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풍전설 5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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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4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천풍전설 50화
50화
풍천이 들어왔던 통로는 이미 막힌 상태. 그들은 남호가 나온 곳을 통해서 밖으로 나가보았다.
그들이 막 밖으로 나왔을 때는, 외부 경비를 책임지고 있던 신마성의 무사들이 흑의인들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남호의 말대로 흑의인들은 이십 명쯤 되었다. 반면 경비무사의 숫자는 모두 삼십여 명. 숫자는 오히려 경비무사가 많았다.
그러나 흑의인들을 보는 순간, 운조평은 가슴이 차갑게 식었다.
흑의인의 숫자는 단지 이십 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들이 다가오는 기세는 이백 명의 일류 고수가 뿜어내는 기세보다 더욱 강력했다.
‘어디서 저런 자들이!’
특히 맨 뒤쪽에서 걸어오는 청삼 중년인은 팔대신마 중 한 사람인 운조평조차 가슴이 서늘해질 정도의 기운을 흘리고 있었다.
‘으음, 저자가 누군데……?“
그가 바라보는 사이 신마성과 흑의인들 사이의 간격이 십여 장으로 줄어들었다.
흑의인들이 신마성 무사들을 향해 움직인 것은 바로 그때였다.
바람 쐬러 나온 한량처럼 느긋한 표정, 가벼운 움직임이었다. 긴장감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태도.
그것은, 자신감이었다. 자신들의 상대가 아니라는 자신감.
그리고 그들의 입가에 떠오른 웃음은…… 조소였다.
‘신마호령단이 저들에게 당했다고?’
유령곡에 들어올 수 있는 길은 하나뿐이다. 그곳을 통과했다는 것은, 저들이 같은 편이거나, 저들이 그들을 제거했다는 말이었다.
연락할 새도 없이!
가슴이 싸늘하게 식은 운조평은 경비무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모두 물러서라!”
그의 목소리가 유령곡을 울리며 메아리쳤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 흑의인들이 일제히 경비무사들을 향해 날아올랐다.
그리고 도륙이 시작되었다.
“감히 신마성에 대항하다니! 죽고 싶어 환장한 놈들이구나!”
“막아라!”
“놈들을 죽여라!”
처음에는 신마성의 무사들도 기세를 올리며 달려들었다.
그러나 흑의인들의 손속은 그들이 일초도 제대로 상대할 수 없을 만큼 강하고, 무자비했다.
“으악!”
“크어억!”
“이 악마 같은 놈들……. 끄억!”
쉴 새 없이 터져 나오는 비명과 신음!
흑의인들의 도검이, 권장이 휘둘러질 때마다 신마성 무사들은 피를 뿌리며 나가떨어졌다.
검이 부러지고, 튕겨지고, 손아귀가 찢어지며 도가 허공으로 날고, 창대가 부러지고…….
가공할 경력에 내부가 진탕된 무사들은 피를 토하며 꼬꾸라지고, 허리가 잘리고, 사지가 잘린 무사들은 잘린 곳에서 피분수를 뿌리며 버둥거리다 쓰러졌다.
운조평과 위태곤과 시마충과 남호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바라보며 눈을 홉떴다.
“헛! 저럴 수가!”
“대체 저자들이 누군데……!”
“맙소사!”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잠시 몸이 굳어졌던 위태곤은 운조평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다급히 소리쳤다.
“사숙! 도와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신마성 무사들 중 반은 귀혼신마대의 대원들이다. 그로선 마음이 다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운조평은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멈춰라! 이미 늦었다. 헛되이 죽고 싶지 않다면, 냉정을 유지하도록 해라.”
위태곤은 이를 악물었다. 운조평의 말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기껏 열을 셀 시간이 흘렀을 뿐인데, 삼십여 명의 무사 중 서 있는 사람은 한두 사람밖에 없었다. 그들도 곧 쓰러질 터, 자신들이 나가서 도와준다고 달라질 상황이 아닌 것이다.
흑의인들은 남은 신마성 무사들을 도륙한 뒤 유령탑을 향해 빠르게 다가왔다.
“먼저 안으로 들어가라!”
운조평이 다급히 소리쳤다.
“사숙!”
“정면 대결로는 저들을 막을 수 없다. 저들을 미로로 유인할 테니 안으로 들어가라. 시 장로, 둘째 공자와 함께 안으로 들어가게.”
“이공자, 안으로 들어가세.”
위태곤은 운조평의 말뜻을 이해하고 이를 지그시 악문 채 안으로 들어갔다.
신마성주의 둘째 제자가 누굴 두려워해서 피해야 하다니. 팔대신마에 속한 운조평이 그런 명령을 내리다니!
자괴감이 밀려들었다.
그러나 눈앞에서 벌어진 일은 허상이 아닌, 현실이었다.
‘안으로 들어와라, 이놈들! 미로에서 하나하나 죽여주겠다!’
석 달에 걸쳐서 유령총의 기관을 연구했다. 그 와중에 오 층으로 된 지하의 미로도 발견했다. 그곳이라면 흑의인들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것이었다.
더구나 마침 구룡회와 남궁세가의 무사들도 들어가 있는 상황. 그들을 모두 유령총의 귀신으로 만든다면, 수하들의 원혼도 만족할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꿈에도 몰랐다.
유령총에 대해서 자신들보다 더 자세히 아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4
빛 한 점 없는 통로는 눈앞의 손가락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웠다.
챙, 챙.
풍천은 검으로 바닥과 벽을 치며 빠르게 전진했다.
찰나 간이나마 번갯불처럼 빛이 번쩍이며 주위 광경이 보였다. 다른 사람들도 풍천이 하는 행동을 흉내 내서 무기로 벽을 계속 쳤다.
작은 빛도 여러 사람이 만들어내니 나름대로 훌륭한 광원이 되었다.
덕분에 그들은 칠흑 같은 어둠 속을 빠르게 이동하면서도 맹인처럼 헤매지 않아도 되었다.
그로 인해서 신마성 무사들에게 길잡이 역할을 하는 것이 조금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그들도 자신들을 흉내 내며 따라오는 중이었으니 피장파장이었다.
통로는 십여 장을 뻗다가 꺾어지고, 또 십여 장을 뻗다가 꺾어지는 것을 반복했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해서 꺾어지다 보니 이제 어느 쪽으로 가고 있는 것인지 짐작도 되지 않았다.
갈림길이 나온 것은 대충 백 장쯤 갔을 때였다.
길은 열십자로 갈라져 있었는데, 모두가 똑같았다.
“젠장, 이제 어디로 가야 하지?”
구양종이 초조한 목소리로 말하며 좌우를 둘러보았다.
다른 사람들은 그 와중에도 무기로 벽을 쳐서 통로를 살펴보았다.
풍천은 손을 들고 사람들의 행동을 제지했다.
“잠깐! 조용히 해보세요.”
모두 동작을 멈추고 풍천을, 정확히는 풍천이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벽을 치는 걸 멈추자 신마성 무사들의 기척이 더 크게 들렸다.
셋을 셀 시간이 지날 즈음, 챙! 풍천이 검으로 벽을 치면서 한쪽을 가리키고 곧장 걸음을 옮겼다.
“저쪽으로 가죠.”
신마성 무사들이 바로 뒤까지 쫓아온 상황. 사람들은 풍천이 왜 그쪽으로 가자고 한 것인지 물어보지도 못하고 뒤만 따라갔다.
사실, 그들이 물어본다 해도 풍천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냥…… 느낌이 좋아서.
그게 이유였으니까.
그 말을 하면 눈빛의 화살이 몇 개는 등판에 쑤셔 박힐 것이 뻔한데 뭐 하러 말한단 말인가?
그런데…… 하품하려고 뻗은 손에 날아가던 제비가 걸린 셈이라고나 할까? 두 번을 꺾어지자, 빛이 보였다.
워낙 희미해서 정말 빛인지 알 수는 없었다. 그래도 어쨌든, 어둠만 있던 곳에서 빛이 보였다는 건 아주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 하. 역시 이쪽 길에 뭐가 있는 것 같더라니…….”
풍천은 쾌재를 부르며 빛이 보이는 곳을 향해 달려갔다.
사람들은 풍천의 능력에 감탄하며 뒤를 따라갔다.
‘보기보다 제법이란 말이야.’
‘정말 특별한 능력이 있는 건가?’
‘자식, 재수가 좋군.’
빛은 광장의 천장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정확히는 천장에 박힌 열 개의 푸른 돌에서 흘러나왔다.
하나하나는 희미한 빛인데, 열 개가 빛나자 그럭저럭 주위를 알아볼 정도는 되었다.
풍천 일행은 조심조심 주위를 살피며 광장으로 들어섰다.
사면에 통로가 나있는 광장은 제법 넓어서 위태곤을 만났던 곳과 비슷했다. 벽에도 그곳과 마찬가지로 조각이 새겨져 있었고.
차이가 있다면, 그곳의 조각은 어둠과 밝음이 공존하고 있었는데, 이곳의 조각에는 오직 어둠만이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멎을 것 같은 어둠의 조각들.
광장에 들어선 사람들은 주위를 둘러보며 자신도 모르게 숨을 조심스럽게 쉬었다.
그때 풍천이 가볍게 바닥을 박차더니 천장에 손가락을 박고 달라붙었다.
백초령이 천장에 달라붙어 있는 풍천을 보며 물었다.
“뭐 하는 거야?”
“어, 이거 몇 개 가지고 다니면 검으로 벽을 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
풍천은 아무런 사심이 없다는 투로 대답했다. 비쌀 것 같아서 빼려는 건 정말 아니라는 듯.
용수명이 제일 먼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저 돌을 가지고 다니면 편하겠는데?”
그러고는 용수명을 비롯한 몇 사람이 천장으로 뛰어 올랐다.
풍천이 그 모습을 보고는 버럭 소리쳤다.
“이쪽 다섯 개는 내 거야!”
날아올랐던 사람들은 깜짝 놀라서 푸른빛이 나는 돌, 청광석을 만져보지도 못하고 다시 내려왔다.
백초령은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풍천의 속이 훤히 보였다.
“쯔쯔쯔, 정말 문제다, 문제…….”
풍천이 어찌 백초령이 하고자 하는 말뜻을 모를까.
‘저게……! 하긴 네가 어떻게 알겠냐! 내가 왜 이러는지 알면 감동할걸?’
다른 사람들은 그러려니 했다. 화도 내지 않고 비웃지도 않았다. 아마 풍천이 더한 말이나 행동을 한다 해도, 놀라거나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었다.
왜? 풍천이니까.
그들은 풍천이 이미 뺀 세 개의 청광석과 그 옆의 두 개를 놔두고 나머지 다섯 개를 하나씩 빼기로 했다.
“저것은 제가 빼죠.”
“그럼 나는 저쪽 걸 빼겠네.”
“저건 제겁니다.”
풍천은 꿋꿋이 다섯 개의 청광석을 빼내 천장에서 내려왔다. 나머지 다섯 개는 용수명, 진관악, 구양종, 궁이정, 석초산이 하나씩 빼냈다.
진관악은 자신이 뺀 청광석을 화청백에게 건넸다.
“단주, 받으시지요.”
풍천도 하나를 백초령에게 주었다. 손을 내밀고 빤히 쳐다보는데 차마 모른 척할 수는 없었다.
“받아.”
“하나 더 줘.”
“두 개를? 뭐하게?”
“주기 싫으면 말고. 풍천이 욕심 많다는 걸 모르는 사람도 없는데 뭐.”
“욕심이 많긴 누가 많아? 조, 좋아, 하나 더 주지.”
결국 풍천은 백초령에게 두 개를 주고, 아니 뺏기고 세 개만 챙겼다.
‘여자가 너무 욕심이 많으면 안 좋은데, 초령이는 욕심이 너무 많아.’
그런데 풍천이 백초령에게 청광석을 주고 돌아설 때였다. 왼쪽 통로에서 불빛이 비쳤다. 푸르스름한 빛이 아닌, 횃불처럼 보이는 붉은 불빛이.
흠칫한 사람들은 일제히 그곳을 바라보았다.
곧 통로 안에서 사람의 발걸음소리가 미약하게 들렸다. 불빛도 점점 밝아졌다.
스윽, 스윽, 스윽.
제법 많은 사람들의 발소리.
거리가 가까운데도 소리가 미약한 걸 보니 고수들 같았다.
‘일곱? 여덟? 모두 일류 이상의 고수들이다. 누구지? 신마성의 무사들인가?’
풍천은 손에 들린 청광석을 품속 깊숙이 집어넣고, 검을 든 손에 힘을 주고 나직이 속삭였다.
“적이면 그 즉시 불부터 꺼 버릴 거요. 그럼 놈들의 표적이 될지 모르니까, 돌을 깊숙이 감추쇼.”
다른 사람들도 재빨리 청광석을 품속 깊숙이 집어넣었다. 그리고 잔뜩 긴장한 채, 양쪽 벽에 붙어서 공격 태세를 갖추었다.
다른 곳으로 피하기도 어정쩡한 상황이었다. 자신들이 나온 곳에선 신마성 무사들이 쫓아오고, 또 다른 통로에서 사람들이 나타난 판이었다.
남은 통로는 두 곳. 하지만 그 두 곳의 통로라 해서 사람이 나타나지 말란 법은 없는 것이다.
마주치면 무너뜨리고 지나가는 수밖에!
지켜보는 사이, 불빛이 광장 쪽으로 꺾어지는가 싶더니 칠팔 명의 무사들이 광장으로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