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풍전설 6화
무료소설 천풍전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58회 작성일소설 읽기 : 천풍전설 6화
6화
풍천은 상자와 검을 들고 사조의 방으로 들어갔다.
방은 일개조원 열한 명이 모두 기거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그가 들어갔을 때 안에는 여덟 명이 있었는데, 그가 들어가자 일제히 고개를 돌리고 눈빛을 빛냈다.
조장이 새로 임명되었다고 했다. 전 당주인 사마공유의 사제라고 했다.
게으른 당나귀처럼 생겼다는데 어떤 사람일까?
모두가 궁금한 표정이었다.
풍천을 본 그들은 소문이 사실이라는 걸 확신했다.
‘정말 게으르게 생겼군.’
‘그래도 얼굴은 잘생겼네. 눈썹도 굵고. 키도 크고.’
‘오래 못 살겠는데?’
‘짧으면 한 달, 길면 석 달 정도? 흠, 내기나 할까?’
그래도 어쨌든 조장이 아닌가. 그들은 자리에서 주섬주섬 일어나 최소한이나마 예를 갖추었다.
“새로 오신 조장이십니까?”
여덟 명 중 몸이 바위처럼 단단해 보이는 장한이 물었다.
풍천은 졸음을 억지로 참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암, 그렇습니다. 여기가 사조 맞죠?”
그럼 어딘 줄 알고 들어왔는데? 밖에 쓰여 있는 숫자도 못 봤나?
조원들은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풍천을 바라보았다.
정말 사마 당주님의 사제인 거 맞아? 이거 우리까지 덤으로 제 명에 못 죽는 거 아냐? 그런 생각이 들며 은근히 걱정되었다.
이번에도 몸뚱이가 바위처럼 단단해 보이는 장한이 말했다.
“맞습니다. 저쪽이 조장님 자리입니다.”
그는 굵은 손가락으로 다른 곳보다 두 배 정도 넓은 곳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침상과 작은 서랍장과 사람 키만 한 장(欌)이 있었다.
풍천은 그곳으로 가서 문을 열고 상자와 검을 안에 넣었다. 그리고 침상에 앉더니, 그때까지 서 있는 사람들을 멀뚱히 바라보았다.
“왜 그렇게들 서 있습니까?”
사조 조원들은 절로 한숨이 나왔다.
왜 서 있냐고? 그야 인사를 나누려고 서 있지!
이번에는 턱이 기다란 장한이 말했다.
“인사라도 나눠야 할 것 같은데요.”
“아참, 하, 하, 하. 제가 아직 여러 사람과 함께한 경험이 없어서······.”
침상에서 뭉그적거리며 일어난 풍천이 머쓱하니 웃으며 포권을 취했다.
“풍천이라고 합니다.”
“저는 기종탁입니다.”
턱이 기다란 장한에 이어 바윗덩이처럼 단단해 보이는 장한이 포권을 취하며 이름을 말했다.
“구자암입니다.”
뒤이어 다른 자들도 풍천의 시선을 받을 때마다 이름을 밝혔다.
“여공위라 합니다.”
“송이진입니다.”
“은초당입니다.”
“백승문이라 합니다.”
“강승조라 합니다.”
“문척입니다.”
대부분 서른 전후의 나이였다. 그중 나이가 가장 많은 사람은 구자암으로 서른셋이었고, 강승조와 문척이 스물여섯으로 제일 젊었다.
인사가 끝나자 풍천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여덟 명밖에 없나요? 조원이 열 명이라 들었는데.”
기종탁이 대답했다.
“두 사람은 볼일이 있어 밖에 나갔는데, 해가 지기 전에는 들어올 겁니다.”
“그래요? 그렇게 서 있지 말고 편히 쉬세요.”
풍천은 조원들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는 걸 보며 다시 침상에 앉았다.
감길 것처럼 좁혀진 눈 깊은 곳에서 이채가 번뜩였다.
‘눈빛들이 괜찮군.’
특히 구자암과 기종탁과 여공위는 실력도 괜찮아 보였다. 저런 자들이 일개 조원으로 있다는 게 의아할 정도였다.
‘다른 당보다 숫자가 적은 대신 개개인의 실력은 뛰어난 것 같아. 비밀 임무를 수행하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거겠지?’
5
밖에 나갔다던 두 사람은 석양이 막 서산으로 넘어갈 무렵에 돌아왔다.
그들은 사조의 방까지 가는 동안 조장이 어떤 사람인지 다섯 번은 들을 수 있었다.
‘빌어먹을, 대체 어떻게 생겼는데······.’
‘비검당도 다 됐군. 당주의 사제라는 이유만으로 조장이 되다니.’
방으로 들어선 두 사람은 조장의 침상 쪽을 바라보았다.
큰 대자로 누워서 늘어지게 자고 있는 풍천이 보였다.
‘아직 어두워지지도 않았는데······.’
‘뭐 저런 인간이 다 있지?’
두 사람은 풍천의 침상으로 다가갔다.
그들이 막 침상 앞에서 걸음을 멈췄을 때였다. 풍천이 벌떡 몸을 일으키더니 실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갑작스런 행동에 흠칫 놀란 두 사람은 풍천을 쏘아보았다.
그때 두 사람을 발견한 풍천이 졸린 눈을 깜박이며 물었다.
“응? 두 분 이름이 뭐였죠? 기억이 잘 안 나는군요.”
처음 봤는데 어떻게 알아서 기억해?
“저는 화정평이라 합니다, 조장.”
“서문경이에요.”
두 사람은 약간 짜증나는 투로 대답했다.
한데 서문경의 목소리는 가늘고 고왔다. 조금 차갑게 느껴져서 그렇지.
풍천은 서문경이 여자라는 걸 알고 눈을 조금 더 크게 떴다.
“어? 우리 조에 여자도 있었네?”
서문경이 눈을 치켜떴다.
“그래서 불만이라도 있어요?”
풍천이 급히 손을 저었다.
“아, 아닙니다. 하, 하. 소도둑처럼 생긴 남자들만 있는 곳에 아름다운 여자가 있으니 당연히 반갑지요.”
순간 소도둑 아홉의 눈이 일제히 풍천을 향했다.
‘당신은 눈 보니까 개도둑처럼 보여!’ 그렇게 소리치고 싶어 하는 눈빛이었다.
풍천이 이조와 삼조 조장을 만난 것은 그날 밤이었다. 그들이 사조의 방으로 직접 찾아온 것이다.
본래 그들은 풍천이 자신들을 찾아올 거라 생각했다. 새로 온 조장이니 선임 조장들에게 찾아와서 인사를 하는 게 당연한 일이 아닌가 말이다.
그런데 밤이 되도록 찾아오지 않자,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놈인지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이조장인 나한조라고 하네.”
“삼조장인 궁이정이네. 돌아가신 당주님의 사제라고? 정말 반갑군.”
나한조는 덩치가 제법 컸는데, 부리부리한 눈과 거친 수염이 마치 촉의 장수 장비 같았다.
나이는 서른다섯. 아직 총각으로, 힘이 장사였다. 그렇다고 해서 힘만 센 멍청이는 아니었다.
그는 사람을 한 번 보고 들으면 잊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그의 큰 머리 속에는 수천 명의 강호 인명록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궁이정은 평범한 모습을 지닌 서른넷의 유부남이었다. 겉모습만 봐서는 도무지 어떻게 저런 사람이 비검당의 조장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물론 풍천보다는 그래도 나았지만.
그러나 겉모습만 보고 그를 얕보았다가는 큰코다쳤다.
그는 자잘한 정보만 가지고도 백 리 떨어진 적을 추적할 수 있는 추적의 전문가였다. 또한 그의 품속에는 절정의 고수조차 상대하기를 꺼려하는 서른여섯 자루의 비도가 감추어져 있었다.
풍천은 엉거주춤 일어나서 나른한 목소리로 마주 인사하며 포권을 취했다.
“풍천이라 합니다. 아직 모르는 것이 많으니 많은 가르침 부탁드리겠습니다.”
나한조와 궁이정은 풍천이 의외로 순해 보이자 다그치려던 마음을 바꾸었다.
하긴 사형이 죽었으니 인사하러 다닐 정신이 없었겠지. 그렇게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당주님의 죽음은 모두가 안타까워하고 있다네. 젊은 나이에 당주가 되실 정도로 출중한 분이셨는데······. 어쨌든 당주님의 사제가 이렇게 우리와 한솥밥을 먹게 되었으니 앞으로 잘해 보세. 너무 마음아파하지 말고.”
나한조는 커다란 덩치와 어울리지 않게 사근사근하게 말하며 풍천을 위로했다.
궁이정 역시 어깨라도 두드려 줄 것처럼 착잡한 표정으로 말했다.
“정말 아쉬운 일이지. 어쩌다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원······. 힘들더라도 참고 견디게나.”
두 사람이 위로의 말을 던지자 풍천이 넌지시 물었다.
“형이 무슨 일을 하시다 돌아가셨는지 아십니까?”
나한조와 궁이정이 입맛을 다시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걸 모르니 더 답답하다네.”
“혹시 문주님이 말씀해 주시지 않던가?”
두 사람도 그 문제만큼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냥 비밀 임무였다고만 하시더군요.”
“우리도 그 정도밖에 모른다네. 알기로는 대여섯 분 정도만 움직이셨다던데······.”
풍천은 말을 길게 끄는 나한조를 쳐다보았다.
“그분들이 누구누군지 아십니까?”
“정무당의 조 당주님이 함께 가셨다는 정도만 아네.”
조환은 알고 있으나마나였다. 그는 알려주지 않을 테니까.
“다른 분들은요?”
나한조는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모르네.”
제3장. 순진한 남자, 대가 센 여자
1
탕!
진노교는 탁자를 내려치고 풍천을 노려보았다.
“자네 정말·····!”
풍천은 졸린 눈을 겨우 뜨고 하품을 했다.
“하아아음, 그거 꼭 다 알아야 합니까?”
“그럼 조장이 되어서 일일이 수하에게 물어볼 건가? 자존심도 없나? 아니지, 자존심을 떠나서 급히 명령을 이행해야 할 때는 어떻게 할 건가? 조장을 다른 사람에게 넘길 건가?”
“아무래도 그럴 순 없겠죠?”
으이그, 대답하는 꼬락서니하고는······.
진노교는 목구멍에서 불길을 쏟아내듯이 다그쳤다.
“당연하지! 그러니 정신 차리고 똑바로 들어! 나도 이제부터는 한 번씩만 말할 거니까!”
“그러죠 뭐. 그런데 소리는 좀 지르지 마세요. 제가 귀 먹은 것도 아닌데······.”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른 진노교는 이를 지그시 악물고 눈을 가늘게 떴다.
‘일단 한 대 패고 시작해?’
비검당의 조장으로서 알아두어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본래 부당주인 석초산이 교육을 시켜야 하는데, 갑자기 바쁜 일이 생겼다면 진노교에게 떠넘겼다.
진노교는 냉정하게 거절하지 못한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하다못해 나한조나 궁이정에게 떠넘기기만 했어도······.
좌우간 그렇게 해서 교육을 시작했는데, 반각도 되지 않아 병든 닭처럼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꾹 참았다. 누구든 이런 날씨에 점심을 먹고 나면 졸릴 수밖에 없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러다 반 시진이 지나면서부터 부아가 치밀었다.
그래도 참았다. 비검당에 들어온 지 이제 하루, 그것도 사마공유의 사제 아닌가?
‘곧 정신 차리고 잘하겠지.’
하지만 한 시진이 지나가면서 인내도 한계를 향해 치달렸다.
탁자를 내려친 것만도 벌써 열 번이 넘었다.
오기가 생겼다.
‘그래, 어디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보자. 가서 자고 싶겠지? 흥, 내가 보내줄 줄 알고?’
그리고 마침내 두 시진이 지나자, 억눌러놓았던 폭력성이 고개를 쳐들었다.
‘그래, 말 안 듣는 놈은 일단 패야 돼. 반쯤 죽도록 패놓으면 졸지 않겠지.’
진노교는 움켜쥔 주먹에 힘을 주고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바로 그때, 풍천이 제법 또릿한 눈빛으로 말했다.
“본문의 간부들에 대한 말씀은 거의 다하신 것 같은데, 이제 뭘 알려주실 거죠?”
진노교는 탁자 아래에서 움켜쥐었던 주먹의 힘을 풀고, 막 의자에서 떼려던 엉덩이를 다시 붙였다.
‘자식, 내가 말 대신 주먹을 쓸지 모른다는 걸 눈치 챘군.’
그나마 눈치가 빠른 건 다행이다.
눈치가 없는 놈을 상대하는 것은 정말 피곤한 일인데······.
“음, 좋아. 그럼 이번에는 본문과 관련되어 있는 세력들에 대해서 알려주겠네.”
진노교는 머리꼭대기까지 치솟았던 열기를 가라앉히고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일 각······.
벌떡 일어선 진노교가 끝내 탁자를 뒤집었다.
우당탕탕!
“풍 조장! 정말 해보자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