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천제 21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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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68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암천제 211화
211화
독고무령은 빠르게 다가오는 황보충을 보며 오른발을 반 보쯤 앞으로 내밀었다. 그리고 대기를 휘감으며 뻗어 나오는 황보충의 주먹을 향해 귀월인을 펼쳤다.
쾅!
단발 굉음이 울리며 황보충의 몸이 휘청거렸다.
옆구리의 검을 빼들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적수공권으로 자신을 상대한다.
문제는 그러고도 자신이 밀렸다는 것이다.
자존심이 상한 그는 이를 악물고 패황권을 펼쳤다.
상대의 수법은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랐다. 쾌(快)의 수법을 파괴하는 데는 패(覇)의 무공이 제격이었다.
콰아아아!
폭류가 흐르는 소리와 함께 대기가 비틀리며 권풍이 밀려들었다.
독고무령은 좌수로 원을 그리며 권풍을 휘어 감고, 우수를 내밀어 권풍의 중심을 두들겼다. 구명절혼수 중 비격뢰(秘擊雷)였다.
일순간, 무쇠도 부술 듯한 강력한 힘이 찰나 간에 쏟아지며, 황보충의 권풍을 산산이 부수었다.
쿠구궁!
손끝에서 발끝까지 온몸이 떨린다.
충격을 견디지 못한 황보충은 대여섯 걸음을 물러선 뒤, 겨우 몸을 세우고 번쩍 고개를 들었다.
흐트러진 머리, 창백한 얼굴. 눈앞에서 벌어진 현실이 믿기지 않는다는 눈빛이 두 눈에 가득했다.
“네놈은 대체 누구……?”
독고무령은 무심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때로는 모르는 게 좋을 때도 있소.”
황보충은 독고무령이 자신을 무시한다 생각했는지 눈을 부릅뜨고 수염을 파르르 떨었다.
단 두 번의 격돌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상대의 강함을 알기에 충분했다. 또 손을 쓴다면 목숨을 걸어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었다. 그리하면 평생 고개를 못 들고 다닐 것만 같았다.
그는 평생 모은 공력을 끌어올려 두 손에 응집했다.
죽을 때 죽더라도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낸 후 죽고 싶었다.
‘무인답게 죽는다면 아쉬울 것도 없지!’
후우우웅.
그의 두 손에서 바람소리가 일었다.
독고무령은 황보충의 마음을 간파하고 태천일심의 기운을 끌어 올렸다.
두 사람 사이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회오리가 일었다.
바로 그때였다.
뒤쪽에서 다급한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조부님! 싸움을 멈추십시오!”
언젠가 들어본 목소리.
독고무령은 황보충을 주시한 채 목소리의 주인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
황보충도 목소리의 주인이 도착할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곧 한 사람이 장내에 내려섰다.
그를 바라보는 독고무령의 눈에서 기광이 일렁였다.
들어본 목소리다 싶더니, 나타난 자는 황보세가의 소가주 황보광이었다.
“후우, 다행히 많이 늦지는 않은 것 같군.”
황보광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중얼거리고는, 주위를 향해 소리쳤다.
“모두 싸움을 멈추시오!”
진사혁에게 막바지까지 몰려 있던 황보도일은 이때라는 듯 뒤로 몸을 뺐다.
벽운당의 무사들 중 서 있는 자는 반 정도. 그들도 다급히 뒤로 물러나며 무기를 거두었다.
오직 한 사람. 여기저기 상처를 입은 황보도경만이 악에 받쳐서 관조운을 향해 달려들고 있을 뿐이었다.
“숙부, 그만하시고 물러나시지요! 귀하도 잠시만 손을 멈춰 주시오!”
황보광이 소리치자 황보도경이 뒤로 물러났다. 물러나기 싫은데 어쩔 수 없이 물러난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훅, 훅, 내가 져서 물러난 것이 아니니, 착각하지 마라.”
누가 뭐라 했나?
독고무령이 손에 사정을 두라고 말하지 않았으면 벌써 고혼이 되었을 자다.
관조운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일이 끝나면 둘 중 하나가 끝장날 때까지 붙어봅시다.”
움찔한 황보도경은 눈알을 굴리며 누군가의 지원을 바랐다.
하지만 누구도 그의 편을 들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황보충도, 황보도일도, 벽운당의 무사들도.
그들은 뒤늦게야 어렴풋이 느낀 게 있었다. 황보도경이 상대에 대해서 많은 것을 숨겼다는 걸.
어쨌든 그렇게 싸움이 모두 멈추자, 황보광은 독고무령을 살펴보았다.
그러더니 곧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 인피면구에 가려진 독고무령의 정체를 알아낸 것이다.
“오랜만이오. 추월루에 들렀다는 말을 듣지 않았으면, 얼굴이 달라서 몰라볼 뻔했소.”
독고무령은 부정하지 않았다.
“귀하도 우리를 막기 위해서 온 거요?”
“막을 수 없다는 걸 아는데 왜 그런 멍청한 짓을 하겠소?”
“다행이군.”
황보광의 입가에 쓴웃음이 매달렸다.
그는 이제 무령, 독고무령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지난 몇 달, 은밀하게 사람을 풀어 조사해 보았다. 그리고 자신보다 강하고, 무령이라는 이름을 지닌 자는 오직 한 사람뿐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당시 그걸 알고 얼마나 놀랐던가.
천검무왕 위지천백과 비견되는 젊은 고수. 천하팔패 중 하나인 제왕성에 맞서 싸우는 단체, 암천회의 주인. 그게 바로 암천사신이 아니던가 말이다!
그가 전과 달리 말을 조심하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바쁜 사람이 이곳까지 오다니, 추월루에 아직 볼일이 남았소?”
“그건 내 일이니, 귀하가 신경 쓰지 않아도 되오.”
“하긴…….”
“더 할 말이 없다면 이만 가볼 생각이오만.”
“부상자가 많아서 환송을 해줄 수는 없을 것 같구려.”
황보광은 세가의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데도 독고무령의 정체에 대한 말은 일체 꺼내지 않았다.
독고무령이 정체를 밝히지 않은 것 때문에 일이 커졌다. 얼굴마저 가렸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 독고무령이 스스로 말하지 않는 이상 자신의 입으로 밝힐 수는 없는 일이었다.
황보광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황보충과 황보도일, 황보도경은 물론이고, 삼십여 명 중 이십여 명이 심한 부상을 입은 상황. 그나마 죽은 사람이 없다는 게 다행이었다.
‘저들은 서너 명만이 가벼운 부상을 입었다. 만일 죽이려고 했다면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했겠군.’
그때였다. 그의 눈이 진사혁에게서 멎었다. 아니, 정확히는 진사혁의 손에 들린 곤을 바라보았다.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마를 찌푸린 채 조금 전의 일을 떠올려 보았다. 진사혁이 황보도일을 향해 펼치던 곤법을.
순간, 머릿속에서 번개가 번쩍였다.
그는 눈을 크게 뜨고 진사혁에게 물었다.
“혹시 그대는 진가가 아니오?”
진사혁이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에…… 맞소.”
“그럼…… 진가철방의 사람이오?”
그것도 맞았다. 거짓말하면 얼굴이 붉어지는 진사혁으로선 속일 생각도 하지 못했다.
“킁, 그것도 맞소.”
“황보세가의 황보광이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소.”
“진사혁이오.”
“하하, 이런 곳에서 진가의 사람을 만날 줄은 생각도 못했소.”
“오래 전의 일이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되오. 귀하의 선조들도 잊고 지냈지 않소?”
“그 점은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소. 선조들께서 워낙 고집이 세시다 보니 그리 되었구려.”
황보세가와 진가는 오랜 옛날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다. 비록 백 년 전쯤부터는 작은 오해로 인해서 거의 왕래가 없었지만.
황보광은 더 이상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다.
“언제 한번 찾아뵙도록 하겠소. 어르신들께도 그리 말씀해 주시오.”
“알았소.”
진사혁은 진가가 처한 현재의 상황을 굳이 황보광에게 말하고 싶지 않았기에 간단히 대답하고 몸을 돌렸다.
한편, 독고무령은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일행들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종리청과 감가기, 염부중이 약간의 상처를 입었지만, 심각하지는 않은 듯했다. 적도 죽은 자는 보이지 않았고.
황보세가의 무사들은, 생사투를 겪으며 살아남은 일행의 상대가 되지 못했던 것이다.
사정을 봐주며 하는 싸움이어서 약간 걱정이 되었는데, 그리 나쁘지 않은 결과얐다.
‘조금만 더 강해진다면 제왕성의 고수들에게도 밀리지 않겠어.’
만족한 그는 진사혁이 돌아서자 황보광에게 말했다.
“더 볼일 없다면 이만 가겠소.”
황보광은 입가에 미소를 매단 채 포권을 취했다.
“언제고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겠소.”
독고무령은 가타부타 말도 없이 마주 포권을 취한 후 몸을 돌렸다.
‘그것도 좋겠지. 언젠가는 황하를 건널지도 모르니까.’
제2장 천룡(天龍)과의 거래(去來)
하북성 남단의 한단(邯鄲)은 춘추전국시대와 진(秦), 한(漢)을 거치며 교통과 상권이 발달한 고도였다.
하지만 화무십일홍이라, 한때 잘나가던 한단도 세월이 지나며 쇠퇴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당(唐)대 이후에는 주(州)에 속한 현(縣)으로 전락했다.
천룡방이 그곳에 터를 잡은 것은 백 년 전이었는데, 당시에는 그저 강호에 산재한 수백 개 중소문파 중 하나였다.
그러던 천룡방이 하북제일세의 발판을 마련한 것은, 이대 방주인 북리진호로 인해서였다.
한단은 화북평원에서 산서로 들어가는 교통의 요지.
하기에 옛날부터 부유한 상인이 많이 살았다.
북리진호는 그들의 안전을 지켜준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한단의 상계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그러길 십 년, 천룡방은 한단의 상계를 완전히 장악하고 엄청난 황금을 벌어들이기 시작했다.
팽가와 언가가 천룡방을 경계하려 했을 때는 이미 천룡방의 재정이 한단 전체를 주무를 정도가 된 후였다.
북리진호는 엄청난 재정을 바탕으로 힘을 키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천룡방에서 낸 불세출의 기재 북리등이 삼 대째 방주로 임명되자, 천룡방은 팽가와 언가도 건드릴 수 없는 힘을 지니게 되었다.
진천검제(振天劍帝) 북리등.
나이 서른다섯에 하북제일검이라는 칭호를 얻은 그는, 단 삼 년 만에 하북 남단의 중소문파 일곱 개를 복속시켰다.
팽가와 언가를 밀치고 하북제일세라는 이름을 얻은 것은 바로 그때부터였다.
뒤이어 북리중현이 방주위에 오르고, 천룡방은 절정기를 맞이했다.
천하팔패(天下八覇)!
천하 강호인들이 천룡방을 천하에서 가장 강한 여덟 세력 중 하나로 꼽을 정도가 된 것이다.
하지만 그토록 강한 힘을 보유한 천룡방도 오직 한곳만은 건들 수가 없었다.
낭아산에 웅크린 채 황궁을 좌지우지하는 은룡산장 말이다.
그들의 존재는 팽가와 언가에게는 복이었고, 천룡방에는 목에 걸린 가시와 같았다.
그들 때문에 천룡방이 하북 중부 쪽으로는 세력을 키울 수가 없었으니까.
북리중현은 욕망을 억누르며 기회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어느 날, 산서에서 사람이 왔다.
기회라 생각했다.
하북에서의 전쟁으로 저들의 힘이 약화된다면, 더 이상 자신들을 막을 수 없을 터였다.
그는 장로인 장만익을 선발대로 보내고, 곧 아들을 수장으로 이백의 무사를 보냈다.
정면 대결을 하는 것이 아니니, 그들 정도면 저들에게 타격을 줄 수 있을 거라 여겼다.
첫 번째 결과는 아주 훌륭했다. 은룡산장의 무사 수백이 죽었다지 않은가.
그는 만족한 마음으로 또 다른 희소식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때 은룡산장의 주인인 노태군에 의해 군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산서로 간 무사들을 거두지 않으면 당장 천룡방을 고립시키겠다는 말과 함께.
아쉬웠지만 군과 싸울 수는 없는 일. 그는 하는 수 없이 철수를 명했다.
한데 그들은 바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이십여 일이 흐른 후, 단 삼십여 명만이 한단으로 돌아왔다.
한쪽 팔이 뜯겨나간 북리사웅을 업은 채. 얼이 빠진 모습으로.
그들은 한결같이 공포에 질린 모습으로 말했다.
악마가 아들을 그렇게 만들었다고. 다른 사람들 모두 그 악마의 손에 찢기고 터져서 죽었다고.
‘혈왕……. 그가 진정 그토록 강하단 말인가?’
북리중현은 가늘게 뜬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며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너무 성급했어. 차라리 놈들의 싸움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게 나았을 것을…….’
후회막급이었다. 서두르지만 않았으면, 아들이 팔 하나 없는 불구가 되지도 않았을 것이 아닌가.
평소 두꺼비 같다는 우스갯소리를 들을 정도로 신중한 성격을 지닌 그다. 아마 상대해야 할 자들이 은룡산장만 아니었어도 세 번은 더 신중하게 생각한 다음 결정을 내렸을 것이다.
‘하다못해 사웅이 가려는 걸 말리기만 했어도…….’
아들은 산서에서 이름을 얻기 시작한 암천사신에게 호승심을 느낀 듯했다.
그를 누르고 오겠다며 호언장담하는 표정에 그러한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그는 그것도 괜찮을 듯싶었다.
안에서만 곱게 자란 아들이다. 제대로 크기 위해서는 한 번쯤 거친 바람을 쐬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암천사신을 이기면 더 좋고.
그래서 보냈거늘…… 팔 하나만 잃고 말았다.
강호에 발을 디딘 이상 생사는 칼날 위에 올라선 운명이라고들 한다. 어쩌면 목이 달아나지 않고 팔만 잃은 것도 다행일지 몰랐다. 백 명이 넘는 수하들은 죽었지 않은가 말이다.
하지만 그러한 이성적인 생각도 팔을 잃은 아들을 본 순간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대노한 그는 혈왕을 죽여서 아들의, 수하들의 한을 풀어주고 싶었다.
그런데 그럴 수가 없게 되었다. 혈왕이 사라진 것이다.
‘놈! 내 무슨 수를 쓰던 네놈을 찾아내서 처참하게 죽일 것이니라!’
그가 분노를 삭이고 있을 때였다. 밖에서 호위무사의 목소리가 울렸다.
“방주님께 아룁니다! 용소당주께서 뵙고자 하십니다!”
북리중현은 상념을 떨치고 고개를 들었다.
“들여보내라.”
곧 전각문이 열리고 중년무사가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북리중현의 이 장 앞까지 다가오더니,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적초가 방주님을 뵈옵니다!”
“그래, 무슨 일인가?”
“산서에서 손님이 왔습니다, 방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