 다름없던 혈왕의 사기가 사라진 터라, 몸이 나아도 제대로 된 무공을 펼칠 수 있을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상태다.
다행이라면, 한 번 절대의 공력을 지녔던 상태였기에, 내공을 담는 그릇인 기해혈이 바다처럼 넓어져 있다는 것이다.
‘기연을 얻는다면 빠르게 강해질 수도 있겠지.’
그 정도면 최상은 아니어도 차상은 되었다.
모든 게 만족스럽게 처리된 상황. 독고무령은 만족한 웃음을 지으며 장소천의 명문혈에서 손을 떼었다.
사기를 몰아내기 시작한 지 두 시진 만이었다.
하지만 그의 웃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고개를 쳐든 독고무령은 허공을 바라보았다.
석양은 서산 너머로 넘어가고, 붉게 타오르던 하늘은 점점 회색빛으로 물들어가는 상태였다.
그리고 그가 있는 주위로, 회색빛 하늘처럼 무거운 살기가 몰려들고 있었다.
“힘들겠지만, 잠시 내 등에 몸을 맡겨야 할 것 같네.”
아무런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독고무령도 듣지 못할 거라는 걸 알고서 한 질문이었다. 장소천은 지금 탈진해서 정신을 잃은 상태니까.
독고무령은 겉옷을 벗은 다음 장소천을 조심스럽게 등에 업었다. 그러고는 겉옷으로 장소천과 자신의 몸을 묶었다.
몸을 묶지 않고 진기로 일체시킬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리 되면 그만큼 공력 소모를 각오해야 했다.
밀려드는 기운으로 봐서 적은 상당히 강한 자들.
한 톨의 공력도 아쉬웠다.
스릉.
검을 빼든 독고무령은 허공에 대고 말했다.
“소천, 적이 왔군. 하지만 걱정 말게. 천 명의 적이 몰려와도 자네를 해하지 못할 거네.”
그때였다. 등 뒤에서 모기의 날갯짓만 한 목소리가 들렸다.
“알았…… 네.”
“응? 깨어났나?”
“방금. 조심하게…… 친구.”
독고무령의 차갑게 가라앉은 두 눈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럼 한숨 푹 자. 깨어나면 다 끝나 있을 테니까.”
“그, 그래…….”
장소천의 목소리가 잦아든다. 억지로 입을 여느라 남은 힘을 다 쓴 것 같다.
독고무령은 무심한 눈을 들어서 전면을 노려보았다.
‘누구도 너와 나의 앞을 막지 못할 것이다. 설사 하늘이라도!’
스스스스스…….
숲속에서 수억 마리의 개미들이 몰려오는 듯했다.
한 방향에서만 몰려오는 게 아니었다. 사방에서 몰려왔다.
독고무령은 검을 든 채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전면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그가 갈 길은 오직 하나!
적을 피해 다른 곳으로 향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어디 자신 있으면 막아봐라!”
순간, 그가 나아가는 숲속에서 십여 명이 튀어나왔다. 제검전과 철혈전의 무사들이었다.
독고무령은 그들을 향해 날아가며 검을 열십자로 그었다.
찰나였다. 검첨에서 맑은 청광이 쭉 뻗어나갔다.
무려 일 장에 이르는 검강은 말 그대로 벼락이었다.
콰과광!
숲을 뒤흔드는 굉음과 함께 대여섯 명이 뒤로 튕겨졌다.
“크으윽!”
“허억!”
날벼락에 대경한 무사들은 황급히 좌우로 물러섰다.
독고무령은 지체 없이 그들의 머리를 넘어 일직선으로 날아갔다.
하지만 십여 장을 가기도 전에 또다시 십여 명의 무사들이 그의 앞을 막았다.
동시에 독고무령의 검에서 번갯불 같은 청광이 쏟아졌다.
한 줄기 용권풍이 숲을 그대로 뚫어버린 것 같았다.
그의 앞을 막는 것은 무엇이든 부서졌다. 거목도, 바위도, 사람도.
뻥 뚫린 길에 수십 구의 시신이 널브러져 있는 광경은 보는 이로 하여금 공포를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맙소사! 대체 저놈이 누군데……!”
백리환은 목소리가 떨려 나오는데도 자각하지 못했다.
제왕성의 최고 정예인 제검전과 철혈의 무사 서른 명이 채 일각도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다.
어디 그뿐이랴. 그가 데려온 사람들과 영호진광이 데려온 사람들도 일곱 명이나 죽었다. 전체 인원 중 삼 할이 무너진 것이다.
그 모든 일이 벌어진 것은 단 일각 만이었다.
“놈입니다, 형님!”
영호진광이 독고무령의 정체를 눈치 채고 악을 쓰듯이 소리쳤다.
“놈이라니, 누구 말인가?”
“암천사신 독고무령!”
악을 쓰듯이 소리치는 영호진광의 눈빛이 파르르 떨린다.
백리환은 어이가 없었지만, 그를 뭐라 하지 못했다.
“저놈이 암천사신이라고?”
“놈과 부딪쳐본 적이 있습니다. 비록 얼굴은 다른 것 같지만, 분명 그놈입니다! 틀림없습니다, 형님!”
적이 정말 암천사신이라면 저들만으로는 막을 수 없다. 설령 막는다 해도 전멸을 각오해야만 한다.
하나 그 모든 걸 떠나서 피가 끓었다.
무사의, 승부사의 피가!
“우리가 나서야 할 것 같군.”
“놈의 등에 업힌 혈왕을 노린다면 의외의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영호진광의 말에 백리환의 굵은 눈썹이 송충이처럼 꿈틀거렸다.
천하의 사대천왕 중 일인인 자신이 상대의 약점을 노려야 한다고?
자존심이 상했다.
“일단 내가 먼저 놈을 시험해 보겠네.”
이를 질끈 악문 백리환은 땅을 박차고 독고무령을 향해 날아갔다.
영호진광도 그 뒤를 따라 땅을 박찼다.
백리환 혼자서 암천사신을 상대할 수 없다면 합공이라도 할 작정이었다.
그는 그만큼 위험한 자였다. 반드시 제거해야 할 자!
세 번째 벽을 뚫고 땅을 박차려던 독고무령은 뒤에서 밀려드는 가공할 기운을 느끼고 몸을 돌렸다.
커다란 체구. 무기를 들지 않은 적수공권.
독고무령은 그를 보고 한 사람의 이름을 떠올렸다.
‘장왕 백리환!’
평소였다면 검이 아닌 적수공권으로 상대해주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한가롭게 승부를 논할 때가 아니었다.
그가 바라보는 사이, 어둠을 짓이기며 묵직한 장력이 밀려들었다.
고오오오!
백리환은 지금까지 상대한 자들과 다른 절대고수. 자칫 장소천이 충격을 받을지 모른다.
더구나 도왕 영호진광마저 뒤따라오는 상황.
혼자라면 도주할 이유가 없다. 모두 죽여 버리면 되니까.
그러나 지금은 혼자가 아니다. 영호진광마저 덤벼들면 그만큼 빠져나가기가 힘들어진다.
독고무령은 천뢰만영을 펼쳐서 백리환의 장력을 흐트러뜨리며 뒤로 몸을 날렸다.
콰르르릉!
뇌음이 일며 백리환의 장세가 산산이 부서지며 흩어지고, 그사이 독고무령의 신형이 십 장 뒤로 날아갔다.
백리환은 독고무령이 자신에게 밀려서 물러서는 게 아니라는 걸 알기에 분노가 끓어올랐다.
“암천사신! 비겁하게 도망가지 마라!”
그는 노성을 내지르며 곧장 독고무령의 뒤를 쫓았다.
포위망은 다섯 겹으로 펼쳐져 있다. 비록 무사들의 피해는 있을지 몰라도, 암천사신은 자신의 손을 벗어날 수 없을 터였다.
독고무령은 네 번째 벽이 자신의 앞을 가로막자, 암천유성류를 펼치며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그러나 그가 내려서려는 곳에는 다섯 번째 벽이 대기하고 있었다.
십여 장을 날아 땅에 내려선 독고무령은 촌각도 망설이지 않고 검을 뻗었다.
찰나였다. 그의 검첨에서 흘러나온 검강이 춤을 추었다.
뇌정파혼세와 천뢰만영이 연이어지며 어둠 속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피, 피해!”
“허억! 아, 안 돼!”
단숨에 일곱 명의 무사가 목이 잘리고, 가슴이 뚫린 채 피를 뿌렸다.
“이놈!”
백리환이 노성을 내지르며 독고무령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독고무령은 홱 몸을 돌리고는, 기다렸다는 듯 뇌락절혼겁(雷落切魂劫)을 펼쳤다.
콰아아아!
백리환의 표정이 해쓱해졌다.
아직 상대의 검세는 다가오지도 않았는데 온몸이 찢겨지는 듯했다.
‘헉! 뭐 이런 검법이!’
그는 전 공력을 끌어올리고는 붕천일원장을 쏟아냈다.
순간 독고무령의 검세가 제마참혼겁(制魔斬魂劫)으로 이어졌다.
콰과과광! 쩌저저적!
“크으윽!”
백리환이 격한 신음을 토해내며 삼 장 허공으로 튕겨졌다.
독고무령은 이를 악물고 검을 치켜들었다.
장소천을 보호하느라 팔성 이상의 공력을 쓸 수 없는 상황에서 수천제마구겁무를 연이어 펼쳤다.
속이 울렁거렸다.
문제는 상대가 백리환 한 사람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여기도 있다!”
영호진광의 백색도강이 어둠을 하얗게 가르며 떨어져 내린다.
사대천왕 중 두 사람의 연이은 공세를 감당할 수 있는 자가 천하에 몇이나 되랴.
“소천, 조금만 참게!”
일갈을 내지른 독고무령은 떨어져 내리는 백색도강을 향해 검을 뻗었다.
검첨에서 쭉 뻗어나간 검강과 백색도강이 정면으로 부딪쳤다.
찰나였다.
쾅!
단발의 굉음이 울리며 영호진광의 신형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독고무령은 충돌의 반탄력을 이용해 뒤로 날아갔다.
몇 사람이 막으려 했을 때는 이미 십여 장을 벗어난 뒤였다.
“놈을 쫓아라!”
백리환이 버럭 소리쳤다. 영호진광도 비틀거리며 땅에 내려선 후 이를 악물고 다시 신형을 날렸다.
오늘이 아니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지 모른다.
무리를 해서라도 반드시 잡아야 한다.
“놓치면 안 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놈을 잡아라!”
독고무령은 영호진광의 고함소리를 뒤로 하고 숲을 벗어났다.
절대고수들과의 격돌은 아무래도 장소천에게 충격을 줄 수밖에 없었다. 맥이 점점 약해지는 걸로 봐서 예상보다 더 심한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조금만 참아라, 소천!’
일단 적들의 추격을 벗어나야 했다. 그것만이 장소천을 살릴 수 있는 길이었다.
문제는, 장소천에게 충격이 갈까봐 전력을 다해서 경공을 펼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제7장 추적(追跡), 격전(激戰) 그리고 죽음
쉬지 않고 이십 리를 달린 독고무령은 야트막한 언덕을 넘어섰다.
적과의 거리는 백여 장 정도. 간격이 좀처럼 벌어지지 않는다. 뭔가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 할 것 같았다.
‘소천이를 어디에 숨겨 놓고 놈들을 먼저 제거할까?’
하지만 장소천의 안위가 염려되어 그럴 수도 없었다.
백 리를 넘게 벗어났는데 하루도 안 되어 자신을 찾아냈다. 적들 중에 추적에 능한 자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 그자가 장소천을 찾아낼지도 몰랐다.
그가 잠시 망설일 때였다. 저만치 앞에 있는 숲속에서 어둠을 뚫고 빠르게 움직이는 자들이 보였다.
모두 열 명 정도. 얼핏 나무 사이로 보이는 자의 덩치는 그가 아는 누구만큼이나 컸다.
‘혹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