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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풍전설 62화

무료소설 천풍전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18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천풍전설 62화

 

62화

 

 

 

 

 

 

운조평도 석문을 강제로 열면 통로가 무너질지 모른다고 했다. 그러나 다른 방법이 없었다.

 

어차피 지하의 석문을 부수나, 눈앞의 석문을 부수나 통로가 무너지는 매한가지. 그나마 이곳을 부수면 빠져나갈 확률이 일 할은 될 것이었다. 전력을 다해서 천풍무영류를 펼친다면 이 할은 될 것이고.

 

‘앞을 막는 사람이 없다면 삼 할은 되겠지.’

 

그 정도면 모험을 못할 것도 없었다. 피골이 상접한 채 굶어죽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

 

풍천은 백초령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지금이 아니면 탈출할 기회가 없을 것 같아. 운조평과 등청이 마침 자리를 비웠거든.”

 

그러잖아도 큰 백초령의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탈출? 기관이 고장 났는데, 어떻게?”

 

“나 믿어?”

 

“어? 어.”

 

“그럼 계속 믿어.”

 

풍천은 그렇게만 말하고 석문으로 다시 고개를 돌렸다.

 

일일이 설명할 시간이 없다. 운조평과 등청이 돌아오기 전에 석문을 부수고 빠져나가야 한다.

 

창!

 

검을 빼든 풍천은 전 공력을 검에 모았다. 그리고 석문의 결을 따라 찔러넣었다.

 

두께가 석 자나 되었다. 파산장만으로는 부술 자신이 없었다. 자신의 공력을 모두 발출할 수 있다면야 이야기가 달라질 테지만 그럴 수 없는 이상은 다른 방도가 없었다. 흠이라도 내서 그만큼 부수기 쉽게 만드는 수밖에.

 

그런데 청석이 워낙 단단해서 검은 반 자 이상을 파고들지 못했다.

 

풍천은 똑같은 행동을 십여 번 반복하고는 검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공력을 두 손에 모았다.

 

“어떻게 하려고 그러는 거야?”

 

뒤에서 백초령이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총명한 그녀가 풍천의 행동이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지 못할 리 없었다. 그래서 더 불안했다. 지하에서 석문을 두들겼다가 하마터면 천장이 무너질 뻔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번에는 아예 석문을 부술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내가 문을 부수면 바로 내 등에 업혀! 알았지?”

 

대뜸 소리친 풍천은 쌍장을 교차시키며 이름도 거창한 파산장법을 펼쳤다.

 

“차아앗!”

 

파산장법은 절정의 장법도 아니고 특별한 변화도 없는 장법이었다. 그러나 단순한 파괴력만큼은 다른 어떤 장법보다 무식하리만치 강했다. 사실 그것이 그가 천풍장의 열두 가지 장법 중 파산장을 택한 이유였다. 어차피 진기운용이 달라서 기교를 부릴 수 없으니 파괴력이라도 뛰어나야 할 것이 아닌가 말이다.

 

쾅!

 

장력이 석문을 강타하자 굉음과 함께 통로가 흔들렸다.

 

쩌저적!

 

동시에 석문에서, 일 장 두께의 얼음이 갈라지듯 검이 꽂혔던 결을 따라 돌이 떨어져 나왔다.

 

“아자아아앗!”

 

풍천은 연속적으로 파산장법을 펼쳐서 불구대천의 원수를 두들겨 패듯 석문을 후려쳤다.

 

콰과광!

 

그리고 어느 정도 파이자 다시 검을 찔러넣어 흠을 만들고 또 후려쳤다.

 

 

 

 

 

제4장. 선택(選擇)

 

 

 

 

 

1

 

 

 

쿠궁!

 

느닷없는 굉음에 위태곤의 두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뭐, 뭐야?”

 

그는 굉음의 진원지가 석문이라는 것을 알고 대경해서 말을 더듬었다.

 

“저, 저 미친놈이……! 풍천! 그 석문은 미로의 것과 다르다! 석문을 부수면 탑이 무너질지 모르니까 그만해!”

 

그가 악을 쓰는데도 풍천은 어디서 개가 짖느냐는 듯 계속 쌍장을 휘둘렀다.

 

콰광! 쩌저적!

 

연속된 충격에 석문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위태곤은 천장과 사방을 둘러보았다.

 

쩌저저적. 웅웅웅웅.

 

기분 나쁜 소음이 커지면서 석문 인근의 천장과 벽에 실금이 그어지고 있었다. 석문이 부서지며 기관이 작동한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충격 때문에 금이 간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분명한 것은 당장 무너질 것 같지는 않다는 점이었다.

 

“시 장로, 놈이 나오면 절대 내보내선 안 되오!”

 

“걱정 말게! 백초령이 함께 있으니 놈도 전처럼 마음대로 움직이지는 못할 게야!”

 

“너희들은 몸을 던져서라도 놈을 막아라!”

 

악을 쓰듯 소리친 두 사람은 석문을 노려보았다.

 

그 순간, 석문이 와르르 무너지며 두 자 정도의 공간이 생겼다. 동시에 백초령을 업은 풍천이 안에서 튀어나왔다.

 

풍천은 밖으로 나오자마자 죽을힘을 다해서 입구 쪽으로 날아갔다.

 

그야말로 강궁에서 쏘아진 화살이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날아가는 듯했다.

 

“어딜 가려고 하느냐!”

 

위태곤이 시마충과 함께 풍천을 향해 달려들었다.

 

풍천은 좌우로 몸을 틀며 그들의 공격을 귀신처럼 피하고는 귀혼신마대의 머리를 타넘었다.

 

파산장을 연이어 펼치느라 숨이 콱콱 막히고 진기가 들끓었었다. 그래도 혼신을 다해 달렸다.

 

자신들의 공세를 풍천이 단숨에 벗어나자 위태곤은 눈을 부라리며 욕을 퍼부었다.

 

“풍천! 이 미친 새끼야! 함께 죽자는 거냐!”

 

욕을 퍼부은 그는 전력을 다해서 풍천의 뒤를 쫓아갔다.

 

그의 등에 백초령이 업혀 있었다. 풍천은 죽일 놈이지만, 백초령은 얻어야할 사람. 절대 놓칠 수 없었다.

 

‘웃기고 있네! 누군 부수고 싶어서 부순 줄 알아?’

 

풍천은 그가 욕을 퍼붓건, 날아가면서 방귀를 뀌건, 뒤도 돌아보지 않고 통로로 들어섰다.

 

수십 구의 시신이 통로 여기저기 그대로 널려 있었다. 사지가 잘리고, 가슴에 구멍이 뚫리고, 목이 반쯤 잘리고, 머리가 으깨지고…….

 

신마성의 무사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가슴이 뚫린 부양과 목이 반쯤 베인 탁조원도 그들 속에 섞여 있었다.

 

등잔 불빛에 비친 시뻘건 바닥. 코를 찌르는 비릿한 혈향.

 

이곳이 바로 지옥으로 향하는 통로인가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토록 처참한 광경도 풍천과 백초령에게 두려움을 주진 못했다.

 

천장과 벽이 쩍쩍 갈라지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머리 위에서 바윗덩이가 떨어질 것 같았다.

 

“꽉 잡아!”

 

백초령에게 다시 한번 주의를 준 풍천은 핏물로 인해 미끈거리는 바닥을 미끄러지듯 나아갔다.

 

뒤를 쫓아오는 위태곤과의 거리가 순식간에 오 장으로 벌어졌다.

 

‘역시 탁월한 선택이었어! 음하하하!’

 

아직 통로를 다 빠져나가지는 못했지만 지금까지는 성공적인 모험이었다. 아마 운조평과 등청까지 있었다면 광장을 빠져나오기가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었다.

 

통로를 반쯤 통과하자 저만치 앞쪽에 일행들이 빠졌던 함정이 있던 곳이 보였는데, 함정은 이미 뚜껑이 닫혀서 원상태로 돌아가 있었다.

 

함정 너머의 통로를 막고 있던 석벽은 다시 열린 상태.

 

유령곡의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이제 밖으로 나간 이후 어떻게 할 것인지를 생각했다.

 

‘남들이야 창자로 줄넘기를 하건, 눈알로 구슬치기를 하건, 무조건 이곳을 빠져나가고 보는 거야.’

 

통로 입구에 등청이 나타난 것은 함정의 코앞에 이르렀을 때였다.

 

“이놈!”

 

등청이 대갈을 터트리며 풍천을 향해 마주 달려왔다.

 

그는 풍천을 죽이는 게 인생의 목적이라도 되는 듯 천장과 벽이 갈라지며 탑이 울어대는 데도 망설이지 않았다.

 

‘저 미친 영감이!’

 

맞부딪쳐서 좋을 게 없는 상황. 풍천은 재빨리 방향을 틀며 등청의 공격을 피해 통로를 빠져나가려 했다.

 

그런데 또 한 사람이 통로 안으로 날아들며 그를 공격했다. 운조평이었다.

 

“이 영감들이 진짜!”

 

두 명의 초절정 고수가 앞을 막은 터였다. 그가 제아무리 고금제일의 신법을 지녔다고 해도, 비좁은 통로에서 백초령을 업은 상태로 그들의 공세를 완벽히 벗어날 수는 없었다.

 

더구나 바로 앞은 언제 꺼질지 모르는 함정이 아닌가 말이다.

 

‘설마 함께 빠지고 싶진 않겠지.’

 

떠더덩!

 

결국 풍천은 급히 검을 내질러 운조평의 공세를 막아냈다. 그 순간 등청이 두 번째 공세를 퍼부었다.

 

풍천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뒤로 이 장 이상을 주욱 물러섰다.

 

동시에 위태곤과 시마충이 그를 비켜서 앞쪽으로 나섰다.

 

“풍천! 다른 놈은 몰라도 너는 절대 이곳을 빠져나가지 못한다!”

 

그의 목소리가 통로를 울렸다. 바위 갈라지는 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 천장에서 자잘한 돌조각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쿠구궁! 쿠르르릉!

 

마음이 다급해진 풍천이 위태곤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제길, 탑이 무너지려고 하는 것 같다! 함께 죽을 것이 아니라면 우리 나가서 싸우자!”

 

위태곤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러나 그는 오 장만 나가면 되는 만큼 풍천보다 급할 것이 없었다.

 

“일단 백초령을 넘겨라!”

 

풍천은 위태곤을 노려보았다.

 

“혹시, 너 정말 초령이를 좋아하는 거 아냐?”

 

으이그! 지금 그런 말할 때인가?

 

업혀있던 백초령이 빽 소리쳤다.

 

“풍천! 멍청한 짓 그만하고 통로가 무너지기 전에 뚫고 나가!”

 

고막이 먹먹해진 풍천은 바닥을 박차고 입구를 향해 신형을 날렸다.

 

흠칫한 위태곤은 뒤로 물러나고 운조평과 등청이 앞으로 튀어나오며 풍천을 공격했다.

 

“비켜라! 그놈은 우리가 상대하겠다!”

 

팔대신마 중 두 사람의 합공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천하를 통틀어도 열 명 안팎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풍천은 백초령을 업고서 두 사람의 삼 초 공격을 옷자락 하나 안 잘리고 피했다.

 

“정말 보면 볼수록 놀라운 놈이로구나!”

 

운조평은 혀를 내둘렀다.

 

신법에 관한한 천하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든다는 그가 아닌가. 그런 그가 등청과 합공을 하고도 풍천을 잡지 못하다니.

 

하지만 풍천은 풍천대로 답답했다.

 

젖 먹던 힘까지 써서 두 사람의 합공을 가까스로 피하긴 했는데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통로의 천장과 벽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거늘.

 

이러다 백초령과 함께 죽는 건 아닐까?

 

풍천이 그런 생각을 하며 불안해할 때였다.

 

쿠구구궁! 쩌저저적!

 

마침내 통로와 탑이 본격적으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상황이 심상치 않다. 금방이라도 천장이 가라앉을 것 같았다.

 

‘제기랄! 미치겠군!’

 

위태곤은 등청과 운조평에게 막혀 있는 풍천을 향해 소리쳤다.

 

“풍천! 둘 다 죽을 셈이냐? 백초령을 내놓아라! 그녀라도 살려야하지 않겠느냐?”

 

풍천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흔들렸다. 갈등의 파편이 뇌리를 후볐다.

 

그러나 탑이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상황. 그에게는 갈등을 정리할 시간이 없었다.

 

“내려.”

 

“풍천!”

 

“나를 믿는다고 했지? 그럼 내 말대로 해.”

 

“죽어도 같이 죽자니까!”

 

“둘 다 여기서 죽을 수는 없잖아? 어서 저쪽으로 가!”

 

“싫어!”

 

“누가 너 생각해서 그런 줄 알아? 나는 여기서 죽기 싫어. 특히 바위에 깔려서 죽는 건 더욱 더 싫어. 너만 없으면 나도 나갈 수 있을지 모르는데 너 때문에 거치적거린단 말이야!”

 

“뭐, 뭐? 그럼 너 살기 위해서 나를 넘기겠다는 거야?”

 

“둘 다 살려면 그 길밖에 없어! 그러니 내 말대로 해.”

 

매몰찬 말투. 백초령은 풍천의 목을 감은 손을 풀었다.

 

“정말 나를 이렇게 보낼 거야?”

 

“위태곤이 잘 해줄 거야. 걱정 말고 빨리 가.”

 

“그걸 말이라고 해? 이 바보…….”

 

풍천은 더 이상 백초령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위태곤을 쳐다보았다.

 

“위태곤, 남자 대 남자로서 초령이를 괴롭히지 않겠다고 약속해라!”

 

“후후후, 걱정마라. 나는 백초령을 괴롭히지 않을 것이니까.”

 

가지고 놀 뿐이지.

 

“뭐해? 천장이 무너질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거야? 어서 가!”

 

풍천이 백초령을 향해 짜증내듯이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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