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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풍전설 51화

무료소설 천풍전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229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천풍전설 51화

 

51화

 

 

 

 

 

 

제1장. 미로(迷路)에 피는 흐르고

 

 

 

 

 

1

 

 

 

“적이다!”

 

“조심해!”

 

“웬 놈이냐!”

 

중앙에 서 있던 자들이 너도나도 소리쳤다.

 

풍천은 대답을 나중으로 미루고 먼저 횃불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때 바짝 뒤따라서 몸을 날린 석초산이 상대를 알아보고 다급히 소리쳤다.

 

“풍천, 멈춰!”

 

풍천은 횃불을 끄려던 손을 틀어서, 횃불을 들고 있는 자의 얼굴을 후려쳤다.

 

짝!

 

그러고는 천장에 거의 붙어서 중앙에 있는 자들의 머리를 타넘었다.

 

화청백도 적의 가슴에 꽂으려던 검을 비틀어서 상대의 검을 쳐내고 일단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유령총에는 신마성 놈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석초산이 멈추라고 했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었다.

 

쩌저저정!

 

뒤이어 병장기의 충돌음이 순간적으로 콩 볶듯 울렸다. 하지만 그뿐, 더 이상의 격돌은 벌어지지 않았다.

 

묘한 대치 상황. 모두가 바짝 긴장한 채 석초산만 바라보았다. 석초산이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혹시 적련방 분들이 아닙니까?”

 

중앙에 있는 사람은 모두 여덟 명. 그들 중 사십 대 중반의 중년인이 석초산의 질문에 되물었다.

 

“자네들은 신검문 사람들인가?”

 

“그렇습니다. 저는 신검문의 석초산이라 합니다. 그런데 적련방 분들이 이곳에 어쩐 일입니까?”

 

“나는 적련방의 반소규네. 방주님께서 신검문의 둘째 소저가 납치되었다는 걸 알고, 신검문을 도와 둘째 소저를 구하라며 우리를 보냈네.”

 

석초산은 반소규의 이름을 듣고 흠칫했다.

 

적암단주 반소규. 그 이름이 지닌 의미를 아는 것이다.

 

그는 적련방주가 순수한 목적으로 반소규를 보낸 것이 아니란 것을 알았지만, 모른 척했다.

 

“도와주러 오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정면의 통로를 통해서 들어오셨다면, 혹시 저희 동료들을 보지 못하셨습니까?”

 

그들이 들어올 때만 해도 탑으로 들어오는 통로는 그곳밖에 없어서 물은 것이었다. 그런데 반소규가 뜻밖의 말을 했다.

 

“우리는 다른 곳으로 들어왔네. 신마성 놈들과 한참 싸우고 있는데, 갑자기 유령탑에 새로운 문이 몇 개 더 열렸네. 그 바람에 싸움을 멈추고 모두 유령탑으로 들어왔지. 그 후로는 이곳저곳으로 흩어져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군.”

 

석초산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도 모두 놀란 표정을 지었다.

 

화청백이 포권을 취하며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궁금한 점을 물었다.

 

“저는 화청백이라 합니다. 혹시 신검문 사람들도 이곳에 들어왔습니까?”

 

“공자가 신검일수 화청백? 신검문의 태양이라는 화 공자를 이곳에서 만날 줄은 몰랐구려. 공자의 말이 맞소, 그들도 모두 이곳으로 들어왔소이다.”

 

반소규는 화청백을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나이는 어리지만, 화청백은 신검문의 대제자였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차대 신검문의 문주가 될 사람.

 

“그럼 다른 곳 사람들도 들어왔겠군요.”

 

“그렇소. 유령총이 열리는 것 같다는 말에 남궁세가와 대원보 사람들도 들어왔고, 검각이나 경천산장 사람들도 다른 문을 통해서 들어가는 걸 봤소.”

 

유령곡에 모여든 사람들이 모두 유령탑 안으로 들어왔다는 말.

 

풍천은 반소규의 말을 들으며 왠지 섬뜩한 느낌을 받았다.

 

유령총의 마지막 문은 아직 열리지 않았다. 정말 유령적이 있어야만 열린다면 당장 열 수도 없었다. 자신이 준 유령적은 가짜니까.

 

그런데 왜 유령총이 열린다는 말이 나왔을까?

 

더구나 현 상황에서 신마성이 유령탑을 개방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그들은 유령총의 비밀을 나누어 가지고 싶은 마음이 없을 테니까.

 

그럼 어떻게 된 걸까? 왜 다른 입구들이 한꺼번에 열린 걸까?

 

‘만약 신마성이 고의로 입구를 개방했다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든 풍천은 몸을 살짝 떨었다.

 

그때 반소규가 풍천 일행을 둘러보다 백초령을 발견하고 눈을 반짝였다.

 

“혹시, 저 소저가 바로 신검문의 둘째 소저 아니오?”

 

“맞습니다.”

 

“아, 둘째 소저를 구했다니 정말 다행이구려.”

 

구하긴 했지만 아직 유령총에 갇혀 있는 상태다. 좋아하기에는 일렀다.

 

화청백은 쓴웃음을 지으며 반소규에게 물었다.

 

“반 대협은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일단 화 공자 일행과 함께 움직였으면 하오만. 우리는 신검문을 돕기 위해서 왔으니까 말이오.”

 

풍천은 그 말을 듣고 반소규를 흘겨보았다.

 

‘개 풀 뜯어 먹는 소리하고 있네. 우리를 돕기 위해서 와? 그게 아니라 욕심 때문에 왔겠지.’

 

생김새가 굴강하게 보여서 괜찮은 사람인 줄 알았더니 겉과 속이 다른 것 같다. 뱀처럼 차가운 눈빛도 마음에 안 들고.

 

‘하여간 사람은 겉모습만 보고는 알 수가 없다니까.’

 

그는 반소규를 진실성이 결여된 사람, 가까이 해봐야 좋을 게 없는 사람, 그리고 뱀처럼 차가운 사람으로 규정했다.

 

반소규는 풍천이 흘겨보는 것을 감지하고 눈을 가늘게 떴다.

 

‘저 애송이가 풍천이군.’

 

황산까지 오면서 신검문 일행에 대해 보고를 받았다.

 

일행 중 두 사람만이 비단옷을 입었다고 했다. 그 중 하나는 검각 각주의 둘째 아들인 구양종이고, 다른 한 사람은 풍천이라는 자라고 했는데, 풍천에 대해선 정확한 신분이 알려져 있지 않다고 했다.

 

백무천의 대제자인 화청백도 평범한 무복을 입고 있거늘, 젊은 청년이 비단 옷을 입고 있으니 적비당의 판단에 혼란이 온 것이다.

 

‘고위직 간부의 아들쯤 되나? 그런데 신검문의 고위직 간부 중 풍씨가 누가 있지?’

 

그가 들은 풍천에 대한 평가는 전체적으로 그리 좋지 않았다.

 

조금은 건방지고, 제멋대로고, 말투도 품위가 없고, 매사에 게으른 자. 그나마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은, 얼굴이 남보다 조금 잘 생기고 몸매가 잘 빠졌다는 것 정도였다.

 

계집도 아닌데 얼굴 잘생긴 것과 몸매 잘 빠진 것이 무슨 상관이랴.

 

‘신검문도 다 됐군, 이런 일에 저런 놈을 보내다니.’

 

반소규는 보일 듯 말듯 조소를 지으며 눈길을 돌렸다.

 

“화 공자는 이곳의 길을 잘 아시오?”

 

화청백은 두 사람 사이의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미처 알지 못한 채 심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저희도 모릅니다. 반 대협, 일단 이곳을 벗어나지요.”

 

“그럽시다. 그런데…… 저 젊은 친구는 누구요?”

 

화청백은 반소규가 가리키는 사람이 풍천임을 알고 별 생각 없이 대답했다.

 

“본문 비검당의 조장인 풍천이라고 합니다.”

 

“복장도 그렇고, 풍채가 헌앙한 걸 보니 대단한 집안의 자제분 같은데…….”

 

비단옷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는 건가?

 

화청백은 자신도 모르게 실소를 매달고 대답했다.

 

“대단한 집안의 자제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고, 본 문의 당주였던 사마 아우의 사제입니다. 복장이 특별한 것은, 사매를 구하기 위한 작전에 필요했기 때문이지요.”

 

한마디로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그런 신분을 지닌 사람이 아니라는 말.

 

반소규의 눈매가 꿈틀거렸다.

 

‘이제 보니 별 볼일 없는 놈이었군.’

 

눈빛 변화만 보고도 대충 반소규의 마음을 눈치챈 풍천은 화청백을 째려보았다.

 

‘그걸 꼭 그렇게 다 까발려야 속이 시원한가? 혹시 알아? 나도 대단한 집안의 아들이었는지.’

 

기분이 상한 그는 퉁명스런 말투로 화청백을 재촉했다.

 

“안 갈 거요? 놈들이 올 때까지 여기서 기다릴 겁니까?”

 

화청백은 ‘저놈이 또 왜 저러지?’ 그런 표정을 지으며 풍천을 한 번 바라보고는, 뒤쪽에 서 있는 일행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놈들이 오기 전에 떠납시다.”

 

 

 

풍천 일행과 반소규 일행은 정면에 있는 또 다른 통로로 들어갔다.

 

선두는 불꽃이 피어나는 대롱을 든 자가 섰다.

 

쇠로 된 대롱은 한 자 길이에 굵기가 한 치 정도 됐는데, 끝에는 심지가 달려 있어서 마치 길쭉한 등잔을 보는 듯했다.

 

그것은 유화통(油火筒)이라는 것으로, 안에 기름이 가득 차있다면 능히 하룻밤 정도는 너끈히 불을 밝힐 수 있는 기물이었다.

 

풍천은 유화통을 보고 적련방의 의도를 확실하게 깨달았다.

 

아무나 구할 수 없는 물건을 미리 구해 왔다는 것은 그 물건을 사용할 목적이 있기 때문일 것이었다.

 

‘유령총을 조사하려고 작정하고 왔군. 그러면서 뭐? 신검문을 돕기 위해 왔다고?’

 

어쨌든 불이 있어서 나쁠 것은 없었다.

 

불빛이 적을 불러들일지 몰라도, 그만큼 빨리 움직일 수 있으니 상황은 훨씬 더 나아졌다고 봐야 했다.

 

그런데 잠시 후, 통로 안에서 작은 말다툼이 일었다.

 

 

 

“그쪽으로 가면 안 된다니까요?”

 

“왜 안 된단 말인가?”

 

느낌이 안 좋아서.

 

그렇게 말하면 보나마나 좋은 말이 나올 리 없겠지?

 

풍천은 반소규를 노려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우리 신검문을 돕겠다고 오셨다면서요? 그럼 우리가 움직이는 대로 따라오셔야지, 왜 자꾸 고집을 피우십니까?”

 

“이쪽 길이 나을 것 같으니까 그러는 것 아닌가?”

 

“여기 길에 대해서 잘 아십니까?”

 

“그러는 자네는 알고 있나? 모르는 건 피차 마찬가지가 아닌가?”

 

반소규는 짙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눈빛으로 풍천을 누르려 했다.

 

하지만 풍천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함께 가기 싫으면 여기서 그냥 헤어지죠. 중요한 때에 의견이 엇갈려서 피해가 커지는 것보다는 그게 낫겠군요.”

 

“그건 자네가 결정할 일이 아닌 것 같군. 화 공자, 어떻게 하시겠소?”

 

화청백은 잠시 생각하더니 반소규의 손을 들어주었다.

 

“풍천, 확실한 이유가 없다면 반 대협의 말대로 하세. 적이 나타나면 함께 대응하는 게 더 안전하지 않겠나?”

 

‘아, 진짜!’

 

느낌이 안 좋다는 것도 이유였지만, 그보다는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 더욱 고집을 피운 것이었다.

 

언제까지 이 안을 헤맬지 모르는데, 반소규에게 끌려다닐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런데 자신의 마음도 모르고 덜컥 반소규의 편을 들다니.

 

풍천은 짜증이 났지만 계속 고집을 피우진 않았다.

 

사실 어느 쪽이나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화청백의 말대로, 함께 있으면 그나마 나을 것이다. 불길한 느낌이 드는 것만 아니라면.

 

‘제길, 나도 모르겠다. 내 느낌이 항상 맞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생각한 풍천은 불만이 여실히 드러나는 목소리로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화 공자 생각이 그렇다면 뭐, 맘대로 하쇼.”

 

반소규는 비릿한 조소를 지으며 왼쪽 통로로 들어갔다.

 

“우리가 앞장설 테니, 뒤만 따라오게.”

 

 

 

우르르릉.

 

통로가 자잘한 진동을 일으키며 울린 것은 구불구불한 통로가 다섯 번쯤 꺾어졌을 때였다.

 

사람들은 걸음을 멈추고 불안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진동은 오래가지 않고 곧 멈췄다.

 

“음, 조금 빨리 움직여야겠군.”

 

주위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걷던 적련방 무사들의 걸음이 빨라졌다.

 

하지만 굽이를 두 번 돌자 통로가 끝나고 석벽이 앞을 가로막았다.

 

반소규는 눈살을 찌푸리고 벽을 바라보았다. 고집을 피워 들어온 통로가 막장이라니.

 

‘빌어먹을.’

 

그때 풍천이 벽을 살펴보고는 기광을 번뜩였다.

 

“조금 전 기관이 발동하면서 막힌 것 같군요.”

 

“무슨 말인가?”

 

“이걸 보시죠.”

 

석벽으로 다가간 풍천은 반소규에게 석벽의 아래쪽 구석을 가리켰다. 반소규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일제히 석벽 구석을 바라보았다.

 

풍천은 구석의 바닥에 흩어져 있는 자잘한 돌조각을 주워들었다. 큰 것은 손톱만 했고 작은 것은 모래알만 했다.

 

“주위에는 이런 돌조각이 없습니다. 본래 있던 것이 아니란 말이죠. 아무래도 벽이 내려오면서 부서진 돌조각 같습니다.”

 

“그럼 저 석벽이 조금 전에 내려왔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풍천은 확신에 찬 표정으로 대답하고는 석벽을 주먹으로 두들겼다.

 

쿵, 쿵.

 

석벽이 울렸다.

 

풍천은 씩 웃으며 반소규를 쳐다보았다.

 

“들었죠?”

 

왠지 조롱하는 것처럼 들리는 말투.

 

반소규는 기분이 상했지만, 풍천의 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뒤쪽이 암벽이라면 울리는 소리가 날 리가 없는 것이다.

 

“비켜보게. 내가 부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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