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풍전설 5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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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4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천풍전설 56화
56화
동광후가 입에서 피를 뿜어내며 앞으로 날아가고, 풍천은 그런 동광후를 그림자처럼 쫓아가서 그의 심장에 마지막 일검을 선사했다.
푹!
“쿨룩!”
동광후는 앞으로 꼬꾸라지며 피거품을 토해냈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눈빛을 파르르 떨며 더듬거렸다.
“네, 네놈이…….”
풍천은 검을 빼내며 뒤로 미끄러지듯이 물러났다.
상대의 공세권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쉴 새 없이 귀환신법을 펼친 터다. 적잖은 공력이 소모되고 내상마저 입은 터라, 그의 입에서도 거칠어진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후욱, 후욱…… 당신보다는 내 운이 더 좋았던 것 같군. 지옥에 가거든 어떤 멋진 젊은이가 보냈다고 해. 그럼 밥이라도 한 끼 더 줄 거야.”
“이, 이런…… 어이없는…… 너 같은 팔푼이에게…… 죽다니…… 커억!”
동광후는 입에서 핏덩이를 뿜어내며 그대로 고개를 처박았다.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사람들은 실감이 나지 않는 듯 멍하니 쳐다보기만 했다.
열화신마 동광후가 풍천의 손에 죽었다!
어이가 없었다.
운이 좋았다고?
동광후는 운이 좋다고 해서 죽일 수 있는 자가 아니었다.
부상?
물론 부상을 입긴 했다. 하지만 조금 전에 그가 펼친 폭양마공을 정면에서 막아낼 수 있는 사람은 이곳에 아무도 없었다. 그리 심한 부상은 아니었다는 말.
그런데…… 풍천에게 죽었다.
사람들은 모두 풍천에 대한 생각을 새로이 정립했다.
‘신법이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뛰어나군.’
‘게으른 것 같으면서도 기회가 있으면 놓치지 않는 걸 보니 정말 조심해야 할 놈이야.’
‘천운을 타고난 놈이군. 함부로 건드리면 안 되겠어.’
‘욕심이 많고 엉뚱한 짓을 해서 그렇지, 그래도 제 가족은 지킬 수 있을 것 같아. 그거면 됐지 뭐. 나머지는 내가 차근차근 고치면 되고…….’
그 와중에도 풍천을 멋진 젊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차라리 그보다는, 동광후가 죽기 전에 말한 ‘팔푼이’가 더 와 닿았다.
“풍천, 괜찮아?”
그래도 백초령은 풍천을 향해 달려갔다.
‘역시 나를 생각해주는 사람은 초령이밖에 없군.’ 평소라면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했다가 구박을 받은 게 어디 한두 번인가?
풍천은 달려오는 백초령을 보며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이 멍청이! 왜 혼자 저렇게 무시무시한 사람을 상대한 거야!’ 그러면서 또 구박할지 모르는 것이다.
“하, 하. 이 정도야 뭐…….”
솔직히 동광후의 폭양마공에 스쳐서 여기저기 쑤시고 아팠지만 풍천은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말했다.
백초령은 청광석을 풍천의 몸 가까이 대고는 여기저기 살펴보았다.
“어디 봐, 어마? 여긴 왜 이래?”
그녀는 풍천의 허리어름을 보고는 깜짝 놀라 소리쳤다.
동광후의 폭양마공이 얼마나 강력한 극양공인지, 스쳐 맞았는데도 옷이 가루처럼 부서진 상태였다. 그리고 그 안쪽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견딜 만해. 너무 걱정 마.”
“걱정 안하게 생겼어? 살이 다 익어버린 것처럼 생겼는데?”
“걱정 말라니까. 그만 가자. 놈들이 또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니까.”
풍천은 백초령의 목소리가 더 커지기 전에 그곳을 떠나기로 했다.
‘하여간 잔소리는…….’
그는 혼인대상에 대해서 또 하나의 기준을 정했다.
‘나는 잔소리 많은 여자랑은 혼인하지 않을 거야.’
하지만 백초령은 그의 마음을 조금도 알아주지 않았다.
“네 몸이 뭐 강철인 줄 알아? 그러다 제대로 맞으면 죽을지 모른단 말이야!”
‘걱정해주는 건 좋은데, 잔소리 좀 그만하면 안 되겠어?’
“너 다치면 누가 날 지켜? 그러니 다치지 마. 알았어?”
‘그러니까, 결국 너를 위해서 내가 다치면 안 된단 말이지?’
조금 뿔이 난 풍천은 퉁명스럽게 말을 받았다.
“너 밖으로 내보낼 때까지는 죽지 않을 테니까 안심해. 그만 가자니까?”
그러고는 홱 몸을 돌리고 바닥에 떨어진 청광석을 허공섭물의 수법으로 끌어당겼다.
그런데 그가 청광석을 쥐고 통로 안쪽으로 막 걸어갈 때였다.
타다다닥.
전면에서 급박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뒤로 물러서!”
풍천은 백초령을 뒤로 물러서게 하고, 동광후를 상대할 때처럼 전면을 향해 청광석 하나를 던졌다.
청광석은 오 장 가량 떨어진 곳의 벽에 맞고 몇 조각으로 쪼개지면서 튕겨졌다.
그와 동시에 통로가 꺾어진 곳에서 대여섯 명의 무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청광석이 부서지며 사방으로 튕겨지자 멈칫하며 걸음을 늦추었다.
희미한 빛에 드러난 그들은 신마성의 무사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의 표정이 이상했다. 공포에 질린 표정. 마치 못 볼 것을 본 사람들 같았다.
그들은 앞에 풍천 일행이 있는 것을 알고 잠시 당황했지만 그것은 한 순간에 불과했다.
적어도 앞에 있는 자들은 자신의 일행들을 닭 모가지 자르듯 도륙한 흑의인들이 아니었다.
살 가능성이 그만큼 더 많다는 뜻.
그들은 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풍천 일행을 향해 달려들었다.
풍천은 미끄러지듯이 뒤로 물러서며 백초령의 손을 잡아당겼다.
눈 깜짝한 순간에 풍천과 다른 사람들의 위치가 바뀌었다.
선두는 구양종, 화청백과 용수명이 그 뒤에 서 있는 상태였다.
“옆구리가 아파서 안 되겠어. 저자들은 당신들이 상대해.”
풍천은 적을 두 사람에게 맡기고, 얼굴을 찡그리며 고통스런 표정을 지었다.
조금 전까지 괜찮다는 사람이 당장 죽을 것처럼 말하자 사람들은 대부분 풍천의 말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옆구리가 다친 것도 사실이고, 풍천의 상대가 열화신마 동광후였기에 무조건 거짓말이라고 생각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적이 코앞까지 다가왔다는 것이었다.
쩌저저정!
‘나쁜 자식! 그렇게 아픈 놈이 번개처럼 도망쳐?’
구양종은 풍천을 입 안에서 씹으며 신마성 무사들의 공격을 막았다.
화청백과 용수명이 구양종과 나란히 서서 앞을 막자 신마성 무사들은 한 걸음도 전진하지 못했다.
아니 전진하기는커녕 오 초가 흐르는 사이 두 사람이 쓰러지고 점점 더 뒤로 밀렸다.
쏴아아아.
막대한 기운이 통로 전면에서 밀려든 것은 바로 그때였다.
나머지 세 명의 신마성 무사들 얼굴이 흙빛으로 물들었다.
“노, 놈들이다!”
“그 악마 같은 놈들이……!”
순간 통로의 전면에서 흑의인 둘이 튀어나왔다.
신마성 무사들은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구양종 등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 거라면 흑의인들 보다는 구양종 등을 상대하는 게 나았다.
“으아아아! 비켜!”
화청백과 용수명과 구양종은 신마성 무사의 검을 막으면서도 새로 나타난 흑의인에게 잔뜩 신경을 썼다.
흑의인들은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신마성 무사들의 등을 공격했다.
서걱! 퍽!
단숨에 신마성 무사 둘이 쓰러졌다.
흑의인들은 쓰러지는 자들에게 시선도 주도 않고 곧장 화청백 등을 향해 공격했다.
이미 흑의인들에게 혼쭐이 나본 경험이 있는 화청백 등은 이를 악물고 방어에 치중했다.
그 사이, 살아남은 신마성 무사 한 명도 더 버티지 못하고 목이 잘렸다.
“컥!”
신마성 무사 셋을 단숨에 쓰러뜨린 흑의인들은 화청백과 용수명과 구양종에게 공격의 화살을 돌렸다.
찰나였다. 한 줄기 바람이 구양종의 머리를 타넘었다.
청광석이 은은한 빛을 뿌리고 있어서 완벽한 어둠은 아니었다. 하지만 일반인이라면 앞에 있는 사람의 얼굴조차 보기 힘들 정도였다.
그 상태에서 전력을 다해 펼친 풍천의 신법은 능히 귀신의 눈조차 속일 수 있었다.
흑의인들은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하고 뒤로 두어 걸음 물러났다.
하지만 풍천은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두 사람 중 우측에 있는 자를 향해 전력을 다한 일검을 펼쳤다.
쉭!
퍽!
검이 허공을 가르는가 싶더니 둔탁한 소음과 신음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크윽!”
풍천은 일검으로 좌측의 흑의인 어깨에 구멍을 내놓고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좌측의 흑의인이 물러나자 우측의 흑의인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쉬쉬쉭!
화청백과 용수명이 전력을 다해서 그자를 공격했다.
생각지도 못한 강력한 반격에 우측의 흑의인은 뒤로 물러나기에 바빴다.
하나는 부상을 입고, 하나는 물러나기에 바쁜 상황. 자신감이 생긴 화청백 등은 두 흑의인을 몰아붙였다.
풍천은 그 사이 운기를 하며 숨을 골랐다.
무리해서라도 손을 쓴 것은 적절한 판단이었다. 둘 다 멀쩡한 상태였다면 화청백 등이 막아내기가 쉽지 않았을 테니까. 동광후와 싸우면서 얻은 내상이 도진 것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제기랄! 쉽게 안 낫겠는데?’
그가 가만히 서서 운기 하는 사이, 다른 사람들은 화청백을 따라 앞으로 전진했다. 옆에는 초조한 표정의 백초령만 남아 있었는데, 금방이라도 침을 튀기며 말하고 싶은 표정이 역력했다.
―이 화상아! 왜 그리 나대는 거야!
그렇게 말이다.
‘나 죽는 꼴 보고 싶지 않으면 잠깐만 잔소리 하지 마라, 백초령.’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콰르르, 쾅!
벼락이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갑자기 앞이 컴컴해졌다. 그리고 이 장 가량 떨어져 있던 나한조의 등이 보이지 않았다.
풍천과 나한조 사이를 천장에서 내려온 석판이 가로막은 것이다.
대신 왼쪽 벽이 위로 올라가며 또 다른 통로가 나타났다. 석판이 하나 떨어지면서 다른 석판을 들어올리도록 만들어진 듯했다.
화청백 등과 완전히 단절된 상태.
백초령은 갑작스런 상황에 당황한 표정을 짓고 풍천을 바라보았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풍천, 이제 어떡하지?”
‘빌어먹을! 환장하겠군!’
풍천은 대충 운기를 마무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새로 생긴 통로로 들어갈 때 들어가더라도 일단 떨어진 석판을 부숴볼 생각이었다.
“나에게 맡겨! 이 까짓 거, 확 부숴버리지 뭐!”
자신만만하게 소리친 풍천은 전 공력을 끌어올려 두 손에 집중시켰다.
일전의 경험으로 봐서 통로를 가로막은 석판의 두께는 한자 반 정도. 문제는 자신의 진기운용이 다른 사람과 달라서 일반 무공을 펼칠 때 지닌 공력의 반도 못쓴다는 것인데, 그래도 전력을 다하면 부술 수 있을 것 같았다.
‘파산장(破山掌)이라면 가능할 거야.’
산도 부순다는 장법인데, 까짓 거 석판하나 못 부술까?
그런데 그가 막 공력을 쏟아내려 할 때였다.
쾅! 쾅!
반대편에서 석판을 두들기는 소리가 나고 석판이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처럼 진동했다.
풍천은 공력만 끌어올린 채 상황을 지켜보았다.
자신이 손을 쓰지 않고도 석판이 부서진다면 굳이 무리를 할 이유가 없었다.
‘잘 됐지 뭐, 몸도 안 좋은데.’
그런데 반대편에서 석판을 네 번째 후려쳤을 때였다.
우르르르릉.
천장이 울어대면서 작은 돌조각들이 떨어졌다.
“푸, 풍천! 천장이 무너지려나 봐!”
발딱 고개를 꺾어 천장을 쳐다본 풍천의 두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불거졌다.
“으헉!”
급히 손을 뻗어 백초령의 허리를 끌어안은 그는 이러고 자시고 할 새도 없이 새로 생긴 통로로 뛰어들었다.
동시에 천장이 그대로 내려앉았다.
콰르릉, 콰아앙!
“후우우우,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네.”
풍천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진저리를 쳤다. 그러자 백초령이 평소의 그녀답지 않게 겁에 잔뜩 질린 목소리로 말했다.
“나…… 너무 무서워, 풍천.”
“거, 걱정 마, 이제 무사하니까. 내, 내가 있잖아?”
겁에 질린 것은 백초령인데, 풍천의 목소리가 더 떨려나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백초령은 진동이 멈췄는데도 풍천에게 매달려서 목을 꽉 끌어안고 있었다.
그런데 백초령이 입을 열 때마다 입술이 귀 끝을 스치면서 귀가 간질거렸다.
당장 죽느냐 사느냐 하는 판인데도 이상하게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어깨를 짓누르는 뭉클한 감촉은 정신마저 몽롱하게 만들었다.
‘가, 가슴이…… 무지 크네.’
그때 백초령이 나직이 그를 불렀다.
“근데 풍천.”
“어? 왜?”
화들짝 놀란 풍천은 다급히 대답하며 고개를 돌렸다.
순간,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입술이…… 뜨거웠다.
그리고 아교로 붙인 듯 한참 동안 떨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