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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풍전설 13화

무료소설 천풍전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335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천풍전설 13화

 

13화

 

 

 

 

 

 

“나도 힘들게 살아온 사람이야. 어릴 때는 집도 절도 없는 떠돌이생활도 해보았고. 그러다 보니 너처럼 함부로 돈 쓰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아.”

 

누가 나 좋아하랬어?

 

백초령은 풍천을 슬쩍 째려보고는 고개를 돌렸다.

 

그녀도 풍천의 말에 툭툭 쏘듯이 대꾸했지만, 그렇게 막돼먹은 여자는 아니었다.

 

게다가 풍천이 떠돌이 거지처럼 살아왔다고 하자 마음이 약해졌다.

 

“그럼 이번만 그렇게 먹어. 어차피 시켰으니까.”

 

아, 돈 벌기 힘들다.

 

풍천은 마지못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사조원들은 그 한마디에 겨우 숨을 내쉬고는, 풍천을 새삼스런 눈으로 쳐다보았다.

 

보기보다 제법 진중한데?

 

 

 

일곱 가지 요리는 이 각이 지난 후에 나왔다.

 

사조원들은 작은 접시에 각자 먹을 요리를 담기 위해서 요리그릇에 젓가락을 가져갔다.

 

그때였다. 

 

휙휙휙! 스스슥!

 

손 그림자 하나가 번개처럼 오가더니, 일곱 개의 요리 그릇이 빠르게 비어갔다.

 

사람들은 젓가락을 뻗은 채 그 손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풍천이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게으름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풍천의 손이 저렇게 빠르다니.

 

“왜들 안 먹는 겁니까?” 

 

풍천은 자신을 쳐다보는 사람들이 더 이상했다.

 

음식을 앞에 놓고 게으름을 피우다니!

 

개인의 그릇에 담긴 거라면 상관없었다. 하루 종일 먹는다 해서 누가 뭐라고 하랴. 

 

그러나 여러 사람이 나누어 먹는 음식은 경우가 달랐다. 일단 많이 퍼놓아야 여유도 부릴 수 있었다.

 

“먹기 싫어요? 맛이 없어요?”

 

“저기, 조장. 둘째 아가씨 앞이니 조금 조심해서…….”

 

서문경이 같은 여자의 입장으로서 백초령을 배려했다.

 

백초령은 일곱 개의 요리 중 하나를 자신의 앞으로 당겼다. 

 

“이건 나하고 서문 언니만 먹을 거야. 나머지는 알아서 해.”

 

“그래? 그럼 그렇게 해. 자, 먹읍시다.”

 

풍천 앞에 있는 접시에는 뒤섞인 일곱 가지 요리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풍천은 그 요리를 순식간에 해치우고는, 그래도 배가 안 찼는지 젓가락을 뻗었다.

 

순간, 다른 사람들의 젓가락들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춤을 추었다.

 

다른 젓가락을 피해서 오가는 젓가락질은 가히 묘기를 보는 듯했다.

 

점소이는 멀리서 그 모습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굉장하군! 며칠 굶었나? 뱃속에 거지새끼가 몇 마리씩은 들어 있는 것 같네.’

 

 

 

촤라라락.

 

주렴이 걷히고 몇 사람이 객잔으로 들어온 것은 풍천 일행이 일곱 개의 접시를 깨끗이 비운 후였다.

 

입구가 보이는 쪽에 앉아 있던 구자암이 그들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검각의 이공자 일행이잖아?”

 

풍천은 차를 마시다 멈칫했다.

 

‘오후에 출발한다고 했는데…….’ 

 

백초령이 고개를 돌리면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누구 곤란해지겠는데?”

 

풍천은 마저 찻잔을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는 그만 올라가서 쉽시다.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해야 하니까.”

 

그러나 구양종도 눈뜬 봉사는 아니었다.

 

그는 풍천을 보고는 몇 년 만에 만난 친구처럼 반가워했다.

 

“이게 누구신가? 신검문 비검당의 풍 조장 아닌가?” 

 

왠지 비웃음이 느껴지는 말투. 

 

‘쳇, 순순히 방으로 가긴 틀렸군.’

 

풍천은 별수 없이 몸을 돌리며 씩 웃었다.

 

“하하, 이런 곳에서 또 만나는군요.”

 

“그러게 말이네. 이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인데, 술 한잔하지 않겠나? 전에 하다만 이야기를 마저 듣고 싶은데.”

 

말하는 동안 구양종과 화영쌍검을 비롯한 검각 사람들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기세로 누르겠다는 듯 위압적인 표정이었다.

 

풍천은 코를 긁적거리는 것으로 대응했다. 

 

“이야기 나누는 거야 상관없습니다만, 둘째 아가씨를 모시고 선가장에 가는 길이니 술은 사양하겠습니다.”

 

“둘째 아가씨?”

 

구양종은 흠칫하며 백초령을 바라보았다.

 

백초령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몸을 돌리며 인사말을 건넸다.

 

“또 뵙네요? 검각으로 돌아가시는 길인가 보죠?”

 

구양종은 입이 달라붙었다.

 

신검문에서 봤을 때는 평범한 옷을 입고 머리가 흐트러져 있었다. 게다가 하는 말투도 선머슴 같았고. 

 

그 바람에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었다.

 

그런데 녹의경장을 입고 머리를 단정히 묶은 백초령을 보자 자신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혼인을 안 했을 뿐, 그는 검각의 소각주로서 많은 여자들을 접해 본 사람. 곧바로 백초령의 진가를 알아본 것이다.

 

분을 칠하지 않고 머리나 옷도 대충 꾸며서 그렇지, 백초령은 백서령 못지않게 아름다웠다. 오히려 몸매는 백초령이 더 나았고.

 

자주 본 신검문 사람들이나, 골칫거리로만 생각하는 풍천에게는 그저 나이 든 말괄량이일 뿐이었지만, 그는 가슴이 두근거려서 숨을 쉬기가 힘들 정도였다.

 

‘둘째가 이렇게 아름다웠단 말인가?’

 

그가 빤히 바라보기만 하자 백초령이 의아한 듯 물었다.

 

“왜 그렇게 보세요?”

 

그제야 구양종은 황급히 포권을 취했다.

 

“미처 계신지 몰라서 실수를 했습니다. 초령 소저.”

 

“괜찮아요. 그런데 오후에 출발하신다더니, 일찍 오셨네요?”

 

“시간 여유가 많지 않아서 점심 먹고 바로 출발했습니다.” 

 

“그러셨군요. 아, 저는 올라가서 좀 쉬어야겠어요. 풍 조장님과 나눌 이야기가 있으신가본데, 그럼 이야기들 나누세요.”

 

백초령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러고는 ‘잘 해결해 보셔.’ 그런 표정으로 풍천을 바라보며 몸을 돌렸다.

 

“괜찮으시다면 한잔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맛있는 걸 사드리리다.”

 

구양종이 급히 말을 건네 백초령을 붙잡았다.

 

“다섯 시진을 걸었더니 다리가 퉁퉁 부은 것 같아요. 사주신다는 요리는 나중에 먹죠 뭐.”

 

“마차가 한 대 따라간 것 같던데, 이 먼 길을 걸으셨단 말입니까?”

 

“마차는 우리 풍 조장님만 타고 오셨죠.”

 

“뭐요? 어찌 그럴 수가!”

 

구양종이 풍천을 노려보았다. 

 

마치 자신의 여동생이, 아니 부인이 풍천 때문에 고생하기라도 한 것처럼.

 

풍천은 ‘이 사람이 왜 이래?’ 그런 표정으로 구양종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사정을 설명했다.

 

“믿지 마쇼. 저 여자가 먼저 내 마차를 타고 가느니 걸어가겠다고 했으니까.”

 

“그렇다고 여자를 걸어가게 하고 자네 혼자 마차를 탔단 말인가?”

 

“그럼 싫다는 사람을 억지로 태우란 말이오?”

 

일개 조장 따위가 한 치도 밀리지 않고 맞받아친다.

 

그것도 백초령 앞에서. 

 

구양종은 은근히 화가 났다. 이대로 물러서면 백초령이 자신을 별것도 아닌 사람처럼 생각할 것 아닌가.

 

“정말 따끔한 맛을 봐야 할 친구군!”

 

“당신이 뭔데?”

 

역시나 풍천은 단 반치도 양보하지 않았다.

 

갑자기 일이 이상하게 흐르자, 백초령은 슬그머니 그 자리를 떴다.

 

“너무 감정적으로 말씀하시지 말고 대화로 풀어보세요. 그럼 저는 이만 올라가볼게요.” 

 

얼씨구? 실컷 싸움을 붙여놓고 자기는 구경이나 하겠다고?

 

풍천은 백초령을 째려보았다.

 

“이봐, 사실을 말해주고 가야지.”

 

백초령은 못 들은 척 재빨리 계단으로 향했다.

 

“점소이, 방 좀 줘요. 깨끗한 방으로.”

 

“예, 소저!”

 

“이. 이봐! 백초령!”

 

풍천이 백초령을 불렀다. 하지만 백초령 대신 구양종이 나섰다.

 

“일개 조장이 어디서 초령 소저에게 함부로 말하는 거냐!”

 

“우리 두 사람 사이 문제에 당신이 왜 끼어드는 거요? 당신이 뭘 안다고?”

 

“이놈! 보자보자 하니까 정말 버릇이 없는 놈이로구나! 네놈이 어디서 감히 소각주께 망발이냐!”

 

끝내 화영쌍검 중 둘째인 정태신이 노성을 내지르며 나섰다.

 

“어? 지금 머릿수 많다고 저를 협박하는 겁니까?”

 

“뭐야? 이놈이 정말 혼나봐야 정신을 차릴 놈이로구나!”

 

정태신은 어이가 없는지 한소리 내지르고는 풍천에게 바짝 다가갔다.

 

“지금 싸우자는 거요?”

 

풍천은 눈살을 찌푸리고는 뒤를 돌아다보았다. 

 

숫자라면 비검당 사조도 뒤떨어질 게 없다. 저들은 열셋, 자신들은 열하나. 두 사람밖에 차이 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만 그렇게 생각할 뿐이었다.

 

“조장, 설마 진짜로 싸우겠다는 건 아니겠지요?”

 

기종탁을 필두로 조원들이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풍천을 말렸다.

 

“지금 조장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지 아십니까?” 

 

알면 저지르지도 않았겠지.

 

“조장, 참으십쇼. 저분들과 싸워서 뭘 어쩌자는 겁니까? 임무도 완수하지 못하고 이대로 돌아가실 겁니까?”

 

“대체 왜 이러십니까?”

 

왜 이러긴? 저들이 시비를 걸잖아!

 

풍천은 조원들이 흘겨보았다. 아무래도 나설 생각이 없는 듯했다. 

 

‘내가 일찍 죽기를 바라는 사람들 같군. 쳇.’

 

내기 때문에 그러나? 그게 몇 푼이나 된다고.

 

미안하지만 당신들 뜻대로 안 될걸? 나는 백 살도 더 살 거거든!

 

도움 받는 것을 포기한 풍천은 고개를 돌리고 정태신을 노려보았다.

 

“댁은 뉘슈?”

 

정태신은 어이가 없었다. 

 

강호에서 화영쌍검이라는 이름은 결코 가벼운 이름이 아니다.

 

검각의 장로가 된 지 삼 년. 중소 문파의 주인들조차 자신들을 아래로 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새파랗게 젊은 놈이, 그것도 신검문의 일개 조장이란 놈이, 뭐라? 댁은 뉘슈?

 

그가 언제 이런 꼴을 당해 봤던가.

 

“건방진 놈!”

 

스윽, 좌수를 뻗은 정태신은 풍천의 멱살을 잡아갔다. 

 

그는 풍천의 멱살을 잡고 패대기쳐서 확실하게 혼내줄 작정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될 것 같았다. 자신이 멱살을 움켜쥐는데도 풍천은 그 자리에서 단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았으니까.

 

덥석!

 

멱살을 움켜쥔 정태신은 풍천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그는 풍천을 잡아당기지도, 패대기쳐서 혼내주지도 못했다.

 

풍천이 자신의 손목을 잡고 있었다.

 

‘언제 이놈이 내손을 잡았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분명히 움직이는 걸 보지 못했는데…….

 

문제는 풍천이 그의 손을 잡았다는 것이 아니었다. 

 

손목이 으스러지는 느낌.

 

‘윽, 이 자식은 아귀힘만 길렀나?’

 

이마를 찡그린 그는 손에 공력을 주입해서 풍천의 손을 튕겨내려 했다. 하지만 상황은 그의 생각처럼 흐르지 않았다.

 

손목을 잡은 풍천의 손이 튕겨지기는커녕 자신의 손목이 끊어질 것 같았다. 

 

게다가 손목의 맥이 잡힌 바람에 몸이 저릿해서 공격을 가할 수도 없었다. 

 

‘이, 이런······!’

 

풍천이 공격한다면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

 

정태신의 얼굴이 바위처럼 굳어졌다.

 

하지만 풍천은 공격하는 대신 짜증나는 투로 말했다. 

 

“거, 말로 하면 되지, 왜 사람의 멱살을 잡는 거요?”

 

그냥 뒤로 물러나서 피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멱살을 잡혀주었다. 그래야 상대가 빠져나가지 못하고 자신의 의도대로 끌려올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정태신은 뒷골에 얼음물이 쏟아진 기분이었다.

 

‘서, 설마 지금까지 우리를 속였단 말인가?’

 

그러나 속였다고 보기도 좀 그랬다. 자신이 겉모습만 보고 별 볼일 없는 놈이라고 생각한 것뿐.

 

‘빌어먹을!’

 

신검문의 비검당은 특수 임무를 수행하는 곳. 그곳의 조장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조심했어야 하거늘! 

 

“이제 보니 한 수 있는 놈이었군.”

 

정태신은 이를 악물고 쏘아붙였다.

 

구양종과 정태민에게 경고를 보내기 위함이었다. 직접적으로 말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기에는 자존심이 상했다.

 

“전 귀찮은 걸 무지 싫어하거든요? 누가 제 몸을 건드는 것도 그만큼 싫어하고 말이죠. 어때요? 제 멱살을 잡은 것은 귀하가 잘못한 거 같은데, 이쯤에서 그만하죠?”

 

손목을 콱! 부러뜨리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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