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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풍전설 59화

무료소설 천풍전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314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천풍전설 59화

 

59화

 

 

 

 

 

 

운조평은 흐트러진 머리카락 사이로 풍천을 노려보았다. 

 

위태곤과 시마충도 풍천을 보고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아직도 살아 있다니!’

 

‘다른 놈은 몰라도 저 놈은 꼭 죽었어야 하는데!’

 

‘백초령! 살아 있었구나!’

 

풍천은 운조평을 바라보았다.

 

하필 그가 입구 쪽을 가로막고 있었다.

 

백초령을 업은 채 운조평을 상대할 수도 없고 위태곤이 빤히 쳐다보고 있는데 내려놓고 싸울 수도 없고……. 진퇴양난의 상황.

 

그는 일단 말로 해결해보기로 하고는 나름 반가운 웃음을 지었다.

 

“하하하, 여러분도 살아 계셨군요.”

 

하지만 세 사람에게는 그 말이 살아 있어서 애석하다는 것처럼 들렸다.

 

특히 운조평은 그의 뻔뻔한 얼굴을 보자 가라앉았던 분노가 다시 끓어올랐다.

 

“때려 죽일 놈, 감히 가짜로 나를 속이다니…….”

 

풍천은 입맛을 다시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래도 그거 열 냥이나 주고 산 겁니다.”

 

그래 봐야 운조평에게는 놀리는 것처럼 들렸지만.

 

“이 죽일 놈이……!”

 

운조평은 눈을 부라리며 두 손에 공력을 끌어올렸다.

 

풍천은 움찔하며 슬그머니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좋은 게 좋다고, 그냥 내보내 주쇼. 여기서 더 싸워봐야 좋을 것도 없잖습니까?

 

“흥! 네놈 머리만 따로 떼어서 밖으로 던져주마!”

 

아무래도 말로 해결하기는 틀린 것 같다. 그렇다고 힘으로 밀고 나가기도 쉽지 않을 것 같고.

 

풍천은 재빨리 좌우를 둘러보며 머리를 굴렸다.

 

순간이었다. 유령총으로 향하는 석문을 바라보던 풍천의 눈빛이 묘하게 반짝였다.

 

세 사람은 모두 입구 쪽을 막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유령총으로 향하는 석문 쪽이 비어 있는 것이다.

 

‘유령총의 입구가 있는 곳으로 미로가 연결되었을까?’

 

아닐 가능성이 훨씬 더 컸다. 갑자기 든 생각이었지만, 두 번 생각해도 자신의 생각이 맞을 것 같았다.

 

백초령의 엉덩이를 받친 왼손에 힘을 준 그는 석문을 향해서 몸을 날렸다.

 

위태곤이 갑작스런 풍천의 행동에 놀라 소리쳤다.

 

“엇? 저놈이!”

 

“어림없는 짓!”

 

운조평이 바닥을 차고 신형을 날렸다. 신법이라면 그도 일가견이 있었다. 풍천이 백초령을 업고 있는 이상은 풍천을 잡지 못할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걸 본 위태곤이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사숙! 백초령은 죽이지 마십시오!”

 

하지만 풍천의 신법은 운조평이 생각한 것보다 더 빨랐다.

 

석문 안으로 빨리듯 들어간 풍천은 백초령을 재빨리 내려놓았다.

 

“위험하니까 안으로 들어가 있어!”

 

그러고는 빙글 몸을 돌리며 운조평의 장력 속으로 검을 찔러넣었다.

 

쩌저정!

 

두 사람의 기운이 정면으로 부딪치며 기의 폭풍이 일었다.

 

뒤로 두 걸음 물러난 운조평은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범상치 않은 실력을 지녔다는 건 짐작했었다. 하지만 설마하니 자신과 대등하게 싸울 정도일 줄이야.

 

그때 위태곤이 운조평에게 경고하듯 소리쳤다.

 

“사숙, 조심하십시오! 등 장로님과도 대등하게 싸운 놈입니다!”

 

풍천은 말도 안 된다는 투로 반박했다.

 

“웃기는 소리 마라, 위태곤! 등가 늙은이는 내 옷자락도 건들지 못했지만 나는 그 늙은이의 소매를 몽땅 잘라냈다! 그러니 내가 더 강한 거지! 안 그래?”

 

그때였다. 풍천이 나온 통로 쪽에서 등청이 날아오며 노성을 내질렀다.

 

“오냐, 이놈! 어디 그 잘난 실력으로 다시 한번 겨뤄보자!”

 

‘쳇, 쉽지 않았을 텐데, 용케 빠져나왔네!’

 

풍천은 등청이 살아나온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검을 고쳐 쥐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지금은 백초령을 내려놓은 상태고, 자신이 유리한 지형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흥, 팔대신마란 사람들이 합공을 하겠다는 건가? 이름이 아깝다!”

 

풍천은 두 사람의 자존심을 자극했다.

 

등청이 이를 빠드득 갈고는 운조평에게 말했다.

 

“운 아우, 그놈을 나에게 맡기게.”

 

운조평은 풍천을 노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형님. 대신 놈을 죽일 때 팔다리 한두 개는 제가 뜯어내도록 하겠습니다.”

 

“알겠네.”

 

졸지에 팔다리가 남의 손에 뜯겨날 상황이 된 풍천은 검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헹, 쉽지 않을걸?’

 

그가 석문 안으로 피신한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석문이 있는 통로는 너비가 일 장에 불과했다. 그를 쓰러뜨리지 않고는 누구도 통과할 수 없었다. 다시 말해, 탑 안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 바로 그곳인 것이다.

 

여유가 생긴 그는 또 다시 두 사람을 자극했다.

 

“나잇살 먹은 사람들이 정말 염치가 없군! 강호의 선배로서 체면도 없단 말인가?”

 

“무슨 헛소리냐, 이놈!”

 

“나는 초령이까지 보호해야 하니까 불리할 수밖에 없잖아? 강호의 선배면 정당하게 대결을 해야지 말이야.”

 

“걱정 마라, 이놈! 네놈의 머리를 떼어내기 전까진 저 계집을 공격하지 않을 테니까. 됐느냐?”

 

등청이 눈살을 찌푸리며 반문하자 운조평이 끼어들었다.

 

“형님, 그놈 말에 넘어가지 마십시오. 입 하나는 당해내기 힘든 놈입니다. 그러니 말상대하지 말고 그냥 목줄기를 따버리십시오.”

 

등청도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신법도 지저분하지만 입은 더 더러운 놈이 바로 풍천이었다.

 

“목줄기를 따기 전에 주둥이부터 찢어주마 이놈!”

 

“흥, 누가 마도인 아니랄까 봐 정말 사람 죽이기를 좋아하는군!”

 

“잔소리 말아라, 이놈! 곧 죽을 놈이 말도 많구나!”

 

“흥, 쉽지 않을걸?”

 

등청은 말과 달리, 쉽게 풍천을 공격하지 못했다.

 

풍천의 실력은 그가 얕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더구나 흑의인과 싸우면서 입은 부상도 가볍지 않았고.

 

‘끄응, 괜히 나섰나? 지금이라도 조평에게 넘길까?’

 

그렇게 두 사람의 대치가 길어지자 위태곤이 풍천을 향해 소리쳤다.

 

“풍천! 백초령과 함께 죽을 것이 아니라면 그녀를 이리 보내라! 내가 그녀의 안전에 대해서는 약속하마.”

 

‘웃기는 놈이네. 너를 믿느니 차라리 유령총의 유령들을 믿겠다.’

 

풍천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태연한 표정으로 위태곤을 향해 물었다. 궁금한 것이 있는데, 위태곤이라면 알지 몰랐다. 아니면 운조평이나 등청이라도.

 

“이봐, 혹시 사마공유를 알아? 여기서 죽었다던데.”

 

위태곤이 눈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사마공유? 신검문의 젊은 놈 말이냐?”

 

“맞아, 천혈궁의 독귀와 함께 죽었다고 들었거든.”

 

“훗, 나도 들은 것 같군. 유령총에 독이 있을지 몰라 천혈궁에서 독귀라는 늙은이를 데려왔는데, 그만 새파란 놈을 당해내지 못하고 죽었다더군.”

 

“그러니까 독귀가 사마공유에게 죽을 정도의 독상을 입힌 건 확실한가 보네?”

 

위태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건 내가 알고 있는 것과는 조금 다른데?”

 

다르다고?

 

“뭐가 다르단 말이지?”

 

“그가 독상을 입은 것은 분명한데 죽을 정도는 아니라고…….”

 

바로 그때였다.

 

그그그긍.

 

석 자 두께의 석문이 둔중한 소리를 내며 닫히기 시작했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 풍천은 가자미눈으로 백초령을 바라보았다. 백초령이 당황한 표정으로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등청은 풍천이 석문을 닫는 줄 알고는 대뜸 노성을 내지르며 탈혼도를 휘둘렀다.

 

“네놈이 감히!”

 

혼자 광장으로 나갈 수도 없는 상황.

 

‘젠장! 나도 모르겠다! 닫히게 했으면 여는 방법도 있겠지.’

 

정 안 되겠으면 부수지 뭐.

 

풍천은 이판사판이라는 마음으로 마주 검을 뻗었다.

 

“별것도 아닌 영감태기가 감히는 무슨 감히야!”

 

“이 노오오옴!”

 

쩌정! 쾅!

 

풍천이 전력을 다해서 펼친 일검은 탈혼도를 튕겨내고 등청마저 세 걸음을 물러서게 만들었다.

 

아무리 부상을 입었다고 해도 그렇지, 저딴 놈에게 자신이 밀리다니.

 

자존심이 상한 등청은 눈을 치켜뜨고 말을 더듬었다.

 

“네, 네놈이……!”

 

그 사이에도 석문은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등청이 재차 공격을 하려 했을 때는 석문의 간격이 어느새 두 자로 줄어들어 있었다.

 

그리고 곧 쿵! 소리와 함께 닫혀버렸다.

 

운조평은 석문이 닫힌 것을 보고도 서두르지 않았다.

 

하지만 위태곤은 느닷없는 상황에 마음이 다급해졌다. 급히 석문으로 달려간 그는 우측에 있는 아수라 조각상의 입에 매달린 고리를 잡고 좌측으로 돌렸다.

 

고리가 힘없이 돌아가는가 싶더니 쑥 뽑혀 나왔다.

 

바라보고 있던 운조평도 그때만큼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위태곤이 당황한 표정으로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사숙, 아무래도…… 기관에 이상이 생긴 것 같습니다.”

 

풍천과 등청의 기운이 정면으로 부딪치면서 그 충격의 여파로 석문이 흔들렸는데 아마도 그때 문제가 생긴 듯했다.

 

“빌어먹을…….”

 

운조평의 입에서 절로 쌍소리가 흘러나왔다.

 

밖에서 문을 여는 방법이 사라졌다. 석문을 부술 수도 있지만 그 후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몰랐다.

 

지난 석 달 간 기관토목과 기문진의 대가인 마기자(魔機子)가 유령총의 기관을 철저히 조사했다. 그는 석문을 강제로 열지 말 것을 엄중히 경고했다. 석문을 강제로 열려다가는 자칫 탑이 무너질 수도 있다면서.

 

유령총 안의 기관이 그만큼 기묘하게 얽혀 있다는 것이다.

 

위태곤은 난감한 표정으로 운조평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기관에 이상이 생겼다면 운조평으로서도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곧 얼굴을 펴고 석문을 노려보았다.

 

“일단 밖의 일을 마무리 지은 다음, 문을 열 방법을 생각해보자. 어차피 놈도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지 못할 테니까.”

 

위태곤도 표정을 펴고 냉소를 지었다.

 

그렇다. 풍천과 백초령은 안에 갇힌 것이지 도망간 것이 아니었다. 두 사람이 유령총 내부로 들어가는 입구를 열지 못하는 한 석문을 열고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히려 그로 인해서 팔대신마 중 하나를 상대할 수 있는 놈을 묶어뒀으니 신마성으로선 잘된 일일지도 몰랐다.

 

‘닷새쯤 지나면 나오겠지. 퀭한 눈으로 먹을 것을 달라고 애원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괜찮겠어.’

 

그런데 문득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그 자식, 설마 백초령을 잡아먹진 않겠지?’

 

 

 

2

 

 

 

풍천은 문이 완전히 닫히자 백초령을 돌아다보았다.

 

“어떻게 된 거야? 네가 닫은 거야?”

 

“응.”

 

“닫는 방법을 어떻게 알았지?”

 

백초령이 조금 불안한 표정으로 손을 내밀었다.

 

그녀의 손에는 사슬이 매달린 고리가 들려 있었다.

 

“이걸 잡아당겼더니 문이 움직였어.”

 

“그래? 흠, 그럼 여는 방법도 비슷하겠군.”

 

아마 그럴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백초령이 그 문제점에 대해 말했다.

 

“문이 닫히는 것 보고, 깜짝 놀라서 막 잡아당겼더니…… 뚝 소리가 났어. 아마 중간이 끊어진 것 같아.”

 

끊어져?

 

풍천은 백초령의 손바닥 위에 있는 고리를 바라보았다.

 

고리는 직경이 여섯 치 정도 되었다. 고리에는 한 자 길이의 사슬이 달려 있었는데 이음매 부분이 늘어져서 절단된 상태였다.

 

아마 석문이 충격을 받으면서 상대적으로 약한 이음매 부분이 끊어진 듯했다.

 

왠지 불길한 기분이 든 풍천은 백초령에게 고리가 있던 곳을 물었다.

 

“어디에 있었지?”

 

“저기.”

 

백초령이 이 장 가량 뒤쪽을 가리켰다.

 

풍천은 백초령이 가리킨 곳으로 가보았다. 그곳에는 똑같은 고리가 하나 더 있고, 그 옆에는 직경 두 치 크기의 구멍이 나있었다. 아마 백초령의 손에 들린 고리는 그 구멍에 있던 것인 듯했다.

 

옆으로 다가온 백초령은 풍천의 눈치를 보며 당시의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고리가 밖에 걸려 있지 뭐야. 그래서 뭔가 하고 잡아당겼더니 문이 움직였어.”

 

백초령이 잡아당긴 게 문을 닫는 고리라면, 옆에 있는 것은 문을 여는 고리일 확률이 컸다. 그나마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풍천은 안도하며 고리를 만져보았다.

 

“흠, 그래도 다행히 이건 멀쩡…….”

 

그런데 고리를 잡아본 순간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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