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천제 22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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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43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암천제 221화
221화
대경한 독고무령은 다급히 장소천의 혈도를 제압하기 위해 취접라와 구명절혼수 중 탈혼파를 연이어 펼쳤다.
하지만 장소천의 몸에서 폭사된 기운은 조금 전과 위력이 완전히 달랐다.
그의 몸을 감싸고 흐르는 핏빛 안개에 어둠이 진저리치며 밀려난다.
독고무령은 작정하고 공격해 봤지만, 혈무를 뚫지 못하고 맥없이 튕겨졌다.
떠덩! 쾅!
팔성의 공력만으로도 충분했거늘, 구성으로 공력을 올렸음에도 우세를 잡을 수가 없다.
독고무령은 장소천의 갑작스런 변화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기에 마음이 다급해졌다.
‘빌어먹을! 잠력을 격발시켰군!’
잠력이 격발된 이상 무리해서라도 최대한 빨리 제압해야 했다. 늦으면 장소천은 모든 공력을 쏟아내고 최후를 맞이할지 몰랐다.
“소천!”
독고무령의 입에서 외마디 이름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두 손이 흔들리며 수천제마구겁무 중 두 번째, 제마참혼겁(制魔斬魂劫)이 펼쳐졌다.
고오오오!
찰나, 독고무령의 손짓을 따라 태천일심의 기운이 휘도는가 싶더니, 그 한가운데에서 얼굴 형상이 나타났다.
아수라인지 제석천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것은 비결을 탐독한 후로 자연스럽게 나타난 형상이었는데, 막상 펼치는 그는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순간이었다. 제정신이 아닌 것 같던 장소천이 제마참혼겁을 대하고는 신음을 토해내며 뒤로 물러났다.
“끄으으으……. 이, 이게…….”
출렁이는 혈무! 괴로운 표정!
연신 물러나는 장소천의 눈빛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어찌 보면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자 심한 심적 타격을 받은 듯싶기도 했고, 또 다른 면으로는 뭔가 극심한 심경의 변화를 겪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독고무령은 그 눈빛의 의미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공격에 밀려서 분노한 것이라 여겼을 뿐.
그는 수천제마구겁무가 마공을 제압하는데 효과가 뛰어남을 알기에 더 시간을 끌지 않고 장소천을 제압할 작정을 했다.
장소천이 부상을 입을지 모르지만 하는 수 없었다.
내력이 고갈되어 선천진기마저 상한다면, 살아난다 해도 평생을 고생해야 할 터. 그보다는 나을 것이었다.
“소천! 용서해라!”
수천제마구겁무의 세 번째, 전룡참마겁(電龍斬魔劫)이 연이어 펼쳐졌다.
순간 아홉 마리의 뇌룡이 어둠과 혈무를 뚫고 장소천을 덮쳤다.
어이없는 일이 벌어진 것은 바로 그때였다.
장소천이 갑자기 고개를 흔드는가 싶더니, 그의 몸을 감싸고 있던 혈무가 씻은 듯이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독고무령이 전룡참마겁을 펼친 것은 혈무의 강함을 알기 때문이었다. 혈무를 뚫고 장소천의 혈도를 제압하려면 그 정도의 강한 무공이 아니면 쉽지 않았던 것이다.
혈무가 사라진 장소천은 무장해제된 것이나 마찬가지.
“이런!”
대경한 독고무령은 장소천의 몸을 파고들려는 아홉 줄기의 기운을 다급히 회수했다.
그러나 워낙 강력한 공격이었다.
게다가 장력은 이미 장소천의 몸에서 세 치 떨어진 곳까지 접근한 상태였다.
퍼버벅!
아홉 줄기의 기운 중 세 줄기가 장소천의 몸을 때렸다.
가까스로 위력을 반 정도 감소시켰지만, 남은 기운만 해도 바위를 부술 수 있는 거력이었다.
“크으으윽…….”
장소천은 악다문 입에서 신을 토해내며 뒤로 날아갔다.
“소천!”
독고무령은 훌훌 날아가는 장소천을 따라가며 악을 쓰듯이 불렀다.
뒤로 훌훌 날아가 바닥에 떨어진 장소천 부들부들 떨면서 간신히 입을 열었다.
“크윽, 누, 누구……?”
조금 전, 제마참혼겁을 대하는 순간 머리가 쪼개지는 고통이 찾아왔다. 제마참혼겁에 잠령혈시의 금제가 흔들리자, 장소천의 정신이 혈왕의 정신을 밀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평소보다 일각가량 빠른 변화!
반쯤이나마 정신이 든 장소천은 갈등이 일었다.
이 자리를 피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끓어오르는 기운을 모두 쏟아내서 상대와 죽을 때까지 싸워야 하는가?
그때 들려온 목소리.
“소천! 용서해라!”
자신의 이름을 아는 자다. 절절한 아픔이 느껴지는 목소리다.
누군가! 저자는 누구기에 자신을 아는 걸까?
하지만 당장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끓어오르는 기운의 정체는 선천진기. 현 상태로는 어차피 버틴다 해도 결국은 끝장이다. 소한이란 자가 최대한의 효과를 얻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이용한 듯하다. 이판사판, 격발된 잠력을 잠재우기 위해선 그만한 힘이 필요하다.
‘저자의 힘을 적절히 이용한다면 가능할지도…….’
모든 것은 찰나의 순간에 결정되었다.
자신을 아는 걸로 봐서 최악의 살수는 쓰지 않을 터. 그는 터질 것처럼 꿈틀거리는 잠력을 억눌러 몸을 최대한 보호하고 상대의 공세를 맨몸으로 받았다.
쾅!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고막이 먹먹했다.
예상대로 상대가 마지막 순간에 공력을 대부분 거두긴 했는데, 그 충격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했다.
이 장 밖으로 나가떨어진 장소천은 이를 악물고 상대를 바라보았다.
잠력으로 몸을 보호한 것만으로는 바위를 부술 만큼 강한 충격을 이겨내기에 역부족인 것 같았다. 내장이 뒤집히고 혈맥 곳곳이 끊어지며 묵직한 뭔가가 목구멍을 치고 올라왔다.
“크윽, 누, 누구……?”
겨우 한마디를 내뱉은 그는 한 움큼의 피를 토해냈다.
웩!
속이 약간 시원해지는가 싶더니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갔다.
이대로 죽는 건 아닐까? 괜히 무리를 했나?
툴툴, 웃음이 나왔다.
빌어먹을 일이다. 자신을 찾아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는데, 결국 이렇게 끝나는 건가?
‘아버지, 어머니, 유유야…….’
하얗게 빈 뇌리에 부모님과 여동생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때 누가 자신을 붙드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모든 의식이 끊어졌다.
“소천! 정신 차려라!”
독고무령은 장소천의 몸을 끌어안고 소리쳤다.
하지만 장소천은 축 늘어진 채 죽은 사람처럼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다급해진 독고무령은 장소천의 몸 상태를 빠르게 살펴보았다.
맥이 흐리긴 해도 완전히 끊어진 상태는 아니다.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그는 급한 대로 장소천의 명문혈에 손을 대고 내력을 집어넣었다. 당장 상세가 좋아지진 않을지 몰라도 맥이 끊어지는 것만큼은 막을 수 있을 터였다.
그러길 반각.
독고무령은 장소천을 조심스럽게 안아 들고 일어났다.
착잡하던 그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너무나 차가워서 한여름 밤인데도 서리가 내릴 것만 같았다.
“근처에 있는 것을 안다. 명심해라! 언제고 오늘의 일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당장 휘파람소리의 주인을 찾아서 참혹한 죽음을 내리고 싶었다. 그러나 그러한 자 열 명의 목숨보다 장소천의 목숨이 더 중요했다.
독고무령은 장소천을 안은 채 허공으로 솟구쳤다.
장소천의 내상이 엄엄하다. 한 시진이 걸릴지 하루가 걸릴지 아니면, 며칠이 걸릴지 아무도 모른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을 곳을 찾아야만 했다.
‘백천산이라면…….’
독고무령이 사라진 지 일각가량이 지날 즈음.
어둠으로 물든 숲속에서 한 사람이 나타났다. 소한이었다.
그는 완전히 폐허가 된 공터를 둘러보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어찌나 세게 움켜쥐었는지 어깨가 파르르 떨렸다.
“말도 안 돼. 어떻게, 어떻게 혈왕이…….”
오십여 장 떨어진 곳에 있어서 자세한 상황을 보지는 못했다. 다만 분명한 것은, 혈왕이 무너졌다는 것이었다.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그로선 판단에 혼란이 오지 않을 수 없었다.
‘혈왕을 이기는 놈이 있을 줄이야.’
그가 알기로, 산서에서 혈왕과 대적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넷뿐이다.
천검무왕 위지천백, 노태군, 밀천객 그리고 암천사신 독고무령.
그들 중 한 사람이 나타났단 말인가?
‘목소리로 봐서 젊은 놈이었어. 혈왕에 대해 알고 있는 것 같기도 했고. 그렇다면…… 독고무령이 이곳에?’
그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는 백천산의 혈전 이후 행방이 사라진 상태니까.
‘안 되겠어. 일단 제왕성의 공격이 끝나면 위지천백을 만나봐야겠군.’
제5장 천벽의 신공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내고
“이런 제길!”
서신을 보던 운양의 입에서 쌍소리가 튀어나왔다.
[대풍장의 정문이 열렸음. 일천 이상으로 보이는 무사들이 십로(十路)로 나뉘어져 동진 중. 위지천백도 동행.]
깊게 생각할 것도 없었다. 대풍장에 있던 전투가능인원 전부에 위지천백마저 나섰다. 그들이 동진했다면 목적지는 귀원장뿐.
예상하고 있었던 일이긴 했지만, 막상 그들의 움직임을 알게 되자 마음이 조급해졌다.
‘하필 회주가 없을 때 움직이다니!’
골이 지끈거렸다. 운양은 엄지로 관자노리를 누르며 이마를 찌푸렸다.
‘지금쯤 도착했겠군.’
서연에서 우현까지 빠르면 두 시진이면 도착한다. 신중을 기한다 해도 세 시진이면 충분하다.
‘어쩌면 지금쯤 싸움이 끝났을지도…….’
중요한 것은 결과였다.
제왕성이 최대한 피해를 입어야만 한다. 그래야 시간도 벌고, 제왕성과 한판 승부를 벌일 수 있는 상황을 만들 수 있다.
반면에 큰 피해를 보지 않았다면, 그만큼 제왕성과의 싸움이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회주가 빨리 와야 하는데.’
항상 하는 생각이지만, 독고무령과 자신은 생각의 크기가 달랐다.
작고 섬세한 계획은 나름대로 뒤진다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대세를 바라보는 관점은 감히 자신이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무한하게 느껴지는 사람이 바로 독고무령이었다.
마음이 답답해진 운양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으로 다가갔다.
창문 밖은 안개가 자욱해서, 화톳불이 뿌연 빛을 발하며 흔들리는 게 유령의 세계를 바라보는 듯했다.
‘무령, 회주, 당신은 하늘이 되시오. 나는 당신 밑에서 나만의 세상을 만들 테니까.’
* * *
독고무령이 장소천을 안아들고 숲을 떠난 지 반시진이 지날 즈음이었다.
십여 갈래로 나뉘어 대풍장을 출발한 제왕성의 무사들이 귀원장에서 십 리가량 떨어진 육반산 능선에 속속 도착했다.
먹이를 찾아 어슬렁거리던 맹수들은 피 배인 인간냄새를 맡고 황급히 자신의 굴속에 머리를 처박고, 야조들은 나무를 박차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팔백의 정예무사들이 능선에 늘어선 모습은 마치 어둠 속에 성이 쌓인 듯했다.
바람조차 숨을 죽인 밤, 육반산이 그들의 기세에 짓눌렸다.
그 시각.
위지천백은 육반산의 여섯 개 봉우리 중 가장 높은 적석봉 산정(山頂)에 서서 정면을 주시했다.
저만치 화톳불이 타오르는 귀원장이 보였다.
“현 상황은?”
그의 옆에는 위지성과 삼왕이 서 있고, 뒤에는 삼십여 명의 제왕성 간부들이 늘어서 있었다.
그가 혼잣말처럼 한마디 하자, 뒤에 서 있던 자들 중 신이당주 능효가 즉시 대답했다.
“적어도 오십여 명이 죽고 일백 이상이 부상을 입었사온데, 죽은 자 중에는 절정고수도 다수 끼어 있다 합니다, 성주. 특히 노태군을 비롯해서 사령귀안과 백골마존 등 은룡산장의 기둥이라 할 수 있는 고수들이 상당수 부상을 입어서, 족히 전력의 이 할이 그에게 당하지 않았나 추정하고 있습니다!”
“흠, 예상보다 피해가 적군.”
단 한 사람에 의한 피해다. 그것도 제왕성과 산서의 패권을 다투던 은룡산장이 당했다.
그런데도 불만이라니.
사람들의 눈에는 위지천백이 비정상적으로 보였다.
심지어 백천산에서 혈왕의 가공할 신위를 봤던 위지성조차 마찬가지 생각이었다.
“그 정도만 해도 엄청난 피해 아닙니까, 아버님?”
“노태군은 아니어도 사령귀안과 백골마존 중 하나는 죽였어야 했다. 내가 들은 만큼 강하다면 말이야.”
위지천백은 그것이 불만이었다.
그들 한 사람은 절정고수 열 명과 맞먹는 전력이다. 그만큼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말. 그런데 그들이 온전한 것이다.
그때 능효가 조심스레 말했다.
“노태군과 사령귀안과 백골마존이 혈왕을 차륜전으로 공격하던 중 정체불명의 고수가 끼어들었다고 합니다, 성주.”
“정체불명의 고수?”
“예. 정체를 알 수는 없으나, 그자가 혈왕을 유인해서 밖으로 도주하는 바람에 저들의 피해가 적어진 것 같습니다.”
흥이 돋은 듯 위지천백의 눈에서 기광이 일렁였다.
“흐음, 어느 쪽 사람 같더냐?”
“노태군과 일장의 격돌을 한 걸로 봐서, 은룡산장의 사람이 아닌 것만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노태군과 일장을 겨루었다? 결과는?”
“약간 밀리긴 했지만 큰 손해를 보지는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한 사령귀안과 백골마존의 합공도 받았는데, 크게 밀리지 않고 상대한 후 혈왕과 함께 사라졌다고 합니다.”
“그래? 그 정도 고수라면 알려진 자일 텐데, 누구지?”
“저희가 가진 인물정보에 없는 자였다 합니다.”
위지천백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 정도라면 능히 귀천사사에 뒤지지 않는 고수라는 말이다. 한데 알려지지 않은 자라니.
마음 한구석이 찜찜했다. 하지만 당장 알아낼 방법이 없는 한 미련을 두어봐야 무슨 소용이랴.
그에 대해선 눈앞의 일을 처리한 후 알아봐도 될 터. 그는 찜찜한 마음을 털어냈다.
“은룡산장의 사람이 아니란 말이지?”
“예, 성주.”
“그나마 다행이군. 좋아. 그자에 대한 것은 일단 놈들을 쓸어버린 후에 알아보도록 하지.”
말을 맺는 위지천백의 전신에서 육반산을 짓누르는 기운이 뿜어졌다.
뒤에 서 있던 간부들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마침내 때가 되었다는 걸!
아니나 다를까, 위지천백의 입에서 나직하면서도 힘이 넘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가라! 제왕성의 이름으로 은룡산장의 이름을 천하에서 지워라!”
위지성을 비롯한 삼십여 명의 간부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존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