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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풍전설 32화

무료소설 천풍전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361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천풍전설 32화

 

32화

 

 

 

 

 

 

‘전력을 다한다면, 유령총에 들어가서도 백초령 하나쯤은 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러다가 백초령이 정말 죽기라도 하면? 아니 팔이라도 잘리면?

 

그 생각을 한 순간, 갑자기 머리가 후끈 달아오르더니, 분노가 활화산의 용암처럼 머리꼭대기에서 솟구쳤다.

 

‘개자식들! 그러기만 해봐라! 정말 다 죽여 버릴 거야!’

 

풍천은 주체할 수 없는 분노에 불끈 주먹을 움켜쥐었다.

 

형이 죽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거늘, 자신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때 화청백이 코앞까지 다가오더니 다그치듯이 말했다.

 

“자네, 안에서 저들을 왜 그리 심하게 몰아붙인 건가? 잘 달랬으면 교환에 응했을 것이 아닌가?”

 

풍천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화청백을 바라보았다. 

 

들끓던 분노가 차갑게 식을 정도로 어이가 없었다.

 

‘뭐야? 지금 나보고 잘못했다는 거야?’

 

지금 누구 때문에 일이 틀어졌는데?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다 잡아놓은 분위기에 끼어든 사람은 화 공자 아닙니까?”

 

“그대로 놔두면 초령이가 다치게 생겼는데, 그럼 가만히 있으란 말인가?”

 

으이구, 순둥이! 놈의 행동을 곧이곧대로 믿으면 어떡하겠다는 거야?

 

“놈은 유령적을 얻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 있었다구요. 백초령의 안위는 관심 밖이었단 말입니다. 그런 놈이 유령적을 포기하고 손을 쓸 거라 생각했습니까?”

 

“자네 말대로 놈이 유령적을 간절히 원했다면, 자네가 말만 조심스럽게 했어도 놈이 생각을 바꾸었을 거야. 안 그런가?”

 

‘잘도 바꾸었겠다.’

 

풍천은 그와 더 이상 말씨름하기 싫었다.

 

꽉 막힌 사람과 쓸데없는 말다툼을 하느니 위태곤의 뒤를 쫓는 게 나았다. 

 

유령총까지 가든, 그 전에 백초령을 구하기 위해서 노력하든, 일단은 위태곤의 뒤를 쫓아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좌우간 저는 지금 그들을 쫓아갈 겁니다. 따라오시든 말든 알아서 하십시오.”

 

풍천이 화청백의 말을 무시하고 몸을 돌리자, 구양종이 눈을 치켜뜨며 말했다.

 

“보자보자 하니까 제멋대로군! 화 형이 순순히 대해 주니까 눈에 뵈는 게 없나?”

 

저 인간은 왜 또 끼어들어?

 

풍천은 흘겨보는 것으로 구양종을 깨끗하게 무시하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화청백에게 물었다.

 

“가실 겁니까, 말 겁니까?” 

 

화청백이 손을 내밀었다.

 

“자네가 나서선 될 일도 안 되네. 가죽 주머니를 이리 주게. 놈들을 만나면 내가 말을 잘해 볼 테니까.”

 

풍천은 눈을 가늘게 뜨고 화청백을 노려보았다.

 

“저보고 이 일에서 손을 떼라는 겁니까?”

 

차라리 그게 편할지 몰랐다. 그럼 혼자서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을 테니까.

 

화청백은 머뭇거리며 미간을 좁혔다. 떠나오기 전 백무천이 말했다. 추적과 말상대하는 건 풍천에게 맡기라고.

 

마음에 들진 않지만, 사부의 명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 

 

“자넨 추적만 하게.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풍천은 화청백을 지그시 바라보고는, 품에 넣어놨던 가죽 주머니를 꺼내 내밀었다.

 

화청백이 손을 내밀어 가죽 주머니를 받았다.

 

풍천은 가죽 주머니를 화청백의 손에 올려놓고, 손을 떼지 않은 채 나직이 말했다. 

 

“한 가지만 알아두쇼. 놈들은 유령적의 생김새를 모른다는 걸. 그러니 놈들이 무슨 말을 하던 화 공자는 이걸 진짜라고 우기쇼. 알겠수?”

 

“그게 무슨 말인가?”

 

“아까 안 봤어요? 놈들은 안에 든 걸 보고도 가짜라는 걸 몰랐단 말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화청백은 풍천의 말을 듣고 나서야 의문점을 하나 풀었다.

 

‘그래서 놈들이 유령적이 가짜라는 걸 몰라본 건가?’ 

 

진짜의 모습을 모르는데, 어떻게 진위를 가릴 수 있단 말인가? 

 

풍천이야 그전부터 저들이 유령적의 모습을 모른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화청백에게 그 사실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으음, 그랬었군.”

 

화청백의 입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침음과 함께 흘러나왔다.

 

풍천은 가죽 주머니에서 손을 떼고는, 주위를 둘러보며 주의를 주었다.

 

“다른 사람들도 이 시간 이후로는 절대 유령적이 가짜라는 말을 하지 마쇼. 만약 그 말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내 검에서 무슨 맛이 나는지 입으로 직접 알게 될 거요.”

 

정보를 유출하면 입안에 검을 쑤셔 넣겠다는 말. 

 

그 말이 끝날 즈음에는 구양종과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당신에게 하는 말이야! 

 

그렇게 느낀 구양종은 얼굴을 벌겋게 붉히며 눈을 부릅떴다.

 

‘저 자식이!’

 

하지만 풍천은 자연스럽게 눈을 돌리며 화청백에게 말했다.

 

“지금 상황을 문주님께 알리지 않을 겁니까?” 

 

“아무래도 알려야 할 것 같군.”

 

풍천은 화청백이 수호검단 사람을 보내기 전에 사조원을 돌아다보았다.

 

“은 형, 서문 낭자, 두 분이 회빈으로 가쇼. 가서 여기서 보고 들은 것을 그대로 적어서 문주님께 알리쇼.” 

 

“예, 조장.”

 

“놈들의 꼬리를 잡지 못하면 유령총까지 가야 할지 모른다는 것도 확실히 전해야 합니다. 그리고 유령적이 가짜라는 게 알려지면 안 되니, 서신을 은밀히 작성하고, 문주님과 극소수의 사람만 보라는 경고문을 맨 앞에 적어놓으쇼. 무슨 말인지 알죠?”

 

“알겠습니다, 조장.”

 

화청백이 입을 열 틈도 없이 명령을 내린 풍천은 만족한 표정으로 손짓을 했다. 

 

“그럼 지금 바로 가보쇼.” 

 

아무래도 수호검단 사람보다 사조의 조원들이 자신의 활약상을 더 잘 전하겠지.

 

풍천이 사조원을 보낸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의 속셈을 꿈에도 생각지 못했지만.

 

풍천은 그렇게 은초당과 서문경에게 명령을 내리고 화청백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쓸데없는 이야기하느라 시간을 소모하는 바람에 거리가 많이 벌어졌을 겁니다. 천혈궁 놈들을 만날지 모르니 단단히 각오하쇼.”

 

천혈궁과 싸우게 되면 그게 다 당신 때문이야!

 

화청백의 귀에는 꼭 그렇게 들렸다.

 

자신이 뭔가를 잘못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그게 뭔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그때 풍천이 몸을 돌리며 검지를 까딱거렸다.

 

“따라오쇼.” 

 

석초산과 비검당의 두 조장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저 자식이……!’ 

 

구양종은 튀어나가서 뒤통수를 갈기고 싶었다.

 

‘건방진 놈! 손가락을 그냥 콱……!’

 

그리고 화청백과 용수명과 수호검단 단원은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뭐 저런 놈이 다 있어?’

 

‘웃기는 사람이군.’

 

‘언제 제대로 한 번 걸리기만 해봐라!’

 

하지만 사조원은 풍천의 명이 떨어지자 즉각적으로 움직였다.

 

정말 멋진 조장이었다. 신검일수 화청백을 손가락 하나로 움직이다니.

 

게으름만 고치면 정말 괜찮을 사람인데 말이야…….

 

 

 

 

 

제3장. 욕망은 바람을 일으키고

 

 

 

 

 

1

 

 

 

위태곤은 속도를 줄이지 않고 곧장 남쪽을 향해 달렸다. 

 

‘처음부터 유령총으로 가서 기다렸어야 했어.’

 

유령적을 얻기에 급급해서 일을 너무 조급하게 처리한 것이 후회되었다. 조금만 더 깊게 생각했다면 이런 고생을 할 필요도 없었거늘.

 

물론 급하게 서두른 것은, 백초령을 인질이라는 것 외에 다른 의도로 생각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기도 했다.

 

단순 인질이라면 손가락을 자르든, 팔다리를 자르든, 백무천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면 뭐든 할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그때와 달랐다.

 

그는 백초령의 손가락을 자를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풍천의 압박에 마음이 흔들린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그는 백초령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없었으니까.

 

유령적과 백초령. 

 

그는 두 가지를 모두 얻을 작정이었다. 그러려면 신검문 사람들과 만나지 않고 유령총에 도착해야 했다. 

 

‘그러고 보니, 그 미친놈의 이름을 듣지 못했군.’

 

이상하게 신경 쓰이는 놈이었다. 

 

자신이 누군지 알고도 놈은 두려워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두려워하기는커녕 오히려 핏대를 세우고, 침을 튀기며 소리쳤다.

 

어떤 놈인데 화청백이 앞에 내세운 걸까? 정말 백무천의 조카일까? 

 

위태곤이 풍천의 얼굴을 떠올리며 이마를 찡그리는데 남호가 말했다.

 

“놈들에게 넷이나 당했습니다, 대주.”

 

“화청백에게 당했나?”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저희가 빠져나올 때, 화청백이 백무천의 조카라는 놈 뒤를 따라서 뒷방으로 들어갔고, 밖으로 나올 때도 놈의 뒤를 따라서 나왔습니다.”

 

“예상보다 강하군. 귀혼신마대 넷이면 절정 고수도 상대할 수 있는데 말이야.”

 

나란히 달리던 시마충은 위태곤의 말에 눈살을 찌푸렸다. 

 

화청백이 강한 것은 분명했다. 자신에게 조금도 밀리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귀혼신마대 넷을 도망도 못 치게 만들 정도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옆에 있던 놈과 함께 손을 썼나?’

 

그럴지도 몰랐다. 그자는 남호의 아래가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자신의 공격을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던 애송이가 이상할 정도로 마음에 걸렸다. 

 

뒷방으로 맨 처음 들어간 것은 그놈이었다. 공자묘에서 빠져나오느라 자세한 것을 보진 못했지만, 귀혼신마대 둘이 그놈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면서 공격을 했다. 

 

그 후 안에서 어떤 소란도 없었다. 심지어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안 된다는 말을 듣긴 한 것 같은데…….’

 

화청백이 들어간 것은 그 뒤였다.

 

설마 귀혼신마대 넷이 그 애송이에게 죽은 것은 아니겠지?

 

피식, 시마충의 입가에 웃음이 걸렸다. 자신이 생각해도 어이없는 추측이었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 않았다. 

 

백 명으로 이루어진 귀혼신마대는 신마성의 정예 무사단이다. 그딴 놈에게 넷이나 당할 리가 없었다. 

 

그 말을 하면 위태곤과 남호가 비웃겠지?

 

‘좌우간 기분 나쁜 놈이야. 만약 그 애새끼가 유령총으로 온다면, 그놈만큼은 반드시 죽여 버려야겠어.’ 

 

그때 위태곤이 말했다.

 

“남호, 이십 명을 데리고 뒤로 처져서 놈들의 속도를 늦춰라. 너무 몰아붙이지는 말고. 따라오는 걸 포기하면 안 되니까.”

 

“예, 대주.”

 

남호는 뒤로 빠지더니, 이십 명의 무사를 추려 뒤로 돌아섰다.

 

그들과 거리가 이십여 장 정도 떨어질 즈음, 시마충이 물었다.

 

“괜찮겠소, 이공자?”

 

위태곤은 냉소를 지었다.

 

“설령 격전이 벌어진다 해도 놈들은 백초령 때문에 손을 심하게 쓰지 못할 겁니다. 그 사이 놈들과의 거리를 더욱 벌려서 천혈궁 구역으로 들어가면, 놈들도 어쩔 수 없이 유령총까지 끌려올 수밖에 없을 겁니다.”

 

“케케케, 그럼 결국 그놈을 유령총에서나 보게 되겠군.”

 

“그놈? 백무천의 조카라는 놈 말입니까?”

 

“그 애송이의 주둥이를 완전히 부수어서 다시는 어른을 비웃지 못하게 할 생각이외다. 캬캬캬캬.”

 

“그거 좋은 생각입니다. 기왕이면 사지의 근맥도 잘라서 바닥을 기게 만드시죠?”

 

“그래도 시끄럽게 하면, 아예 목을 비틀어 버릴 거외다.”

 

“정말 볼 만하겠습니다.”

 

두 사람은 풍천을 마음껏 난도질해서, 다리 잘리고 목 돌아간 풍뎅이로 만들어 버렸다.

 

그때만 해도 그들은 그러한 모습이 현실로 나타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물론 풍뎅이가 된 사람은 다른 사람이었지만. 

 

 

 

2

 

 

 

숲속을 통과한 풍천은 계곡을 따라 내려갔다. 

 

계곡이 끝나자 잡풀이 우거진 초지가 나왔다. 위태곤 일행의 흔적은 초지를 가로질러 건너편 숲속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풍천은 초지에 난 흔적을 따라 빠르게 이동했다. 

 

초지를 건너자 관도가 나왔다. 

 

반듯하게 뻗은 관도는 숲 가장자리를 따라 이어지다가 숲 안쪽으로 꺾어졌다. 

 

관도를 따라 숲 안으로 들어간 풍천은 백여 장쯤 가다 걸음을 늦추었다.

 

바람에 섞인 시큰한 땀 냄새. 

 

냄새는 극히 미미했지만, 풍천의 후각은 그게 사람의 몸에서 나는 냄새라는 걸 바로 인지했다. 

 

고요한 숲 안쪽에서 느껴지는 은은한 진기의 파동.

 

누군지 확인할 것도 없었다. 숨어서 자신들을 노릴 사람들은 한 무리밖에 없었으니까.

 

‘옷 좀 빨아 입고 다니지. 나보다 게으른 놈들.’

 

땀 냄새 하나로 귀혼신마대를 게으름뱅이 취급한 그는 눈을 가늘게 뜬 채 숲속을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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