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천제 25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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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434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암천제 254화
254화
전유곤은 자신의 전통에서 화살 하나를 꺼냈다. 화살은 일반화살보다 일곱 치가량 길었는데, 화살대에는 작은 통이 달려 있었다.
그는 작은 통에서 빠져나온 심지를 화톳불에 집어넣었다.
치이익.
심지가 빠르게 타들어갔다.
전유곤은 심지가 타들어가는 화살을 들고 이 층 지붕 위로 올라가더니, 시위에 걸고 허공을 향해 힘껏 잡아당겼다.
쉬이이이익!
시위를 떠난 화살은 허공으로 높이 솟구쳤다. 그리고 어느 순간, 펑! 소리와 함께 불꽃이 터졌다.
전쟁의 서막을 알리는 불꽃이었다.
* * *
거침없이 제왕전으로 들어온 능효가 무릎을 꿇으며 보고를 올렸다.
“놈들이 영빈원에서 몰려나왔사온데 그들 중 한 놈이 화전을 쏘아 올렸다 하옵니다!”
위지천백이 싸늘한 조소를 지은 채 태사의에서 몸을 일으켰다. 일순간, 그의 전신에서 산악 같은 기운이 불길처럼 일어났다.
“여우같은 놈. 진에 갇혔다는 걸 눈치 챘군. 흥! 하지만 이미 늦었다!”
제왕전에 모여 있던 사람들의 눈이 일제히 위지천백을 향했다.
“시작된 이상 철저히 친다! 남의 눈치를 볼 필요 없다! 어차피 놈들만 제거되면 누구도 우리를 넘보지 못할 테니까!”
“천룡방도 완전히 제거하실 생각이십니까?”
밀천객이 물었다. 위지천백이 북리중현을 회유시키려 한다는 걸 알기에 한 질문이었다.
위지천백은 느릿하니 대답했다.
“저항한다면 별수 없지. 가려서 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그러고는 등후양을 바라보았다.
“신호를 보냈으니 밖에 있는 놈들이 몰려올 거네. 사람을 붙여줄 테니 자네가 그자들을 처리하게.”
“알겠습니다, 형님.”
위지천백은 등후양에게 명을 내리고, 끝자락에 서 있는 네 사람을 바라보았다.
왠지 모르게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네 사람. 그들은 제왕성을 따르는 문파 중 가장 강력한 사대세력의 주인들이었다.
“그대들이 등 아우를 도와주도록.”
적사보주 상관호와 팔기보주 호완청, 대원문주 윤악, 마정곡주 안등상은 일제히 허리를 숙이며 외쳤다.
“명에 따르겠나이다!”
“존명!”
성 밖에 대기하고 있는 자들의 수가 일천이라 했다. 장로 다섯에 이전, 이단과 삼당의 일천 무사, 거기에 사대세력의 정예 사백이면 그들을 처리하기에는 충분했다.
설령 독고무령이란 놈이 속임수를 써서 숫자를 반으로 보이게 속였다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일 터였다. 처리하는 시간이 조금 더 오래 걸릴 뿐.
적의 주요 고수들은 모두 안에 들어와 있지 않은가 말이다.
이리저리 따져도 허점이 없는 대처.
위지천백은 만족해하며 단상에서 내려왔다.
그때 볼 살이 홀쭉한 위지성이 눈에 들어오자, 위지천백의 이마에 주름이 그어졌다.
“너는 제왕지처로 가서 환아와 함께 네 어머니와 선유를 지켜라.”
위지성은 차라리 그게 마음이 편했다.
“알겠습니다, 아버님.”
“용서는 이번뿐이다. 명심해라. 큰아들이라 해도 능력이 없으면 후계자가 되지 못할 것이니라.”
“명심하겠습니다.”
위지천백은 위지성에게서 눈을 떼고 걸음을 옮겼다.
“이제 사신과 천룡을 잡으러 가자!”
영빈원을 빙 둘러 정원이 펼쳐져 있고, 정원을 지나면 드넓은 연무장이 나왔다.
정원을 통과한 독고무령 일행이 연무장 쪽으로 접근하자, 사오십 명의 무사들이 앞을 막았다.
질서정연한 움직임. 결코 단순한 경비무사들이 아니었다.
그들 중 맨 앞에 서 있던 삼십 대 후반으로 보이는 장한이 굳게 소리쳤다.
“날이 샐 때까지 아무도 밖으로 나와서는 안 됩니다! 그러니 안에 들어가 계시도록 하십시오!”
귀도와 마불이 앞으로 나서며 코웃음을 쳤다.
“흥! 어디서 새파란 놈이 이래라저래라 지랄이냐! 네놈의 주인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확 목을 비틀어버리기 전에 비켜!”
“킁, 웃기는 놈들이군. 뒷간 가는 것도 막을래?”
치선은 선단을 내밀며 사람 좋은 웃음을 터트렸다.
“허허허, 이보게. 이 약 줄 테니 좀 비켜주겠나.”
하지만 앞을 막고 선 장한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후회하지 말고 안으로 들어가시오!”
“좀 비켜달라니까?”
치선이 나직이 말하며 손을 뻗었다.
“헛!”
장한이 급히 몸을 뒤로 뺐지만, 치선의 취접라를 완전히 벗어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더구나 마을 훈장처럼 웃던 치선이 설마 공격할 줄은 생각도 못했던 터라 물러서는 게 한 박자 늦은 상태였다.
공세가 몇 번 엇갈리는 사이, 치선의 우수가 장한의 가슴 옷자락을 움켜잡았다.
치선은 장한의 옷깃을 잡고는 가볍게 비틀었다. 순간 장한의 몸이 허공으로 붕 뜨더니 한 바퀴 휘돌았다.
“어딜!”
옆에 서 있던 무사 서넛이 무기를 뽑아들고 치선의 좌우에서 달려들었다. 이미 명을 받은 터. 조금도 망설임이 없는 살수였다.
“이런 빌어먹을 놈들이!”
“그러게 좋은 말로 할 거 없다니까?”
귀도와 마불이 좌우에서 달려드는 자들을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무사들이 제아무리 정예들이라 해도 상대는 북천삼괴다. 더구나 강호의 골칫거리답게 이런저런 말보다 주먹을 앞세운 상황.
콰직! 뻑!
귀도의 공격을 받은 자는 목덜미를 움켜쥔 채 비틀거리며 쓰러지고, 마불의 커다란 손바닥에 얻어맞은 자는 눈을 홉뜬 채 그 자리에서 무너졌다.
갑작스런 상황에 당황한 제왕성의 무사들이 무기를 뽑아들며 소리쳤다.
“이게 무슨 짓이오! 감히 본성에 대항하겠다는 거요!”
순간, 진사혁을 비롯한 호위무사대가 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뒤이어 암천회와 천룡방의 고수들 중 반 정도가 신형을 날렸다.
이미 작정하고 달려든 터였다.
전유곤은 활을 당겨 다섯 개의 화살을 날리고, 진사혁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곤을 휘둘렀다.
쉬이익!
우르릉!
호위무사대의 나머지 여덟 명도 손속에 인정을 두지 않고 상대를 덮치고, 암천회와 천룡방의 고수들도 살수 쓰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다.
“헉!”
“피해!”
“크억!”
비명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오며, 눈 깜짝할 새에 십여 명이 피를 뿌리면서 쓰러졌다.
그때였다.
“개진!”
일성이 어둠속에 울려 퍼지는가 싶더니, 기다렸다는 듯 사방에서 수백 명의 무사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나타남과 동시에 커다란 원을 그리며 암천회와 천룡방 사람들을 둘러쌌다.
치선이 좌우를 빠르게 둘러보고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건방(乾方), 곤방(坤方)! 격(擊)!”
순간, 천룡방의 장로와 천룡십팔객 여덟 명이 남쪽을 향해 공세를 펼치고, 진원명과 진관욱, 진관양이 암천회의 장로 다섯과 함께 북쪽을 공격했다.
콰르릉!
산악을 무너뜨릴 것 같은 기운이 벽력음을 동반한 채 제왕성의 무사들을 향해 밀려갔다. 금방이라도 둘러싼 무사들이 처참하게 무너질 것만 같았다.
제왕성 무사들은 당황하지 않고 네 명이 뭉쳐서 한 사람을 상대했다.
네 사람이 함께 손을 쓴다고 해서 위력 자체가 네 배나 커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일반적인 상황일 뿐이었다. 진세에 따라 움직이는 그들의 공격은 암천회와 천룡방의 장로들이 흠칫할 정도로 위력적이었다.
게다가 네 사람이 손을 쓰니 그만큼 상대하기가 까다로웠다.
“이런 제기랄!”
상관연이 대뜸 욕설을 퍼부으며 검을 휘둘렀다.
제왕성의 간부도 아닌 일개 평무사들의 합공 정도는 눈에 차지도 않았다. 넷 정도는 두어 번의 공격으로 충분히 제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리 생각했다가 하마터면 어깨를 잘릴 뻔했다. 상대의 반격에 예상치 못한 힘이 실려 있어서 자신의 공격이 막힌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 처한 것은 상관연만이 아니었다.
혁련장욱과 척구등도 자신들의 공격이 먹혀들기는커녕 거꾸로 반격까지 당하자 다급히 뒤로 물러나며 소리쳤다.
“조심하시오! 놈들의 합공에 엄청난 힘이 실려 있소이다!”
“빌어먹을! 아무래도 진세 때문인 것 같네!”
북쪽을 공격한 사람들도 사정이 비슷했다.
진관욱과 진관양은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에 상처마저 입고서 뒤로 물러나고, 암천회의 장로들 역시 당황하며 뒤로 밀렸다.
하지만 한 사람, 진원명만은 그들처럼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절대경지에 이른 진원명이다. 그의 곤세는 제왕성의 무사 네 사람의 힘이 합쳐졌다고 해서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천둥벼락을 동반한 곤세가 떨어져 내리자, 제왕성의 무사들은 답답한 신음과 함께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그 모든 일이 벌어진 시간은, 그야말로 숨 한 번 몰아쉬는 순간에 불과했다.
어쨌든 진원명으로 인해 벽에 금이 간 상황.
치선이 눈을 반짝이며 소리쳤다.
“지금이야! 간(艮)과 손(巽)을 쳐!”
귀도와 마불이 일곱 명의 산서 명숙과 함께 서북을 치고, 진사혁이 호위무사대와 함께 서남쪽을 향해 공격했다.
적들의 무위에 대해 경각심을 가진 터다. 그들은 추호도 사정을 봐주지 않고 전력을 쏟아냈다.
방원 이십 장 안에서 폭풍이 일며 어둠이 출렁였다.
바닥이 들썩이고 먼지구름이 해일처럼 일어났다.
절정 이상의 고수 마흔 명 이상이 손을 쓰는 판이다. 제아무리 진세의 힘을 빌려 대항한다 해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일. 제왕성의 무사들은 포위망을 더 좁히지 못하고, 오히려 상대의 끈질긴 공세에 질려 진세를 더 넓게 벌렸다.
그래봐야 대여섯 걸음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때만 기다리던 사람에게는 눈이 번쩍 뜨이는 일이었다.
치선이 방방 뜨며 미친 듯이 소리쳤다.
“무령아! 감방(勘放)을 뚫어! 진세를 단숨에 찢어버리면 진이 힘을 잃을 거야!”
감방은 천라금쇄진의 축인 만큼 진세의 힘이 집중된 곳이다. 나머지 방위를 공격하게 한 것은 순전히 감방의 힘을 약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처음부터 독고무령과 북리중현이 그곳을 향해 손을 쓸 수도 있었다.
그러나 공격을 하고도 단숨에 무너뜨리지 못하면, 다른 사람이 대신 그만큼 강력한 저항을 받는다고 했다.
진세에 대해 확실한 것을 모르는 상태에서 그런 모험을 할 수는 없는 일. 시간을 지체하더라도 확실하게 해결하는 것이 나았다.
그런데 의외로 기회가 빨리 왔다.
독고무령과 북리중현은 치선의 첫마디가 떨어지자마자, 서쪽을 향해 신형을 날리며 공격을 펼쳤다.
콰르르릉! 콰광!
두 사람의 공세가 밀려가자 하늘과 땅이 뒤집어질 것처럼 흔들리고, 강기의 폭풍이 진세를 타고 휘돌며 용권풍 같은 회오리가 휘몰아쳤다.
쩌저적! 콰과광!
감방을 맡고 있는 자들은 환무단의 일반단원이 아닌 조장들이었다. 게다가 그곳은 진세의 축. 어느 곳보다 힘이 집중된 곳이었다.
하지만 이미 전체 진세가 흔들린 상태. 아무리 진세의 묘용으로 인해 몇 배의 힘을 쓸 수 있다 해도, 그들의 능력으로는 두 사람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했다.
“크억!”
“커어억!”
칠팔 명의 무사가 벼락이라도 맞은 듯 뒤로 튕겨지며 틈이 벌어졌다.
독고무령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갈라진 틈 사이로 뛰어들었다. 동시에 그의 검첨에서 시퍼런 검광이 번뜩이는가 싶더니, 진세의 틈을 그대로 갈라버렸다.
쩌저저적!
살얼음 갈라지는 기음과 함께 세 명의 무사가 힘없이 꼬꾸라졌다.
뒤질세라 북리중현이 뛰어들며 쌍장을 휘둘렀다.
천룡강기가 실린 그의 장세에는 무쇠라도 부술 수 있는 위력이 담겨 있었다.
콰광!
천라금쇄진의 갈라진 틈이 터져나가며 또다시 세 명의 무사가 튕겨졌다.
두 사람에 의해 벽이 무너질 때마다 아지랑이처럼 일어난 기운이 출렁이며 조금씩 약해졌다.
그때 북리중현이 두 팔을 벌리고 정면을 향해 휘둘렀다.
“이놈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천룡신공의 위력이니라!”
찰나, 노도와 같은 가공할 장력이 전방을 향해 몰려갔다.
콰아아아아!
그에 맞춰 독고무령도 검을 떨쳤다.
수천제마구겁무 중 뇌락절혼겁(雷落切魂劫)이 펼쳐진 순간!
쩌저저적!
검첨에서 벼락 한 줄기가 쭉 뻗어가며 앞을 막는 모든 것을 부수었다.
두 사람의 공세는 한 번에 십여 명을 무너뜨리며 진세 자체를 뒤흔들었다.
콰과광!
“크어억!”
“으악!”
“놈들을 막아라! 진세를 흐트러뜨리지 마!”
진세를 총 지휘하던 환무단주 단무극이 악을 쓰며 수하들을 독려했다. 그러나 축이 무너진 상태로는 두 사람을 막아낼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암천회와 천룡방이 유리한 것도 아니었다.
독고무령과 북리중현이 축을 무너뜨리는 동안 중심부에 있던 사람들은 수백 무사의 집중공격을 받아야만 했다.
그 와중에 호영검객 우종탁과 유혼신마 곽채신, 천룡방의 천룡십팔객 중 두 사람이 중상을 입었다. 또한 일산노룡 소현욱을 비롯해 칠팔 명이 작지 않은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그나마 치선이 알려준 원진을 끝까지 흐트러뜨리지 않아서 사망자를 최소화 시킨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그런 마당에 열 배도 넘는 숫자를 상대해야 했는데, 상대는 모두가 제왕성의 정예무사들이었다. 아무리 개개인의 무위가 높다 해도 어둠 속에서 한 사람이 열 사람을 상대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비명!
어둠속에서 솟구치는 피 분수!
단 일각 만에 드넓은 연무장이 붉게 물들었다.
그렇게 난전이 극에 달할 무렵, 전쟁터를 향해 오십여 명이 다가왔다.
“무림왕 전하께서 납시었다! 앞을 터라!”
제왕성의 무사들이 양쪽으로 쫙 갈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