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풍전설 4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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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55회 작성일소설 읽기 : 천풍전설 43화
43화
“제 생각으로는 신검문 쪽일 확률이 열 중 여덟입니다. 하지만 혹시 모르는 일인 만큼, 본성에서 그 일을 알고 있는 사람들도 조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당연히 그래야겠지. 철저히 알아보도록 해라. 만약 본성에서 그 비밀이 새어나갔다면, 그게 누구든, 머리를 잘라서 성문 앞에 매달아 본보기를 보여라. 설령 본좌의 형제라 해도 예외는 없다.”
온화한 말투지만 소름이 끼칠 만큼 무서운 뜻이 담긴 말이었다.
도관을 쓴 중년인은 잘게 흔들리는 눈빛을 감추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성주.”
혁련궁은 웃음을 띤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중년인을 직시했다.
“사우, 그들이 유령총에 들어가도 그냥 놔두어라.”
중년인은 흠칫하며 혁련궁을 바라보았다. 혁련궁이 하고자 하는 말이 뭔지 아는 것이다.
“괜찮겠습니까?”
“어차피 유령총의 비밀은 확인되지 않은 전설일 뿐이다. 얻는다는 보장도 없고. 본좌가 얻을 수 없는 비밀이라면 천하의 누구도 얻을 수 없어야 한다. 후후후후, 물론 둘 다 얻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욕심이 나도 하늘이 막으면 어쩔 수 없는 법이니라. 그렇다면 다른 것이라도 얻어야겠지. 너는 그 방법을 강구해 보도록 해라.”
“예, 성주.”
제7장. 가장 확실한 방법
1
수향진에 도착한 구출대는 십여 명이 탈 수 있는 배를 한 척 빌렸다.
화청백은 그곳에서 원소진에게 작별을 고했다.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원 대협.”
“하하하, 별말씀을.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오.”
“시간이 촉박해서 이만 떠나야 할 것 같습니다. 나중에 대원보에 들르면 그때 감사의 인사를 다시 하겠습니다.”
“꼭 들러주시오. 본보에는 신검일수를 보고 싶어 하는 아가씨들을 손가락으로 다 꼽을 수 없을 만큼 많으니까 말이오.”
화청백은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배에 올랐다.
“출발하겠습니다!”
출발을 알린 사공이 밧줄을 풀더니 굵고 기다란 장대로 바닥을 밀었다.
원소진은 구출대가 탄 배가 멀어질 때까지 바라보았다.
일 각이나 지났을까, 구출대를 태운 배가 보이지 않을 즈음, 제법 큰 배가 원소진이 서 있는 곳으로 미끄러져 왔다. 구출대가 탄 배보다 훨씬 큰 배였다.
배 안에는 삼십여 명의 무사들이 타고 있었는데, 이십 대 후반에서 삼십 대 중반까지, 하나하나가 정광이 번뜩이는 눈빛을 지니고 있었다.
원소진이 다가가자, 눈매가 날카롭고 차가운 표정을 지닌 중년인이 안쪽에서 나왔다.
“수고했소.”
“동릉에서 내릴 생각인가 봅니다.”
“어서 타시오. 거리가 너무 떨어져도 안 되니까.”
원소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뒤에 서 있는 수하들을 돌아다보았다.
“모두 승선해라.”
적련방의 적비당원들을 직접 지휘하는 조궁이 수향진의 선착장에 나타난 것은 원소진을 태운 배가 까마득히 멀어진 후였다.
“흠, 남궁세가가 나선 건가?”
선착장이 내려다보이는 건물에서 원소진을 비롯한 대원보 무사들이 배에 오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런데 남궁세가의 무사들이 미리 배에 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들이 대원보와 함께 움직일 만한 이유는, 그것도 화청백 일행을 뒤따라갈 만한 이유는 그가 아는 한 오직 하나였다.
‘저들도 유령총에 대한 소문을 들었나 보군.’
진한 피 냄새가 느껴졌다.
신마성과 신검문 사이의 일에 천혈궁과 적련방, 남궁세가까지 끼어들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세력이 끼어들까?
“반 단주께서 먼저 장강을 건넜습니다, 당주.”
뒤에서 장한 하나가 나직이 말했다.
조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남궁세가와 대원보의 무사들을 태운 배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쳐다보았다.
그리고 배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몸을 돌렸다.
“우리도 가볼까?”
‘남궁세가와 대원보에 적련방까지, 모두들 개미떼처럼 몰려드는군.’
선착장가의 허름한 객잔 이 층 창문가에 자리를 잡은 악진표는 선착장을 바라보며 고기 한 점을 입안에 넣었다.
‘이십 냥을 주지 않아도 될 것 같았는데, 아무래도 그 자식에게 속은 것 같아, 제기랄.’
그는 입안에 든 고기를 풍천이라 생각하고 힘주어서 잘근잘근 씹으며 머리를 굴렸다.
구룡회 아홉 세력 중 넷이 움직였다. 거기에 남궁세가와 대원보까지.
아마 다른 세력들도 소문을 듣게 되면 뒤늦게라도 움직일 터. 폭풍전야가 따로 없었다.
‘유령총에서 피바람이 불면 백무천이나 구룡회의 주인들도 앉아 있을 수만은 없겠지.’
그곳에서 얼마가 죽든 상관없었다.
신마성이 본격적으로 개입하게 되면 더 좋았다.
많은 자들이 죽고 혼란이 커질수록 주군의 입지는 더욱 탄탄해질 테니까.
‘그때쯤 되면 나도 음지에서 벗어나 세상에 얼굴을 내밀 수 있겠지.’
그때 문득, 호기심이 들었다.
정말 유령총에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할 만한 비밀이 숨어 있는 걸까, 아니면 단순한 전설에 불과한 걸까?
태어나 가장 오래도록 씹은 고기를 꿀꺽 삼킨 악진표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삼호, 배를 구해 봐라.”
맞은편에 앉아 있던 장한이 굳은 표정으로 되물었다.
“직접 가보실 겁니까?”
“아무래도 가까이 가서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게 나을 것 같다.”
“알겠습니다, 령주.”
악진표는 수하가 밖으로 나가는 걸 보며 다시 젓가락을 들었다. 그리고 고기 한 점을 들어 입안에 구겨 넣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자식을 믿을 수가 없어.’
2
장강을 건넌 구출대는 동릉에 도착하자마자 계획대로 청양으로 향했다.
청양의 서쪽에는 구화산이 있고, 남쪽에는 황산이 있었다.
황산까지는 이백 리 정도. 청양에서 밤을 보내고 아침에 가도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일행은 청양으로 들어가지 않고, 석초산이 십여 년 전에 가봤다는 구봉사(九峰寺)으로 향했다.
구출대 일행이 사람들의 눈을 피해 구봉사에 도착한 것은 해시가 막 지나갈 무렵이었다.
구봉사는 건물이 다섯 채에 승려가 이십여 명쯤 되는 중급 규모의 사찰이었는데, 인적이 드문 곳이어서 남의 눈을 피하기에는 적격이었다.
석초산은 구봉사의 주지에게 은자 다섯 냥을 주고 요사채 하나를 이틀 동안 빌렸다.
사실 황산까지 가는 거라면 세 시진이면 충분했다. 그럼에도 이틀 동안 빌린 것은, 신검문의 사람이 올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서 하루 더 머물기 위함이었다.
긴장이 풀린 사람들은 운기조식을 하며 먼저 피로를 풀었다.
하지만 풍천은 쉴 틈도 없이 화청백에게 불려갔다.
‘제길, 어제도 제대로 못 잤는데…….’
화청백의 방에는 석초산과 구양종과 용수명이 먼저 와 있었다.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화청백의 방에 들어간 풍천은 빈 의자에 털썩 앉았다.
석초산과 구양종이 눈살을 찌푸리며 풍천을 노려보았다. 용수명은 피식 웃을 뿐이고.
“너무 그렇게 보지 마쇼. 어젯밤도 감시자들의 움직임을 살펴보느라 한숨도 못 잤단 말이오.”
그걸 어떻게 믿어?
석초산과 구양종은 풍천의 말을 눈곱만큼도 믿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말도 반은 사실이었다. 그 절반의 사실을 가장 잘 아는 화청백이 억지로나마 대신 변명을 해주었다.
“내가 감시하는 자들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풍 조장에게 들었기 때문이오.”
그럴 수가!
석초산과 구양종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풍천은 거보라는 듯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턱을 쳐들었다.
그 모습을 본 화청백은 곧바로 후회가 되었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 아닌가. 그는 더 이상 그 일에 대해선 말하지 않고 화제를 돌렸다.
“유령적이 가짜라는 게 밝혀졌을 경우를 대비해서 계획을 짰으면 하오. 좋은 생각이 있으면 말씀해 보시오.”
졸린 듯 반쯤 눈을 감고 있던 풍천이 손을 들었다.
사람들은 나설 줄 알았다는 눈빛으로 풍천을 바라보았다.
시선이 집중되자, 풍천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일단은 가짜라는 게 밝혀지지 않도록 시간을 끌면서 협상을 하는 겁니다. 주위를 산만하게 해서 집중을 못하게 하면 그들도 우리의 뜻을 바로 눈치 채지 못할 테니까요.”
주위를 산만하게 한다?
풍천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사람들은 평소와 달리 신중하게 말하는 풍천을 보고 조금이나마 기대감을 품었다.
그때 풍천이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귀를 쫑긋 세우고 풍천을 향해 몸을 숙였다.
그들을 천천히 둘러본 풍천이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가짜라는 게 밝혀지면…… 곧바로 둘째 아가씨를 낚아채서 튀는 거죠.”
결국 그 말을 하고 싶었던 거야?
그럼 그렇지.
기대했던 만큼 허탈감도 컸다.
사람들은 차마 때려죽이지 못하는 게 한이라는 표정으로 풍천을 노려보았다.
화청백도 더 참지 못하고 이를 지그시 악문 채 잇새로 물었다.
“다른 의견은 없나?”
“없는데요?”
“그럼 가서 잠이나 자게.”
탕!
풍천은 방문을 닫고 나서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그 방법 말고 뭐가 있어? 사람들은 참 이상해. 최선의 방법을 말해 줘도 이해를 못해요.’
좀 더 자세히 말해 줄 걸 그랬나?
‘에이, 그런다고 이해하겠어?’
어쩌면 정말 화를 내며 달려들지 몰랐다.
‘당신들이 모두 달려들면, 그때 내가 백초령을 구해서 죽어라고 도망가겠습니다. 내가 마음먹고 달리면, 무영신마나 만리추개가 와도 못 잡거든요.’ 뭐 그런 내용이었으니까.
무영신마(無影神魔)는 신마성의 팔대신마 중 하나다. 그리고 만리추개(萬里追丐)는 개방의 태상장로고.
자신을 우습게 보는 저들이, 천하에서 가장 빠르다는 두 사람보다 자신이 빠르다는 말을 믿어줄 리가 없었다.
하긴 자신이 생각해도 거짓말처럼 들리는데 오죽할까.
그렇다고 그들 앞에서 광대처럼 직접 보여주기는 싫었다.
힘들게 왜 광대 짓을 해?
‘믿기 싫으면 말라지 뭐. 손해날 것도 없는데.’
풍천은 자유로운 몸이 되자 두 팔을 뻗어 기지개를 켰다.
“으아아! 가서 잠이나 실컷 자야겠다. 현명한 사람은 우매한 자와 싸우는 게 아니라고 하잖아?”
우당탕.
갑자기 방 안에서 의자 넘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크!
일순간 풍천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퍽, 꺼지듯이 사라졌다.
3
천하절경(天下絶景) 황산(黃山).
구구절절 미사여구로 표현한다 한들 어찌 황산의 절경을 모두 표현할 수 있으랴.
황산을 보고 나면 오악(五嶽)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던가?
눈앞에 펼쳐진 황산의 절경은 구출대 일행의 넋을 빼앗기에 충분할 만큼 웅장하고도 아름다웠다.
하지만 일행은 천혜의 절경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음에도 감상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신검문 사람들이 올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구봉사에서 이틀을 소비한 터였다.
이제는 시간 여유가 없었다.
신선이 구름을 타고 나타날 것 같은 황산도 지금은 그저 유령총이 존재하는 곳일 뿐이었다.
“화 형, 유령총의 위치를 아십니까?”
구양종이 화청백을 보며 물었다.
“사부님께 대충 이야기를 들었소. 연화봉(蓮花峰)과 광명정(光明頂) 사이의 대협곡을 지나가야 한다더군요. 일단 그곳으로 가보지요.”
화청백이 기억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그가 알고 있는 것은 그 외에도 몇 가지 더 있었다. 떠나오기 전 유령총에 대한 걸 묻자, 백무천이 구룡회의 유령총 조사에 대해서 자세히 말해 준 것이다.
그러나 위치와는 큰 관계가 없기 때문에 더 말하지 않았다.
문제는 유령총의 자세한 위치였다. 백무천도 직접 가보진 않았기에 위치를 자세히 설명하지 못하고 들은 것만 말해 주었다.
설마 유령총까지 가게 될 일이 벌어질 줄 누가 알았으랴.
하지만 화청백은 아쉬워하지 않았다.
당장은 그거면 충분했다. 어차피 근처에 가면 위태곤이 풀어놓은 수하들이 있을 테니까.
‘아니지, 지금도 어딘가 숨어서 지켜보고 있을지도…….’
화청백은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주위를 세밀히 살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