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풍전설 2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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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8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천풍전설 29화
29화
풍천은 계속 무사를 다그치며 공자묘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화청백 등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풍천의 뒤를 따라서 움직였다. 이판사판이었다.
그때 얼굴이 벌게진 무사가 결국 손을 들었다.
“잠깐! 우리가 안내할 테니 따라오시오.”
이겼군!
‘이런 놈은 내가 잘 알지. 규율이 엄격할수록, 밑에 있는 놈들은 명령 받는 것에 익숙해서 책임지지 못할 일은 하지 못하는 법이거든.’
풍천은 기세싸움에서 이긴 걸 즐거워하며 고개를 미미하게 까닥였다.
“좋아, 안내해. 엉뚱한 짓하다 일이 틀어지면, 네놈이 모든 책임을 져야 할 거다.”
귀혼신마대 오조장 육철은 이를 빠드득 갈며 풍천을 공자묘로 안내했다.
‘도대체 뭐하는 자식이야? 새파란 놈이 지옥에 들어온 줄도 모르고 천방지축이군. 흥, 조금만 있어봐라, 이놈. 울면서 매달리게 될 테니까.’
공자묘의 커다란 건물 앞에 도착하자, 육철은 안으로 한 사람만 들어가라고 했다.
“당신이 책임자라 했으니 당신만 들어가시오.”
풍천은 눈을 치켜뜨고 그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네놈들이 나를 죽이고 물건을 뺐을지 모르는데, 내가 왜 혼자 들어가? 호위무사를 대동하지 못하게 하면 안 들어가겠다!”
한편, 위태곤은 상황이 이상하게 흐르자 눈살을 찌푸렸다.
대체 어쩐 놈이 책임자로 왔는데 이 소란이란 말인가?
하지만 여기서 협상을 결렬시킬 수도 없고, 한편으로는 호위무사를 대동하겠다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그는 밖을 향해 말했다.
“호위로 두 사람 이상은 안 된다. 그래도 들어오지 않겠다면, 오늘의 협상은 없다.”
풍천은 화청백과 석초산을 대동하기로 했다.
“당신, 당신, 따라와.”
풍천이 턱짓으로 두 사람을 가리키자, 사람들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그래도 풍천은 조금도 거리낌 없는 표정으로 몸을 돌렸다.
구양종이 자신도 들어갔으면 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본 척도 하지 않고 육철을 윽박질렀다.
“문 열어!”
육철은 지옥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열듯이 문을 열고 옆으로 비켜섰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는 풍천의 뒤통수를 보며 냉소를 베어 물었다.
‘어디 그 모습이 언제까지 가나 보자, 이놈.’
2
공자묘의 건물 안은 제법 넓었다.
그 가운데에 두 사람이 서 있었다.
‘그놈들이군.’
대나무처럼 빼빼 마른 노인과 자신보단 못해도 제법 그럴 듯하게 생긴 청년.
어부가 말한 인상 중 둘과 일치했다.
“자넨 누군가?”
위태곤이 먼저 물었다.
풍천이 턱을 쳐들고 대답했다.
“지금 이름 물어보자고 부른 건가? 내 동생은 어디 있지?”
“네 동생?”
풍천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그래, 내 동생, 백초령! 그 말썽꾸러기가 어디 있냐고 물은 거다!”
위태곤이 의혹어린 눈빛으로 풍천을 쳐다보았다.
“백무천에겐 아들이 없는 것으로 아는데?”
“사촌 동생은 동생이 아닌가? 생김새는 그럭저럭 봐줄 만한데 머리가 좀 딸리나 보군.”
위태곤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나이도 어린 것 같은데, 말을 함부로 하는군. 내가 누군지 아나?”
“당연히 알지. 내 동생을 납치한 납치범. 유령적을 얻기 위해서 치졸한 방법을 쓴 걸로 보아 제대로 된 사람은 아닌 것 같군.”
말을 맺으며 턱을 살짝 치켜드는 풍천의 입가에 비릿한 조소가 걸렸다.
그 모습을 본 순간, 위태곤은 가슴속에서 뜨거운 것이 치밀고 올라왔다.
자신도 모르게 욱해진 위태곤은 풍천을 노려보았다.
‘왜 이런 개자식을 보낸 거야?’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두 눈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러나 분노를 터트려도 유령적을 얻은 다음의 일. 그는 이를 갈며 나직이 대꾸했다.
“주둥이가 제법 매섭군. 물에 빠져도 주둥이만 둥둥 뜨겠어.”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닌데, 당신 같은 사람을 보면 구역질이 나려고 하거든. 남자가 말이야, 얼마나 자신이 없으면 여자를 납치해? 차라리 달린 것을 떼 내시지?”
이 개자식을!
위태곤은 주먹을 불끈 쥐고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지로 눌렀다.
안 되겠다 싶었는지 시마충이 나섰다.
“케케케, 어린놈이라 세상을 모르는군. 때로는 목적을 위해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니라.”
풍천이 피식 웃고는, 입술을 묘하게 비틀며 말했다.
“훗, 나이깨나 든 양반이 인생을 헛살았군. 그런 마음으로 지금까지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게 정말 신기해. 뭐 살날도 얼마 남지 않은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말이야.”
욕은 한마디도 섞여 있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할 정도로 기분이 상했다.
새파란 놈이 감히 자신에게 인생을 논하다니!
시마충의 눈에서 불길이 일었다.
‘입을 쫙 찢어 죽일 놈……!’
지금까지 자신에게 말 함부로 해서 죽어간 놈이 적어도 백은 되었다. 평소라면 눈앞에 있는 놈도 당장 목을 뽑아서 죽였을 것이었다.
하지만 아직은 죽일 때가 아니었다.
시마충은 숨을 깊게 들이쉬고 한 번 더 참았다.
“애송이가 죽지 못해 환장했구나.”
“걱정 마, 내 목은 제법 질기거든. 아마 당신보다 훨씬 오래 살 거야. 나이 처먹고 노망난 늙은이보다 먼저 죽으면 억울하잖아?”
뭐라? 노망난 늙은이?
“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어디서……!”
시마충의 눈에서 새파란 살기가 쏟아졌다.
풍천은 손을 척 들어서 흔들었다.
“아, 아! 지금 뭐하자는 거요? 난 늙은이하고 말장난하러 온 게 아니라 초령이를 데리러 왔거든?”
시마충은 풍천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며 다시 한번 각오를 다졌다.
‘유령적만 얻으면 내 이놈을……!’
그때 그동안 화를 삭인 위태곤이 냉랭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일단 유령적을 보여줘라. 물건이 없다면 계집도 볼 수 없다.”
풍천은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일단 초령이를 먼저 보여줘. 그럼 유령적을 보여줄 테니까. 만약 허튼 짓을 하면 유령적을 부숴 버릴 거다!”
뒤에서 보는 화청백과 석초산의 손에 땀이 흥건히 고였다.
그러나 두 사람은 나설 수조차 없었다. 백초령은 아직 모습도 보이지 않았고, 어쨌든 지금까지는 풍천이 잘하고 있었다. 기대 이상일 정도로.
위태곤도 만만치 않았다.
“유령적을 부수면 백초령의 머리도 부서질 것이다. 쓸데없는 짓 말고 유령적을 내놔라.”
그래도 말싸움에서는 풍천이 한 수 위였다.
“뭐가 무서워? 목에 칼을 들이대고 얼굴만 보여줘! 일단 초령이가 살아 있다는 게 중요하니까. 왜? 혹시…… 귀찮다고 죽인 거 아냐? 이 개자식들이! 정말 죽인 거야?”
풍천은 의심을 확신처럼 말하며 버럭버럭 소리쳤다. 얼굴까지 벌게지는 게 금방이라도 입에서 거품이 뿜어질 것 같았다.
위태곤과 시마충은 어이가 없었다.
백무천이 지금 제정신인가? 딸을 구하러 보내면서 어떻게 이런 미친놈을 보냈단 말인가.
‘뭐 이런 새끼가 다 있어?’
그러든 말든 풍천은 검을 뽑을 것처럼 검병에 손을 얹고 소리쳤다.
“셋을 셀 때까지 안 내놓으면, 협상이고 뭐고 다 필요 없이 네놈들을 모두 죽여 버리겠다!”
화청백이 대경해서 급히 전음을 보냈다.
[이봐, 풍천! 저들을 너무 자극하지 말게!]
“하나!”
[풍천! 계속 그러면 협상은 내가…….]
“둘! 빨리 안 내놔?”
화청백은 급히 석초산과 눈빛을 교환했다.
위태곤과 시마충은 풍천이 미친놈처럼 설치자 머릿속이 뒤죽박죽으로 뒤섞였다.
그때 풍천이 소리쳤다.
“둘 반!”
화청백은 막 손을 뻗어서 풍천의 등을 잡으려다 어정쩡한 자세로 멈칫했다.
위태곤도 뒷방에 있는 남호를 부르려고 고개를 돌리다 멈췄다.
‘뭐, 뭐야? 셋이 아니고 둘 반?’
순간, 풍천의 눈빛이 반짝였다.
‘저 뒷방에 있군!’
자신이 생긴 그는 마지막 숫자를 세었다.
“마지막이다! 세에에에……!”
풍천은 셋을 길게 세며, 천천히 검을 잡아 뽑았다.
누가 봐도 진심이 아니란 것을 알 수 있는 행동이었다.
위태곤은 어이가 없었지만, 고개를 돌린 김에 일단 뒤를 향해 말했다.
“남호, 그 계집을 보여주어라.”
풍천과 화청백, 석초산은 공자의 초상 옆에 있는 쪽문을 바라보았다.
덜컹, 쪽문이 열렸다.
쪽문 안쪽에는 목에 칼을 들이댄 백초령이 서 있었다.
눈이 가려지고 밧줄에 묶인 채, 칼로 위협받고 있는 백초령의 모습이 보이자, 풍천의 두 눈이 역팔자로 꺾어졌다.
흐트러진 옷매무새와 초췌해진 모습을 보니 알 수 없는 분노가 끓어올랐다.
“초령아!”
그는 자신도 모르게 백초령의 이름을 소리쳐 불렀다.
백초령은 몸을 잘게 떨었다.
안에서 풍천의 목소리를 들은 터였다. 하는 말투로 봐서 풍천이 분명했다. 말 몇 마디로 사람의 속을 저렇게 긁는 사람은 많지 않으니까.
그러던 차에 앞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듣자, 그동안 쌓인 설움이 모조리 쏟아졌다.
아혈이 제압당해서 말을 할 수는 없지만, 그녀는 속으로 소리치며 간절히 바랐다.
‘역시 풍천이 왔어! 풍천! 나 힘들어 죽겠어! 어서 구해 줘! 엉엉엉!’
위태곤은 백초령의 모습만 보여주고는 바로 남호에게 명을 내렸다.
“됐다. 안으로 데려가.”
“이봐! 눈은 풀어줘야 할 거 아냐! 얼마나 답답하겠어? 이 오빠의 멋진 모습을 볼 수 있게 눈을 먼저 풀어줘!”
풍천이 위태곤을 쏘아보며 소리쳤다.
싸움이 벌어질지 몰랐다. 그럼 옷이 더러워질 터, 그 전에 자신의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위태곤은 자신이 선기를 잡았다 생각했는지 조소를 지으며 말했다.
“좋아, 그 정도는 들어주지. 남호, 계집의 눈을 풀어줘라.”
남호는 백초령의 눈을 가린 천을 풀어주고는 곧바로 쪽문을 닫았다.
‘아, 씨! 나를 볼 시간은 줘야지!’
풍천은 당장 달려들고 싶은 걸 가까스로 참았다.
백초령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울고불고 소리쳐도 모자랄 판이거늘.
강제로 아혈을 점혈했다는 말. 지독한 놈들이었다.
‘빌어먹을, 백초령이 말만 할 수 있었어도 뭔가 알아낼 만한 게 있었을지 모르는데.’
풍천이 아쉬워하는데, 위태곤이 재촉했다.
“자, 이제 유령적을 보여주시지?”
백초령의 얼굴을 본 이상 더 이상 거부할 수도 없는 일. 풍천은 품속에 손을 넣었다.
화청백과 석초산은 바짝 긴장한 채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과연 저들이 속아줄까?
그때 풍천이 가죽 주머니를 조금 빼다 말고 물었다.
“그러고 보니 당신이 누군지 물어보지도 못했군. 유령적을 건네받을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어.”
“나는 위태곤이라고 한다.”
석초산의 표정이 굳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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