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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풍전설 33화

무료소설 천풍전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245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천풍전설 33화

 

33화

 

 

 

 

 

 

옆으로 다가온 화청백이 이마를 찡그리며 지레 짐작해서 말했다.

 

“왜 그런가? 흔적을 놓쳤나?”

 

구양종이 뒤따라오더니 눈에 힘을 주고 쳐다보았다.

 

“거리가 더 벌어지면 쫓아가기 힘들 텐데, 왜 머뭇거리는 거지?” 

 

‘쯔쯔쯔, 그런 눈으로 세상 살아가려면 힘 좀 들겠군.’

 

풍천은 속으로 혀를 차고는 화청백에게 나직이 말했다.

 

“저 앞에 개떼가 숨어 있는 것 같군요.”

 

개떼?

 

화청백은 앞쪽의 숲속을 살펴보았다. 

 

개떼는커녕 외로운 들개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물론 그도 풍천이 정말 개를 말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진 않았다.

 

“아무도 없는 것 같은데?”

 

놈들은 모든 기척을 죽인 채 숨어 있었다. 감각이 남다른 자신조차 땀 냄새를 맡지 못했으면 그냥 지나칠 뻔했으니 화청백이 눈치 챘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다.

 

“좌우간 조심하쇼.”

 

풍천은 그렇게만 말하고 숲길로 들어갔다. 

 

상대의 매복을 심각하게는 생각하지 않았다. 유령적을 원하는 한 무리한 일을 벌이지는 않을 테니까. 

 

‘추적을 늦추겠다는 건가?’

 

그렇다고 봐야 했다. 저들도 자신들이 바짝 따라오는 것은 원치 않을 테니까. 

 

스스스스.

 

이십여 장을 들어가자 풀잎 스치는 소리가 났다. 워낙 소리가 작아서 바람에 풀잎들이 서로 몸을 비비는 것처럼 들렸다.

 

신검문 사람들과 구양종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신경을 바짝 곤두세웠다. 

 

“웬 놈들이냐? 비겁하게 숨어 있지 말고 모습을 보여라!”

 

구양종이 숲에 대고 소리쳤다.

 

그 말에 응답하듯 양쪽 숲속에서 흑의 무사들이 튀어나왔다. 모두 이십 명 정도. 맨 마지막으로 남호가 나왔다. 

 

그들은 나오자마자 무기를 뽑아들고 관도를 가로막았다.

 

구양종은 오랜만에 자신의 실력을 보일 기회가 왔다는 듯 코웃음 치며 검을 빼들었다.

 

“흥! 네놈들이 우리 앞을 막겠다는 거냐?”

 

신검문 사람들도 일제히 검을 빼들고 거리를 넓게 벌렸다.

 

화청백이 앞으로 나서며 남호에게 물었다.

 

“위 공자는 어디 있소?”

 

“대주께선 곧장 유령총으로 가실 거요. 너무 가깝게 따라오지 마시오. 만약 위협이 된다 여겨지면 보고만 있지 않을 거니까.” 

 

“즉시 가서 내 말을 전하시오. 천혈궁 지역을 통과하다가 싸움이라도 나면 유령적이 부서질지 모르오. 그걸 바라지 않는다면 걸음을 멈추라고 하시오.”

 

“천혈궁 지역을 통과하는 일은 걱정할 것 없소. 대주께서 천혈궁주께 협조를 요청할 테니까. 그래도 걱정된다면 천혈궁 지역을 돌아서 가시오. 시간은 충분하니까.”

 

남호는 싸늘히 말하고 풍천을 쳐다보았다.

 

“공자묘 안에 있던 내 수하들은 어떻게 되었느냐?”

 

풍천이 어깨를 으쓱하며 별거 아니라는 투로 대답했다.

 

“방심하고 달려들었다가 몸에 구멍이 났죠. 나는 사람 죽이는 게 무지 싫어서 부상만 입혔는데, 뒤따라오던 사람들이 손을 쓴 거 같더라고요.” 

 

하긴 저 따위 놈에게 귀혼신마대 넷이 당했을 리가 없다.

 

남호는 분했지만 싸움을 자제하라는 위태곤의 명령을 잊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복수를 하고 싶다만, 대주님의 명이 있으니 오늘은 참겠다.”

 

“그럼 내일은 공격하겠다는 거요?” 

 

멍청한 놈!

 

남호는 풍천을 노려보며 이를 빠드득 갈았다. 

 

생각할수록 분했다. 저런 멍청한 놈 때문에 아까운 수하를 넷이나 잃다니.

 

“백초령이 무사하길 원한다면 허튼 짓하지 마라. 만약 우리를 앞지른다면 백초령이 괴로워질 것이다.”

 

“이보쇼, 혁련궁이 왜 유령적을 원하는지 아쇼?”

 

감히 대 신마성 성주의 이름을 옆집 개똥이처럼 부르다니!

 

남호의 눈에서 살기가 돌았다.

 

“감히 성주님을 모욕하겠다는 거냐?”

 

“이름 한 번 불렀다고 모욕 운운할 것까진 없잖소? 정 기분 나쁘면 당신도 우리 아버지 이름을 한 번 부르쇼.”

 

“내가 네 아버지 이름을 어떻게 안단 말이냐!”

 

“하긴, 나도 모르는데…….”

 

남호는 어이가 없었다. 공자묘 안에서 볼 때도 이상한 놈이라 여겨졌는데, 막상 말을 나눠보니 정말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그는 더 이상 풍천을 상대하지 않기로 하고 화청백을 바라보았다.

 

그때 이상한 놈, 풍천이 넌지시 물었다.

 

“내가 알기로는, 유령적이 유령총의 비밀을 여는 열쇠라고 하던데, 그게 정말이오?”

 

남호는 자신도 모르게 움찔했다. 

 

그도 자세한 것을 알지는 못했다. 다만 유령적이 유령총의 비밀을 여는 열쇠라는 말이, 위태곤과 장로들의 대화 중에 언뜻 나온 적이 있어서 그러려니 하고 있을 뿐이었다.

 

문제는 그것조차 비밀에 속한다는 것이었다.

 

‘저놈이 어떻게 그걸 아는 거지?’

 

남호는 의혹어린 눈으로 풍천을 노려보았다.

 

풍천은 남호의 반응만으로도 자신이 알고 있는 게 사실이라는 걸 깨달았다. 

 

“정말인가 보군. 근데 무슨 비밀이 풀린다는 거지? 혹시 아는 거 없수? 알고 있으면 좀 알려주쇼.”

 

“입을 함부로 놀리면 제 명에 죽지 못한다는 걸 알아라, 애송이.”

 

남호는 싸늘히 말하고 눈을 돌렸다.

 

풍천과 더 이야기를 나누면 자신마저 이상해질 것 같았다.

 

“화청백! 대주님의 뜻을 분명히 전했으니, 백초령이 다치지 않기를 원한다면 내 말을 잊지 말아라.”

 

남호는 최대한 냉랭한 어조로 말하고는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화청백은 물러서는 귀혼신마대를 쳐다보며 이를 악물었다.

 

귀혼신마대의 뒤만 따라가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유령총에 도착하기 전에 백초령을 구하려면 위태곤의 앞을 막아서야 하거늘.

 

‘빌어먹을!’

 

“화 형, 어떻게 하실 겁니까?”

 

구양종이 답답해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화청백의 입에서 한숨이 나왔다.

 

“후우, 유령총에 도착하려면 사흘 이상 가야 합니다. 일단 저들의 뒤를 따라가면서 생각해 봅시다.”

 

지금으로선 다른 방법이 없었다. 

 

‘제법 머리를 굴리는군. 영락없이 뒤만 따라가야 하는 상황이 되었어.’

 

풍천은 위태곤의 잔머리를 칭찬해 주지 않을 수 없었다. 

 

화청백이 백초령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걸 알고 세운 계획일 것이었다.

 

하지만 크게 실망하지는 않았다.

 

귀혼신마대의 뒤를 따라가는 일이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그들의 뒤를 따라가면 천혈궁의 위협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테니까.

 

풍천은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천혈궁으로 하여금 똥통에 처박힌 기분을 느끼게 해줄 생각이었다.

 

‘흐흐흐, 천혈궁에게 우리를 공격하지 못하게 한단 말이지? 잘하면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겠어.’

 

 

 

3

 

 

 

회남(淮南)의 적련방(赤蓮幇)은 구룡회의 아홉 개 세력 중 하나로 안휘 중북부 일대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자랑했다.

 

방주는 적련신도(赤蓮神刀) 담청. 

 

구룡회 아홉 세력의 주인 중 두 번째로 젊은 마흔다섯의 그는 욕심이 없는 자로 알려져 있었다. 

 

그 자신도 이런저런 보물에 별다른 욕심을 부리지 않았으니, 알려진 소문은 사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달랐다. 보고를 받은 그의 눈에서 열기가 피어나고, 묻는 입에서 진한 욕망이 느껴졌다. 

 

“신마성이 신검문의 백초령을 납치해서 유령적이라는 피리를 요구했다고 합니다. 곽구에서 교환을 하려고 했는데, 의견 차이로 인해서……. 결국 신마성과 신검문 양쪽의 사람들 모두 남쪽으로…….”

 

담청은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질문을 던졌다. 

 

“유령적이라……. 조궁, 신마성이 왜 그런 일을 벌였다고 보느냐?”

 

적련방의 정보총책인 적비당(赤飛堂) 당주 조궁이 곤혹스런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무래도 유령적이라는 피리가 유령총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만, 자세한 정보는 아직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방주.”

 

그거야 조금만 생각해 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이었다. 담청이 원하는 것은 그보다 더 자세한 정보였다.

 

“신마성에서는 누가 움직였느냐?”

 

“자세한 것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습니다만, 최소한 장로급 고수가 둘에 귀혼신마대가 반은 움직인 것 같습니다.”

 

“장로 둘에 귀혼신마대 반이라…….” 

 

신마성의 장로가 둘이나 움직인 일이라면, 신마성에서 그만큼 유령적을 얻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는 말이었다.

 

혁련궁이 왜 그렇게 유령적에 집착을 하는 걸까? 유령총과 어떤 연관이 있기에?

 

담청의 눈빛에서 열기가 일었다. 

 

혁련궁이 욕심내는 것만으로도 유령적의 가치는 무한했다.

 

“신검문에서는 누가 나섰느냐?”

 

“신검일수 화청백이 수호검단의 단원 일부와 비검당의 무사들을 이끌고 나섰다 합니다.”

 

간단하게 따져봐도 신마성에 밀리는 전력이었다. 

 

정말 백무천이 그들만 보냈을까?

 

아닐 가능성이 컸다. 아마 그들을 먼저 보내고 상당한 고수들로 하여금 뒤를 받치게 했을지 몰랐다.

 

확실한 것은, 뒤를 받치는 자들이 화청백을 돕기가 쉽지 않을 거라는 점이었다. 그들이 모습을 보이면 백초령이 위험해질 테니까.

 

“지금 그들의 위치는?”

 

“곽구 인근에서 모습을 보인 후 남쪽으로 내려가는 중이라 합니다.”

 

“사람을 보냈느냐?”

 

“급한 대로 합비 인근에 있던 적비당의 무사들 중 반을 그 일에 투입했습니다.”

 

“그래?”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자세한 정보가 들어올 것입니다.”

 

담청은 차가운 시선을 허공에 두고 고저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가서 반 단주를 들어오라 해라.”

 

조궁은 어깨를 흠칫 떨며 고개를 숙였다.

 

담청이 말한 반 단주는 적암단주 반소규를 말함이었다. 

 

적암단(赤暗團)은 적련방주의 직속 단체로 그들이 하는 일은 대부분 비밀에 가려져 있었다. 심지어 정보책임자인 조궁조차 반 이상을 알지 못할 정도였다. 

 

인원은 스무 명 정도. 하지만 그들의 무력은 적련방 조직 중 최강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었다.

 

반소규를 불렀다는 건 이번 일에 적암단을 움직이겠다는 뜻. 또한 완벽을 추구하는 방주의 성격상 결코 그들만 움직이게 하지는 않을 것이 분명했다.

 

조궁은 담청의 뜻을 눈치 챌 수 있었다.

 

하기야 유령총이 관련되어 있고, 신마성이 욕심내는 물건이 아닌가. 담청이 흔들린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예, 방주.” 

 

“그리고 적비당원 반을 그 일에 투입하도록 해라.”

 

조궁의 표정이 굳어졌다. 보물 하나를 차지하기 위해서 적비당의 인원을 반이나 투입하다니.

 

그러나 그는 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명을 따르는 것뿐이었다.

 

“즉시 출동시키겠습니다.”

 

 

 

4

 

 

 

담청이 조궁에게 명령을 내리던 그 시각.

 

합비의 동쪽에 있는 거대한 장원에서도 사람들 몇이 모여 유령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유령총에 대한 전설은 낭설일 뿐이네. 굳이 관여할 필요가 있을까?”

 

백의를 입은 노인이 가슴까지 늘어진 하얀 수염을 쓰다듬으며 곤혹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바로 앞에 있던 중년인이 노인을 똑바로 바라본 채 대답했다. 

 

“유령총의 진실 여부는 문제가 아닙니다, 백부님. 신마성이 직접 움직였다는 게 문제지요.”

 

백의 노인, 남궁정은 침음을 흘리며 연신 수염을 쓰다듬었다.

 

“흐음…….”

 

남궁정의 조카이며 남궁세가의 머리인 남궁학은 신중한 태도로 말을 이었다. 

 

“게다가 여차하면 구룡회가 그 일에 관여할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최소한 가까이에서 주시하며 상황이 변하는 것 정도는 파악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남궁학의 옆에 앉아 있던 쉰 살가량의 중년인이 그 말에 동조했다. 

 

“저 역시 둘째와 생각이 같습니다. 신마성과 신검문 사이의 일이 주위로 번지기 직전입니다. 비록 소수지만 경천산장과 검각의 사람들도 그 일에 연루되어 있고, 적련방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습니다.”

 

그가 바로 중원 오대세가의 하나이며 합비의 제왕인 남궁세가의 가주 남궁명이었다.

 

남궁정은 남궁명의 말에 눈을 살짝 치켜뜨며 반문했다. 

 

“적련방이?”

 

대답은 남궁학이 했다.

 

“본가를 주시하던 자들이 일제히 남쪽으로 내려갔습니다. 아마 회남에서도 곧 어떤 움직임이 있을 거라는 생각입니다.”

 

“한동안 고요하던 강호에 바람이 부는 건가?”

 

남궁정이 나직이 읊조리며 의자에 등을 기대자, 남궁명이 침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단순히 지나가는 바람은 아닐 듯합니다. 이러다 구룡회 전체가 움직이기라도 한다면, 본 세가도 휘말려들 수밖에 없을 겁니다.”

 

“으음, 상황이 그렇다면 하는 수 없지. 가주의 뜻대로 하시게.” 

 

남궁정이 남궁명의 뜻에 동의하자, 그의 좌우에 앉아 있던 두 명의 노인도 고개를 끄덕였다.

 

남궁명은 남궁학을 바라보았다.

 

“창천검대를 보내도록 하고, 도영 아우에게 지휘를 맡기도록 하게.”

 

남궁학은 남궁명의 말에 멈칫했다. 

 

남궁도영은 세가에서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무공이 강하고, 판단력도 누구 못지않게 뛰어나서 이번 일에는 누구보다 적임자였다. 

 

그럼에도 그가 우려하는 것은, 남궁도영의 손이 지나치게 독하고, 지는 걸 아주 싫어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남궁학은 토를 달지 않고 순순히 대답했다.

 

“예, 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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