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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풍전설 81화

무료소설 천풍전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231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천풍전설 81화

 

81화

 

 

 

 

 

 

2

 

 

 

해동산의 정보통은 작은 주루를 하고 있었는데, 어찌나 뚱뚱한지 어지간한 돼지도 그의 앞에서는 기를 펴지 못할 것 같았다.

 

게다가 눈은 무척 가늘어서, 떴는지 감았는지 자세하게 보지 않으면 알 수가 없고, 어깨에 달린 것은 팔인지 허벅지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통통했다.

 

성은 동씨였는데, 그는 해동산을 보자마자 콧소리를 심하게 냈다. 영락없이 먹이를 본 돼지처럼.

 

“웬일로 직접 찾아온 거냐? 줄 돈은 가져왔어?”

 

역시나 예상대로 일이 이상하게 꼬인다. 장의사에도 외상이 깔려 있더니, 이곳에도 외상이 깔려 있나 보다.

 

그래도 풍천은 별 걱정하지 않았다.

 

장의사도 알아서 처리했으니, 이곳도 알아서 처리하겠지.

 

아니나 다를까 해동산이 알아서 나섰다.

 

“그게 몇 냥이나 된다고 친구 사이에 돈타령이냐?”

 

“친구? 언제부터 네놈이 내 친구냐? 쥑일 놈. 한 푼 두 푼 쌓인 게 벌써 은자 열다섯 냥이다. 줄 거야, 말 거야?”

 

“쩨쩨하게 그깟 열다섯 냥 가지고 얼굴 붉힐 건 없잖아?”

 

“쩨쩨해? 그깟 열다섯 냥? 웃기고 있네. 너 같은 놈 때문에 나도 굶어 죽을 판이야, 이놈아! 잔소리 말고 돈 내놔. 만약 오늘도 내놓지 않으면, 네놈 집을 차압할 거다.”

 

“너무 그러지 말자. 오늘은 슬픈 날이어서 화내고 싶지도 않아.”

 

“흥, 네놈 형제라도 죽었냐? 갑자기 안 하던 청승은…….”

 

“그래. 동생이 죽었어.”

 

동씨 뚱뚱이는 해동산의 대답에 입을 다물고 눈살을 찌푸렸다.

 

풍천은 그걸 보고 동씨 뚱뚱이가 해동권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집을 차압하겠다는 둥 쏘아붙이는 말투와 다르게 그리 독한 사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정은 있는 사람인가 보군.’

 

해동산은 딱 한마디로 동 씨의 입을 막고는 풍천을 바라보았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세. 중요한 이야기를 들으려면 아무래도 안으로 들어가는 게 나을 것 같군.”

 

그때 동 씨가 풍천을 힐끔거리며 물었다.

 

“저 어벙하게 생긴 애송이는 누구냐?”

 

풍천은 그 말을 듣고 생각을 바꾸었다.

 

독한 사람은 아닐지 몰라도, 돼지는 별수 없는 돼지였다.

 

‘저 메기처럼 생긴 입술 봐, 뜯어내면 한 근은 나오겠네.’

 

해동산이 실실 웃으며 풍천을 소개했다.

 

“같이 일하기로 한 사람이야. 어이, 인사하게. 이쪽은 내 절친한 친구인 동포동이네. 보기에는 이래 보여도, 어지간한 강호 고수도 이 친구를 어쩌지 못하지.”

 

두툼한 살로 충격을 완화시키는 외문무공이라도 익혔나 보다. 그러니 무공을 익혔다는 사람이 돼지처럼 생겼지.

 

풍천은 건성으로 포권을 취하며 가명을 댔다.

 

“잠풍입니다.”

 

‘동포동이라, 이름도 포동포동하군.’

 

그는 웃음이 나오려는 걸 겨우 참았다.

 

동포동은 실눈으로 풍천을 노려보며 메기처럼 두꺼운 입술을 열었다.

 

“절친한 친구라는 말은 다 헛소리네. 아쉬울 때만 찾아와서 나를 피곤하게 하는 놈이니까. 저놈 때문에 지난 일 년 동안 내 몸무게가 오십 근이나 빠졌어.”

 

윽!

 

그럼 일 년 전에는 지금보다 더 뚱뚱했다는 건가?

 

풍천은 경이의 눈으로 동포동을 바라보았다. 해동산이 손짓을 하며 풍천을 방으로 이끌었다.

 

“뭐하나? 들어가자니까.”

 

동포동이 해동산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았다. 그래 봐야 눈동자도 보이지 않았지만.

 

“동생이 죽었다니 내쫓지는 않겠지만, 외상은 절대 안 되네.”

 

“걱정 말게. 이 친구가 다른 건 몰라도 돈은 제법 많거든.”

 

풍천은 해동산의 말에 반박하려다 꾹 참았다. 괜찮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면 돈 몇 푼이 문제겠는가?

 

물론 엉터리 정보라면 상황이 달라지겠지만.

 

 

 

잠시 후.

 

동포동의 포동포동한 얼굴이 붉어졌다.

 

“위태곤의 움직임을 파악해달라고?”

 

“그래. 할 수 있지?”

 

“이 미친놈아, 위태곤의 움직임을 알아내는 것이 옆집 바람난 남편의 행적 추적하는 것처럼 쉬운 일인 줄 알아?”

 

“누가 쉽대? 어려운 일인 줄 아니까 너를 찾아온 거 아냐?”

 

돈 달라고 할까 봐 오고 싶지 않았지만.

 

그러나 해동산이 추켜세워 줘도 동포동의 얼굴은 거의 변화가 없었다.

 

“너까지 죽으려고 작정했어? 대체 무슨 일로 신마성주의 둘째 제자 움직임을 파악해달라는 거야? 아, 혹시 동생이 그들에게 당한 거야?”

 

“그런 거 아냐. 그리고 싸우려고 그러는 거 아니니까 걱정 붙들어 매. 그냥 뭐 좀 알아볼 게 있어서 그러는 것뿐이야.”

 

“싸워? 네가? 신마성주의 둘째 제자와? 큭, 크크큭. 이거 진짜 오랜만에 남창의 너구리가 방귀 뀌는 소리를 들어보는군.”

 

“잔소리 말고, 할 수 있어, 없어? 그거만 말해봐.”

 

“어려울 거야 없지. 그런데 정말 싸우려고 그러는 건 아니지?”

 

“내가 미쳤어? 나는 말이야, 쥐도 새도 모르게 죽어서 포양호의 물고기 밥이 되고 싶지는 않아.”

 

“정말이지?”

 

해동산이 가슴을 치며 세상에서 가장 믿음직한 사람처럼 말했다.

 

“걱정 말고 믿으라니까.”

 

하지만 그럴수록 동포동은 그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쌍둥이 동생이 죽었다더니, 갑자기 위태곤의 움직임을 알아봐달라고 왔다.

 

그런데 신마성과 싸우려 그러는 게 아니라고?

 

“사람 죽이는 거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네가 그들의 움직임을 알아서 뭐하려고? 이거 영 불안해서 안 되겠는데…….”

 

풍천은 그 말에서 또 한 가지의 사실을 깨달았다. 해동산의 청부업은 해동권이 거의 다 꾸려나갔을 거라는 사실.

 

‘이 양반은 동생이 하라는 대로만 움직였을 것 같군.’

 

어쨌든 질문한 것에 대한 대답을 원하는 사람은 해동산이 아니라 자신이었다.

 

동포동이 쉽사리 입을 열지 않자 결국 그가 나섰다.

 

“걱정 마십시오. 사실 그걸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은 해 형이 아니라 저거든요. 그러니 해 형이 섣부른 행동을 하는 일은 없을 거요.”

 

동포동의 실처럼 가느다란 눈이 풍천을 향했다. 그는 해동산도 믿을 수 없지만, 풍천은 더더욱 믿을 수가 없었다.

 

어디 가서 기둥서방이나 하면 딱 맞을 것 같은 놈이 신마성주의 둘째 제자에 대한 걸 알고 싶다니. 자칫하면 풍천 때문에 해동산과 자신까지 피해를 입을지 몰랐다.

 

그래도 일단은 정보상인답게 별다른 표정을 드러내지 않고 이유를 물어보았다.

 

“흠, 그래? 그런데 자넨 왜 그걸 알려고 하는 거지?”

 

“찾아야 할 사람이 있거든요.”

 

“찾아야 할 사람?”

 

무심코 반문하던 동포동의 통나무 같은 목이 좌우로 기우뚱거렸다. 뭔가가 갑자기 떠오른 듯한 표정.

 

“남자야, 여자야?”

 

“여자요.”

 

동포동의 실눈에서 묘한 빛이 반짝였다.

 

“혹시…… 위태곤과 함께 다닌다는 그 여자?”

 

풍천의 눈빛이 흔들렸다.

 

확신을 얻은 동포동이 다시 물었다.

 

“위태곤의 정부라고 소문난 그 여자?”

 

풍천의 눈빛에서 한기가 흘러나왔다.

 

‘위태곤의 정부?’

 

동포동은 실눈으로 실실 웃으며 말을 이었다.

 

“성깔이 사나워서 위태곤이 위로 올라가지도 못할 거라고 하던데. 등왕각에서 그들을 본 사람들 말에 의하면, 위태곤을 변태라고 했다는 소문도 있고…….”

 

풍천의 눈빛이 다시 깊게 가라앉았다.

 

‘초령이가 변태라고 부르는 걸 보니 좋아하는 사이는 아닌 것 같군.’

 

동포동은 놀리는 것에 재미를 붙이고 낄낄거리며 한마디 더했다.

 

“낄낄낄, 혹시 자네도 그 여자와 이상한 놀이하는 걸 못 잊어서 찾아온 건가? 내 충고하는데, 그런 여자는 잊게. 어디 여자가 없어서 그런 년을…….”

 

‘그런 녀어언?’

 

풍천은 갑자기 눈앞에 아무것도 안 보였다.

 

가슴이 울컥하더니 불끈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빡!

 

“어어어…….”

 

빠바박!

 

 

 

해동산은 풍천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좀 더 일찍 나설 수 있었는데도 동포동이 짱돌에 맞은 두꺼비처럼 퍼진 후에야 나섰다.

 

“이 사람아, 자네 왜 이러나?”

 

“놔요, 놔! 내가 오늘 저 돼지를 잡아서 통구이를 만들어버릴 겁니다!”

 

“참게! 내 친구라니까!”

 

“뭐? 그런 년? 놓으라니까요!”

 

“어허, 내 얼굴을 봐서 이번만 참게.”

 

“해 형, 정말 저 사람이 친구 맞습니까? 제가 봐선 친구라기보다 못 잡아먹어서 한인 사이 같은데요?”

 

“뭐 그것도 전혀 틀린 말은 아니지.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곤죽을 만들면 어떡하나? 저러다 죽기라도 하면…….”

 

“저 정도로는 끄떡없을 걸요? 보니까 합마공 종류의 외문무공을 익힌 것 같은데, 어디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 보죠!”

 

“이봐…….”

 

“이거 놓으라니까요!”

 

해동산은 풍천의 옷자락을 잡고 그리 사정하는 것 같지도 않은 표정을 지은 채 말했다.

 

“그래도 한 번은 봐주게. 저 동가도 자네와 그 여자가 어떤 사이인지 모르고 그랬을 거야.”

 

풍천은 씩씩거리면서도 해동산의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갑자기 핏대가 솟아서 앞뒤 안 가리고 두들겨 패긴 했는데, 어느 정도 흥분이 가라앉자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사이가 그리 좋은 것 같진 않아도 해동산과 십 년을 거래한 사이라는데 말 한마디 실수했다고 주먹부터 날렸으니…….

 

그런데 왜 그렇게 화가 난 거지?

 

욕을 한 것이 가장 큰 이유긴 했지만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럼 왜? 위태곤과 함께 있다는 것 때문에? 정부라고 한 말 때문에? 이상한 짓이라는 말을 해서?

 

그 생각을 하자 또 이마가 지끈거리고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확실히 욕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숨을 깊게 들이쉬어서 마음을 가라앉힌 풍천은 최대한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뜻은 그렇지 않았지만.

 

“좋습니다. 해 형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이번만은 참죠. 하지만 한 번만 더 엉뚱한 소리하면, 이 자리에서 껍질을 벗겨버릴 겁니다.”

 

“저번처럼 말인가? 그건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풍천은 해동산을 흘겨보았다.

 

‘무슨 말을 하는 거야?’

 

해동산이 눈을 찡긋했다. 풍천은 해동산의 말뜻을 번개처럼 알아듣고 태연히 답했다.

 

“덩치가 크니 머리만 벗기죠.”

 

“그래도 동가와는 적지 않은 세월 알고 지낸 사인데…….”

 

“그래서 참는 거요. 그러고 보면 저도 참 성질 많이 죽었죠? 전 같으면 그냥 앞뒤 안 가리고 일단 벗기고 봤을 텐데 말이죠.”

 

한편 동포동은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정신을 차렸다. 특별하게 부러지거나 한 곳은 없는 것 같은데 전신이 쑤셨다.

 

‘뭐 저런 새끼가 다 있어? 아이고, 머리 어깨 팔 다리 배 등짝이야.’

 

눈 한 번 깜짝할 동안에 수십 대를 두들겨 맞고 한순간 정신을 잃었다. 어찌나 급소만 골라서 교묘하게 때리는지 자신이 익힌 외문무공 합마금포삼(蛤蟆金布衫)도 소용이 없었다.

 

그래도 어쨌든 합마금포삼 덕분에 큰 부상은 당하지 않고 정신을 차렸는데, 껍질을 벗기네 어쩌네 하는 말을 듣자 뚱뚱한 몸에 소름이 돋았다.

 

‘무지막지하게 손을 쓰는 걸 보니 정말 껍질도 벗길 놈이야. 사람을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되는데 실수했군. 빌어먹을.’

 

엎드려 있던 동포동은 비비적거리며 바닥에서 일어났다. 몸이 워낙 뚱뚱해서 앉았는지 섰는지 잘 알 수가 없었다.

 

풍천과 오래 마주하고 싶지 않은 그는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풍천이 다시 묻기 전에 자신이 아는 바를 말했다.

 

“끄응, 위태곤이 오늘 등왕각에 올 거라는 말을 들었다. 그곳에 들린 후 근처의 등월루에서 저녁 식사를 할 모양이다. 당장 아는 것은 그것밖에 없어.”

 

 

 

3

 

 

 

마차가 등왕각 앞에 멈추자 호위 무사대가 둘러쌌다.

 

곧 마차 문이 열리고 위태곤과 백초령이 밖으로 나왔다.

 

수수한 옷차림이었지만, 하얀 백의를 걸친 백초령의 모습은 서산으로 떨어지는 석양빛을 받아 신비하리만치 아름다웠다.

 

위태곤은 그런 백초령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헛기침을 하며 걸음을 옮겼다.

 

“험, 올라가지?”

 

백초령은 무표정한 얼굴로 석조계단을 올라갔다.

 

‘지금쯤 아버지도 내가 무사하다는 것을 알았겠지?’

 

그것이 그녀가 등왕각에 자주 오르는 이유였다. 기회가 되면 누군가가 자신을 구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었고.

 

또한 굳이 그 이유가 아니더라도, 등왕각에 올라 드넓은 포양호를 바라보다 보면 답답함과 슬픔이 어느 정도 가셨다.

 

석조계단을 오른 그녀는 위태곤과 함께 등왕각의 누각 안으로 들어갔다.

 

평소보다 늦은 시간. 누각 안에는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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