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풍전설 53화
무료소설 천풍전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2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천풍전설 53화
53화
“뭐, 뭐야?”
광장에 있던 사람들은 대경해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다행히 막힌 곳은 그들이 지나 온 곳뿐이었다. 남은 통로는 세 곳.
짙은 어둠이 깔린 통로가 시커먼 입을 벌리고 그들을 유혹했다.
-용기가 있으면 들어와라!
반소규가 좌우를 둘러보더니 이를 지그시 악물고 말했다.
“아무래도 심상치 않소. 어차피 안쪽의 상황을 모르는 판이니 아무 곳이나 택해서 들어가 봅시다.”
그들은 전면의 통로를 선택해서 들어갔다.
반소규와 적련방이 유화통을 들고서 앞장서고, 남궁도영과 남궁세가가 중간에 섰다. 그리고 신검문 사람들은 뒤에서 따라갔다.
그런데 맨 뒤에서 따라가던 풍천이 굽이를 세 번쯤 돌고, 스물두 개로 이루어진 계단을 하나 올라섰을 때였다. 앞서가던 반소규가 일행을 멈춰 세웠다.
“모두 멈추시오.”
은은한 분노가 서린 목소리.
남궁도영은 반소규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두어 걸음 앞으로 나아가며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모두 일곱 구의 시신이 있소. 그 중 셋은 신마성 무사들이고, 넷은…… 우리 적련방의 무사들이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안에서 죽은 걸까?
사람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몇 사람의 얼굴에선 공포마저 엿보이기 시작했다.
어찌 두렵지 않을까, 사방이 막힌 미로에서 동료와 형제들이 죽어가고 있거늘.
그런데 바로 그 시각, 풍천 일행의 중간쯤 있던 구양종이 좌우를 둘러보다가 구석진 곳에서 튀어나와 있는 쇠로 된 고리를 하나 발견했다.
‘저게 뭐지?’
구양종은 허리를 숙이고 고리를 천천히 잡아당겨 보았다. 빡빡하긴 했지만 고정된 것은 아닌 듯 고리에 이어진 쇠사슬이 조금씩 딸려 나왔다.
“안 돼! 당기지 마!”
풍천이 뒤늦게 그걸 보고는 벼락처럼 소리쳤다.
그러나 이미 고리에 달린 쇠사슬이 반 자쯤 끌려나온 상태였다.
갑작스런 풍천의 외침에 사람들이 고개를 돌려 풍천을 바라보았다.
구양종도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미미한 진동음이 울리며 통로 전체가 잘게 흔들렸다.
구구구궁.
그게 시작이었다.
콰르릉!
진동음이 굉음으로 바뀌고 삼 장 간격으로 한자 반 두께의 두꺼운 석판이 천장에서 내려왔다. 내려온다기보다는 떨어진다고 해야 할 정도로 빠르게!
“조심해!”
남궁도영이 악을 썼다.
“크악!”
하지만 한 사람이 미처 피하지 못하고 석판에 깔렸다. 뒤로 피하려다가 뒷사람하고 부딪치는 바람에 벗어날 시기를 놓친 것이다.
위험한 상황이 닥친 것은 풍천 일행도 마찬가지였다.
구자암이 궁이정과 나한조의 머리 위에서 천장이 내려오는 것을 보고 번개처럼 두 사람을 밀쳤다.
“비켜요!”
그러고는 자신의 어깨로 석판을 받아냈다.
“크윽!”
만 관 무게의 석판을 그가 혼자 멈추게 한다는 것은 무리였다. 혼신의 힘을 다했지만 속도만 조금 늦출 수 있을 뿐이었다.
천장에서 내려오는 속도만 조금 줄어든 석판이 구자암의 몸을 짓누르자, 옆에 있던 기종탁과 진관악과 석초산 등이 달려들어서 석판을 붙잡았다.
이미 남궁세가 사람들과 적련방 사람들 사이의 석판이 통로를 가로막으며 암흑천지가 된 상태. 풍천은 급히 청광석을 전부 꺼내서 백초령의 손에 넘겼다.
화청백과 용수명도 품속에 있던 청광석을 꺼내 들었다. 주위가 갑자기 푸른빛으로 밝아졌다.
“백초령! 돌을 위로 들고 있어!”
그러고는 이 장의 거리를 단숨에 좁히고는 공력을 잔뜩 끌어올린 채 석판의 밑을 받쳤다. 그제야 내려가던 석판이 허리 어름에서 멈춰 섰다.
“빨리 빼내!”
풍천이 소리치자 기종탁이 구자암의 몸을 잡고 확, 잡아당겼다.
그때 또 다시 통로가 울렸다.
풍천은 섬뜩한 느낌에 고개를 꺾고 천장을 쳐다보았다.
순간, 그의 두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통로를 차단하는 석판은 하나만 있었던 게 아니었다. 또 다른 석판이 흔들리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놓고 뒤로 물러서! 빨리!”
진관악과 석초산은 불에 손을 데기라도 한 것처럼 화들짝 놀라서 뒤로 물러났다.
직후 풍천도 석판을 놓고 뒤로 몸을 튕겼다. 거의 동시에 천장에서 같은 두께의 석판이 떨어져 내렸다.
쾅!
풍천은 코끝을 스치며 떨어져 내린 석판을 보고 얼굴이 해쓱하게 질렸다. 아무리 그의 머리가 단단하다 해도 만관 무게의 석판에 짓눌리면 백장절벽에서 떨어진 호박 꼴이 될 것이었다.
‘흐으, 하마터면 장가도 못 가보고 박살 날 뻔했네.’
“풍천! 괜찮아?”
백초령이 달려와서 풍천을 끌어안았다.
뭉클한 그녀의 가슴이 팔을 짓누르는 것만큼이나 풍천도 가슴이 뭉클했다.
‘이 말괄량이가 그래도 나를 아주 싫어하지는 않나 본데?’
그리고 가슴도 생각보다 커서 아늑한 느낌이 들었다.
‘이래서 여자를 사귀는 거군.’
풍천은 흐뭇해하며 ‘이 정도야 아무 것도 아니니까 걱정 마.’하는 뜻을 담아서 부드럽게 웃어주었다.
“나는 괜찮…….”
그런데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백초령이 바락바락 소리치며 그를 다그쳤다.
“이 멍청아! 다른 사람이 잡고 있을 때 네가 빼내고 피하면 되지, 왜 네가 잡고 다른 사람더러 빼내라고 해? 힘자랑할 일 있어? 네가 무슨 천하장사라도 돼? 하마터면 다 다칠 뻔했잖아!”
어찌나 소리를 질러대는지 입에서 튄 침이 소나기처럼 얼굴에 퍼부어졌다.
‘아, 씨. 더럽게…… 누가 몰라서 그런 줄 알아? 남들 앞에서 멋 좀 내보려고 그랬다, 왜?’
하지만 입을 꾹 닫고 참았다. 그 말을 하면 백초령에게 자신을 다그칠 기회만 줄 뿐이었다.
그 사이 백초령은 멈추지 않고 침화살을 계속 쏘아댔다.
“내 호위를 하기로 했으면, 끝까지 살아서 나를 지켜야 할 거 아냐!”
“아, 알았어. 알았으니까, 침 좀 그만 튀겨라. 냄새도 별로고만.”
백초령은 입을 꾹 닫고 풍천을 노려보았다.
‘하여간 여자에 대한 배려는 눈곱만큼도 없다니까. 침이 좀 튀었으면 슬쩍 닦으면 될 거 아냐? 꼭 그걸 다 말해서 창피를 줘야 돼? 으이그!’
잡았던 팔을 확, 뿌리친 백초령은 톡 쏘듯이 말했다.
“내가 뭐 너 좋아서 그런 줄 알아? 좌우간 내가 옆에서 보살피지 않으면 한시도 안심할 수가 없다니까.”
‘얼씨구? 이제 못하는 소리가 없네. 그러다 잘하면 내 마누라 된다고 하겠…… 으음, 설마 그러진 않겠지?’
나중에 그런 말하면 못이긴 척 받아줄까? 아니면…… 두 팔 들고 환영해? 아냐, 그러면 머리 꼭대기에서 놀려고 할 거야.
‘절대 잡혀 살 수는 없지. 나는 억센 여자가 싫어. 나중에 백초령보다 부드러운 여자를 마누라로 얻을 거야.’
풍천이 꿈속을 헤매고 있는데 또 다시 통로가 흔들렸다.
우르르르릉!
모두가 기급한 표정으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천장이 아니라 벽이 움직였다.
그그그긍.
사람들의 눈이 벽으로 향했다.
푸른빛이 반사되던 벽이 천천히 옆으로 밀려나고, 또 하나의 통로가 나타나고 있었다.
사람들은 청광석을 앞으로 내밀고 통로를 바라보았다.
찰나였다!
풍천이 옆으로 밀려나는 벽 뒤쪽에서 사람의 기운을 느끼고 대경해서 소리쳤다.
“적이다! 조심해!”
그때 통로 안에서 세 명의 흑의인이 나타났다.
눈 밑을 검은 천으로 가린 자들, 셋 중 검을 든 자가 둘, 도를 든 자가 하나였다.
그들은 모습을 보임과 동시에 다짜고짜 공격을 펼쳤다.
쉬이익! 쩌저적!
세 줄기 번개가 어둠을 가르며 뻗어 나왔다.
“어딜!”
풍천은 앞으로 튀어나가며 검을 휘둘렀다.
어지간하면 그가 먼저 나서지 않았을 것이었다. 하지만 통로 안에 있는 자들은 자신이 압박감을 느낄 정도로 강한 자들이었다. 화청백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저들과 제대로 겨루기도 전에 피를 뿜을 것 같았다.
‘신마성 무사들을 죽인 놈들이다!’
그는 상대가 신마성 무사들을 단숨에 전멸시킨 자들임을 알고 구성의 공력을 쏟아냈다.
세 사람과 풍천의 검세가 정면으로 얽혀들었다.
쩌저저정!
강력한 기운이 서로를 깨부술 듯이 부딪쳤다.
상대의 공세를 막아내고 뒤로 두어 걸음 물러난 풍천은 대경해서 눈을 부릅떴다.
상대의 강함을 알기 위해 정면으로 부딪쳐봤는데 손목이 저릿했다. 상승절학 익힌 자, 절정의 공력을 지닌 자들이었다. 같은 무위라 해도 한 단계 위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자들.
위태곤이나 시마충보다 강하고, 팔대신마에 비해서는 눈곱만큼 모자라게 느껴질 정도.
진정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강할 거라는 예상을 하긴 했지만, 설마하니 하나하나가 팔대신마에 못잖은 자들일 줄이야!
그가 멈칫한 사이, 두 사람이 그를 지나쳐 뒤쪽에 있는 사람들 속으로 뛰어들었다.
“합공해서 상대하쇼! 초령이는 구석에 있어!”
급하게 소리친 풍천은 모든 공력을 끌어냈다. 어설프게 상대할 수 있는 자가 아니었다. 전력을 다해도 승부를 장담할 수 없는 자였다.
‘빌어먹을! 장소만 조금 넓었어도…….’
풍천과 대치한 자도 자신들의 공세가 한 사람에게 막힐 줄은 생각도 못한 듯 놀란 표정을 지으며 검을 고쳐 쥐었다.
“어이가 없군. 새파란 놈이 내 공격을 막아내다니.”
그의 검에서 은은한 검기가 솟구친 순간, 풍천이 먼저 선제공격을 펼쳤다.
“새파란 놈에게 어디 혼 좀 나봐라!”
통로는 높이와 너비가 일 장에 불과했다.
좁은 장소로 인해 천풍무영류를 마음껏 펼칠 수 없게 된 그는 귀환신법을 적절히 펼치며 상대를 공격했다.
쩌저저정! 떠더덩!
순식간에 사오 초의 공방이 이어졌다.
풍천의 검은 그가 지닌 공력에 비해서 위력이 강하지 않았다. 그 대신 신출귀몰하는 움직임과 바늘 끝만 한 빈틈을 파고드는 공세가 상대의 가슴을 섬뜩하게 할 만큼 날카로웠다.
흑의인은 시도 때도 없이 불쑥불쑥 파고드는 풍천의 공세에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 치도 밀리지 않고 풍천과 흑의인이 뒤엉킨 그때, 뒤쪽의 통로 안에서는 피가 튀었다.
“크윽!”
진관악이 먼저 팔을 움켜쥐고 뒤로 물러났다. 기종탁과 궁이정은 상대의 공세를 두어 번 받아치고는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나마 화청백과 석초산과 용수명, 구양종이 연수합격으로 상대한 덕에 더 이상 형편없이 밀리지는 않았다.
대체 어떤 세력의 무사가 이리도 강하단 말인가!
화청백은 혼신을 다해서 상대를 막으며 이를 악물었다.
아무리 상대가 통로의 상황에 더 익숙하다 해도 그렇지, 혼자서는 한 사람도 이길 수가 없다니.
자신이 이 정도밖에 안 되었던가? 회의감이 들 지경이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이었다.
용수명과 구양종을 튕겨낸 흑의인이, 비틀거리며 일어서는 기종탁을 향해 검을 뻗었다.
“안 돼!”
구자암이 그걸 보고는 흑의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석판에 눌려서 오른쪽 어깨를 못 쓰는 그는 왼손으로 검을 쥐고 있었다.
쩡!
흑의인은 검첨을 비틀어서 구자암의 검을 쳐냈다. 충격을 견디지 못한 검이 손아귀를 찢으면서 허공으로 튕겨졌다.
흑의인은 눈 한 번 깜박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원을 그리며 구자암의 가슴에 검첨을 꽂았다.
푹!
가슴에 깊이 박힌 검이 심장을 뚫고 등으로 튀어나왔다.
“크억!”
구자암은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딱 벌렸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손아귀가 찢어진 왼손을 휘둘러 흑의인의 얼굴을 쳤다.
흑의인은 머리를 살짝 뒤로 빼서 구자암의 손을 피했다.
“구 형!”
기종탁이 비명처럼 구자암을 부르며 검을 휘둘렀다.
자신이 죽어도 상대의 팔 하나 정도는 잘라버리겠다는 듯!
그러나 상대는 독심만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자들이 아니었다.
흑의인은 검을 비틀어 구자암의 가슴에서 빼내고 기종탁을 향해 휘둘렀다.
빠르고 강한 일격!
떵!
두 사람의 검이 부딪치자 기종탁의 검이 가공할 경력을 견디지 못하고 손을 벗어났다.
흑의인은 싸늘한 냉소를 지으며 기종탁의 목을 향해 검을 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