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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제 219화

무료소설 암천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275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암천제 219화

 

219화

 

 

 

 

 

 

‘그자가 정녕 노태군과 한편이 아니라면, 제왕성이 그자를 이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가정이지만, 사실로 드러난다면 최악의 상황이다. 모든 상황이 혼돈에 빠지게 된다.

 

혈왕의 공격방향이 바뀌면 은룡산장은 엄청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결국 제왕성에 대항다운 대항도 못하고 무너질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그럴 경우 제왕성이 피해를 최소화한 채 전쟁을 승리한다는 것이다.

 

그건 독고무령이 절대 바라는 일이 아니었다. 제왕성과의 싸움이 그만큼 힘들어질 테니까.

 

독고무령이 구적삼에게 다급한 어조로 물었다.

 

“제왕성의 움직임에 대해서 들어온 소식 없소?”

 

“서연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다는 것밖에는…….”

 

“최대한 지급으로 연락해서 그들의 움직임에 변화가 있는지 알아보라 하시오. 그리고 만약에라도 그들의 대대적인 움직임이 감지되면, 태원에 연락해서 모든 힘을 집결시키고 상황을 주시하면서 대기하라 하시오.”

 

“예, 회주.”

 

본래 계획은 태원으로 돌아가서 제왕성과 은룡산장의 싸움을 지켜보며 움직일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럴 여유가 없을 것 같다.

 

현재 혈왕을 움직이는 자는 그를 그저 절대의 능력을 지닌 병기로만 생각할 테니까.

 

‘어쩌면 죽기를 바라고 있는지도. 정신이 돌아오면 자신이 위험해질 테니…….’

 

그리 되도록 놔둘 수는 없다.

 

천하의 모든 사람이 경원시하는 악마라 해도 구해야 한다. 그를 구함으로써 사람들이 자신에게 등을 돌려도.

 

그는 친구니까.

 

 

 

* * *

 

 

 

괴괴한 달빛이 유난히 창백하게 느껴지는 밤.

 

검게 물든 숲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두 사람이 걸어오는 게 보인다.

 

‘응? 누구지?’

 

귀원장의 정문위사 정소는 이맛살을 잔뜩 찌푸린 채 그들이 다가오는 것을 지켜보았다.

 

언뜻 봐서는 느리게 걷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거리는 빠르게 좁혀졌다.

 

정소는 그들과의 거리가 십여 장으로 줄어들자 두어 걸음 앞으로 나서며 소리쳤다.

 

“누군데 이 밤에 본장을 찾아온 거요?”

 

두 사람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묵묵히 정문으로 다가왔다.

 

흔들리는 화톳불에 그들의 모습이 확연히 드러났다.

 

한 사람은 오십 대의 초로인이었고, 한 사람은 이십 대 중반의 청년이었다. 

 

소한과 혈왕, 바로 그들이었다.

 

잔뜩 긴장한 정소는 동료를 힐끔 쳐다보고는, 언제라도 뽑을 수 있도록 도병에 손을 올려놓고 다시 소리쳐 물었다.

 

“신분을 밝히지 않으면 후회할 일이 생길지도 모르오! 다시 묻겠소! 그대들은 누구요?”

 

순간 소한은 걸음을 멈추고, 약간 뒤처져 있던 혈왕이 앞으로 나섰다.

 

정소는 그를 보는 순간 가슴이 옥죄어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누, 누구……?”

 

혈왕은 대답 대신 손을 저었다.

 

붉은 기운이 어른거리는가 싶더니 정소의 머리가 터져나갔다.

 

퍽!

 

약간 뒤처져 있던 세 명의 위사는 정소의 머리가 터져나가는 것을 보며 눈을 부릅떴다.

 

그들은 반사적으로 무기를 잡았지만, 손발이 의지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후후후후…….”

 

나직한 웃음소리가 혈왕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위사들은 공포에 질린 표정을 지은 채 비틀거리며 물러섰다.

 

그때 혈왕이 또 한 번 손을 휘둘렀다.

 

붉은 기운이 세 위사를 뒤덮었다.

 

무기를 빼들고 대항할 시간도 없었다. 소리라도 질러 상황을 알리고 싶었지만, 입이 벌어지지 않았다.

 

퍼버벅!

 

세 명의 위사는 몽둥이에 얻어맞은 개구리마냥 튕겨져 바닥에 널브러졌다.

 

칠공에서 배어나오는 핏물, 기괴하게 꺾인 몸뚱이. 부들거리던 그들은 곧 움직임을 멈췄다.

 

단숨에 정문위사들을 제거한 혈왕은 정문으로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쾅!

 

정문이 산산이 부서지며 안쪽으로 무너져 내렸다.

 

갑작스런 소란에 안쪽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무슨 일이냐!”

 

“헉! 뭐야? 저건?”

 

“웬 놈이냐!” 

 

몇 사람이 무너진 정문을 밟고 들어서는 혈왕을 보며 소리쳤다.

 

혈왕은 대답 대신 나직한 괴소만 흘리며 안으로 걸어갔다.

 

곧 십여 명의 무사가 무기를 빼들고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수상한 놈이다! 잡아라!”

 

그때였다. 두어 사람이 혈왕을 알아보고 경악성을 질렀다.

 

“헉! 혀, 혈왕이다!”

 

“혈왕께서 돌아오셨다!”

 

“뭐야? 혈왕이라고?”

 

달려들려던 자들은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눈앞에 있는 자가 진정 혈왕이라면 검을 들이대는 것만으로도 죄가 될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돌아온 사람은 이전의 혈왕이 아니라, 지옥의 아수라라는 걸!

 

“후후후후, 모두 죽인다. 이 안에 있는 자는 누구든…….”

 

혈왕은 괴소를 흘리며 훌쩍 몸을 날렸다. 동시에 그의 전신에서 붉은 기운이 쏟아져 나왔다.

 

어둠을 밀어내며 해일처럼 밀려간 붉은 기운은 순식간에 전면의 무사들을 덮쳤다.

 

화톳불에 반사되어 더욱 불길하게 느껴지는 붉은 기운에는 절대의 힘이 담겨 있었다.

 

무공이 약한 자들은 거미줄에 감긴 곤충마냥 꼼짝하지 못했다. 공포로 물든 그들의 두 눈은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처럼 툭툭 불거졌다.

 

그럭저럭 한수 한다는 자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낯빛이 흙빛으로 변한 그들은 혼신을 다해 뒤로 물러나며 악을 쓰듯이 외쳤다.

 

“헉! 피, 피해!”

 

“빠, 빨리 안에 알려!”

 

하지만 혈왕은 그들이 피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퍼벅!

 

핏빛 붉은 구름이 쓸고 지나간 곳에서 뭔가가 터져나가는 소리가 연이어 울렸다.

 

“끄어어…….”

 

“컥!”

 

눈 깜짝할 순간에 대여섯 명이 칠공에서 피를 쏟아내며 무너져 내렸다.

 

툭 튀어나온 눈알. 만두를 손으로 움켜쥔 것처럼 일그러진 머리통. 기괴하게 꺾여서 바짝 오그라든 몸뚱이. 정상적으로 죽은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사방에서 공포에 질린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혀, 혈왕이 미쳤다! 모두 물러나!”

 

“가까이 가지 마라! 빨리 안에다 연락해!”

 

마침내 공포의 밤이 시작 되었다.

 

 

 

고함소리와 처절한 비명이 밤하늘을 찢으며 울려 퍼진다.

 

느긋이 차를 마시던 노태군은 번쩍 고개를 들고 밖을 향해 소리쳤다.

 

“이게 무슨 소리더냐?”

 

때마침 적수천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노태군의 앞까지 다가간 그는 다급히 말했다.

 

“혈왕이 돌아왔습니다, 아버님!”

 

“뭐라고? 혈왕이 돌아왔다고?”

 

노태군은 평정심을 잃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혈왕이 돌아왔다면 위지천백이 쳐들어온다고 해도 해볼 만했다.

 

하지만 곧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왜 이곳으로 오지 않는 것이냐? 밖의 소란은 또 뭐고?”

 

적수천이 심각한 표정으로 마저 보고를 올렸다.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지금 혈왕에게 본장의 무사 수십 명이 죽음을 당했다 합니다.”

 

“뭐야! 그게 무슨 말이냐? 천아가 왜 본장의 사람들을 죽여?”

 

“아무래도 정신에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몇몇 고수들이 힘을 합쳐서 막고는 있습니다만, 그를 제압하려면 상당한 피해를 각오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버님.”

 

“이, 이런!”

 

혈왕의 마기가 폭주했다면 보통 문제가 아니다.

 

사령귀안과 백골마존이 서너 명의 초절정 고수와 함께 합세한다면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싶지만, 그조차 확신할 수가 없다.

 

“가보자!”

 

 

 

* * *

 

 

 

산을 넘자, 저 멀리 십여 개의 화톳불이 밝혀진 거대한 규모의 장원이 보였다. 귀원장이었다.

 

밤하늘에 메아리처럼 울려 퍼지는 고함과 비명소리!

 

독고무령은 끝내 우려하던 일이 벌어졌음을 알고 표정이 굳어졌다.

 

‘늦었나?’

 

싸움이 벌어진 이상 장소천을 구하려면 적진에 뛰어들어야만 한다. 더군다나 장소천은 혈왕인 상태여서 자신조차 적으로 여기고 손을 쓸 것이 분명하다.

 

여차하면 혈왕과 은룡산장의 무사들을 모두 상대해야 할지 모르는 일. 기름동이를 안고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꼴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가지 않을 수 없는 길이다.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지 않기만을 바라는 수밖에.

 

 

 

장원에 가까워질수록 싸우는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렸다.

 

밀호방의 정보에 의하면 귀원장 주위에는 철저한 감시망이 펼쳐져 있다고 했다.

 

그러나 안에서 발생한 일 때문인지, 그토록 철저하던 감시망이 많이 흐트러진 듯 보였다.

 

그 덕에 장원의 서쪽 담장까지 별 어려움 없이 접근한 독고무령은 유령처럼 담장을 넘어 안으로 들어갔다.

 

 

 

지옥의 아수라!

 

혈왕이 바로 아수라였다.

 

그의 손에 죽은 자만 사오십 명. 부상자는 그보다 훨씬 많았다. 그 한 사람에 의해 은룡산장의 무력이 통째로 흔들리고 있는 상황.

 

노태군은 노성을 내지르며 혈왕을 공격했다.

 

“이놈! 정녕 미쳐버린 것이더냐!”

 

그의 무공은 혈왕이 지닌 혈왕잠천마공과 비슷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황궁무고에서 얻은 마공을 익힌 후 혈왕잠천마공을 얻었으니까.

 

순수한 혈왕잠천마공을 익힌 혈왕과 두 가지 마공을 익힌 노태군의 대결은 경천동지의 상황을 연출하며 귀원장을 뒤흔들었다.

 

팽팽한 박빙의 대결!

 

바닥이 파여 만들어진 웅덩이만도 대여섯 개, 장원의 암석과 나무들은 가루로 부서진 지 오래다.

 

워낙 가공할 기운이 휘몰아치다 보니 누구도 두 사람의 격전장으로 들어서지 못했다.

 

하지만 노태군은 혼자서 혈왕을 상대할 마음이 없었다. 혈왕을 잡고자 자신이 부상당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게다가 그는 혈왕을 죽이고 싶은 마음 자체가 없었다. 왜 미쳐버렸는지 사로잡아서 알아봐야 했다.

 

그는 자신의 내부가 흔들릴 때마다 옆에서 대기하고 있는 사령귀안과 백골마존을 내세웠다.

 

“혈왕도 지쳤다! 쳐라!”

 

‘빌어먹을!’

 

사령귀안과 백골마존은 속으로 욕을 하면서 혈왕을 공격했다.

 

노태군이 얄밉긴 해도 혈왕이 펼치는 마공의 위력이 현저히 약해진 것만큼은 사실이었다. 절호의 기회!

 

혈왕은 오연히 서서 그들의 공격을 막아냈다.

 

콰광! 우르르릉!

 

굉음이 울리며 사령귀안과 백골마존이 뒤로 밀려났다.

 

그들은 일그러진 표정으로 혈왕을 쳐다보며 치를 떨었다.

 

그들과 노태군의 비밀호법인 곡두헌, 조민산까지 무려 다섯 명이나 되는 고수가 합공을 펼쳤다.

 

그럼에도 별 다른 우세를 잡지 못했다. 아니, 우세는커녕 추양양과 곡두헌, 조민산은 치명상을 입고 한쪽에 물러서 있고, 그들만이 혈왕을 상대하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들도 혈왕이 쏟아내는 혈왕잠천마공의 마기와 부딪칠 때마다 속이 울렁거려 견딜 수가 없었다.

 

그나마 그들의 연속된 공격으로 혈왕의 기세가 많이 무뎌지지 않았다면, 노태군이 나서서 그를 공격하지 않았다면, 그들 역시 추양양 등과 같은 꼴을 당했을지 몰랐다.

 

두 사람이 물러서자 또다시 노태군이 달려들었다.

 

“여기도 있다, 이놈!” 

 

혈왕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차륜전으로 공격해오는 세 사람을 막아내는 일은 무리였다.

 

더구나 노태군은 혈왕과 차이가 거의 없는 절대고수다. 

 

근 반시진에 걸쳐 싸우면서 무한할 것 같던 혈왕의 공력도 삼 할 이상이 감소되었다.

 

그러함에도 혈왕은 처음이나 마찬가지로 혈왕잠천마공을 펼치며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가공할 격전이 점입가경으로 치달을 무렵.

 

독고무령이 격전장에서 삼십여 장 떨어진 곳의 지붕 위에 내려섰다.

 

그는 격전장 주위를 살펴보았다.

 

쓰러진 채 움직이지 않는 자가 사오십 명, 멀찍이 떨어져 부상을 돌보는 자가 백여 명쯤 되어 보였다.

 

격전장은 이삼백 명의 무사들이 잔뜩 긴장한 채 넓게 에워싸고 있었는데, 그 안에서 두 사람이 격돌하고 있었다.

 

한 사람은 혈왕 장소천, 또 다른 한 사람은 눈부신 백의를 입은 노인이었다.

 

노인을 보는 독고무령의 눈빛이 차갑게 반짝였다.

 

혈왕에 비해 조금도 뒤지지 않는 가공할 무공을 펼칠 사람이 몇이나 될 것인가.

 

사령귀안과 백골마존도 그 정도는 되지 않는다. 게다가 사령귀안과 백골마존으로 보이는 자들은 한쪽에 서서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는 중이다.

 

두 사람을 능가하는 절대고수.

 

한 사람의 이름을 떠올리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저자가 노태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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