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천제 24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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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1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암천제 242화
242화
도지휘사가 군을 다스린다면, 안찰사는 한 성의 형옥(刑獄)을 책임지고 법을 다스리는 자리였다.
현재 산서의 안찰사는 모관청, 도지휘사는 정추경이란 자였다.
양곡정이 사람을 보낸 지 일각이 지날 즈음, 모관청이 먼저 거만한 표정을 한 채 양곡정의 집무실로 들어왔다.
“포정사, 무슨 일로 본관을 부른 거요?”
양곡정이 힐끔 독고무령과 전무호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황궁에서 손님이 오셨네.”
황궁이라는 말이 떨어지고 나서야 모관청의 어깨에 들어간 힘이 빠졌다.
“황궁? 황궁에서 무슨 일로……?”
전무호가 입을 열었다.
“본인은 금의위 천호장 전무호라 하오, 안찰사 나리.”
어쩌면 양곡정보다 모관청이 금의위와 더욱 가까운 사이였다. 물론 좋지 않은 일이 벌어졌을 때의 이야기지만.
모관청은 눈을 굴리며 상황을 파악하려 애썼다.
전무호가 그의 판단을 도와주었다.
“태자 저하를 대신해 용검령주께서 그대들에게 명을 내릴 것이 있어 부른 것이오.”
모관청은 전무호가 도와줄 것도 없었다. 눈치가 제법 빠른 자였다.
“모관청이 용검령주를 뵈오!”
정추경은 모관청이 온 뒤로도 반각이 더 지나서야 왔다.
그는 전형적인 장수답게 탄탄한 몸을 지닌 자였는데, 그도 전무호의 설명을 듣더니 두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는 장수답게 절도 있는 예를 올리며 독고무령을 태자의 대리인으로 인정했다.
셋이 다 모인 다음에야 독고무령의 입이 열렸다.
“달단군이 장성 밖에 주둔하고 있다는 사실은 모두 아실 거요.”
알고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그것 때문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그리고 무림왕이 된 제왕성의 위지천백에게 군통솔권이 주어진 것도 역시 모르지 않을 거요.”
그 말에는 정추경이 반응을 보였다. 그는 매우 못마땅한 표정으로 빠르게 말을 쏟아냈다.
“솔직히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어찌 대명의 군사더러 강호인의 명을 받으라 하시는 건지 원……. 지금 달단 놈들이 코앞에 있는데도, 대체 황궁에선 무슨 생각으로 그자에게 통솔권을 주었는지 모르겠소이다.”
제법 강직한 성격을 지녔다고 하더니, 빈말은 아닌 듯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위지천백에게 포섭당하지 않았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너무 걱정할 것 없소. 위지천백의 군통솔권은 이제부터 무용지물이 될 테니까.”
“그게 사실입니까?”
“용검령주의 권위는 무림왕보다 위에 있소. 그렇지 않소?”
정추경의 눈이 커졌다. 그는 곧 독고무령의 말뜻을 깨닫고 속이 시원하다는 표정으로 대소를 터트렸다.
“령주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그렇고말고요! 와하하하!”
하지만 독고무령의 말이 이어지자 표정이 다시 침중하게 가라앉았다.
“문제는, 대동의 도지휘사사와 위, 소가 대부분 위지천백의 손아귀에 들어가 있는 상황이어서 명을 내려도 받들지 않을 거라는 점이오.”
“감히 대명의 군이 황상의 명을 받지 않겠다니요?”
독고무령은 간략하게 자신이 아는 바를 전했다.
정추경은 물론이고, 양곡정과 모관청도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특히 정추경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얼굴이 돌덩이처럼 굳었다.
“언제 그렇게……?”
“본인의 생각으로는, 적어도 수년, 오래된 자들은 십여 년 전부터 그에게 포섭되었던 것 같소.”
“그럼 달단 놈들을 보고만 있는 것도……? 왜 그자가 이런 짓을 하는 것이오니까?”
독고무령은 세 사람을 천천히 둘러보며 그들의 머릿속에 벼락을 때렸다.
“위지천백은, 나라를 세우려 하오. 대명의 그늘을 벗어나 자신만의 나라를 말이오. 그것 때문에 알탄을 움직인 것이오.”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였다.
정추경 등은 소리를 버럭 지르며 위지천백을 질타했다.
“맙소사! 그자가 정녕 미쳤구려!”
“이런 불충한 역도가 있나!”
“내 그놈을……!”
독고무령이 그들에게 쐐기를 박듯이 말했다.
“태자 저하께서는 나에게 그 일을 막아 달라 하셨소. 이제부터 그대들은 나를, 아니 태자 저하의 뜻을 따라줘야겠소.”
모관청이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놈이 산서의 군을 대부분 장악했다면, 남은 사람은 이곳 태원의 군사뿐인데, 어찌하실 생각이신지?”
태원의 군사는 기껏해야 일만이다. 남쪽의 군병 중에서 위지천백에게 포섭되지 않은 자들을 불러들인다 해도 이삼만 정도.
그들로 십만이 넘는 정예병을 상대한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다. 더구나 달단의 군사까지 상대해야 한다면 더 말할 것도 없는 상황.
어디 그뿐인가? 제왕성은 산서제일의 강호세력이다.
이삼만 군사로는 제왕성의 삼천 무사도 상대할 수 없는 게 현실이었다. 쇠뇌대와 화공대 등 특수대를 모조리 동원한다 해도 강호의 고수들을 상대한다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상황을 인식한 정추경과 양곡정의 표정이 암담하게 변했다.
하지만 독고무령은 여전한 표정으로 담담하게 말했다.
“그대들은 내 명에 따르면서 그대들이 맡은 임무만 충실히 하시오. 그럼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세 사람은 그의 말을 눈곱만큼도 믿지 않았다.
하긴 믿는다는 게 우스운 일이었다. 적의 규모는 그야말로 나라를 세울 정도다. 하거늘 자신이 알아서 한다고?
‘젊은 사람이라 역시 세상을 잘 모르는구나.’
세 사람은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도저히 안 되겠는지, 모관청이 넌지시 입을 열었다.
“저…… 령주님, 제왕성의 주인인 위지천백이란 자는 절대 과소평가해선 안 되는 자입니다. 또한 그가 이끄는 제왕성은 산서 제일의 강호세력으로서 천하에 적수가 거의 없는 거대세력입니다.”
“너무 걱정 마시오. 제왕성은 강호의 세력이 상대할 것이니까.”
양곡정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강호의 세력이라 하심은, 어느 곳을 말하시는 건지요?”
“암천회.”
독고무령의 한마디 대답에 정추경이 흠칫하며 물었다.
“이곳 태원에 있다는 그 방파 말입니까? 듣기로는 흑도의 무리들과 한패라 들었습니다만, 그들이 과연 나라를 위해 들고 일어나 주겠소이까?”
“믿어도 되오. 내가 바로 암천회의 회주니까.”
순간, 모관청이 튀어나올 것처럼 눈을 크게 떴다.
그는 형옥을 관장하는 자. 당연히 다른 두 사람보다 독고무령이라는 이름에 대해 잘 알았다.
“그럼 령주님께서…… 아, 암천사신 독고무령!”
독고무령의 차갑게 가라앉은 눈이 세 사람을 훑었다.
“흑도의 사람도 이 나라의 백성. 나는 허튼 욕심을 품은 장수나 관리들보다 오히려 그들이 더 낫다고 생각하고 있소. 명심하시오. 이 땅을 지켜주는 사람은, 황궁에서 자신의 안위만 신경 쓰는 사람이 아니라, 칼을 들고 적과 맞서 싸우는 사람임을 말이오.”
알게 모르게 흘러나온 무형의 기운이 세 사람을 휘어 감았다.
독고무령의 기세에 짓눌린 세 사람은 자신들도 모르게 몸을 후들거리며 무릎을 꿇었다.
“명심하겠소이다, 령주.”
“명을 따르겠나이다!”
정추경은 이를 악물고 고개를 숙였다.
기세에 짓눌린 것도 그렇지만, 그 이전에 가슴이 찡하고 피가 끓었다.
이 땅을 지켜주는 사람은 칼을 들고 적과 맞서 싸우는 사람이라 했다.
그간 황궁에서 호의호식하며 말로만 떠들던 자들을 보면 울화가 치밀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으니, 십 년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가는 기분이 든 것이다.
“어떤 명이든 내려주시오, 령주! 목숨을 걸고 따르겠소이다!”
제4장 암천사신은 나쁜 친구
퍽!
꽉 막혀 있던 마지막 혈이 뚫리며 가공할 기운이 밀려들어온다.
장소천은 무아지경의 와중에도 밀려드는 기운을 사지백해로 인도했다.
온몸의 세맥이 툭툭 터져나가며, 세맥 깊숙이 잠들어 있던 기운이 긴 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했다.
격류처럼 흐르는 기운은 잠에서 깨어난 기운과 합쳐지며 더욱 강력한 힘으로 거침없이 질주했다.
그러더니 결국은 두 갈래로 나뉘어서 한 줄기는 독맥을 타고 위로 솟구치고, 한 줄기는 임맥을 타고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그러던 어느 순간이었다.
막위지가 이때라는 듯 소리쳤다.
“지금이다! 전력을 다해서 쏟아 부어!”
손양과 공손경이 독맥의 기운을 이끌고, 명대천과 은사문이 임맥의 기운을 이끌었다.
그들은 막위지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공력을 더욱 강력하게 쏟아 부으며 임독양맥의 접점을 향해 치달렸다.
퍼벅!
미미한 기음이 몸속에서 울리는가 싶더니, 장소천의 몸이 풀쩍 튀어 올랐다.
아득한 가운데서도 평온함이 느껴진다.
그 어느 때보다 상쾌한 기분.
몸 안의 찌꺼기가 모조리 씻겨 나간 것만 같다.
장소천은 막힘없이 도도히 흐르는 기운을 기해혈에 갈무리하며 몸을 잘게 떨었다.
마침내 생사현관이 뚫렸다. 공력도 팔 할 정도는 되찾은 듯했다. 스스로의 힘으로 뭔가를 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는 말. 감격에 겨워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눈을 뜬 그는 창백한 안색으로 운공하고 있는 다섯 명의 사부를 돌아다보았다.
그들의 입가에 떠오른 희미한 미소.
적지 않은 공력을 소모하고도 만족의 웃음을 짓는 사부들이다.
고마웠다.
이 은혜를 언제 다 갚을 수 있을까?
장소천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사부들을 향해 절을 올렸다.
‘제자가 은혜를 갚을 때까지 오래오래 사십시오.’
장소천은 운공 중인 오로를 놔둔 채 조심해서 방을 나왔다.
햇살이 오늘따라 유난히 환하게 느껴졌다.
그때 문득, 한 사람이 보고 싶었다.
‘미안하다, 무령.’
보고 싶은 사람은 독고무령이 아니었다. 독고무령에겐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의 머릿속은 이미 유하령으로 가득 찬 지 며칠 째였다.
‘그러게 왜 그런 미인을 나에게 소개시켜준 것이냐. 다 네 잘못이니 네가 이해해라.’
그는 한껏 부푼 기분으로 유하령을 만나러 가기 위해 정원을 나섰다. 그녀의 웃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더욱 좋아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는 유하령의 방에 도착하지도 못한 채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진사혁이 저만치에서 보더니 환하게 웃으며 부르는 것이 아닌가.
“어? 하하하, 정말 나오는군. 어이, 소천, 회주께서 급히 부르네.”
마치 자신이 나올 것을 알고 있다는 말투다.
‘빌어먹을!’
오늘따라 진사혁이 진짜 미련퉁이 곰처럼 보였다.
장소천은 독고무령의 방에 들어가자마자 퉁명스럽게 물었다.
“무슨 일인데 급하게 부른 건가?”
방 안에는 독고무령과 운양이 마주 앉아 있었다. 한데 왠지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그가 독고무령의 옆자리에 앉으며 다시 물었다.
“무슨 일이야?”
독고무령은 불안해하는 장소천을 빤히 쳐다보더니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성공했군. 축하하네.”
하여간 귀신같은 친구다. 척보고 자신의 몸 상태를 알다니.
장소천은 독고무령을 귀신 보듯 쳐다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는 꿈에도 몰랐다. 독고무령이 그의 생사현관 타통을 안 것은, 그가 방에 들어서기 훨씬 전이라는 걸.
“그거야 뭐, 사부님들 덕분이지. 그런데 무슨 일인지 말 안할 건가? 할 말 없으면 나는 나가보겠네. 조금 바쁘거든.”
“유 소저를 만나러 가려고?”
“응? 아니 뭐, 그건 꼭 그 일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고…….”
장소천은 대충 얼버무리며 독고무령을 힐끔거렸다.
진짜 귀신이 따로 없었다.
그때 독고무령이 말했다.
“자네가 해주었으면 하는 일이 있어서 불렀네.”
차마 못한다고는 하지 못했다. 대신 말투가 퉁명스럽게 나왔다.
“뭔데?”
“대동에 가주었으면 하네. 당장 믿고 보낼 만한 사람이 자네밖에 없군.”
“이곳에 엄청난 고수들이 즐비한데 왜 나를 보내려고 하는 거지?”
“천룡방주를 보낼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그만한 고수가 필요한 일이라는 말.
장소천은 내심 불만이 있으면서도 은근히 기분이 좋았다.
“험, 가서 할 일이 뭔데?”
독고무령은 할 일에 대해 자세히 일러주고는, 허공에 대고 한 사람을 불렀다.
“적 대주.”
“예, 주군.”
천정에서 한 사람이 떨어져 내렸다. 눈 밑을 천으로 가린 적수천이었다.
장소천은 적수천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실혼대에 대해서는 이미 독고무령에게 들었던 터였다.
적수천은 자신과 사형제나 다름없던 사람. 참으로 기이한 인연이라 아니할 수 없었다.
“오랜만이군요.”
적수천은 누가 아는 체를 하자 고개를 들었다.
순간, 장소천을 자세히 보던 그는 급살이라도 맞은 사람처럼 몸을 떨었다.
“혀, 혈…… 왕?”
장소천의 눈빛이 차갑게 반짝였다.
“혈왕이 아니라 장소천입니다. 앞으로는 그리 부르시지요.”
“어, 어떻게 그대가 여기에……?”
독고무령이 대신 대답했다.
“그는 내 친구다. 그대와 실혼대는 지금부터 소천이를 철저히 호위하도록.”
다른 사람도 아닌 장소천이다. 한때 혈왕이라 불렸던, 자신의 막내사제나 다름없던 사람.
적수천은 차라리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소천을 호위해서 외부로 나가는 게, 천장에서 지내는 것보다는 백 배 나을 것이었다. 마음도 훨씬 편하고.
“아, 알겠습니다, 주군.”
“소천, 이 사람들을 데리고 가게.”
장소천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급한 일이라도 있는 것처럼 말했다.
“더 할 말 있나? 없으면 좀 가볼 데가 있는데.”
독고무령의 방에서 나온 장소천은 곧바로 유하령을 찾아갔다.
그녀는 마침 혼자 있었다.
장소천은 그녀를 대면하자 볼멘소리를 했다.
“아무래도 내가 유 소저 만나는 걸 무령이가 좋아하지 않는 것 같소.”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