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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제 237화

무료소설 암천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296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암천제 237화

 

237화

 

 

 

 

 

 

그즈음, 산서 전역의 군영(軍營)에선 은밀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위소는 물론이고, 산서의 군을 총괄하는 도지휘사사(都指揮使司)도 예외가 아니었다.

 

막하 장수가 상관을 제압하고, 또 어떤 장수는 자신과 뜻을 달리하는 장수들을 알게 모르게 한직으로 내몰았다.

 

그 와중에 피를 부르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워낙 조용히 이루어져서, 사람들은 자신 옆에서 누가 사라졌다는 것도 인식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 일은 뜨겁던 남풍이 식어가는 사흘 동안 은밀하게 벌어졌다.

 

누군가가 이상함을 눈치 챘을 때는, 이미 산서 모든 군영의 책임자들이 바뀌거나, 한 사람을 향해 충성의 서약을 보낸 다음이었다.

 

 

 

 

 

 

 

제2장 드러나는 야망(野望)

 

 

 

 

 

독고무령은 떠난 지 칠일 만에 풍운장으로 돌아왔다.

 

구양은과 철검보의 장로 네 사람이 그들과 함께 돌아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풍운장이 들썩거렸다.

 

구양손도 구양소현의 부축을 받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동안 모든 화제는 구양은을 중심으로 흘렀다.

 

그 덕에 독고무령과 함께 온 실혼대는 주목을 받지 못했다. 실혼대에게는 다행이라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근 한 시진 동안의 소란 아닌 소란이 지난 다음에야, 독고무령은 자신의 방으로 갈 수 있었다.

 

운양이 눈치 빠르게 그를 따라 들어왔다. 그러고는 독고무령의 맞은편에 앉더니 찻주전자를 들어 잔부터 채웠다.

 

왠지 심각한 표정.

 

독고무령은 운양의 표정을 보고,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음을 직감했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하지만 그의 생각만큼 심각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개봉에서 유 소저가 오셨습니다.”

 

“언제 왔지?”

 

“회주께서 북경으로 떠나신 다음날 오셨습니다.”

 

“지금 어디 있나?”

 

“소영이하고 놀러나갔습니다.” 

 

“몇 사람이나 왔지?”

 

“모두 합해서 사십 명이 왔습니다. 그런데…… 모두가 한 가락씩 하는 자들입니다. 그들 중에 낙성신검(落星神劍) 한시중이 있을 정도니까요.”

 

낙성신검 한시중이라면 하남에서 열 손가락에 든다는 초절정의 고수다.

 

능히 육풍원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인물.

 

그러한 자가 왔다는 건, 유하령의 장담이 허언이 아니라는 소리였다.

 

“괜찮군. 그 외에 다른 소식은 없나?”

 

천하에서 제일 아름다운 여인이 왔다는데 저리도 담담하다니!

 

‘좌우간 알 수가 없다니까. 여자들은 저렇게 목석같은 회주를 왜 좋아하는 거야?’

 

운양은 불만이 많았지만, 일단은 본심을 안에 눌러 놓고 제왕성의 소식을 전했다.

 

“곧 제왕성에서 공표할 겁니다만, 그들이 제왕대전을 열기로 했다 합니다.”

 

“제왕대전?”

 

“겉으로는 무림왕의 칭호를 하사받은 것에 대한 축하연이라고 합니다만, 아무래도 이번 기회에 산서무림을 자신의 손아귀에 완전히 틀어쥘 작정인 것 같습니다.”

 

아마 제왕대전을 연다면 천하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올 것이다.

 

천하무림에 자신을 알리는 자리로는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을 터였다.

 

‘비록 적이지만 정말 대단한 자라 아니할 수 없구나!’

 

그야말로 일사천리로 모든 일이 흐르고 있다. 개봉으로 가며 보았던 황하의 흐름을 보는 것만 같다.

 

독고무령은 진정으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위지천백의 야망은 아직 바다에 도착하지 않은 상태. 아직 낙심할 때는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피가 더욱 차갑게 가라앉았다.

 

‘모든 게 그대의 뜻대로 되지는 않을 거다!’

 

일순간 독고무령의 두 눈에서 파르스름한 한광이 피어났다.

 

운양은 자신도 모르게 흠칫 몸을 떨며 독고무령을 바라보았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심장이 얼어붙은 기분이었다.

 

‘설마 내가 속으로 뭐라고 한 걸 눈치 챈 건 아니겠지?’

 

다행히(?) 독고무령은 운양의 우려와 달리 사람의 속마음까지 읽을 재주는 없었다.

 

“운양, 관의 움직임에 대해서 들어온 소식은 없나?”

 

“관이요?”

 

“위지천백이 산서 일대의 군통솔권을 쥐었네. 그의 목적이 그것이었다면, 분명 어떤 움직임이 있었을 거라 보네만.”

 

운양의 눈이 홉떠졌다.

 

“맙소사! 무림왕으로도 모자라서 군통솔권까지 쥐었단 말입니까?”

 

그 일의 파급효과를 생각하자 운양은 소름이 돋았다.

 

“빌어먹을! 대체 황궁은 무슨 생각으로 위지천백에게 군통솔권을 넘겨주었단 말입니까?”

 

독고무령은 황궁에서의 일을 간략하게 정리해서 말해주었다.

 

그러고는 단단히 일렀다.

 

“사실 자네에게 산서 전역의 움직임을 살펴보라고 하긴 했지만, 일이 이렇게 진행될 거라고는 짐작도 못했네. 북경에 가봤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손도 못 써보고 당할 뻔했네.”

 

그때 문득, 운양은 삼 일 전에 들어온 소식이 하나 떠올랐다.

 

“사흘 전에 대동과 삭주에서 소식이 왔는데, 북쪽에 있는 달단 무리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고 합니다.”

 

“달단?”

 

순간적으로 독고무령의 가슴을 한풍이 뚫고 지나갔다.

 

“예, 황궁에 뭔가를 요구하기 위해서 무력시위를 벌이는 거 같은데, 삼사천이 형식적으로 움직이던 예전과 달리 수만 명의 군사가 움직이고 있다고 합니다. 소문으로는 십만이 넘을 거라는 말도 있다고 합니다만…….”

 

수만 명이면 가히 나라를 침범해도 될 정도다. 하물며 십만이 넘는다면 산서를 침입하는 거야 일도 아니다.

 

하필 왜 지금 그들이 움직인단 말인가?

 

제왕성이 군통솔권을 장악한 순간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움직이다니.

 

이러다 산서의 강호문파가 전쟁에 참전하는 일이 벌어지는 건 아닐까?

 

‘그럼, 산서의 무림과 관이 모조리 위지천백의 뜻을 따를 수밖에 없게 될 텐데…….’

 

심지어 암천회조차 위지천백의 명령이 떨어지면 움직이지 않을 수 없다. 

 

강호세력간의 전쟁이 아닌, 나라간의 전쟁이다. 아무리 제왕성과 척을 지고 있다 해도 외세가 쳐들어오는데 보고만 있을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가히 진정한 왕의 위세!

 

위지천백은 한 나라의 제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힘을 지니게 될 것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한 가지 생각이 번개처럼 뇌리에 떠올랐다.

 

“이런!”

 

텅!

 

독고무령이 탁자를 손으로 내려치고 벌떡 일어났다.

 

운양이 아는 독고무령은 옆에서 벼락이 떨어져도 천천히 고개를 돌릴 사람이다. 그런 독고무령이 느닷없는 행동을 하자, 운양은 어안이 벙벙했다.

 

“왜 그러십니까?”

 

“운양, 즉시 사람들을 보내서 산서의 천호소 이상 군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알아보게!” 

 

“예? 예, 알겠습니다, 회주.”

 

“그리고 내가 서신을 써줄 테니,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금의위 천호장인 전무호 대인께 전하도록 하게.”

 

뭔지 몰라도 초지급의 일이 벌어진 기분이다.

 

운양은 토를 달지 않고 무조건 고개만 끄덕였다.

 

독고무령은 즉시 한쪽에 있는 문방사우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촌각이 아쉬웠다. 그는 따로 설명할 시간도 아깝다는 듯 글을 쓰며 말했다.

 

“위지천백이 무림왕이 되었네. 그리고 군통솔권까지 쥐었지. 그런데 때마침 달단이 침입하려고 하네. 만일 그가 군과 강호의 문파를 모두 움직인다면 어느 정도의 힘이 될 거라고 보나?”

 

운양이 엉겁결에 대답했다.

 

“말 그대로 강호사에 전무후무한 힘을 지니게 되겠지요. 족히 나라의 왕만큼이나.” 

 

“그가 그 힘으로 엉뚱한 생각을 한다면?”

 

운양은 멍청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그제야 독고무령의 말뜻을 알아듣고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서, 설마……?”

 

독고무령이 붓을 놓고 운양을 바라보았다.

 

“나라면…… 진짜 왕이 될 거네. 명색뿐인 무림왕이 아니라 나라를 만들 거야. 명분만 있다면!”

 

막지 못하면 끝장이었다.

 

“제왕대전. 이제야 그가 왜 제왕대전을 여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군. 나가면서 석도명을 불러주게, 운양.”

 

 

 

운양이 나가더니 곧 석도명이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회주.”

 

“대동에 좀 다녀와야겠소.”

 

“대동에요?”

 

석도명은 본래가 대동(大同) 사람이다. 장성(長城) 인근의 상황을 살피기에는 최고의 적임자였다.

 

“달단이 남하하고 있다는데, 아무래도 상황이 수상하오. 자세한 걸 파악해봐야 할 것 같소.”

 

석도명의 안색이 급변했다.

 

그가 아는 한, 달단이 남하한다는 말인즉, 산서 북부가 전쟁에 휩싸인다는 말과도 같았다.

 

“전쟁입니까?”

 

“어디까지 번질지는 아직 아무도 모르오만, 그들이 산서를 넘볼 것은 분명한 것 같소.”

 

“으음, 알탄이 끝내…….”

 

알탄은 달단의 수많은 부족을 통합한, 달단의 위대한 군주였다. 정말 그가 작정하고 산서를 친다면, 힘이 극도로 약해진 지금의 황궁으로선 그들을 막기가 쉽지 않을 것이었다.

 

결국 산서가 전쟁의 회오리에 휘말리게 된다는 말.

 

“제가 해야 할 일을 말씀해주시지요, 회주.”

 

“아무래도 위지천백이 그를 움직이게 만든 것 같소.”

 

“그게 무슨……?”

 

석도명이 의아한 표정으로 독고무령을 쳐다보았다.

 

달단의 왕과 위지천백이 무슨 관계란 말인가?

 

독고무령은 간략하게 운양과 나누었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러니 군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다면, 우려했던 일이 진행되고 있다고 봐야 할 거요. 금의위 영패를 최대한 이용해서 장성수비대와 인근 군영에 급격한 변화가 있었는지 자세히 알아보시오.”

 

석도명은 석고를 뒤집어쓴 것처럼 하얗게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회주.”

 

“필요한 경비는 운양에게 받으시고, 인원은 알아서 데리고 가시오.”

 

“제 아우들만 데리고 가겠습니다. 그곳은 제 고향이나 다름없는 곳인데, 설마 아는 사람 하나 없겠습니까? 금의위 백호장 지위를 이용하면 그 정도 정보를 모으는 일은 어렵지 않을 겁니다.”

 

유원위와 연사성, 조원화라면 걱정할 것이 없었다. 그들은 대동 일대를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아는 자들이 아닌가.

 

더구나 무공도 많이 늘어서, 뜻밖의 고수만 만나지 않는다면 자신 한 몸은 지킬 수 있을 듯했다. 대동에 가면 아는 사람도 적지 않을 테고.

 

‘결국 시간 싸움이 되었다. 저들의 움직임을 얼마나 빨리 알아내느냐 하는 것이 승부를 좌우하게 될 것이다.’

 

독고무령은 석도명이 나간 방문에서 시선을 떼고 창문 쪽으로 다가갔다.

 

창문을 열자 열기가 훅, 얼굴로 밀려들었다.

 

사막의 열기만큼이나 뜨거운 바람이었다.

 

‘제왕대전이라…….’

 

 

 

마음이 무거워진 독고무령은 방을 나서서 장소천의 거처로 갔다.

 

장소천은 거처의 앞마당에 나와 있었다. 그는 독고무령이 나타나자 담담히 웃었다.

 

“왔나?”

 

“흐음, 이제 멀쩡한 거 같은데?”

 

“기분으로는 당장 암천사신도 눕힐 수 있을 것 같네.”

 

“그거 큰일이군. 몸은 괜찮아진 거 같은데, 정신에 문제가 생긴 것 같아.”

 

“흐흐흐, 자네가 살려놓았으니, 책임도 자네가 져야지.”

 

독고무령의 입가에 피식, 웃음이 걸렸다.

 

농담하는 걸 보니 이제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자신의 무겁던 마음의 짐도 덜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 오로의 제자가 되기로 했나?”

 

“마다하면 나만 손해 같아서 그렇게 하기로 했네.”

 

“내력은 어느 정도 회복되었는가?”

 

“그럭저럭 손발 놀릴 정도는 되찾았네. 모두 사부님들 덕분이지.”

 

자신이 느낀 바로는 잘해야 이삼성의 공력을 회복했을 뿐이다. 그래도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른 회복이었다. 

 

한 달 정도만 지나면 정말로 자신을 때려눕히겠다고 달려들지도 모를 일이다.

 

“들어가지.”

 

 

 

방안으로 들어간 독고무령은 인피면구 하나를 내밀었다.

 

“이곳에만 있으면 답답할 텐데, 바깥바람을 쐬고 싶거든 이걸 쓰게나.”

 

운양에게 받은 것 중 한 번도 쓰지 않은 것이니 누구도 알아보지 못할 것이었다.

 

하지만 장소천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필요 없네.”

 

“자네의 얼굴을 알아보는 자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당장 실혼대만 해도 장소천을 알아볼 수 있었다. 물론 그들은 항상 모습을 감추고 있을 테니 장소천과 만나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그리고 바깥에 나가면 제왕성의 이목에 걸릴지 몰랐다. 자칫 장소천이, 혈왕이 살아있다는 것이 알려지면 문제가 커질 수도 있었다.

 

장소천은 적수천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들이?”

 

“거짓이 아닌 것 같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네. 그런 고수들을 얻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흠, 적수천이라면 믿을 수 있지. 어쩐지 그가 노태군을 대하는 게 다른 사람과 다르다 했더니, 그런 사연이 있었군. 뭐 어쨌든 너무 걱정 말게. 나에게 방법이 있으니까.”

 

“방법? 어떤 방법 말인가?”

 

“어차피 얼굴만 바꾸면 될 거 아닌가?”

 

씩 웃은 그는 손으로 얼굴 근육을 비틀어 변화를 주었다. 공력이 삼 할도 안 되었지만, 백변귀환공을 펼치기에는 무리가 없었다.

 

독고무령은 변화한 장소천의 얼굴을 신기한 듯이 바라보았다. 이제야 동양에서 봤던 장소천의 얼굴이 왜 본 얼굴과 달랐는지 알 것 같았다.

 

“그거 참, 그걸 익히면 인피면구도 필요 없겠군.”

 

“배우고 싶다면, 친구니까 특별히 공짜로 가르쳐 주지.”

 

그때 밖에서 진사혁의 목소리가 들렸다.

 

“회주, 유 소저께서 돌아오셨다고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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