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풍전설 5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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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33회 작성일소설 읽기 : 천풍전설 55화
55화
적련방도 남궁세가와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뒤쪽의 통로가 막히는 걸 보고 대경한 그들이 석벽을 부수려 하는데 흑의인 둘이 전면에서 나타났다.
그때만 해도 반소규는 여유가 있었다. 둘 정도야 문제될 것이 없었다. 신마성의 팔대신마가 아닌 이상은.
하지만 그는 곧 자신의 판단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고 안색이 급변했다. 그걸 아는데 필요한 시간은 숨을 서너 번 쉴 정도면 충분했다.
단 몇 번의 격돌 끝에 수하 셋이 바닥에 널브러졌다. 가슴이 갈라지고 목이 잘리고, 사방에 시뻘건 피가 튀었다.
유화통의 불빛에 비친 통로는 순식간에 붉게 변했다.
뒤늦게 전 공력을 다 끌어올린 그가 흑의인 하나를 상대했다. 그제야 숨통이 트였다. 하지만 숨통이 트였을 뿐 유리한 것은 아니었다. 아니, 유리하기는커녕 몇 번의 격돌 만에 상황이 최악을 향해 달렸다.
흑의인은 그보다 강했다. 큰 차이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 정도의 차이만으로도 상황은 순식간에 비관적으로 흘렀다.
비명이 터져 나오며 수하 하나가 또 꼬꾸라졌다. 자신의 어깨 옷자락이 살점과 함께 갈라졌다.
시큰한 충격. 뒤따라 고통이 밀려들었다. 공력이 흔들렸다.
이대로 계속 싸우면 최악의 상황이 닥칠 터. 그는 이를 악물고 전면의 흑의인을 공격했다. 그리고 흑의인이 몸을 튼 사이 그곳을 빠져나갔다.
흑의인은 그를 바로 쫓지 않고 수하들을 확실하게 처리했다.
“크억!”
“단주, 부디…… 컥!”
뒤에서 수하들의 비명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그래도 뒤를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이가 갈렸다. 극한의 분노와 자괴감이 밀려들었다.
‘미안하다고는 하지 않겠다. 대신 놈들의 피로 너희들의 원혼을 위로해주마!’
통로를 빠져나가 어둠속으로 스며든 반소규의 두 눈에서 분노의 혈광이 뿜어졌다.
제2장. 엎친 데 덮치고
1
청삼인은 뒷짐을 지고 서서 통로 저편의 어둠을 노려보았다. 그가 서 있는 곳은 지하 일층 미로의 중심통로였다.
“현재 상황은?”
한 발 뒤에 있던 흑의인 셋 중 가운데 서 있던 자가 대답했다.
“삼분의 일 정도 제거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령주.”
“이곳에 팔대신마는 몇이나 왔지?”
“넷이 왔습니다.”
“그들 중 셋은 들어왔다고 봐야겠군. 좋아, 그들은 내가 맡는다. 너희는 단천무령을 도와서 놈들을 철저히 제거해라.”
“알겠습니다, 령주.”
“서둘러라. 신마성 놈들이 악에 받치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말이야.”
고개를 숙여 보인 흑의인은 옆의 두 흑의인에게 고갯짓을 했다. 그리고 그 둘을 데리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청삼인은 천천히 검을 잡아 뽑았다. 냉기서린 짙푸른 검신만큼이나 두 눈도 차갑게 가라앉았다.
유령총에 무엇이 있는지는 누구도 자세히 모른다. 심지어 자신조차. 다만 분명한 것은, 유령총의 비밀이 드러나면 하늘의 비밀이 밝혀지고 세상이 피로 뒤덮인다는 것이다.
“하늘의 비밀이 세상에 드러나선 안 된다. 그것만으로도 만인의 피를 보는데 충분한 이유가 되느니…… 그대들은 나를 원망치 마라.”
그는 나직이 중얼거리며 어둠 속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열 걸음이나 걸었을까, 문득 의문이 떠올랐다.
자신을 이곳으로 보낸 천주는 유령총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있을까?
‘어쩌면 알고 계실지도…….’
통로에서 첫 번째 변화가 일어난 것은 그가 이십여 장을 걸었을 때였다. 저쪽 어둠 속 통로의 벽이 하나 올라가더니 무사 십여 명이 나타난 것이다.
청삼인은 무저갱처럼 깊어진 눈으로 그들을 직시하며 계속 걸었다. 나타난 자들은 신마성의 무사들이었다. 그런데 그들 중에 소문으로 들었던 것과 똑같이 생긴 사람이 하나 있었다.
‘열화신마 동광후? 생각보다 일찍 만났군.’
순간, 손에 들린 검에서 짙푸른 검기가 넘실거렸다.
동광후도 청삼인의 존재를 눈치채고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저 새낀 또 뭐야? 가서 치워!”
2
곳곳에서 시신이 발견되었다.
개중에는 신마성의 무사도 있었고, 구룡회 각 세력 무사들과 남궁세가의 무사들도 있었다.
풍천 일행이 적련방, 남궁세가 사람들과 헤어진 후 발견한 시신만도 모두 삼사십 구는 되었다. 아마 그들이 발견하지 못한 시신까지 합한다면 유령탑의 지하에서 족히 백 명 이상은 죽었다고 봐야 했다.
하지만 어느 곳에도 흑의인들의 시신은 보이지 않았다. 진정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풍천 일행은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고 무기를 움켜쥔 채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전진한지 얼마나 되었을까, 앞장서서 걷던 석초산이 걸음을 멈추더니 전면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누구냐!”
뒤에서 따라가던 풍천도 앞에 누군가가 나타났다는 것을 느끼고는 손에 들고 있던 청광석 하나를 전면으로 던졌다.
청광석이 오 장 가량 날아가서 바닥으로 떨어지자 칠흑처럼 어둡던 곳에 은은한 빛이 퍼져나갔다.
미약한 빛이었지만, 시력을 최대한 집중하자 칠 장 가량 떨어진 곳에 서 있는 한 사람이 보였다.
풍천은 그를 알아보고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두 손을 늘어뜨린 채 통로를 막고 서 있는 자는 다름 아닌 열화신마 동광후였던 것이다.
“어? 동광후라는 늙은이잖아?”
그의 이름이 풍천의 입에서 나온 순간, 옆에 서 있던 사람들은 모두 흠칫하며 무기를 거머쥐었다. 풍천이 동광후를 앞에 두고 늙은이라고 서슴없이 부르는 바람에 긴장이 배가 되었다.
‘하여간 저 입이 문제라니까.’
그러나 동광후는 풍천의 말투에 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
“크크크, 여기서 네놈들을 만날 줄은 몰랐군.”
풍천은 재빨리 동광후의 상태를 훑어 보았다.
머리가 흐트러져 있고, 옷도 여기저기 찢겨 있었다. 한때 강서 강호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열화신마의 모습치고는 썩 좋은 상태가 아니었다. 그리고 혼자였다.
풍천의 말투에 약간의 여유가 담겼다.
“상태가 별로군요. 그런데 다른 사람은 다 어디 가고, 당신 혼자 있는 거죠?”
“네놈들을 쫓다가 등청과 헤어졌는데, 괴상한 놈을 만나는 바람에 수하들을 모두 잃었지. 하지만 실망하지 마라. 네놈들 정도는 나 혼자서도 확실하게 죽여줄 수 있으니까.”
“흠, 수하들은 지옥에 갔단 말이죠? 그럼 당신도 함께 가지, 왜 혼자 도망쳐 와서 헛소리를 하는 겁니까?”
동광후의 입꼬리가 괴이하게 비틀어졌다.
“흐흐흐, 등청이 주둥이를 찢어버리고 싶어 하더니,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군.”
“글쎄요, 누구 주둥이가 찢어질지는 두고봐야 알겠죠. 제 살이 조금 질겨서 말입니다.”
풍천은 씩 웃고는 앞으로 나섰다.
아무리 상태가 안 좋다 해도 상대는 신마성 팔대신마 중 일인인 열화신마 동광후가 아닌가. 일행 중 그를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었다.
그가 앞으로 나서자 동광후도 두 손에 폭양마공(爆陽魔功)을 끌어올렸다.
헤어지기 전에 등청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혹시라도 만나면 절대 얕보지 말라고. 특히 괴이한 신법을 조심해야 한다고.
그때만 해도 비웃었다. 젊은 놈이 강해봐야 얼마나 강하랴, 그따위 애송이에게 신경을 쓰다니, 천하의 탈혼마도도 이제 다 됐군, 그러면서.
하지만 다가오는 풍천을 바라보고 있으니 두 손에 절로 땀이 찼다.
‘제길, 저딴 놈 때문에 긴장을 하다니.’
짜증이 난 동광후는 그만큼 풍천을 처참하게 태워 죽여서 상한 자존심을 회복하기로 작정했다.
“애송이가 이 어르신을 두려워하지 않다니. 그 용기를 가상히 여겨서 곱게 태워주마.”
“헛소리하는 걸 보니 죽을 때가 되긴 됐나 보군요. 제가 지옥으로 확실하게 보내드리죠.”
이 장의 거리를 두고 걸음을 멈춘 풍천은 턱을 쳐들고 검을 까딱거렸다.
“시작해볼까요?”
“이 건방진 놈이!”
동광후는 노성을 내지르며 쌍장을 휘둘렀다.
찰나였다. 벽면이 녹아들 것처럼 뜨거운 열기가 통로를 가득 메우고 밀려들었다.
동시에 풍천의 신형이 안개가 흩어지듯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흠칫한 동광후는 연속 오 장을 허공에 대고 후려쳤다.
“어림없다, 이놈! 죽어라!”
파앙! 콰과광!
귀청이 먹먹해지는 굉음과 함께 어둠이 터져 나가고, 장력이 스쳤을 뿐인데도 벽면에서 돌가루가 튀었다.
부딪치는 모든 것을 부수고 태워버릴 듯 강력한 극양의 기운이 담긴 장력이었다.
‘더럽게 강하군!’
풍천은 동광후의 극양장력이 옆을 스칠 때마다 숨이 턱턱 막혔다.
과연 팔대신마다. 그들이 강서 강호에서 공포로 군림한 이유를 알 것도 같다.
하지만 그는 찰나의 순간도 머뭇거리지 않고, 동광후가 펼치는 장세의 틈을 허깨비처럼 파고들며 검을 뻗었다.
“웃!”
동광후는 허공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검첨을 보고 대경해서 엉겁결에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비록 찰나 간의 일이었지만 풍천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전력을 다해 공격했다.
상대는 초절정의 고수. 기회를 잡았을 때 끝내지 못하면 거꾸로 당할지 모른다.
쉬쉬쉭!
위력은 뒤떨어져도 빈틈만 보이면 쉴 새 없이 파고드는 풍천의 검은 그 어떤 검보다 위협적이었다.
더구나 그림자조차 잡기 힘든 괴이한 신법은 동광후의 정신을 산란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이, 이 쥐새끼 같은 놈이!”
십여 초가 지나도록 죽이기는커녕 옷자락도 잡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자 동광후는 분노를 참지 못했다.
“어디 한번 피해봐라, 이노오옴!”
그는 빙글 회전하며 허공에 전력을 다한 십팔장을 후려쳤다. 제 아무리 신법이 뛰어나도 모든 방위를 차단하면 한 번은 걸리지 않겠는가 말이다.
콰과과광!
폭음이 쉬지 않고 울리며 동광후의 주위 이 장이 온통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찼다.
그런데 어느 순간, 동광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폭양마공을 대성한 그였다. 평소라면 십팔 장을 연속적으로 휘둘러도 끄떡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결코 정상인 상태가 아니었다.
분노에 이끌린 무리한 공격.
열여섯 번째 장력에서 공력이 흔들리는가 싶더니, 마지막 열여덟 번째 장력을 내쳤을 때는 진기가 제대로 연결되지 않고 끊겼다.
정신없이 장력을 피하던 풍천은 동광후의 진기가 흔들린 것을 감지하고 몸을 띄웠다.
열여덟 번째 장력을 펼친 동광후가 멈칫한 순간, 풍천의 검이 섬전처럼 뻗어갔다.
쉬익!
동광후는 급히 몸을 틀었다. 그러나 완벽히 피하기에는 풍천의 검이 너무 빨랐다.
서걱!
검첨에서 뻗어나간 검기가 동광후의 목을 깊숙이 후비며 지나갔다.
“흡!”
진저리치듯 신음을 토해낸 동광후는 다급히 옆으로 이 보를 움직이며 풍천의 다음 공세를 피하려 했다.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때 두 번째 검이 허공에서 내리꽂히며 동광후의 왼쪽 어깨에 박혔다.
“크억!”
비명을 내지른 동광후는 오른손을 저어서 풍천의 검을 잡았다.
하지만 풍천의 검이 상승절학이 아니다 해서 검에 실린 진기마저 약한 것은 아니었다.
풍천은 동광후의 뒤로 날아 내리며 어깨에 꽂힌 검을 그대로 내리그었다.
동광후의 어깨와 손가락이 동시에 갈라지며 피가 분수처럼 뿜어졌다.
직후, 풍천의 일장이 동광후의 등판에 정통으로 꽂혔다.
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