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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풍전설 87화

무료소설 천풍전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243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천풍전설 87화

 

87화

 

 

 

 

 

 

두 사람은 골목으로 들어가 몸을 숨기고 싸움이 벌어지는 곳을 쳐다보았다.

 

건물에 가려져서 모든 게 보이진 않았지만 제법 치열한 싸움이 벌어진 듯했다.

 

“누가 신마성 사람들과 싸우는 거지? 등왕각에 나타났던 자들인가?”

 

해동산이 잔뜩 긴장한 채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제기랄, 역시 사방이 싸움터로 변했군.’

 

“잠깐만 기다리쇼.”

 

풍천은 해동산에게 한마디 남기고는 바로 옆에 있는 이 층 건물 지붕으로 올라갔다.

 

싸우는 광경이 모두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바로 그때, 싸우는 자들을 주시하던 풍천의 입 안에서 욕설이 굴러다녔다. 눈에 익은 자가 보인 것이다.

 

‘이런 젠장! 좀 조심해서 다니지 말이야. 멍청하게 왜 들켜?’

 

신마성 무사들과 싸우는 자들은 신검문 사람들이었다.

 

인원은 모두 다섯. 화청백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 나누어져서 따로따로 움직이는 듯했다.

 

풍천은 지붕에서 내려와 싸움이 벌어진 곳으로 접근했다. 해동산이 엉거주춤 쫓아오며 불안해하는 목소리로 풍천을 말렸다.

 

“이, 이봐, 잘못하면 싸움에 휘말려들지 모르네. 그냥 멀리서 구경하는 게 어떻겠나?”

 

귀찮은 일에 휘말리기 싫은 마음은 해동산보다 풍천이 몇 배 더했다. 그러나 신검문 사람들이 당할 거라는 걸 뻔히 알면서 그대로 놔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개개인의 실력은 신검문 사람들이 훨씬 뛰어나지만, 숫자에서 서너 배나 차이 났다. 게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신마성 무사들은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

 

“해 형은 일단 돼지네 집으로 가 있으쇼. 곧 뒤쫓아 갈 테니까.”

 

풍천은 해동산에게 나직이 소리치고는 품속에서 옷자락을 찢은 천을 꺼냈다.

 

‘오늘 제대로 부지런떠는군.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부지런했다고 말이야. 젠장!’

 

천으로 얼굴을 가린 풍천은 격전장으로 접근했다.

 

“그럼 조심하게.”

 

풍천에게 염려의 한마디를 던진 해동산은 뒤로 빠졌다.

 

상대는 신마성. 자존심을 내세울 때가 아니었다.

 

풍천은 달빛으로 인해 생긴 그림자에 몸을 감추고 빠르게 접근했다.

 

순식간에 사십여 장을 접근한 그는 칠팔 장을 남겨놓고 그림자 없는 야조처럼 날아갔다.

 

소리 없는 움직임. 한 줄기 바람이 신마성 무사들 사이를 휘젓고 지나갔다.

 

신마성에 이를 갈고 있던 풍천이 아닌가. 그는 손에 걸리는 대로 사혈을 찍고 뒤통수를 후려쳤다.

 

“누구……?”

 

“뭐, 뭐야? 켁!”

 

“조심해!”

 

그들이 놀라서 당황한 목소리를 내뱉었을 때는 이미 대여섯 명이 쓰러진 뒤였다.

 

풍천은 두어 번 더 신마성 무사들 사이를 휘저었다. 바람이 불고 어둠이 흔들리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칠팔 명이 쓰러졌다.

 

신마성 무사들은 당황해서 신검문 사람들을 제대로 공격하지 못했다.

 

“귀신처럼 움직이는 놈이다! 주위를 잘 봐!”

 

“이상하다 싶으며 무조건 쳐!”

 

“술법을 쓰는 놈이다! 흑도술 같으니 감으로 상대해!”

 

‘감히 고금제일의 신법을 시시껄렁한 흑도술 따위와 비교하다니!’

 

풍천은 불만이 많았지만 일단 건물의 그림자 속으로 몸을 감췄다. 그리고 신검문 사람들을 향해 전음으로 소리쳤다.

 

“뭐합니까? 빨리 빠져나가쇼!”

 

신검문 사람들은 서로를 쳐다본 후 즉시 신형을 날렸다.

 

신마성 무사들 중 몇이 그들을 쫓기 위해 몸을 날렸다.

 

“놈들을 잡아라!”

 

풍천은 건물의 기둥에서 나무쪼가리를 한 움큼 뜯어내고는 공력을 주입해서 던졌다.

 

가시처럼 뾰족하게 갈라진 나무쪼가리에 공력이 주입되자 철침이 따로 없었다.

 

슈슈슈슉!

 

신경이 곤두서 있던 신마성 무사들은 날카로운 물체가 사정없이 몸을 파고들자 대경해서 이리저리 피했다.

 

“윽!”

 

“암기다! 피해!”

 

그 사이 신검문 사람들은 그들과의 거리를 벌리고 남창의 복잡한 주택가 사이로 사라졌다.

 

신마성 무사들은 그들을 포기하고 대신 암기(?)가 날아온 곳을 향해 달려들었다.

 

“암습자가 저곳에 숨어 있다!”

 

“놈을 잡아라!”

 

풍천은 수십 명이 자신을 향해 달려오자 그림자에 몸을 숨기고 그곳을 벗어났다.

 

그리고 추적을 뿌리쳤다는 걸 확인한 후에야 통돼지, 동포동의 가게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2

 

 

 

홍화루를 찾아간 위태곤은 이마를 찌푸리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군가가 홍화루에 찾아와서 자신의 이름을 팔고 도망치는 남녀를 찾았다고 한다. 그중 하나는 해동산이라는 이류 살수고, 하나는 성질 더러운 젊은 놈이라고 했다.

 

‘어떤 건방진 놈이 내 이름을 판 거지?’

 

기분이 이상하게 찝찝했다. 꼭 볼일 보고 닦다가 손바닥에 덩어리가 묻은 기분이었다.

 

자신도 잘 알고 백초령도 잘 아는 젊은 놈. 그런 놈은 몇 없었다. 정말 신마성 사람이든가, 아니면 신검문 사람일 터였다.

 

‘아니지, 그 정체불명의 살귀들 중에서도 젊은 놈이 있을지 모르지.’

 

그런데 이상하게 봉태구가 질렸다는 그놈의 성격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아마 풍천이 죽었다는 확신만 없었다면 그는 당장 풍천을 떠올렸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가 아는 한 그놈은 이 세상에 없었다.

 

‘세상에 풍천 같은 성질을 가진 놈이 또 있나 보군.’

 

그놈을 잡아서 풍천 대신 괴롭힐까?

 

위태곤이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귀혼신마대 조장이 뛰어 들어왔다.

 

“대주, 신검문 놈들의 행적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래? 화청백도 있느냐?”

 

“화청백은 없었다고 합니다. 선창가를 수색하던 단혼신마대가 놈들을 발견했는데, 공격하던 중 생각지도 못한 자의 공격을 받아 놓쳤다고 합니다. 하지만 곧 다른 곳을 돌던 마혼신마대의 감시망에 걸려들어서 지금 그들을 추적중이라 합니다.”

 

“생각지도 못한 자? 혹시 청의나 흑의를 입고 있지 않더냐?”

 

보고를 올리던 자의 표정이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그게…… 확실히 보지 못해서 인상착의를 모른다고 합니다.”

 

“무슨 말이야? 한두 사람이 본 것도 아닐 텐데?”

 

“천으로 얼굴을 가린 데다, 놈의 신법이 어찌나 신출귀몰한지 어이없게도 놈을 똑바로 본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뭐야? 어디서 그런 풍천 같은 놈이 나타난 것…….”

 

위태곤은 흠칫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재수 없게 죽은 그놈의 이름을 떠올리다니!

 

그는 풍천이라는 이름을 구석에 처박고 수하에게 물었다.

 

“그래, 그놈의 행적은 찾았느냐?”

 

“놓쳤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 남창을 이 잡듯 뒤지고 있으니 누구도 빠져나가지 못할 겁니다.

 

“제기랄, 뭐하나 되는 게 없군. 강 건너 쪽에선 연락이 없느냐?”

 

“아직 없습니다.”

 

바로 그 순간, 멀리서 호각 소리가 연이어 울렸다.

 

삐이이이익! 삐이이익!

 

뒤이어 사방에서 호각 소리가 나고, 남창 성내가 온통 호각 소리로 뒤덮였다.

 

위태곤은 호각 소리에 귀를 기울이더니 싸늘한 눈빛을 번뜩였다.

 

‘놈들의 행적을 찾은 것 같군.’

 

그는 고개를 돌려, 엎드려서 달달 떨고 있는 봉태구를 바라보았다.

 

“본 공자는 놈들을 쫓을 것이다. 만약 그놈이 또 오거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붙들어놓아라.”

 

“예, 공자! 명심 봉행하겠사옵니다!”

 

 

 

3

 

 

 

밤손님처럼 지붕을 건너뛰며 동포동의 가게로 향하던 풍천은 호각 소리를 듣고 눈을 가늘게 떴다.

 

‘신검문 사람들이 또 걸렸나?’

 

여기저기서 메뚜기처럼 솟구치는 자들이 보였다. 그런데 대부분 신검문 사람들이 달려간 곳과는 정반대되는 곳으로 향했다.

 

‘그럼 혹시 그 살귀들……?’

 

바로 그 순간, 제비가 날아가듯 지붕을 스치며 허공을 달려가는 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숫자는 여섯. 하나하나가 절정에 이른 신법을 펼치는 고수들이었다.

 

‘놈들이다!’

 

풍천은 그들이 자신에게 죽은 자들과 일행이라는 걸 직감적으로 눈치챘다. 그런데 그들이 중간에서 방향을 틀더니 자신이 있는 곳을 향해 날아오는 게 아닌가.

 

풍천은 용마루에 급히 몸을 붙이고 고개만 내밀었다. 날아오던 자들은 풍천이 누워 있는 건물 바로 앞쪽 큰길로 내려서더니 골목 안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빤히 보고도 그냥 보낼 수는 없는 일. 풍천은 주위를 둘러본 후 지붕에서 지붕으로 건너뛰며 그들의 뒤를 쫓았다.

 

 

 

풍천은 건물 여섯 개를 넘고 거리를 두 번 건넜다. 살귀들은 아직 자신이 쫓고 있는 줄 모르고 있는 듯했다.

 

‘몰래 다가가서 한두 놈 없앨까?’

 

천풍무영류는 전보다 더 빨라졌고 공력소모도 적어졌다. 다른 무공도 이제 신법에 의존하지 않고 절정고수를 상대할 수 있을 만큼 강해진 상태였다. 가능할 것 같았다.

 

문제는 신마성 무사들이 눈에 불을 켠 채 사방을 뒤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저들과 싸우다가 신마성 무사들에게 포위를 당하면 그것만큼 멍청한 짓도 없었다.

 

‘적은 적으로 하여금 상대하게 하는 게 최고의 병법이지.’

 

풍천은 씩 웃고는, 한손으로 입술을 잡고 휘파람 소리로 조금 전에 들린 호각 소리를 흉내 냈다. 소리가 조금 다를 테지만 그 정도는 상관이 없었다.

 

휘이이이익!

 

두어 군데서 풍천의 휘파람 소리에 대응하는 호각 소리가 울렸다.

 

삐이익! 삐이이익!

 

앞서가던 청의인들은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방향을 틀어서 서쪽으로 달렸다.

 

빠르고 정확한 판단, 망설임 없는 실행, 일사불란한 움직임. 역시 함부로 상대할 수 있는 자들이 아니었다.

 

신마성 무사들이 나타난 것은 청의인들이 오십여 장을 전진했을 때였다.

 

청의인들은 잠시의 멈칫거림도 없이 무기를 빼들고 곧장 그들을 향해 쇄도했다.

 

신마성 무사들도 그들에게 마주쳐갔다.

 

쩌저정! 따당!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남창의 밤하늘을 칼날처럼 찢으며 울렸다.

 

뒤이어 신음과 핏줄기가 어둠을 물들이고, 일순간에 칠팔 명이 비틀거리다가 쓰러졌다.

 

신마성 무사들은 상대의 강함에 질린 듯 더 이상 용기 있게 달려들지 못하고 동료가 올 때까지 방어에 치중했다.

 

하지만 상대는 그들이 방어한다고 막을 수 있는 자들이 아니었다.

 

청의인들은 늑대새끼를 덮치는 호랑이처럼 신마성 무사들을 공격했고 시간을 아끼기 위해 철저히 살수를 썼다.

 

허리가 반쯤 잘리고, 팔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목이 베어진 곳에서 피 분수가 솟구치며 어둠이 붉게 물들었다.

 

찰나 간에 서너 명이 더 쓰러지자, 남은 신마성 무사들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뒤로 물러났다.

 

그들이 청의인들의 살수를 벗어나기 위해 정신없이 뒤로 물러설 때, 여기저기서 신마성의 무사들이 나타났다.

 

풍천의 휘파람 소리에 긴가민가했던 그들은 동료가 청의인들에게 당하고 있자 악을 쓰며 달려왔다.

 

“이런 빌어먹을! 모두 달려들어서 저놈들을 죽여!”

 

개중에는 엉터리 신호를 보낸 풍천을 욕하는 자도 있었다.

 

“어떤 멍청한 새끼가 신호를 그따위로 보낸 거야?”

 

“좌우간 저것들부터 뭉개놓고 보자고!”

 

그들은 자신들의 동료가 손도 제대로 못 써보고 당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만약 알았다면 그렇게 무작정 달려들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그러나 청의인들도 이곳에서 신마성 무사들과 계속 싸우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청의인 중 덩치 큰 자가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놈들이 더 몰려오기 전에 이곳을 벗어나세.”

 

청의인들은 달려오는 자들을 향해 쇄도했다.

 

그들의 도검이 휘둘러질 때마다 신마성 무사들의 무기가 부서지고 사지가 떨어져 나갔다.

 

신마성 무사들은 질린 표정을 지으며 뒤로 물러서기에 바빴다.

 

“물러서지 말고 막아!”

 

신마성 무사들 중 제법 지위가 있어 보이는 자가 소리쳤다.

 

하지만 공포에 질린 신마성 무사들은 눈치를 보며 계속 물러섰다. 그 와중에도 비명이 터져 나오고 남창의 대지에 붉은 피가 흘렀다.

 

바로 그때, 다섯 사람이 장포를 휘날리며 날아내렸다.

 

“모두 물러서라! 그들은 우리가 맡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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