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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풍전설 37화

무료소설 천풍전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23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천풍전설 37화

 

37화

 

 

 

 

 

 

사조원들은 자신들의 앞에 있는 찻잔을 필생의 적이라도 되는 듯 노려보며 웃음을 참았다.

 

하지만 구양종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그 정도 일로 풍천과 싸울 수도 없고…….

 

‘저 자식하고 더 이상은 같이 못 다니겠어!’

 

그는 화청백을 바라보았다.

 

“화 형, 아무래도 저는 여기서…….”

 

풍천이 그의 말을 끊었다.

 

“화 공자, 아무래도 문주님이 검각과 경천산장에 도움을 요청했겠죠?”

 

잠시 생각하던 화청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봐야 할 거네.”

 

그 말에 구양종이 멈칫했다.

 

검각에서 무사들이 온다면, 굳이 풍천과 함께 다닐 이유가 없다. 지금 헤어져서 구설수에 오르느니 그게 나을 것이었다.

 

그는 하려던 말을 돌렸다.

 

“여기서 오늘밤 쉬어갈 거라면, 속이 좋지 않으니 먼저 올라가 쉬겠습니다.” 

 

“그러시구려.”

 

구양종은 풍천의 뒤통수를 노려보았다. 더 물어볼 것 없다는 듯 다시 그릇에 코를 박고 있었다.

 

‘확 밀어 버려?’

 

음식 찌꺼기가 얼굴에 가득한 풍천을 상상하니 마음이 조금 풀렸다. 하지만 두 눈 깊은 곳에 남은 앙금은 완전히 풀어지지 않았다.

 

‘언제고 혼을 내주고 말겠어!’ 

 

풍천은 그를 안중에도 두지 않고 일단 그릇부터 비웠다.

 

‘확실히 단순한 사람이야.’

 

 

 

점소이가 풍천을 찾아온 것은 그날 저녁 늦은 시각이었다.

 

“무슨 일이지?”

 

“헤헤헤, 입이 심심하실 거 같아서 뭐 좀 가져왔습니다요.”

 

점소이는 쟁반을 내밀었다. 쟁반에는 술 한 병과 안주로 삼을 간단한 요깃거리가 있었다.

 

점소이가 그에게 인심 쓰는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저녁을 먹고 계산을 할 때였다. 잔돈이 삼십 문 남았는데, 풍천이 그 돈을 점소이에게 주도록 한 것이다.

 

쩨쩨하게 그걸 받느냐면서, 일행들을 챙기느라 수고했으니 점소이에게 주라면서.

 

화청백은 두말없이 잔돈을 점소이에게 주었다. 

 

‘베풀면 돌아오는 법이지. 아암!’

 

풍천은 기분 좋게 점소이의 감사인사를 받았다.

 

“뭐 이런 걸 다……. 하, 하, 하. 저기에 놓아.”

 

방 안으로 들어온 점소이는 쟁반을 탁자 위에 놓았다. 

 

그때였다. 점소이가 품에서 서너 번 접힌 쪽지를 꺼내더니 쟁반 밑에 슬쩍 끼어 넣었다. 풍천이 보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헤헤헤, 그럼 맛있게 드십쇼!”

 

“누가 보낸 거지?”

 

“일거리 맡긴 사람이라면 알 거라고 하던 뎁쇼?”

 

심장이 덜컥, 떨어지는 기분.

 

풍천은 점소이에게 더 묻지 않았다. 

 

어차피 점소이가 아는 것은 그것이 전부일 것이었다. 더 질문하다가 자칫 다른 사람이 듣기라도 하면 이상하게 생각할지 몰랐다.

 

보낸 사람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고자 한다면 점소이를 따로 만나 물어봐도 되었다. 일단 내용을 알고 난 다음에.

 

‘그 자식들이 어떻게 나인 줄 알았지? 왜 여기까지 쫓아온 거야?’

 

그가 맡은 일거리는 오직 하나였다.

 

신검무제 백무천을 죽이는 것.

 

그래서 더 이상했다. 자신은 백무천과 천 리나 떨어져 있었다. 그런데 왜 자신에게 쪽지를 보낸 걸까? 아니 그 이전에 어떻게 자신인 줄 알았을까?

 

‘설마 돌아가서 백무천을 죽이라는 말은 아니겠지?’

 

그럴지도 몰랐다. 자신에게 백무쳔을 죽이라고 할 정도로 멍청한 놈들이라면 그런 말을 하고도 남았다.

 

풍천은 쪽지를 보기 전에 일단 술을 한 잔 따랐다. 은은한 주향이 피어오르는 맑은 술이 술잔에 가득 찼다.

 

‘싸구려 술은 아닌 것 같군.’

 

나름대로 술의 가치를 평가한 그는 잔을 들어서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혀를 쏙 빼고 맛을 보았다. 혹시 독이 들어 있을지 모르니까. 

 

만약 그들의 음모가 백무천에게 들켰다면 청부를 맡은 자신을 죽이려 할지도 모르는 일이 아닌가 말이다.

 

“크으…….”

 

어찌나 독한지, 톡 쏘는 맛이 독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뿐, 독은 들어 있지 않았다.

 

풍천은 술잔을 단숨에 목구멍 안으로 털어 넣었다.

 

짜르르한 충격이 목구멍을 통과하며 후끈한 열기가 일었다.

 

“좋군.”

 

그는 술잔을 내려놓고 쟁반 밑에서 쪽지를 꺼냈다. 쪽지의 내용은 간단했다. 

 

 

 

[귀향객잔 뒤쪽 길로 이십여 장을 가면 밀월루라는 주루가 나온다. 자시(子時)까지 다른 사람 몰래 그곳으로 와라. 오면 알아서 접근하마.] 

 

 

 

‘밀월루? 주루 이름 한 번 음침하군.’ 

 

혹시 그 주루 안에는 남녀가 몰래 만나는 방이 따로 있는 것 아닐까?

 

풍천은 엉뚱한 생각을 하며 쪽지를 손바닥 사이에 넣고 비벼서 가루로 만들었다. 그러고는 접시에 담긴 육포 한 조각을 입안에 넣고 질겅거리며 방을 나왔다.

 

 

 

2

 

 

 

꿀꺽!

 

백초령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앞에 구수한 냄새가 나는 음식이 세 가지나 펼쳐져 있었다. 거의 나흘 가까이 굶다시피 한 그녀에게 구수한 음식 냄새는 지독한 고문이었다.

 

“오늘도 안 먹을 거냐?”

 

위태곤은 백초령에게 물으며 구수한 향이 나는 고기 한 점을 입에 넣었다.

 

백초령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볼일 볼 때 자유롭게 해줘. 그럼 먹을 테니까.”

 

위태곤은 그제야 백초령이 굶은 이유를 어렴풋이 깨닫고 피식 웃었다.

 

“여태 그것 때문에 굶었다는 거냐? 말하는 것과 달리 꽤나 소심하군.”

 

“내가 당신 같은 줄 알아?”

 

“본 공자가 어때서?”

 

“남자가 되어서 창피도 모르고 여자를 인질로 잡았잖아! 당신이 진짜 남자라면 여자를 인질로 잡을 게 아니라 힘으로 빼앗아야지!”

 

백초령은 사흘 굶었다고 믿기 힘들 만큼 큰 목소리로 다그쳤다.

 

위태곤은 그런 백초령이 갈수록 마음에 들었다.

 

‘짜릿하군. 약을 좀 더 올려볼까?’

 

하지만 그러다가 기운도 없는 백초령이 정말 쓰러지기라도 하면 곤란했다. 그의 재밋거리가 줄어들 테니까.

 

“세상에는 가끔 잔머리를 굴려야 할 때도 있는 법이지. 아마 너를 납치하지 않았다면 나는 후회했을 거다.”

 

“후회? 당신이 왜 후회를 해?”

 

‘너 같은 여자를 만나지 못했을 테니까.’

 

위태곤은 속으로 답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며칠 전만 해도 자신의 마음이 이렇게 변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런데 변했고, 시간이 갈수록 백초령에게 더욱 빨려들고 있었다.

 

그는 사실을 말하는 대신 말을 살짝 돌렸다.

 

“신마성에는 너처럼 천방지축인 여자가 없거든?”

 

“흥! 오죽 여자들을 겁줬으면 그러겠어? 힘없는 여자나 겁주는 나쁜 놈들!” 

 

“여자라고 해서 다 약한 건 아니다. 아주 무서운 여자들도 있거든? 독부용(毒芙蓉) 지민민 같은 여자는 마흔이 겨우 넘은 나이에 장로가 되었으니까 말이야.”

 

백초령도 독부용에 대한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신마성에 있다는 것도, 장로라는 것도 처음으로 들은 터였다.

 

“그 아줌마가 신마성에 있단 말이야?” 

 

“아줌마? 푸하하하!”

 

위태곤은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아마 지민민에게 그 말을 한다면, 천하의 온갖 독으로 백초령을 괴롭히려 할 것이었다. 

 

그녀는 아직 처녀니까.

 

“혹시라도 나중에 지 장로를 만나게 되면 절대 아줌마라는 말을 하지 마라. 그녀는 그 말을 굉장히 싫어하거든.”

 

“곧 할망구가 될 나이면서 아줌마라는 말을 싫어해? 웃기는 여자네.”

 

위태곤은 어깨를 들썩이며 키득거렸다. 그리고 어느 정도 웃음이 가라앉자 넌지시 말했다.

 

“음식이 다 식어 가는데, 좀 먹지 그래?”

 

백초령은 실낱같은 자존심을 살려서 위태곤의 청을 거부했다.

 

“안 먹어!”

 

“그래? 그럼 별수 없이 음식을 내가야겠군.”

 

“다, 당신은 안 먹어?”

 

“네가 안 먹으니까 나도 식욕이 없어졌다. 먹으면 청을 들어주려고 했는데……. 동교, 음식을 내가라.”

 

“예, 대주.”

 

방문이 열리고 커다란 덩치의 장한이 들어왔다. 

 

그는 귀혼신마대의 일향주(一鄕主)인 주동교라는 자로, 남호가 신검문 일행의 발걸음을 늦추기 위해 뒤로 처져 있는 동안 남은 귀혼신마대원들을 이끌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온 그는 성큼성큼 탁자로 다가와 그릇을 치우려 했다.

 

백초령이 다급히 소리쳤다.

 

“자, 잠깐만 기다려!”

 

위태곤이 의아한 표정으로 백초령을 바라보았다.

 

“왜? 안 먹는다며?” 

 

“저, 정말 내 요구를 받아주겠다는 거야?”

 

“못할 것도 없지. 어차피 내공을 제압당했으니 어디로 도망갈 수도 없잖아?”

 

“조, 좋아, 그럼 국물이 있는 걸로 하나 남겨 놓아. 그럼 먹어줄 테니까.”

 

먹어줘?

 

위태곤은 피식 웃고는 주동교에게 손짓을 했다.

 

“놔두고 나가보게.”

 

주동교는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백초령을 힐끔 쳐다보고는 돌아섰다.

 

백초령은 주동교가 그냥 돌아서자 위태곤을 쏘아보며 말했다. 

 

“하나만 먹어준다니까?”

 

“나머지는 내가 먹을 거다.”

 

“입맛이 없다며?”

 

“생각이 바뀌었어.”

 

위태곤은 따뜻한 국물이 든 요리를 백초령 앞으로 밀어놓고 나머지 두 가지는 자신 앞으로 당겼다.

 

“변덕도 심하네. 남자가 왜 그리 줏대가 없어?”

 

“남자도 가끔은 그러고 싶을 때가 있는 법이다.”

 

“진짜 밥맛없는 사람이네. 풍천도 하는 짓이 마음에 안 들지만, 당신보다 열 배는 나을 거야.”

 

위테곤의 눈 깊은 곳에서 기광이 번뜩였다.

 

“풍천? 그게 누구지?”

 

“있어, 그런 사람. 만날 졸린 눈으로 어슬렁거리는데, 아버지가 아끼는 잉어나 몰래 잡아먹고, 치사하게 여자나 괴롭히고, 게으르기는 짜증 날 정도로 게으른 주제에 돈이나 밝히고…….”

 

풍천을 욕하는데 눈 가장자리가 찡했다. 

 

‘그리고 내 마음도 모르는 바보야.’

 

그녀는 눈 안에 물기가 가득 고이자, 고개를 숙이고는 숟가락을 들어서 음식을 억지로 떠 입안에 넣었다.

 

어제는 유난히 멋지게 보였다. 뭔가 꿍꿍이가 있어서 그렇게 입은 것처럼 보였지만, 좌우간 새로운 발견이었다.

 

풍천도 꾸미면 그럭저럭 괜찮은 축에 속한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후루룩, 후루룩.

 

국물을 몇 숟가락 입에 넣자 뱃속에서 아귀가 아우성쳤다.

 

하지만 백초령은 그릇을 통째로 입안에 넣고 싶은 것을 꾹 참고 서두르지 않았다. 나흘간 먹은 게 거의 없는 터라 음식을 급히 먹으면 큰일 날지 몰랐다.

 

그렇게 빈 뱃속을 먼저 달래고 있는데, 언뜻 위태곤의 집요한 시선이 느껴졌다.

 

슬쩍 고개를 쳐든 그녀는 위태곤의 눈과 마주치자 버럭 소리를 질렀다. 

 

“뭘 봐! 사람 식사하는 거 처음 봐?”

 

위태곤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보면 볼수록 정말 귀여웠다.

 

그런데 고개를 돌린 위태곤의 눈빛 속에서 싸늘한 살기가 감돌았다.

 

‘풍천이라……. 어떤 놈인지 몰라도 한 번 보고 싶군.’ 

 

백초령은 그를 나쁜 사람처럼 말했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에는 말뜻과 달리 그리움이 가득 담겨 있었다.

 

이 여인은 대체 그에게 어떤 마음을 지니고 있는 걸까?

 

위태곤은 그것이 궁금했다.

 

‘만약 백초령의 마음을 빼앗아간 놈이라면…… 반드시 죽여 버리겠어.’

 

 

 

3

 

 

 

밀월루는 삼 층 건물의 이 층에 있었다.

 

계단을 통해 이 층으로 올라간 풍천은 안으로 들어가며 눈살을 찌푸렸다.

 

‘제길, 왜 이런 곳에서 만나자고 한 거야?’

 

정말 수상한 곳이었다. 

 

주루 안은 확 트인 것이 아니었다. 트인 곳도 있긴 있었지만 그리 넓지 않았고, 반 이상이 칸막이로 되어 있었다.

 

칸막이 안은 붉은 등불이 은은하게 밝혀져 있었는데, 불빛이 얇은 천 사이로 새어나오면서 더욱 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게다가 안쪽에서는 남자들의 음충맞은 웃음소리와 여인들의 간드러지는 목소리가 한데 어우러져서 들려왔다. 

 

‘이런 주루는 처음 보네. 홍루도 아니고…….’

 

그가 멀뚱히 서 있자 여인이 다가왔다. 붉은 불빛인데다가 분을 워낙 짙게 칠해서 나이를 짐작하기 힘들 정도였는데, 눈가에 주름이 진 걸 보니 서른은 넘은 듯했다.

 

“어머, 손님이 오신 줄도 몰랐네. 혼자 오셨나요, 멋진 공자님?”

 

설마 이 여인이 청부자는 아니겠지? 그냥 갈까?

 

풍천이 망설이는데 여인이 바짝 붙어서 몸을 비벼댔다.

 

“아이, 일단 안으로 들어오세요.” 

 

코를 찌르는 분 냄새. 

 

속이 울렁거린 풍천은 밖으로 나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자, 잘못 찾아온 것 같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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