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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제 230화

무료소설 암천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321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암천제 230화

 

230화

 

 

 

 

 

 

그는 독고무령의 뜻을 바로 간파했다. 

 

언제든지 너의 목숨을 가져갈 수 있다는, 허튼짓 말라는 경고였다.

 

 

 

* * *

 

 

 

집법전을 나온 독고무령은 비옥으로 향했다.

 

그가 염상소의 거처에 스며들었을 때, 염상소는 대나무 베개를 꼭 끌어안고 앓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어디가 아픈가?’

 

몽롱한 표정을 봐서는, 아파서 앓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그는 가볍게 손을 저어 염상소를 흔들었다. 그 정도면 깊은 잠에 빠진 사람도 깨어날 정도였다.

 

하지만 염상소는 쉽게 깨어나지 않았다. 아니, 꿈에서 깨지 않으려고 기를 썼다.

 

독고무령이 눈살을 찌푸리고 물었다.

 

“어디 아픈 거요?”

 

움찔한 염상소는 잠시 꼼짝도 안 하더니, 갑자기 벌떡 몸을 일으키고는 벽으로 날아가서 찰싹 달라붙었다.

 

“웬 놈이냐?”

 

“나요, 염마귀.”

 

거미처럼 벽에 붙어 있던 염상소가 툭 떨어졌다.

 

“무…… 령이냐?”

 

그는 독고무령의 얼굴이 귀면임에도 곧바로 무령이냐고 물었다.

 

그를 염마귀로 부를 사람은 소악귀밖에 없었다. 목소리도 잊을 수 없는 독고무령의 목소리였고.

 

독고무령은 고개를 끄덕이고 한쪽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쪼르르 달려온 염상소도 맞은편에 앉더니 독고무령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 얼굴은?”

 

“인피면구를 쓴 거요.”

 

“근데…… 왜 나를 찾아온 거냐?”

 

“보고 싶어서.” 

 

단 두 마디였지만, 염상소는 그 말에 눈가가 찡해져서 한참 동안 말문을 열지 못했다.

 

“그, 그래?”

 

겨우 말문을 여는가 싶었는데, 주책없이 굵은 눈물이 또르르 굴러 떨어진다.

 

염상소는 재빨리 눈을 깜박거려 눈물을 털어냈다.

 

독고무령은 그 모습을 보고 빙그레 웃었다.

 

비록 귀면이었지만, 염상소에게는 그 누구의 웃음보다 보기 좋은 웃음이었다.

 

 

 

“나는 그냥 여기 있겠다.”

 

제왕성을 떠나 태원으로 오라는 말에, 염상소는 한참 동안 고민하더니 힘없이 그렇게 말했다. 

 

비옥이 자신의 고향이라는 말과 함께. 아귀다툼의 강호보다 낫다면서.

 

독고무령은 더 강요하지 않았다.

 

어쩌면 염상소에게는 이곳이 더 안전할지도 몰랐다.

 

“좋을 대로 하시죠. 대신 싸움이 일어나거든, 즉시 십팔호실 안으로 들어가서 몸을 피하십시오.”

 

어디로 몸을 피하라는 것인지 염상소도 모르지 않았다.

 

지하수로가 있는 동굴, 바로 그곳을 말하는 거겠지.

 

나중에 정말 그곳으로 들어갈지, 아니면 싸움에 끼어들지 모르지만, 일단은 순순히 대답했다.

 

“그렇게 하마.”

 

독고무령은 이런저런 잡다한 이야기를 일각가량 더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다음에 뵙지요.”

 

염상소는 고개만 끄덕였다. 조용히 웃으면서.

 

 

 

염상소의 거처를 나온 독고무령은 제왕성을 빠져나오기 위해 남쪽으로 향했다.

 

담장까지는 백이삼십 장 정도의 거리. 비옥 때문에 중간에는 별 다른 시설도 없었다.

 

기껏해야 제왕지처의 담장이 길게 늘어서 있을 뿐.

 

그는 오십여 장 떨어진 곳에서 제왕지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저 높다란 담장 안에 위지천백과 그의 가족이 있다는 생각이 들자 만감이 교차했다.

 

‘이제 곧 만나게 될 거다, 위지천백.’

 

그때였다. 그림자 하나가 제왕지처의 담을 넘어왔다.

 

‘응?’

 

독고무령은 나무 뒤에 몸을 숨기고는, 담을 넘어온 자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체구가 작은 그는 몸을 숙이고 좌우를 둘러보더니, 조심스럽게 제왕성의 외곽 담장이 있는 곳을 향해 움직였다.

 

독고무령은 나무 뒤에서 나와 그의 뒤를 쫓아갔다.

 

거리는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독고무령은 제왕성의 담장이 바로 코앞으로 다가왔을 때 그자의 뒤로 바짝 접근했다.

 

일 장 뒤까지 접근한 독고무령이 그를 향해 말했다.

 

“어딜 가려는 거냐?”

 

“헉!”

 

담을 넘어온 자는 헛바람을 집어 삼키며 홱 몸을 돌렸다.

 

달빛에 비친 그는, 아니 그녀는 위지선유였다.

 

위지선유는 독고무령의 모습을 보고는 몸이 굳어버린 듯 움직이지 못했다.

 

그러나 그도 잠시, 휙 몸을 날린 그녀는 독고무령을 향해 달려들었다. 

 

조금 전의 목소리. 바로 그였다.

 

“흐엉.”

 

독고무령은 옆으로 피할 수 있었지만, 그녀의 울음소리를 듣고 가만히 있었다.

 

덥썩.

 

위지선유는 독고무령을 끌어안고 서럽게 울었다.

 

“허엉…….”

 

독고무령이 진기로 소리를 차단시키지 않았다면, 일대를 순찰하는 자들에게 들켰을지도 모를 만큼 크게 울었다.

 

부모에게 호되게 야단맞고 삐져서 집을 떠나려는 아이처럼.

 

“왜 울지?”

 

“놀랐잖아요.”

 

‘놀라면 우는 건가? 좀 이상한 성격이군.’

 

독고무령은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물었다.

 

“그런데 왜 담장을 넘으려고 했지?”

 

위지선유는 울면서도 또박또박 대답했다.

 

“태원으로 가서 당신을 만나려고요.”

 

“왜?”

 

위지선유는 고개를 발딱 쳐들고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물어볼 것이 있어서요.”

 

뭐가 그리 궁금해서 이 밤중에 집을 나선단 말인가?

 

하지만 독고무령은 그녀에게 더 이상 물을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그가 있는 곳으로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사람들이 오고 있다. 돌아가라.”

 

위지선유는 허리를 두른 손을 꽉 붙잡고 절대 놓지 않겠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싫어요. 저도 데려가줘요. 당신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면 알아서 돌아올게요.”

 

위지선유를 떼어놓는 거야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이 이십여 장 근처까지 접근한 상황. 자칫 접근하는 자들을 격동시킬지도 몰랐다.

 

독고무령은 일단 이곳을 벗어나기로 하고는, 위지선유의 허리를 잡고 바람처럼 담장을 넘어갔다.

 

 

 

* * *

 

 

 

바람에 출렁이는 승룡호 물결을 따라 부서진 달빛이 춤을 춘다.

 

호숫가 바위 위에 위지선유와 나란히 앉은 독고무령은 한동안 입을 열지 않고 호수만 바라보았다.

 

조금 전, 위지선유가 지나가듯이 말했다.

 

 

 

“승룡호는 밤이 더 멋지다고 하더니, 정말 그러네요.”

 

 

 

승룡호.

 

자신이 지하수로를 통해 빠져나온 호수가 승룡호라 했다.

 

바로 앞에 있는 호수 말이다.

 

‘아버지…….’

 

한동안 떠올리지 못했던 아버지의 얼굴이 호수 위에서 반짝이는 것만 같다.

 

바람소리가 아버지의 목소리처럼 들린다.

 

-아들아! 내 아들 무령아!

 

‘예, 아버지.’

 

-잘 지냈지?

 

‘죄송해요. 너무 오래 아버지를 불러보지 못했어요.’

 

-하하하, 괜찮다. 이렇게 가끔이라도 불러주면 되지 뭐.

 

‘다음부터는 자주 불러드릴게요.’

 

독고무령은 미소를 지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서산으로 넘어가는 황금빛 반달 속에서 아버지가 환하게 웃는 것만 같았다.

 

위지선유는 묵묵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왠지 말을 붙이면 안 될 것 같았다.

 

‘왜 저렇게 슬퍼 보이지?’

 

이상하게 눈물이 나려고 했다.

 

그때 독고무령이 천천히 고개를 내리고는 담담한 말투로 물었다.

 

“이제 이야기해 봐라. 뭘 묻고 싶었던 거지?”

 

위지선유는 독고무령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일단 그거부터 벗어봐요.”

 

제왕성에서 볼일은 끝났다. 위지선유는 자신의 얼굴을 이미 알고 있고.

 

독고무령은 목덜미에서 인피면구의 끝을 떼어내고는 조심스럽게 벗었다.

 

그의 얼굴이 다 드러나자, 위지선유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당신의 얼굴이 그려진 그림을 봤어요. 물론 그 인피면구 속의 얼굴이죠. 당신이…… 정말로 암천사신 독고무령인가요?”

 

“맞다.”

 

“우리 제왕성의 적인 암천회의 회주고요?”

 

“그것도 맞다.”

 

“왜, 왜 우리 제왕성과 싸우는 거예요?”

 

독고무령은 고개를 돌려 위지선유를 바라보았다. 위지선유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서 달빛에 반짝이고 있었다.

 

그가 말했다.

 

“싸울 수밖에 없는 운명이니까.”

 

“철천지원수라도 되나요?”

 

“내가 누군지 안다면, 어떻게 살아왔는지 안다면, 너도 이해할 거다.”

 

“말해줘요. 당신이 누군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전부 다요.”

 

위지선유는 금방 울음을 터트리기라도 할 것처럼 말했다.

 

하지만 독고무령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언젠가는 알게 될지도 모르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왜요! 왜 말해주지 못하는 거예요?”

 

위지선유가 악을 쓰듯이 물었다.

 

독고무령은 그녀에게서 눈을 떼고 서산으로 반쯤 넘어간 반달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 이야기를 하면 내 가슴이 아프니까. 나는 가슴이 아픈 것이 싫다. 그동안 너무 많이 아파왔거든.”

 

위지선유는 더 묻지 못했다.

 

독고무령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가슴에 눈물바다가 고인 기분이었다.

 

‘도대체 어떤 일이기에 그리도 아파하는 건가요?’

 

그녀가 먹먹한 가슴을 움켜쥐고 있는데, 독고무령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만 돌아가라.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이다만, 너는 절대 나를 좋아해서는 안 된다.”

 

위지선유는 벌떡 일어나서 독고무령을 쏘아보았다.

 

그러고는 몸을 홱 돌리고 북쪽으로 달렸다.

 

“싫어요! 내 마음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거라구요! 그건 당신도 마음대로 할 수 없어요! 흑흑흑…….”

 

독고무령은 울면서 달리는 위지선유의 등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너도 나중에는 나를 싫어하게 될 것이다. 세상이 너와 나의 운명을 비틀어놨으니까.”

 

 

 

* * *

 

 

 

“밤늦게 선유가 밖에 나갔다 왔다고?”

 

“예, 아버님.”

 

“왜 나갔다고 하더냐? 

 

“승룡호로 달구경하러 갔다고만 합니다.”

 

위지천백은 탁자 위의 찻잔에 시선을 두고 곤혹한 표정을 지었다.

 

“그 아이의 말이 정말이라고 생각하느냐?”

 

“승룡호에 사람을 보내 조사해 봤는데, 선유의 것으로 보이는 발자국만 호숫가에 찍혀 있었습니다. 딱히 다른 사유를 알 수도 없고…….”

 

정말인 것 같다는 말. 

 

하지만 위지천백은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보이는 게 전부 진실인 법은 아니다. 분명히 뭔가 숨겨진 것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딸에게 물어봐 봐야 말할 것 같지도 않은 상황. 그 일로 고민하기에는 당장 할일이 너무 중요했다.

 

“네가 이 애비 대신 선유에게 신경을 좀 써야 할 것 같구나.”

 

“그리하겠습니다, 아버님.”

 

“그리고 사마초를 소림으로 보냈다. 백리 아우가 말한 그 여아가 아직 장가장으로 돌아오지 않은 걸로 봐서 지금도 그곳에 있는 것 같더구나. 아마 하루 이틀이면 사마초가 장가장의 장주와 그 여아를 데려올 것이니, 네가 보고 결정을 내리도록 해라.”

 

위지성의 얼굴이 살짝 상기되었다.

 

제왕성에도 수많은 여인들이 있다. 개중에는 뛰어난 미인도 상당수다. 자신의 동생인 위지선유만큼 아름다운 여인이 없을 뿐.

 

그가 그동안 여인들을 깊게 생각하지 않은 것은, 어쩌면 위지선유와 비교하다 보니 마음에 차지 않아서 그런 것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장가장의 장유유라면 달랐다.

 

그도 그녀에 대한 소문을 들어보았다. 

 

친구들이나 산서의 귀공자들이 산서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꼽을 때 항상 들어가는 이름이니까.

 

“알겠습니다, 아버님.” 

 

위지천백의 입가에 기분 좋은 웃음이 걸렸다.

 

자식이 혼사를 올린다는 것은 손자를 얻을 날이 가까워온다는 말. 왠지 모르게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만 나가서 일을 보거라.”

 

 

 

위지성이 밖으로 나간 지 반각이 지났을 때였다. 한 사람이 유령처럼 위지천백의 뒤에 내려섰다.

 

위지천백은 꼼짝도 하지 않고 담담히 입을 열었다.

 

천하에서 자신의 뒤에 내려설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한 사람밖에 없었다. 밀천의 주인.

 

“왔는가?”

 

“하하하, 형님을 속이기는 영원히 불가능할 것 같군요.”

 

“원, 사람도……. 그래, 일은 잘 처리되었는가?”

 

“삼왕은 제거되었고, 태자도 함구하기로 했습니다. 곧 허락이 떨어질 것입니다.”

 

“북쪽 놈들은?”

 

“이곳의 일이 진행되는 대로 움직이기로 했습니다.”

 

“흠, 그래? 수고했네.”

 

“그건 그렇고, 암천회가 제법 커졌다 들었습니다만, 그냥 놔둬도 괜찮겠습니까?”

 

“잠깐 방심한 사이에 너무 커졌어. 하지만 모든 일이 계획대로 진행되면, 놈들은 감히 대항할 엄두를 내지 못하게 될 걸세. 그때까지는 태원에 묶어둘 셈이야. 그 안에서 왕 노릇을 하든 말든. 놈들이 아무리 날뛰어봐야 부처 손안의 오공이 아닌가?”

 

“하긴 형님께서 권좌에 오르게 되면 놈들도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위지천백은 잠시 말문을 닫고 천천히 태사의에서 일어났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네. 마지막까지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될 거네. 하늘의 심술은 상제도 비켜나가지 못한다 하지 않던가?”

 

“그래야겠지요. 천하가 손에 쥐어질 때까지는…….”

 

“돌아가거든 이왕을 확실하게 틀어쥐게. 혹시라도 허튼 생각을 할지 모르니까.”

 

“걱정 마십시오. 그자의 목숨은 언제든 소제의 손안에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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