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풍전설 5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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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48회 작성일소설 읽기 : 천풍전설 58화
58화
그럴 가능성도 없진 않았다. 등청은 함정의 통로를 통해서 들어왔다. 동광후가 흑의인들을 만났다고 해서 등청도 만나라는 법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 안에 진짜 무시무시한 놈들이 들어온 것은 알고 있죠? 그놈들에게 죽은 신마성과 구룡회와 남궁세가 쪽 무사들 시신이 미로 여기저기에 널려 있단 말입니다. 그러니 여기서 이러지 말고 나가서 이야기합시다. 싸우고 싶으면 밖에 나가서 싸우면 되잖습니까.”
등청의 입가에서 조소가 피어났다.
“후후후, 교활한 놈. 어떻게 해서든 밖으로 나갈 생각인가 본데 그런 거짓말에 내가 넘어갈 줄 아느냐?”
“진짜라니까요! 오면서 열화신마 동광후의 시신도 봤단 말입니다.”
동광후가 죽었다고?
그 말에는 등청도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동광후와 헤어진 후 앞뒤가 꽉 막힌 통로에 갇혀서 한참 동안 옴짝달싹도 하지 못했다. 그러다 우연히 기관이 움직이는 바람에 겨우 빠져나왔는데, 느낌이 왠지 이상했다.
모골이 송연한 느낌.
곳곳에서 죽음의 냄새가 맡아진 것이다.
찜찜한 기분이 든 그는 만전을 기하기 위해 위로 올라가서 등잔불을 하나 가져온 후 다시 지하로 내려왔다. 그리고 미로로 들어서는데 풍천을 만난 것이다.
그는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풍천을 노려보았다.
“정말 동 형의 시신을 봤느냐?”
‘당연히 봤지. 내가 죽였거든?’
풍천은 이가 보이도록 활짝 웃으며 그렇게 쏘아주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등청을 놀리며 즐길 때가 아니었다. 아쉽지만 참는 수밖에.
“내가 왜 당신한테 그런 거짓말을 한단 말입니까?”
“내 손을 벗어나기 위해서라면 그런 거짓말을 하고도 남을 놈이 네놈 아니냐?”
“사람 말 좀 믿으쇼. 그 시커먼 놈들에게 죽은 사람이, 내가 본 것만 해도 오십은 된단 말입니다.”
“크크크, 천하의 누가 신마성의 위엄에 함부로 대든단 말이냐? 더구나 이곳이 어떤 곳인데 외부인이 들어와? 생긴 건 멀쩡한데 정말 멍청한 놈이군.”
‘저는 얼마나 똑똑해서?’
풍천은 속으로 구시렁대며 등청 일행을 둘러보았다.
아무래도 말로 구슬리기는 틀린 듯했다. 그렇다면 방심한 틈을 타서 빠져나가야 한다는 말인데…….
등청의 뒤에는 네 사람이 서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등불을 들고 있고, 셋은 명령만 떨어지면 달려들 것처럼 무기 위에 손을 얹고 있었는데 넷 다 입가에 비웃음이 가득했다.
당연히 자신을 향한 비웃음이었다.
‘시커먼 놈들에게 당해봐야 정신을 차리겠군.’
풍천은 그들에게 악담을 퍼붓고 공력을 두 발에 집중했다.
‘팔방만취보라면 저들의 시선을 흐트러뜨릴 수 있을 거야. 그 다음 비영산화보를 펼쳐서 저들의 머리를 타넘자.’
그 이후의 일은 생각할 것도 없었다. 죽어라 도망쳐서 일단 저들의 손을 벗어나야 했다.
풍천은 왼손을 슬며시 뒤로 뻗어서 백초령의 옷자락을 잡고는 비장한 목소리로 전음을 보냈다.
[백초령, 내 등에 업혀!]
그런데 백초령이 갑자기 풍천의 손을 손바닥으로 쳤다.
짝!
“어딜 만져?”
‘으이그! 지금 엉덩이 좀 만진 게 문제야?’
짜증이 난 풍천은 백초령이 뭐라고 하든 말든 확, 옷자락을 잡아당겨 등에 업었다.
“어마!”
백초령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도 풍천의 등에 찰싹 달라붙었다.
등청이 풍천의 행동이 뜻하는 바를 눈치채고는, 번개처럼 도를 빼들고 버럭 소리쳤다.
“네놈이 감히!”
바로 그때였다.
풍천은 섬뜩한 느낌이 등 뒤에서 밀려드는 걸 느끼고 얼굴이 해쓱해졌다.
‘그놈들이다! 지미,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고개를 돌릴 필요도 없었다. 이미 두 번이나 마주쳤고 싸워 본 터였다. 기운만으로도 놈들이라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등청도 그들의 등장을 눈치챘는지 시선을 풍천의 등 뒤로 향했다.
“응? 저놈들은 누구지?”
순간이었다. 뒤쪽에서 강력한 기운이 밀려들었다.
풍천은 등청의 시선이 잠깐 자신을 벗어난 틈을 타 즉시, 만취한 사람처럼 좌우로 정신없이 움직였다.
“엇? 이 자식이!”
등청은 도를 휘둘러 앞을 차단했다.
그 사이 흑의인 셋이 시신이 있는 곳을 지나 풍천의 등을 향해 쇄도했다.
풍천은 흑의인들이 바로 뒤까지 다가왔다는 것을 알고 신법을 비영산화보로 바꾸었다.
좌우로 오가던 그의 몸이 흐릿하니 사라졌다. 동시에 한 줄기 그림자가 천장과 딱 붙은 상태로 날아가며 등청 일행의 머리를 타넘었다.
“저 쥐새끼 같은 놈이! 막아!”
등청이 노성을 내질렀다.
하지만 그는 풍천을 쫓아갈 수 없었다.
흑의인들과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모골이 송연해졌다.
그는 그제야 풍천의 말을 떠올리고 안색이 회색으로 굳어졌다.
‘혹시, 이놈들이 동 형을 죽였다는 놈들?’
풍천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걸 직감한 그는 탈혼도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오냐, 이놈들! 내 네놈들의 머리를 잘라 동 형의 복수를 하겠다!”
흑의인들은 칼을 들고 눈을 부라리는 자가 자신들 못지않은 고수라는 걸 알고 칠성의 공력을 구성으로 끌어올렸다.
그러고는 복수심에 불타는 등청의 탈혼도와 얽혀들었다.
풍천은 그 사이 네 사람의 머리를 넘어 반대편으로 내려섰다.
신마성 무사들 중 둘이 그에게 달려들고, 둘은 등청을 돕기 위해 앞으로 나섰다.
풍천은 슬쩍 몸을 틀며 상대의 시선을 흐트러뜨리고는 섬전처럼 검을 뻗었다.
설마 그 상황에서 검이 뻗어 나올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신마성 무사는 대경하며 급급히 뒤로 물러섰다.
풍천은 상대가 물러난 틈을 타서 뒤로 주욱 미끄러졌다.
“등 장로! 조심하쇼!”
그 와중에도 그는 등청을 향해 소리쳤다. 등청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가 그렇게 소리치자 재차 공격하려던 신마성 무사 둘이 멈칫하더니 뒤를 돌아다보았다.
풍천은 그 찰나의 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백초령을 업은 채 전력을 다해서 그곳을 벗어났다.
순식간에 거리가 사오 장으로 벌어졌다. 상황이 그리되자 신마성 무사들도 더 이상 풍천을 쫓지 않고 등청을 돕기 위해 몸을 돌렸다.
등청도 더 이상 수하들에게 풍천을 잡으라며 닦달하지 않았다.
흑의인들은 그가 짐작했던 것보다 더 강했다. 하나라면 불리할 것이 없지만 둘은 오히려 그가 밀렸다. 동광후가 이들에게 죽었다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어디서 이런 놈들이 나타난 거지?’
미로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흑의인들에게 죽었다더니 아무래도 정말인 것 같다. 이게 어찌 된 일이란 말인가!
제3장. 나만 믿어!
1
운조평은 석문 안쪽을 바라보며 이를 갈았다.
그의 행색은 전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머리도 많이 흐트러져 있고 옷도 여기저기 찢겨진 상태였다. 거기다 안색도 그리 좋지 않았고 언뜻 입가에 핏기가 보이는 걸로 봐서 내상마저 입은 듯했다.
“놈들은?”
“모두 안에 있습니다, 사숙.”
“젠장! 대체 그놈들이 누군데 미로의 길을 그리도 잘 안단 말이냐?”
“저도 모르겠습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빌어먹을!”
짜증을 내듯 쌍소리를 내뱉은 운조평은 조금 전의 일이 떠오르자 이가 절로 악물렸다.
흑의인들을 미로로 끌어들여서 죽일 생각을 한 그는 위태곤과 시마충을 대동하고 먼저 미로로 들어갔다.
일이 이상하게 흐른다는 것을 감지한 것은 그로부터 반각 가량 흐른 후였다. 저들이 미로의 길을 잘 아는 것처럼 움직였던 것이다.
그때부터 모든 계획이 뒤죽박죽되었다.
미로에 갑자기 엉뚱한 길이 새로 생기고 멀쩡하던 통로가 막혔다. 그리고 저들이 신마성과 구룡회와 남궁세가 쪽 무사들을 가리지 않고 도륙하기 시작했다.
그가 흑의인들과 처음으로 마주친 것은 미로로 들어간 지 일각 가량이 지났을 때였다.
그는 잘되었다는 생각에 적을 세차게 몰아붙였다.
하지만 상황은 그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흑의인들은 그와 큰 차이가 나지 않는 절정의 고수들이었던 것이다.
그는 혼신을 다해서 흑의인을 상대했다. 하지만 흑의인 둘이 합공해서 덤비자 오히려 그가 밀리기 시작했다.
더구나 위태곤과 시마충은 합공을 해야만 흑의인 하나를 감당할 수 있었다.
결국 그는 오십여 초를 겨루다 후퇴를 결정했다. 성주의 제자인 위태곤을 이곳에서 죽게 할 수는 없었다.
먼저 위태곤과 시마충을 뒤로 물러서게 한 그는 흑의인의 공세를 막으며 뒤로 물러났다.
그때 청삼을 입은 중년인을 만났다.
정면으로 격돌한지 단 십 초. 내상을 입은 그는 청삼인이 자신의 상대가 아님을 느끼고 미련 없이 그곳을 빠져나왔다.
‘제기랄!’
자존심이 상했다. 부끄러웠다.
살아서 그자들에 대한 것을 성에 알려야 한다는 것은 핑계에 불과했다. 그저 죽음이 두려워서 도망친 것일 뿐.
이를 악문 운조평은 들끓어오른 진기를 선 채로 다스렸다.
간단하게 일주천을 시키자 날뛰던 진기들이 조금씩 진정되었다. 그리고 반각 가량이 지나자 속이 조금 전보다는 훨씬 편해지고 마음도 가라앉았다.
위태곤은 운조평이 운기하고 있다는 걸 알고 아무 말도 걸지 않았다.
잠시 후.
운조평은 숨을 느릿하게 내쉬며 운기를 끝냈다.
몸과 마음이 편해지자 상황이 좀 더 냉정하게 보였다. 자신의 자존심을 비참하게 구겨버린 그 청삼인에 대한 것도.
‘그를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본 성에 셋뿐이다.’
청삼인은 절대의 경지에 근접한 자였다. 자신이 꿈에도 그리던 그 경지에.
자신이 아는 한, 그 경지에 도달한 사람은 천하를 다 뒤져도 스무 명을 넘지 않을 것이었다.
문제는…… 그 중에 청삼인이 들어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위태곤은 운조평이 운기를 마친 걸 알고 기다렸다는 듯 물었다.
“사숙, 우리와 구룡회 쪽 사람들 반 이상이 이미 놈들에게 죽었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지금쯤은 더 죽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전멸을 했을지도…….
놈들은 그만큼 강했다.
운조평은 천장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하더니 싸늘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통로를 모두 열어라. 어차피 미로에서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으니 살아난 사람들이라도 빠져나오게 해.”
“알겠습니다, 사숙.”
위태곤은 운조평의 말에 반대하지 않았다. 어차피 흑의인들은 미로의 길을 자신들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통로를 막아둬 봐야 그들의 사냥을 도울 뿐이었다.
“시 장로가 저쪽부터 여시오!”
시마충에게 소리친 그는 곧장 광장의 석벽으로 갔다.
석벽에는 모두 열 개의 문이 있었다. 위태곤과 시마충은 문 안으로 들어가서 굵은 쇠고리를 잡아당겼다.
두 사람이 들락거릴 때마다 탑이 무너질 것처럼 울리면서 문 안쪽으로 거대한 석벽이 천장에서 내려왔다.
쿠구구구궁! 콰르르릉!
그리고 그 석벽이 내려올 때마다 지하에서는 미로의 통로를 가로막고 있던 석벽들이 하나씩 위로 올라가고, 외부로 통하는 입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 미로에 있던 사람들은 바람이 들어오는 방향만 잘 따라가도 미로를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런데 두 사람이 열 개의 석실에서 쇠고리를 당기고 밖으로 막 나올 때였다.
“봐! 나만 믿으라고 했잖아!”
커다란 목소리와 함께 한 사람이, 아니 두 사람이 운조평 등이 나온 통로에서 뛰어나왔다. 백초령을 업은 풍천이었다.
풍천은 환하게 웃으며 밖으로 나오다 멈칫했다.
두 번 다시 보기 싫은 얼굴이 보였다.
‘이런 젠장! 이 작자들은 왜 아직까지 여기에 있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